빨간 드레스에 긴 금발을 한 엘리자베스 모스(38)는 자신의 트레이드마크와도 같은 환한 미소를 지으면서 인터뷰에 응했다. 나이보다 훨씬 어려 보여 귀여운 소녀 같았는데, 밝고 명랑하고 활달해 대하기가 아주 편했다. 최근 할리우드 런던호텔에서 있었던 인터뷰장에 나와 크게 웃으면서 씩씩하게 질문에 대답했다.

모스는 케이블TV AMC의 장기 드라마 시리즈 ‘매드 맨(Mad Men)’으로 스타가 된 배우다. 모스는 현재 스트리밍업체 훌루의 인기 드라마 시리즈 ‘핸드메이즈 테일(The Handmaid’s Tale)’에도 주연으로 나오고 있다. 모스는 현재 한국에서 상영 중인 공상과학 공포영화 ‘인비저블맨(The Invisible Man)’에서는 거부(巨富) 과학자의 애인 세실리아로 나온다. 세실리아는 애인의 철저한 통제와 억압에 시달리다 탈출해 투명인간이 된 후 자신을 집요하게 추적하며 괴롭히는 애인에게 반격을 가한다. ‘인비저블맨’은 H G 웰스의 소설이 원작으로 그동안 여러 차례 영화로 만들어졌다.

- 작품의 어떤 점에 반해 출연을 결정했는가. “무엇보다 또 다른 공포영화에 출연하고 싶었다. 작년에 조던 필이 감독한 ‘어스’에 잠깐 나왔는데 그때 멋진 경험을 해 공포영화를 다시 해보고 싶었다. 난 어려서부터 공포영화를 좋아했다. 어두운 소재를 좋아하고 그다지 무서워하지도 않는다. 이번 영화의 각본을 읽고 훌륭한 인물 위주의 성격탐구 영화라고 생각했다. 이 영화는 요즘 중요하게 거론되는 가정폭력과 여성의 권리주장이 묵살되는 것에 관해서도 말하고 있다. 영화는 이런 문제들을 공포영화라는 틀에 잘 반영하고 있다.”

- 안 보인다는 것이 왜 무섭다고 생각하는가. “그 앞에서 우린 무기력해지기 때문이다. 우린 보이는 것에 대해선 반격을 가할 수가 있지만 안 보이는 것에 대해선 속수무책이다.”

- 당신이 두려워하는 것은 무엇인가. “내가 두려워하는 것은 침묵이다. 난 도시 사람이어서(LA 출생) 침묵에 익숙하지 못하다. 침묵과 숲에 둘러싸인 오두막에 혼자 있으면 겁에 질릴 것 같다. 그리고 깊은 물도 무섭다.”

- 보이지 않는 투명인간과 싸우는 장면을 연기하기가 힘들지 않았는가. “그 장면은 녹색 화면을 바탕으로 녹색 옷을 입고 찍었다. 모양이 드러나지 않는 스턴트맨을 상대로 연기했다. 맨 마지막에 촬영해 다행히 시간이 있어 몇 주간 연습했다. 만반의 준비를 하고 찍었다. 스턴트맨의 출중한 실력으로 인해 무사하고 안전하게 촬영을 끝낼 수 있었다.”

- 자라면서 보고 즐긴 공포영화로는 어떤 것들이 있나. “1970~1980년대에 만들어져 이제는 고전이 된 ‘폴터가이스트’ ‘엑소시스트’ ‘샤이닝’ 등이다. 다분히 예술적인 ‘로즈메리스 베이비’도 좋아한다. 최근 작품으로는 ‘겟 아웃’ ‘어스’ ‘콰이어트 플레이스’ ‘버드 박스’ 등이 있다. 요즘 나온 공포영화들은 옛 영화들처럼 내용이 아주 스마트하다. 어렸을 때 친구들과 함께 공포영화를 보면서 무서워 죽는 줄 알았다. 그러나 한편으론 그런 경험이 재미있었다. 난 공포영화 외에도 ‘제이슨 본’과 같은 스릴러도 좋아한다.”

- 젊었을 때 프로댄서가 되려고 수련을 받았는데 아직도 춤이 당신의 삶에 있어 중요한 몫을 차지하는가. “춤이란 절대적인 통제와 이해를 필요로 하는 것이다. 종종 혼자 해야 하는 고독한 작업으로 영육을 다해 단련해야 하는 예술이다. 보다 나아지기 위해선 극한적인 단련이 필요하다. 난 음악인 가정에서 자라 연습이 완전을 가져오는 원동력이라는 것을 잘 안다. 아주 어려서부터 통제와 단련이 무엇인지를 잘 알았다. 그러나 이제 춤은 재미로 친구와 함께 추는 정도이고 더 이상 발레 연습은 하지 않는다.”

- 당신이 이런 공포영화에 나와 죽을 고생을 하는 것을 보고 가족들은 뭐라고 말하는가. “어머니는 재즈음악 연주자로 이런 영화를 안 좋아한다. 예술가여서 내가 하는 일을 인정하면서도 ‘핸드메이즈 테일’을 보면서 이건 정상이 아니라고 말하곤 한다. 어머니여서 자기 딸이 시달리고 공포에 질리는 것을 보기가 힘든 것이다. 물론 어머니는 사실이 아니라 연기라고 나를 칭찬하면서도 편안히 앉아 즐길 수가 없다고 말한다.”

- 공포영화에서 힘든 연기를 하고 난 뒤 어떻게 회복하는가. “이상하게 들릴지 모르지만 그런 연기와 역을 즐긴다. 거기서 도전을 느낀다. 그리고 도전에 응했다는 만족감을 얻곤 한다. 그런 역은 일종의 분출구라고 하겠다. 육체적으론 피곤하지만 정신적으로까지 그렇게 느끼진 않는다. 연기가 끝나고 나면 자연스레 스트레스가 풀린다.”

- 연기 끝나고 집에 돌아가면 무엇을 하는가. “음식을 시켜 칵테일과 함께 먹고 아이패드로 좋아하는 TV 프로그램을 본다.”

영화 ‘인비저블맨’에서 과학자 애인 세실리아를 연기한 모스.
영화 ‘인비저블맨’에서 과학자 애인 세실리아를 연기한 모스.

- 코미디언 멜리사 매카시가 당신을 만나기가 두려웠다고 말하는데 왜 그렇다고 보는가. “사람들은 흔히 다른 사람을 일로 인해 알기 때문이다. 특히 내가 어두운 작품에 많이 나와 그런 것 같다. 어두운 영화에 나오다 보면 도전적이요 매우 심각해지기 쉽다. 사람들이 날 그렇게 생각한다면 앞으로 보다 심각하고 도전적이며 겁주는 사람이 돼볼까 하는 생각마저 했다. 그러나 난 그런 사람이 아니다.”

- 영화에서 당신을 괴롭히는 애인이 전에 만들어진 ‘투명인간’들의 주인공과 다른 점은. “그를 살아 숨쉬는 진짜 괴물과 같은 인간으로 만들어 겉으로 보면 당신과 나와 같은 사람으로 묘사한 것이다. 그가 지적이요 핸섬하기 때문에 세실리아도 그에게 반한 것이다. 그러나 뒤늦게 알고 보니 그는 가학적인 사람이요 심리조작에 능한 괴물인 것이다. 이런 점을 여자의 관점에서 피력하려고 노력했다.”

- 당신이 투명인간이 된다면 제일 먼저 하고픈 일은 무엇인가. “좀 짓궂은 일이지만 훌륭한 배우들이 연기하는 무대에 올라 그들이 하는 연기를 볼 것이다. 그리고 메릴 스트립을 쫓아다니면서 그의 연기에 대해 메모를 하고 싶다.”

- 영화에서 당신이 정신병동에 갇혔을 때 모습은 분장도 안 한 추하고 초라한 것이었는데 그런 모습을 보고 어떻게 느꼈는가. “화장한 모습을 보는 것보다 훨씬 더 좋았다. 난 늘 가는 데까지 가보자며 밀고 나가는 식이다. 영화에서도 날 최대한으로 보기 추하게 만들어 달라고 졸랐다. 그렇게 해야 시각적 효과와 맡은 역을 개성 있게 표현할 수 있기 때문이다. 난 보통 땐 화장을 많이 하는데 특히 립스틱을 좋아해 많이 가지고 있다. 미용과 화장을 좋아하지만 연기할 때는 그런 내가 아닌 다른 나를 탐구하는 것에 더 관심이 많다. 연기할 땐 내가 어떻게 보이든지 괘념하지 않는다. 그땐 허영을 버리는 것이 매우 중요하다고 본다.”

- 여성으로서 어디서 또 누구로부터 힘을 얻는가. “오랫동안 함께한 몇 안 되는 가까운 친구들로부터다. 그들은 오랫동안 여러 난관 속에서도 나를 지켜주고 밀어주었다. 내가 배우로서 유명해지기 전부터다. 그들은 다 내가 우러러보는 매우 현명하고 강한 여자들이다. 그리고 어머니다. 어머니는 내가 아는 그 어느 여자들보다 강하고 똑똑하다. 그래서 난 어머니에게 자주 의지한다.”

- 언제 배우가 평생 직업이라고 깨달았는가. “단 한 번에 결정한 것은 아니고 여러 단계를 거쳐서야 결정했다. 난 늘 연기를 사랑했고 세트에 있는 것을 좋아했다. 10세 때 하비 케이틀과 공연한 영화에서 처음으로 제대로 된 역을 맡아 극적인 연기를 하면서 울었는데 그것이 아마 배우가 되겠다고 처음으로 결심한 계기였던 것 같다. 그런데 난 아직도 연기를 하면서 새로운 것을 발견하곤 한다. 난 여전히 배우는 중이다.”

- 세실리아는 전 애인으로부터 시달리다 못해 마침내 반격을 가하는데 실제로 당신은 어떤가. “난 자신을 믿으라는 가르침 아래 자랐다. 자신의 음성을 가져야 한다는 것을 믿으라고 교육받았다. 그리고 ‘너의 음성은 남의 것과 마찬가지로 중요하다’고 배웠다. 따라서 나는 필요하다면 얼마든지 반격을 가할 만반의 준비가 다 돼 있다. 육체적으로 강해야만 반격을 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육체적으로 연약한 여자라도 반격을 할 수 있는 힘이란, 차에 깔린 자기 아이를 구하기 위해 어머니가 차를 들어올릴 수 있는 힘을 발휘하는 것과 같다. 필요하다면 얼마든지 육체적 또 정신적으로 힘을 행사할 수 있다고 믿는다.”

박흥진 할리우드외신기자협회(HFPA) 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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