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19 사달이 나기 전 한국에서 매일 90편의 비행기가 베트남으로 갔다. 지난 2월 29일 코로나19 사태로 인해 베트남 무비자 입국은 중단됐고, 갑작스러운 착륙금지 통보로 베트남으로 향하던 아시아나 항공기가 회항했다. 2020년 ‘패스포트 파워’ 세계 3위의 ‘한국 여권’은 유명무실해졌고, 마음만 먹으면 언제나 갈 수 있던 호찌민은 ‘금기의 도시’로 돌변했다.
하늘길은 막혔지만 호찌민은 언제라도 찾고 싶은 고혹적인 도시다. 몇 달 전 호찌민 ‘타오 딘’ 지역에서 지낼 때다. 일요일 아침에 세탁기를 돌렸다. 한두 달씩 여행을 해도 옷을 한두 벌만 들고 다니는 탓에 매일 밤 손빨래를 하다 세탁기를 돌리니 속이 다 시원하다. 일주일째 같은 숙소에 머물고 세탁기를 돌리는 것만으로 호찌민에 사는 듯한 기분에 빠져든다. 한 직원 때문에 계속 여기에 머물게 됐다. 첫날 밤, 에어컨 실외기의 요란한 소리에 잠을 완전히 설치고 말았다. 그런데 다음 날 저녁 숙소로 돌아온 내게 달려온 직원이 귀마개를 내밀었다. 그녀는 부러 약국에 가 ‘미제 귀마개’를 사왔다. 사실 에어컨 없이 살 수 없는 베트남에서 이 정도 소음은 별거 아닌 것으로 여겨질 테니 그녀는 내 불평을 쉬이 이해하기 어려웠을 텐데 이리 마음을 쓴다. 그 마음이 고마워 나도 모르는 새 그녀 손을 덥석 잡을 뻔했다.
한번은 비가 쏟아지던 밤, 숙소에 도착해 택시에서 내리는데 밤에 숙소를 지키던 남자가 아이처럼 환하게 웃으며 우산을 들고 달려왔다. 내가 묵는 숙소는 특급호텔이 아닌 3만~4만원짜리 호텔이다. 손님이 오건 말건 여느 숙소의 경비들이 그렇듯 맨발을 의자에 올리고 스마트폰으로 TV를 보는 게 자연스럽기에 두 사람은 오랫동안 내 기억에 남았다.
‘호찌민의 강남’ 타오 딘의 일상
타오 딘은 ‘호찌민의 강남’이다. 하지만 내 일상은 별거 없다. 숙소 바로 앞 수수한 동네 카페에서 아침을 맞는다. 초콜릿 향미 진한 1만5000동(670원)짜리 베트남 커피, ‘카페 쓰 어 다’와 돼지고기 편육이 들어간 2만3000동(1200원)짜리 ‘반미(바게트 샌드위치)’로 아침을 먹는다. 인근엔 화려한 백화점도 있지만 내겐 베트남 정취 가득한 이곳이 진짜 호찌민이다. 숙소에서 타오 딘 중심가의 단골 카페까지는 1.4㎞, 걸어보니 15분쯤 걸렸다. 그랩 바이크(오토바이 택시)를 부르면 1만2000동(600원)에 쏜살같이 데려다 준다. 그 길에 종종 가는 5000동(260원)짜리 ‘늑미아(사탕수수 음료)’ 가게, 6000동(300원)짜리 ‘고이 꾸온(튀기지 않은 스프링롤)’ 노점, 구운 돼지고기를 밥에 얹어 파는 ‘껌땀’ 식당이 있다. 아침이면 가게 앞 화덕 연통에선 모락모락 연기가 피어오르는 껌땀을 먹으러 간다. 구운 돼지고기와 밥에 달걀부침을 추가해 절인 무, 오이, 토마토 등과 함께 먹는데 3만동(1560원)이면 족하다. 저녁에 딱 어울리는 ‘분짜’는 5만5000동(2860원)인데 구운 돼지고기, 쌀국수면과 야채를 ‘느억맘(피시소스)’에 담갔다 건져 먹는다. 이리 먹고 지내면 돈 걱정은 안 하고 살겠다는 생각이 절로 든다. 내가 특히 좋아하는 껌땀은 사실 가난한 시절, 흉년 때 먹었다는 음식이다. ‘껌’은 돼지고기, ‘땀’은 깨진 쌀로 지은 밥이다. 추수 후에 내다 팔 수 없는 못난 쌀을 모아 밥을 지은 보릿고개 음식을 한국에서 나는 종종 그리워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