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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문화/생활
[2598호] 2020.03.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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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금기의 도시’로 돌변한 호찌민

▲ 호찌민의 여행자 거리로 불리는 브이비엔 거리.
코로나19 사달이 나기 전 한국에서 매일 90편의 비행기가 베트남으로 갔다. 지난 2월 29일 코로나19 사태로 인해 베트남 무비자 입국은 중단됐고, 갑작스러운 착륙금지 통보로 베트남으로 향하던 아시아나 항공기가 회항했다. 2020년 ‘패스포트 파워’ 세계 3위의 ‘한국 여권’은 유명무실해졌고, 마음만 먹으면 언제나 갈 수 있던 호찌민은 ‘금기의 도시’로 돌변했다.
   
   하늘길은 막혔지만 호찌민은 언제라도 찾고 싶은 고혹적인 도시다. 몇 달 전 호찌민 ‘타오 딘’ 지역에서 지낼 때다. 일요일 아침에 세탁기를 돌렸다. 한두 달씩 여행을 해도 옷을 한두 벌만 들고 다니는 탓에 매일 밤 손빨래를 하다 세탁기를 돌리니 속이 다 시원하다. 일주일째 같은 숙소에 머물고 세탁기를 돌리는 것만으로 호찌민에 사는 듯한 기분에 빠져든다. 한 직원 때문에 계속 여기에 머물게 됐다. 첫날 밤, 에어컨 실외기의 요란한 소리에 잠을 완전히 설치고 말았다. 그런데 다음 날 저녁 숙소로 돌아온 내게 달려온 직원이 귀마개를 내밀었다. 그녀는 부러 약국에 가 ‘미제 귀마개’를 사왔다. 사실 에어컨 없이 살 수 없는 베트남에서 이 정도 소음은 별거 아닌 것으로 여겨질 테니 그녀는 내 불평을 쉬이 이해하기 어려웠을 텐데 이리 마음을 쓴다. 그 마음이 고마워 나도 모르는 새 그녀 손을 덥석 잡을 뻔했다.
   
   한번은 비가 쏟아지던 밤, 숙소에 도착해 택시에서 내리는데 밤에 숙소를 지키던 남자가 아이처럼 환하게 웃으며 우산을 들고 달려왔다. 내가 묵는 숙소는 특급호텔이 아닌 3만~4만원짜리 호텔이다. 손님이 오건 말건 여느 숙소의 경비들이 그렇듯 맨발을 의자에 올리고 스마트폰으로 TV를 보는 게 자연스럽기에 두 사람은 오랫동안 내 기억에 남았다.
   
   
   ‘호찌민의 강남’ 타오 딘의 일상
   
   타오 딘은 ‘호찌민의 강남’이다. 하지만 내 일상은 별거 없다. 숙소 바로 앞 수수한 동네 카페에서 아침을 맞는다. 초콜릿 향미 진한 1만5000동(670원)짜리 베트남 커피, ‘카페 쓰 어 다’와 돼지고기 편육이 들어간 2만3000동(1200원)짜리 ‘반미(바게트 샌드위치)’로 아침을 먹는다. 인근엔 화려한 백화점도 있지만 내겐 베트남 정취 가득한 이곳이 진짜 호찌민이다. 숙소에서 타오 딘 중심가의 단골 카페까지는 1.4㎞, 걸어보니 15분쯤 걸렸다. 그랩 바이크(오토바이 택시)를 부르면 1만2000동(600원)에 쏜살같이 데려다 준다. 그 길에 종종 가는 5000동(260원)짜리 ‘늑미아(사탕수수 음료)’ 가게, 6000동(300원)짜리 ‘고이 꾸온(튀기지 않은 스프링롤)’ 노점, 구운 돼지고기를 밥에 얹어 파는 ‘껌땀’ 식당이 있다. 아침이면 가게 앞 화덕 연통에선 모락모락 연기가 피어오르는 껌땀을 먹으러 간다. 구운 돼지고기와 밥에 달걀부침을 추가해 절인 무, 오이, 토마토 등과 함께 먹는데 3만동(1560원)이면 족하다. 저녁에 딱 어울리는 ‘분짜’는 5만5000동(2860원)인데 구운 돼지고기, 쌀국수면과 야채를 ‘느억맘(피시소스)’에 담갔다 건져 먹는다. 이리 먹고 지내면 돈 걱정은 안 하고 살겠다는 생각이 절로 든다. 내가 특히 좋아하는 껌땀은 사실 가난한 시절, 흉년 때 먹었다는 음식이다. ‘껌’은 돼지고기, ‘땀’은 깨진 쌀로 지은 밥이다. 추수 후에 내다 팔 수 없는 못난 쌀을 모아 밥을 지은 보릿고개 음식을 한국에서 나는 종종 그리워한다.
   
   
1 461m 높이의 빈콤랜드마크81은 호찌민에서 가장 높은 빌딩이다.
2 빈콤랜드마크81 아래로 내려다보이는 호찌민 신시가지.
3 빈콤랜드마크81 빌딩 75층에 있는 카페 블랭크에는 외국인보다 베트남 사람이 많다.
4 이른 아침, 거리를 청소하는 타오 딘의 국제학교 아이들.

   쌀국수 한 그릇에 4만7000원
   
   호찌민에서 보내는 일상은 ‘시간여행’이다. 타오 딘 골목을 걷다 에스텔라(Estella Place) 같은 럭셔리몰에 오면 시간은 급변한다. 1980년대에서 느닷없이 2020년으로 타임슬립이라도 한 것 같다. 몰에선 극단적인 삶이 교차한다. 달랑 음료 한 잔을 픽업해 배달하는 머리 허연 그랩 기사와 포르쉐를 끌고 온 20대 베트남 여자, 아이들을 데리고 나온 외국인 부부가 조우한다. 오늘 아침, 하얗게 빛나는 셔츠를 입고 거리를 청소하는 인근 국제학교 아이들을 보았다. 타오 딘에는 아메리칸, 브리티시, 호주 인터내셔널 스쿨 등 여러 나라의 국제학교가 있다. 호찌민의 여행자 거리라는 데탐과 브이비엔에는 열일곱 열여덟 살 여자아이들이 매일 밤 줄지어 서 마사지 전단을 나눠준다. 호찌민의 우기에는 때로 가랑비, 때로는 폭우가 쉼 없이 내린다. 비가 내리면 타오 딘 곳곳이 침수된다. 걸어가면 그만일 거리를 택시를 타고도 바로 못 가고 거리를 빙빙 돌아간다. 타오 딘 거리를 걸으며 때때로 생각한다. 침수된 도로에서 럭셔리몰로 갈 수 있는 이는 얼마나 될까? 누구나 갈 수 있는 듯 보이지만 사실은 갈 수 없는 길 아닌가?
   
   내가 지내는 숙소 옆 아파트는 자이다. 한국의 그 ‘자이’ 말이다. 방 세 개짜리 집 월세가 2500달러다. 타오 딘에서 강을 건너면 호찌민에서 가장 높은, 461m 높이의 빌딩 ‘빈콤랜드마크81’의 75층에 카페 블랭크(Cafe Blank)가 있다. 외국인이 많을 거란 예상과 달리 뜻밖에 젊은 베트남 여자들이 많다. 다들 과장된 몸짓으로 사진 찍기 바쁘다. 창밖으로 호찌민의 신도시 고층아파트 단지들이 펼쳐진다. 대졸 초임이 30만~40만원이란 호찌민에서 작년에 분양한 ‘알파힐(Alpha Hill)’이란 아파트는 방 세 개짜리가 15억원, 방 두 개짜리 임대료는 600만원 정도이다. 빈콤랜드마크81에서 내려다보이는 독채 빌라의 분양가는 43억원에서 78억원 정도다. 여기 꼭대기 어딘가에 있는 레스토랑에선 쌀국수 한 그릇에 90만동(4만7000원)을 받는다. 아침마다 내가 즐겨 먹은 껌땀 서른 그릇 값이다. 여기도 호찌민이다.
   
   
   그녀가 변했다
   
   “우리 서로 못 알아보는 거 아냐?”
   
   그녀가 말했다. 몇 년 만에 메시지를 주고받고 있으니 무리도 아니다. 6~7년쯤 전 하노이에서 우연히 만난 우리가 함께한 시간은 서너 시간이 전부였다. 길을 묻다 알게 된 베트남 여자를 따라 어둠이 내린 하노이의 카페에 갔었다. 하노이에서 손꼽히는, 아주 오래된 카페라고 했지만 발랄한 스무 살 중반의 여자가 좋아할 만한 분위기는 아니었다. 2~3년 후 호찌민에서 그녀를 다시 만났다. 이번에도 딱 커피 한잔 마실 시간을 스타벅스에서 함께했다. 그리고 그녀가 서울에 온다고, 내가 호찌민에 간다고 서너 번 메일을 주고받았지만 다시 만나진 못했다. 그런데 내가 타오 딘에 머문다는 걸 페이스북을 통해 알게 된 그녀가 연락을 해왔다. 그녀는 타오 딘의 대단지 아파트인 마스테리(Masteri)에 살고 있다. 며칠 전 구경 삼아 빈콤몰이란 곳에 갔을 때 이 몰에 접한 아파트 단지를 보고 꼭 경기도의 신도시 아파트 같다고 생각했는데 그게 바로 마스터리다.
   
   “우리 집 쪽으로 올 수 있어? 청소 중인데 금방 마치고 나갈게.”
   
   내가 지금 머무는 숙소에서 그녀의 아파트까지는 걸어가도 15분이면 도착하고, 그랩 바이크를 부르면 겨우 5분 거리다. 느닷없고, 반갑고, 싱거운 만남이었다. 마스테리 상가의 카페에서 나는 애플주스를, 그녀는 코로나 맥주를 주문했다. 오후 4시 반에 맥주를 시키는 그녀가 낯설었다. 반듯하고 단정한 사람, 나는 그녀를 이런 식으로 기억했다. 으레 베트남 여자들이 그렇듯 스무 살 중반을 넘기고 결혼해 아이 낳고, 잘 살고 있을 거라 생각했다. 예상과 달리 그녀는 결혼하지 않았고, 남자친구도 없고, 언젠가 아이를 갖고 싶지만 지금은 자기 삶을 안정적으로 만드는 게 더 중요하다고 했다. 처음 보았을 때 앳된 직장인이었던 그녀가 겨우 6~7년의 시간이 흐른 후 호찌민에서도 집값 비싼 곳으로 꼽히는 곳에 아파트를 사고, 차를 사고, 자신감 넘치는 엔지니어로 살고 있다.
   
   “독일계 회사에 다니며 도쿄 지사에서 2년 정도 살기도 했고, 그때 나를 좋아한 일본 남자도 있었는데 도쿄에서 산다는 걸 상상할 수 없었어.”
   
   그녀가 호찌민으로 돌아온 이유다. 카페 발코니에 앉아 그녀와 얘기를 나누는 동안 우리 앞으로 종종 한국 사람이 오갔다. 그녀 말로는, 마스테리에 사는 사람들 중 3분의 1 정도는 한국 사람일 거라고. 근데, 그때 우리가 갔던 카페 기억나? 그녀에게 물었다. “그럼! 주소까지 외우는데. 하노이 갈 때마다 들르거든.”
   
   잊고 있었던 그곳 이름은 ‘지앙 카페(Giang Cafe)’다. 그곳은 또 얼마나 변했으려나. 카페를 나오는데 한참 어린 그녀가 돈을 냈다.
   
   
1 호찌민의 오래된 아파트 단지에 가보면 시간은 순식간에 과거로 흘러간다.
2 타오 딘의 골목 여느 동네 카페 모습.
3 껌땀은 구운 돼지고기와 깨진 쌀로 밥을 지어 내온다.
4 베트남 친구 말에 의하면, 카페에서 파는 베트남 커피의 90%는 가짜다.

   헬로 붐붐
   
   호찌민 중심가인 1군 도로변에서 ‘퍼보(소고기 쌀국수)’를 먹고 스마트폰을 들여다보는데 국숫집 아주머니가 내 팔을 다급히 잡아끈다. 말은 안 통해도 그녀 손짓으로 알겠다. “날치기 조심해요!”
   
   한인들이 많이 사는 아파트 단지에서 빵집을 하는 한국 남자 얘기가 떠올랐다.
   
   “가게에서 창밖을 보면 매일 한 번씩은 오토바이가 스마트폰을 날치기해 간다니까요.”
   
   나 참, 15년 전, 10년 전, 5년 전에도 듣던 말이다. 어디서나 방망이 들고 기세등등한 공안들은 뭐하나 몰라. 호찌민에는 날치기뿐만 아니라 누런 이를 드러내고 “헬로, 붐붐~? 마싸~!” “헬로, 루킹 포 걸?”을 외치는 삐끼들도 여전하다. 날치기 뒤로, 삐끼 뒤로 때 묻은 금성홍기의 노란색 별이 휘날린다. 한번은 오가다 알게 된 마사지 가게 사장에게 물어봤다. “공안들이 단속 안 해? 이런 장사는 쉽지 않을 거 아냐?”
   
   “영화를 너무 많이 봤군. 우린 아주 평화롭게 지내. 가게에서 무슨 일이 벌어지는지는 공안도 다 알아. 나는 장사를 하고 공안들 용돈만 챙겨주면 그만이야. 공안이 봐주는데 누가 날 건드리겠어? 게다가 건물 주인은 미국인이야. 보트피플인데 돌아온 거지.”
   
   번듯한 호텔의 한 층을 마사지 가게로 쓰던 그는 뜻밖에 싱가포르 출신인데 젠틀한 분위기와 달리 왕년에 주먹 좀 썼다며 내게도 마사지 가게를 해보라며 권했다.
   
   “카페에서 파는 커피의 90%는 가짜 커피야.”
   
   서른 후반의 베트남 친구 ‘안’은 이런 말도 했다. 베트남은 세계 2위의 커피 수출국 아닌가? 처음에는 에이, 비약이 심하다고 생각했는데 안이 정색하고 덧붙인다.
   
   “콩 같은 곡물을 섞는 건 양반이야. 심지어 케미컬한 성분까지 섞는다고. 베트남 커피 마실 때 조심해야 해!”
   
   아이고, 베트남에서 ‘진짜 베트남 커피’를 찾기 어렵다니 이게 도대체 무슨 말인가 싶다. 무슨 수로 이를 구별하나 싶었는데 안의 말대로 연유를 넣지 않는 커피를 마셔 보면 본능적으로 알 수 있다. 이를테면 호찌민에서 무이네로 가는 버스가 멈추는 휴게소에서 마신 커피는 한 모금 입에 대보고 바로 버리고, 물로 입안을 씻어내야 했다. 뭐, 가짜 커피가 좋은 점도 있다. 일단 싸다. 달디 단 연유를 잔뜩 넣어 나쁜 맛을 희석시킨다. 가격이 싸니 사람들이 찾고, 사람들은 어느새 이 맛에 익숙해지고, 심지어 좋아하게 된다. 베트남에서 가짜 커피가 인기 있는 이유다.
   
   “호찌민에 처음 왔던 것이 15년 전쯤이라고 했지? 그동안 호찌민이 얼마나 변한 것 같아?”
   
   
   공안과 돈만 남은 도시
   
   안의 질문을 받고 생각해 보니, 희한하게도 많이 변한 것 같기도 하고, 전혀 변하지 않은 것도 같다. 고층아파트가 눈에 뜨인다는 사실은 새롭고 거리의 소음, 매연은 더 심해졌다. 여전히 소매치기, 날치기가 기승이다. 더 많은 여자들이 복면강도처럼 눈만 빼꼼히 내놓고, 35도를 웃도는 날씨에 긴팔로 온몸을 감싸고 오토바이를 탄다. 무단횡단도 아니고 파란불이 켜졌을 때 횡단보도를 건너는데 목숨을 걸어야 하는 것도 똑같다. 한번은 시내버스가, 한번은 오토바이가 내 팔꿈치를 툭 치고 지나갔다. 이른 아침이나 새벽 한두 시에 거리에서 술을 마시며 가라오케 기계로 거리가 떠나가라 노래를 부르는 남자들 모습도 여전하다. 호찌민 어디를 가나 점점이 수많은 카페가 있는데 카페마다 종일 커피를 마시고 담배를 피며 시간을 소일하는 베트남 남자들이 잔뜩 있는 것도 똑같다. 안의 말대로, 베트남은 20년 전이나 지금이나 똑같기에 돈을 벌겠다는 외국인들에겐 기회의 땅이다. 베트남에서 ‘박 호(Bac Ho)’라 불렸던 호 아저씨, 호찌민과 혁명은 가고 공안과 돈, 그놈의 돈만 남았다. 안은 매번 그렇듯 호찌민에서 뭐 좀 해보라는데 나는 씁쓰레하다. 그나저나, 호찌민에는 언제 다시 갈 수 있으려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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