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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598호] 2020.03.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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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학 연구의 최전선]2차원 물질 연구자 김근수 연세대 교수

최준석  선임기자 jschoi@chosun.com

photo 양수열 영상미디어 기자
김근수 연세대 물리학과 교수는 “흑린을 집중 연구한다. 흑린이 내 연구에서 60~70%를 차지한다”라고 말했다. 지난 1월 30일 연세대 연구실로 찾아갔을 때 이 말을 듣고 흑린이 무엇인지부터 물었다. 흑린은 인(원자번호 15, 원소기호는 P)의 일종인데 인에는 백린, 적린, 흑린이 있다는 것이 김 교수의 설명이다. 이 중 백린은 폭약으로 사용되며, 적린은 성냥개비 머리에 들어간다. 백린이나 적린이 물질 상태가 불안정한 데 비해, 흑린은 고온고압에서 처리해서 안정적이다.
   
   김근수 교수는 2차원 흑린 연구자(실험)다. 2차원 흑린은 ‘포스포린’이라는 이름을 갖고 있다. 김 교수는 2015년 포항공대 교수 시절 흑린 연구를 시작했다. 그는 미국 로렌스 버클리 국립연구소 안에 있는 방사광가속기연구소 ALS(Advanced Light Source)에서 박사후연구원으로 3년을 일하고, 2013년 11월 포항공대 교수로 부임했다. 그는 “연구 주제를 새롭게 정해야 했다. 그때 ‘포스트(post) 그래핀’이 무엇이냐를 찾았고, 흑린이란 새로운 물질에 주목했다”라고 말했다.
   
   당시 활발히 연구가 이뤄지던 그래핀은 ‘저차원 물질 연구 시대를 열었다’는 말을 듣는다. 그래핀은 2차원 흑연. 흑연인 연필심에 스카치테이프를 갖다 댔다가 막을 떼내면, 그게 그래핀이다. 안드레 가임(영국 맨체스터대학 교수)이 2004년 그래핀을 발견했고, 2010년에 노벨상을 받았다. 그래핀 이전에도 저차원 물질 연구가 있기는 했다. 이때는 표면물리라는 물리학이 있었다. 표면기판 위에 한 층 한 층 원자 막들을 올리는 연구다. 김근수 교수는 “표면물리는 기판이 없으면 물질이 존재할 수 없다. 안드레 가임이 2005년에 보인 건 표면물리에서 다뤄왔던 2차원 물질과 달랐다. 기판이 없어도 2차원 물질이 존재한다. 그래핀은 새로운 저차원 물질 연구 시대를 열었다”라고 말했다.
   
   
   그래핀이 반도체를 대체하지 못한 이유
   

   그래핀은 전기가 매우 잘 통해 실리콘을 대체할 반도체로 주목받았다. 하지만 결국은 대체하지 못했다. 그 이유가 있다. 전기는 잘 흐르나 전기가 흐르지 못하도록 통제하기가 힘드는데, 그래핀에 ‘밴드갭(band gap)’이라는 게 없기 때문이다. 반도체로 사용하려면 실리콘처럼 ‘밴드갭’이 있어 전기를 통하게 했다가 통하지 않게 하는, 이른바 제어가 쉬워야 한다.<이미지 1 참고> 그런데 물리학자들이 흑린이 그래핀과 같은 2차원 소재이면서 밴드갭을 갖고 있다는 걸 발견했다. 김근수 교수는 “그래핀의 장점은 살리고 단점을 극복할 수 있는 2차원 물질을 찾던 중 흑린에 주목하게 됐다”고 말했다.
   
   밴드갭이 무엇인지는 응집물질물리학자를 만날 때마다 듣는 설명이다. 응집물질물리학을 설명하는 기본적인 원리 중 하나이기 때문이다. 김근수 교수는 밴드갭에 관해 이렇게 표현했다. “장벽의 높이다. 전기가 흐를 수 있느냐 하는 장벽이다. 세라믹은 전기를 흘리려 해도 장벽이 높아서 전기가 흐르지 못한다. 반도체는 장벽이 애매하게 높다. 흐르게 할 수도 있고, 흐르지 못하게 할 수도 있다.”
   
   김근수 교수는 “나는 2차원 물질을 연구하는 실험가인데 그중에서도 밴드 구조, 즉 전자의 에너지 구조를 제어하는 데 관심이 많다”라고 자신의 연구를 다시 설명했다. 밴드 구조를 제어한다는 건 물질의 성질, 즉 물성을 제어한다는 것이다. 물성을 제어하는 이유는 가령 반도체 기술을 보면 알 수 있다. 반도체 기술은 물성 제어 기술의 산물이다. 즉 전기가 흐르고, 흐르지 못하는 두 가지 상태를 통제할 수 있게 되면서 이진법 연산의 기본이 되는 0과 1 상태를 만들었다. 이게 반도체와 디지털 시대를 열었다.
   

   그래핀이 흑연의 1층 구조라면, 김근수 교수가 연구하는 포스포린은 1층짜리 흑린이다. 인 원자들로 된 1층짜리 구조다. 김근수 교수는 2014년 2차원 흑린 연구에 들어가 2015년 첫 논문을 썼고, 이 연구는 학술지 사이언스에 게재됐다. 2차원 흑린 물질의 천연 상태 밴드갭은 0.3이라고 했다. 김근수 교수는 밴드갭을 0.3에서부터 0까지 범위 안에서 연속적으로 제어할 수 있다는 걸 보였다. 즉 2차원 흑린의 밴드갭을 마음대로 만들 수 있게 되었다.<이미지 2 참고>
   
   “원자물리학의 개념에 슈타르크 효과라는 게 있다. 고체물리학에서도 많이 사용되는 개념이다. 강력한 전기장을 걸어주면 2차원 흑린에서 슈타르크 효과가 나타난다는 걸 처음으로 확인했다. 아까 얘기한 대로 밴드갭을 마음대로 바꿀 수 있다는 것이다. 이를 ‘표면 슈타르크 효과’라고 할 수 있다. 우리가 표면 슈타르크 효과를 처음 확인했다. 전에는 특정 물질로 된 고체는 밴드갭이 고정되어 있다고 생각했다. 우리가 이걸 바꿨다.”
   
   
   반도체와 같은 밴드갭을 흑린에서 구현
   
   김근수 교수의 흑린 관련 두 번째 연구는 2017년에 나왔다. 그는 “흑린에 디락 입자(전자)를 인공적으로 만들 수 있었다. 그래서 2차원 흑린에 그래핀의 특징이 나타나게 할 수 있었다”라고 말했다. 디락 입자? 얘기가 갑자기 어려워지나? 그런데 그렇지 않았다. 김근수 교수 설명을 따라갈 수 있었다. 디락은 영국 물리학자 폴 디락(1933년 노벨물리학상·1902~1984)을 말한다.
   
   김근수 교수는 “입자의 운동량과 에너지를 따져보면 두 개의 관계를 함수로 표현할 수 있다. 전자 등 일반적인 입자는 2차함수로, 디락 전자는 1차함수로 표현된다”라고 말했다. 2차함수 모양은 포물선이고, 1차함수 모양은 사선이다. 디락 전자의 에너지와 운동량 관계를 표현하는 1차함수의 모양은 물질의 벌집 구조에서 나온다. 그런데 가만 보자, 그래핀이 바로 벌집모양 구조다. 그래핀은 1차함수로 표현할 수 있다.
   
   이번에는 전자와 같은 일반적인 입자를 보자. 이는 2차함수, 즉 포물선으로 그릴 수 있다고 했다. 그런데 여기서는 포물선이 두 개다. 위에 하나, 아래에 뒤집어진 거 하나가 있다. 두 개의 포물선 사이는 떨어져 있으며, 이 떨어져 있는 에너지 간격이 ‘밴드갭’이다.
   
   그가 쓴 2015년 논문은 이 두 개의 포물선 사이의 에너지 갭을 흑린에서는 맘대로 조절할 수 있다는 걸 보인 거다. 흑린의 밴드갭 값이 0.3인데, 이를 얼마든지 작은 값으로 바꿀 수 있다는 걸 보여줬다. 2017년 연구는 두 개의 포물선으로 표시되던 흑린의 에너지와 운동량 상태를 1차함수로 바꿀 수 있다는 걸 보인 것이다. 1차함수 모양은 디락 입자의 특징이라고 했다. 흑린에서 디락 입자를 인공적으로 만들 수 있다는 것이다. 디락 입자는 그래핀의 대표적인 성질이다. 그러니 그래핀이 갖고 있는 놀라운 물성을 흑린에서도 구현할 수 있게 되었다.
   
   김근수 교수는 “그래핀에서는 전자가 빨리 움직이지만 전기가 흐르거나 흐르지 않게 하는 통제가 어려웠다. 그런데 흑린에서 디락 입자를 만들어냄으로써 흑린에서도 전자가 빨리 움직일 수 있게 되었다. 흑린은 원래 온(on), 오프(off) 스위치로서 통제가 쉽다. 내가 한 일은 흑린에서 전자도 빨리 움직이고, 스위치 소자로서 전기 신호를 통제할 수 있음을 보인 것이다”라고 말했다.
   
그의 흑린 관련 세 번째 주요 논문은 네이처 머티어리얼스(Nature Materials) 2월 3일자에 게재됐다. 전자는 스핀(spin)이라는 물리량을 갖고 있다. 스핀은 ‘위’ 혹은 ‘아래’라는 두 방향을 갖고 있으며, 스핀이 한쪽 방향으로 정렬해 있는 게 자석이다. 스핀 방향을 제어하면 컴퓨터 메모리 소자 등으로 사용할 수 있다. 이 분야를 스핀트로닉스(Spintronics)라고 한다.
   
   김근수 교수는 “이번 연구 성과는 전자의 또 다른 성질을 이용하여 새로운 개념의 반도체를 만들 수 있다는 것이다. 새로운 개념이란 전자의 ‘유사스핀(pseudo spin)’을 말한다”라고 말했다. 유사스핀은 일부 물질이 갖고 있는 성질이다. 벌집모양 구조를 가진 물질은 유사스핀 특성을 갖는다. 벌집모양 구조는 ‘부분 격자’라는 걸 갖고 있다. 부분격자가 무엇인지를 김 교수가 나의 취재 수첩에 그림으로 그려줬다.<이미지3 참고> 이에 따르면 육각형 구조에는 두 종류의 ‘부분 격자’가 들어있다. 하나의 원자를 중심으로 육각형 구조는 세 가지 결합 방향을 갖고 있는데, 두 종류의 ‘부분 격자’는 그 구조를 이룬다. 부분 격자 두 개의 모양은 서로 뒤집어놓은 것과 같았다. 거울에 비춰보면 서로 모양이 같아 보이는 ‘거울 대칭’ 구조다. 김근수 교수는 “거울 대칭으로 유사스핀을 물리적으로 정의할 수 있다”라고 했다.
   
   

   한국 위협하는 중국의 ‘천인 프로그램’
   
   “자성 반도체의 발견은 스핀트로닉스 분야 개척에 지대한 공헌을 했다. 마찬가지로 유사스핀 반도체의 발견을 바탕으로 유사스핀트로닉스라는 분야를 개척할 수 있다고 본다. 유사스핀트로닉스는 그간 학자들이 이론적으로 그런 게 있을 수 있다고 설명한 적은 있다. 그러나 유사스핀이 정렬된 유사스핀 반도체는 논의된 바가 없다. 우리는 이번 연구에서 이런 개념이 가능할 뿐만 아니라, 흑린이 유사스핀 반도체임을 실험적으로 보였다.”
   
   김근수 교수는 “포항공대에서 연세대로 2017년에 왔다. 지난 2년간은 유사스핀 생각만 했다”라고 말했다. 2차원 흑린과 그래핀은 비슷하게 생겼다. 그래핀은 정육각형 벌집모양이며, 2차원 흑린은 정육각형의 두 개의 변이 찌부러진 모양이다. 2차원 흑린의 육각형은 그래핀의 육각형을 20% 변형시킨 것이라고 볼 수 있다.
   
   흑린이 발견된 것은 이미 오래되었다. 1980년대 일본 과학자들이 연구를 열심히 하다가 그 뒤 연구 붐이 가라앉았다. 다시 바람이 분 건 2014년 흑린을 얇게 떼어낸 2차원 물질을 발견하면서다. 미국 하버드대학 김필립 교수의 제자인 유안보 장(현재 중국 푸단대학 교수) 등 세 실험 연구팀이 각각 포스포린(2차원 흑린) 발견 관련 논문을 내놓았다. 김근수 교수는 마침 박사후연구원 생활을 마치고 귀국했고, 연구 소재를 찾을 때여서 2차원 흑린이 눈에 들어왔다. 김근수 교수는 “흑린을 갖고 앞으로 연구할 게 많다. 5년 이상 충분히 연구할 수 있다”라고 말했다.
   
   김근수 교수는 실험가이고, 그가 쓰는 장비는 각분해광전자분광(ARPES ·Angle-resolved Photoemission Spectroscopy)이다. 박사 시절부터 현재까지도 ARPES를 사용해 연구하고 있다. 그런데 김근수 교수는 주요 실험 장비인 ARPES를 갖고 있지 않다고 했다. 그는 미국 캘리포니아 버클리에 있는 방사광가속기 연구소인 ALS나 영국 옥스퍼드대학 인근에 있는 다이아몬드 방사광가속기 연구소로 실험하러 간다고 했다. 이 중 ALS 시설을 더 자주 사용한다고 했다. ALS는 그가 박사후연구원으로 가서 방사광 장비를 제대로 배운 곳이다. 그곳의 연구자인 일라이 로텐버그와 에런 보스트윅과는 요즘도 공동 연구를 하고 있다.
   
   김근수 교수에게 포항가속기연구소에 구축한 장비를 왜 사용하지 않고 미국과 영국에까지 가서 실험하느냐고 물었더니 “그동안 연구한 실적 덕분에 ALS나 다이아몬드 방사광가속기 연구소에서 실험 시간을 따내는 데 문제가 없다”라고 했다.
   
   실험물리학자가 주로 사용하는 장비를 갖고 있지 않다는 건 납득되지 않았다. 김근수 교수는 “ARPES가 일이억원 하는 장비도 아니고, 대학 실험실에 쓰기 위해 사오려면 10억~20억원 든다. 결국 돈 이야기가 되는데”라며 중국 이야기를 했다. 그는 “중국 과학이 너무 무섭다. 앞으로 10년 지나면 확 달라질 것 같다”라고 말했다.
   
   가령 김근수 교수가 박사후연구원 시절 같이 일했던 중국 학자인 수윤 저우(Shuyun Zhou) 박사는 현재 중국 칭화대에 있다. 연구 분야도 두 사람은 같다. “중국은 천인 프로그램(Thousand Talent Program)이란 것을 통해 신진학자에게 20억원의 스타트업 연구비를 준다. 수윤 저우 박사는 우리 그룹과 방사광가속기 실험 시간도 비슷하게 확보하면서 실험실에 ARPES도 구입해서 설치했다. 물론 실험장비가 연구자에게 다는 아니다. 창의적인 아이디어가 더 중요하다. 그래서 우리는 기죽지 않고 경쟁한다. 그렇지만 우리 학생들을 생각하면 좀 걱정된다. 중국 학생들이 실험실 장비로 미리 연습하고 방사광가속기에 실험하러 간다면, 한국 학생들은 머릿속으로 연습을 하며 경쟁하는 셈이다. 중국이 왜 이렇게 기초과학에 투자하는지 모르겠지만, 엄청나게 하고 있다. 경제 성장을 해서 생긴 여력을 기초과학에 투자하고 있다. 나중에 중국 과학이 한국보다 한참 앞서게 될까 두렵다.”
   
   그는 연세대 물리학과 2001학번이다. 2010년 연세대에서 박사학위를 받았다. 지도교수는 염한웅 포항공대 교수(IBS 연구단장). 염한웅 교수가 연세대를 떠나 포항으로 가기 전에 마지막으로 박사학위를 받은 제자가 김근수 교수다. 김근수 교수는 그런 인연으로 미국에서 박사후연구원 생활을 마치고 포항공대 교수로 부임해 포항 방사광가속기의 빔 라인(Beam Line)에 설치되어 있는 염한웅 교수의 ARPES 설계에도 참여했다. 박사과정 때는 2차원 물질인 원자막과 1차원 물질인 원자선을 연구했다.
   
   김근수 교수는 올해 38살이다. 젊은 물리학자의 연구가 놀랍게 보였고, 이야기도 흥미로웠다. 앞으로 시간이 많아 학자로서 멀리 뻗어갈 것 같았다. 더구나 문외한이 알아듣기 쉽게 설명해줘서 기사를 빨리 완성할 수 있었다. 취재 후 가장 빠른 시간 내에 기사를 쓴 취재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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