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소 심술꾼처럼 굴던 해리슨 포드(77)는 지나칠 정도로 점잖았다. 시종일관 무표정한 얼굴을 한 채 조용한 목소리로 질문에 대답했다. 열렬한 자연보호운동가답게 이 문제에 대해서는 열을 올리며 상세히 언급하기도 했다. 얼굴에 주름이 지고 머리는 잿빛이었지만 단단한 체구에 날카로운 눈매를 한 그는 나이보다 훨씬 젊어 보였다. 사진을 찍을 때 필자가 “젊어 보인다”고 말했더니 그는 피식 웃으면서 “당신이 젊어 보인다”고 대꾸했다.

19세기 말 알래스카 유콘 지역으로 금을 캐러 온 존 손턴과 썰매개 ‘벅’(영화에 등장하는 개는 컴퓨터로 만들었다)과의 우정과 액션을 그린 ‘더 콜 오브 더 와일드(The Call of the Wild)’에서 존 손턴 역으로 나온 해리슨 포드와의 인터뷰가 최근 LA SLS호텔에서 있었다. 이 영화는 잭 런던의 소설(‘야성의 부름’)이 원작으로 1935년 클라크 게이블 주연 영화로도 만들어졌었다.

- 자연보호론자로서 자연과 당신과의 관계는 어떤 것인가. “교통수단의 발달로 이제 우리는 자연에 쉽게 접근할 수 있게 됐다. 그런데 인간 때문에 자연은 변화의 위기를 맞고 있다. 그러나 자연은 여전히 존재하며 우리에게 위로와 함께 우리가 매일 살면서 잃고 있는 고요와 평온을 준다. 최근에 가족과 함께 12일 일정으로 그랜드캐니언과 콜로라도강을 다녀왔다. 아내와 아들, 그리고 동반한 친구들과 번거롭지 않은 좋은 시간을 보냈다. 자연의 힘 앞에서 경건해지는 경험을 했다. 내가 겪은 고요는 자연을 초월하는 선험적인 것이었다. 이 영화의 목적 중 하나도 관객으로 하여금 자연의 그런 신비감을 느끼도록 하자는 것이다. 그와 함께 자연은 우리의 운명이요 생명의 원천이라는 것도 말하고 있다. 우리는 결코 자연 위에 있지 않으며 자연의 한 부분일 뿐이다. 자연 속에서 자신의 운명을 찾을 줄 아는 벅과, 벅과의 관계에서 자신의 과거와 직면할 용기를 찾게 되는 톰의 얘기를 그린 이 영화는 매우 강렬한 메시지를 담고 있다. 나의 기대 이상으로 잘 만들어진 작품이다. 비록 많은 부분이 컴퓨터로 만들어졌지만 매우 아름다운 영화다.”

- 유적지가 매매되고 광물을 채취하기 위해 사람들이 자연을 파괴하고 있는데, 이에 대해 어떤 저지 운동이라도 벌이고 있는가. “지난 30년 동안 전 세계를 향해 자연보호론을 역설해왔다. 그것이 내 삶이다. 참으로 가슴 아픈 일이다. 그런데 최근 들어 젊은 세대들이 각성해 정치적으로 변화의 목소리를 높이고 있는 것에 대해 감사한다. 그것이 과거와 달라진 점인데 이젠 젊은 세대들이 투표를 통해 자연보호에 기여하고 있다. 그 점에 고무받고 감사한다.”

- 당신도 개를 키우나. “현재 세 마리를 키운다. 그전에도 여러 마리 키워 추억거리가 많다. 개는 우리 가족에게 늘 중요한 부분을 차지해왔다. 한번 개를 키우면 계속해 기르지 않을 수가 없다. 그들은 큰 위안이 된다. 당신이 개들에게 작은 것만 해주어도 그들은 당신의 삶에 큰 감정적 보상을 해준다. 그러나 이 영화는 황금광 시대의 얘기다. 개가 인간의 반려자라기보다 종과 같았던 때의 얘기다. 영화는 책에 없는 인물들과 일들을 묘사해 보다 감정적이요 재미있게 만들었다. 무엇보다 이 영화는 세대 차를 넘어 가족 간에 대화를 나누게 만드는 가족영화다. 아이들과 함께 극장에 가서 큰 화면으로 보기를 적극 권한다.”

- 배우 테리 노터리의 동작을 컴퓨터로 포착해 벅을 묘사했는데 이를 본 느낌은 어떤가. “노터리는 단순히 기계적으로 개의 동작을 제공하는 것을 넘어 영화에 감정적으로도 큰 기여를 했다. 그가 있어 난 벅과 대화하는 데 집중할 수가 있었다. 그의 동작이 너무나 철저하고 완벽해 나도 상상을 떠나 보다 사실적으로 연기할 수 있었다. 영화 서술에 대한 그의 이타적인 기여에 감사한다. 그는 참으로 상냥한 사람으로 함께 일할 수 있었던 것은 행운이다.”

- 당신에게 큰 감동을 준 영화들은 무엇인가. “많다. 13세 때쯤 ‘앨라배마에서 생긴 일’을 보고 받은 감동이 영화에서 처음 느낀 가장 강렬한 것이었다. 인종 편견과 사회정의에 관한 얘기를 아름답게 구체화한 영화다. 난 유대인 어머니와 가톨릭 신도인 아버지를 두었는데 두 분 다 종교를 포기했다. 따라서 난 성경의 원칙에 따라 자라지 않고 부모들의 경험에 따른 인종적 원칙 아래서 자랐다. 부모는 내게 인간성에 대한 믿음과 사회정의를 가르쳐주었는데 ‘앨라배마에서 생긴 일’이 그런 문제를 다루고 있어 어린 내게 지대한 영향을 미쳤다.”

- ‘인디아나 존스’ 시리즈에 다시 나오기로 한 이유는. “나를 비롯해 모두들 크게 성공했던 그 시리즈로 돌아가고 싶어 한다. 단순히 흥행에 성공한다거나 전편들의 복제판을 만들지 않도록 노심초사 중이다. 이 시리즈가 갖고 있는 감정과 얘기의 독창성을 존중하면서 새로운 것을 만들려고 노력하고 있다. 아직 각본을 구상 중에 있는데 좋은 영화가 나올 것으로 기대해도 좋다.”

- 영화에서 술을 즐기던데 평소 어떤 술을 마시는가. “하루 일과가 끝나면 위스키를 즐긴다.”

영화 ‘더 콜 오브 더 와일드’의 한 장면.
영화 ‘더 콜 오브 더 와일드’의 한 장면.

- TV 시리즈 ‘스테어케이스’에 나올 예정이라고 들었다. “내가 많이 나온 모험액션영화가 아닌 다른 주제를 다룬 영화들에 늘 흥미가 있었다. 나는 지금도 내가 나온 모험액션영화가 아니라 다른 내용의 영화가 성공한 것을 자랑스럽게 생각한다. 앨런 파큘라, 시드니 폴락, 그리고 마이크 니컬스의 영화들이 그런 것들이다. 이 감독들은 내게 보다 큰 기회와 기쁨을 주었다. ‘스테어케이스’도 그런 얘기를 담은 작품이다. 자기 아내를 살해한 혐의로 7년형을 선고받은 작가의 얘기다. 아주 복잡한 내용으로 인간에 관한 매력적인 얘기다. 그래서 난 지금 흥분에 들떠 있다.”

- 처음으로 키운 동물은 무엇인가. “시카고의 한 아파트에서 자랐는데 처음으로 키운 동물은 개였다. 이름은 레이디였다. 레이디를 돌보고 산책시키는 일을 해야 했기 때문에 그때 책임감과 의무감을 배웠다. 그 뒤로 지금까지 개를 키우고 있다. 그들은 늘 내 친구들이었고 내게 감정적 위안을 준다. 내가 키운 개들은 다 보호소에서 데려온 유기견이었다.”

- 당신과 같은 유명인사들의 발언이 기후변화에 대한 사람들의 각성을 촉구하는 데 큰 역할을 한다고 생각하는가. “우리의 역할은 그저 얘기를 하는 데서 그친다. 그런 것은 어떤 법적단체나 유명인사가 주장해서 이뤄지는 것이 아니다. 밑에서부터 사람들이 스스로 필요하다고 느낄 때에야 가능한 것이다. 젊은 그레타 선버그를 비롯해 기후문제에 관여하고 있는 활동가들이 그런 사람들이다. 내가 유엔에서 말했듯이 우린 이들이 자유롭게 말하고 활동할 수 있도록 길을 내줘야 한다.”

- 환경보호와 기후변화 활동가가 된 계기가 무엇인가. “10대 때부터다. 시카고 교외로 이사 가 새 학교에 들어갔는데 옛 친구들을 볼 수 없어 고독감에 시달렸다. 학교에서 왕따를 당하면서 주눅이 들어 지냈다. 난 운동이나 학생단체에도 관심이 없었다. 그저 이 교실에서 저 교실로 옮겨 다녔다. 그래서 콩밭 위에 세운 우리 집 뒤에 있는 얼마 안 되는 땅에서 자전거를 타면서 땅과 친해졌고, 과연 저 땅속에 무엇이 있을까 궁금했다. 그런데 어느 날 거기에 여우가 나타나더니 가만히 앉아서 날 관찰하더라. 여우가 온 정신을 집중해 나를 바라보는 것을 보고 경악을 금치 못했다. 그래서 나도 여우를 관찰했는데 둘이 그러기를 30분은 족히 했다. 그리고 여우는 자리를 떴는데 그 경험이 내 안에 깊은 인상을 남겼다.

거기서 난 인간사회만이 나와 연관돼 있는 것이 아니라는 사실을 깨달았다. 그러면서 늘 자연을 찾아가게 됐다. 난 자연 속에 있는 모든 것을 즐긴다. 우리 가족은 늘 숲이나 큰 농장과 같은 곳으로 여행을 즐긴다. 영화로 번 돈을 환경보호를 위한 일에 쓰기로 하고 30년 전부터 ‘컨서베이션 인터내셔널’에 참여하고 있다. 25년간 이 단체의 이사로 일하다가 지금은 부회장을 맡고 있다. 우린 제3세계의 빚을 사들인다. 그 대가를 채무국에 넘겨 환경보호에 쓰도록 하고 있다. 그리고 이들 국가 간에 사람들이 자유롭게 통행할 수 있는 이동통로와 함께 평화공원도 조성 중이다. 난 우리 단체가 자연을 위해 좋은 일을 하는 것에 대해 자랑스럽게 생각한다. 이젠 우리 단체에 여러 국제적 대기업들도 동참하고 있다. 우리의 슬로건은 ‘자연이 사람을 필요로 하는 것이 아니라 사람이 생존하고 번창하기 위해선 자연을 필요로 한다’이다.”

박흥진 할리우드외신기자협회(HFPA) 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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