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3월 19일 코스피 지수가 -8% 이상 떨어지며 1460포인트대로 폭락했다. ⓒphoto 뉴시스
지난 3월 19일 코스피 지수가 -8% 이상 떨어지며 1460포인트대로 폭락했다. ⓒphoto 뉴시스

주식시장의 바닥은 언제일까. 지난 3월 24일과 25일 폭락하던 코스피와 코스닥이 반등에 성공하긴 했지만 많은 주식 투자가들은 아직 바닥을 확신하지 못하고 있다. 여전히 ‘공포’가 가시지 않은 상태에서 “과거 외환위기와 글로벌 금융위기 때처럼 자칫 한국 주식시장이 붕괴할 수도 있다”는 우려의 목소리도 여전하다.

현재 한국 주가지수 폭락의 깊이와 속도는 그동안 한국 주식시장이 경험했던 어떤 위기보다 크고 빠르게 나타나고 있다. 지난 1월 2일 한국 주식시장은 코스피 2175.17포인트로 2020년을 시작했다. 설을 앞두고 중국 우한시와 후베이성을 중심으로 코로나19가 중국 전역으로 급격히 확산하던 1월 22일만 해도, 한국 코스피는 2267.25포인트까지 오르며 나쁘지 않은 흐름을 보여줬다. 하지만 이로부터 채 한 달이 안 된 2월 18일, 대구·경북 지역 수퍼전파자로 불리는 신천지 신도 31번 확진자의 실체가 드러나면서 상황이 급변했다. 코로나19 감염자가 많을 때는 하루 900명 넘게 쏟아져 나오고, 한국 최대 기업인 삼성전자 구미공장 등 핵심 산업과 주요 기업들의 공장이 코로나19 감염자로 인해 동시다발적으로 멈춰 서는 등 생산·소비 활동이 중단되는 사태까지 벌어졌다. 외국계와 기관을 중심으로 대규모 자금 이탈이 발생했고 코스피 등 주가 지수가 급락해버린 것이다.

코스피 두 달 만에 -36% 폭락

2월 24일 단 하루 동안 코스피는 무려 -3.87%나 폭락하며 지수 2100포인트가 무너졌다. 4일 뒤인 2월 28일에는 코스피 지수가 1900포인트대로 내려앉았다. 그리고 3월, 주식시장은 말 그대로 폭락했다. WHO의 팬데믹 선언 2일 전인 3월 9일 코스피 지수가 -4.19% 급락했고, 13일에는 1771.44포인트까지 추락했다.

3월 17일과 18일 지수가 연속으로 급락하며 1600포인트 선마저 깨졌다. 급기야 3월 19일 코스피 지수가 무려 -8.3% 이상 떨어지며 1457.64포인트까지 폭락해 버렸다. 1월 22일을 기준으로 3월 19일까지 채 2개월이 안 돼 코스피 지수가 -35.7%나 무너진 것이다.

문제는 현재 벌어지고 있는 이 같은 폭락 속도와 폭이 심상치 않다는 점이다. 1990년 이후 한국 주식시장에서 벌어졌던 대폭락 사태들과 비교해 보면 이번 폭락이 얼마나 심각하게 진행되고 있는지를 어렵지 않게 짐작할 수 있다.

1997년 말 터진 외환위기는 건국 이래 한국 경제 최악의 사태로 불리고 있다. 흔히 IMF(국제통화기금)사태로 불리는 외환위기 당시 주식시장의 상황을 보자. 외환위기 직전 코스피 지수는 1997년 6월 17일 792.29포인트까지 올랐다. 이것이 외환위기에 휩쓸리며 1998년 6월 16일 280.00포인트로 붕괴됐다. -64.66%나 폭락한 것이다.

외환위기와 함께 현재 벌어지고 있는 주가 폭락의 심각성을 비교해 볼 수 있는 또 다른 기준이 있다. 바로 2007년 본격적으로 시작돼 2008년 정점으로 치달았던 미국발 글로벌 금융위기다. 글로벌 금융위기 직전인 2007년 10월 31일 코스피 지수는 2064.85포인트까지 뛰어올랐다. 하지만 금융위기 직격탄을 맞으며 2008년 10월 24일 938.75포인트까지 떨어졌다. 1년여 만에 -54.54%나 폭락한 것이다.

한국 경제와 자본시장을 위협했던 외환위기와 글로벌 금융위기 당시 주식시장의 바닥은 이미 상황이 종료됐기 때문에 이렇게 확인 가능하다. 하지만 코로나19 사태로 현재 진행 중인 폭락장에서는 저점을 가늠하기란 사실상 불가능하다. 코로나19 사태가 몰고 올 경제적 충격이 이제 시작이기 때문이다. 앞으로 얼마나 심각한 문제들이 터지게 될지 충격의 크기조차 예측이 쉽지 않은 게 사실이다.

외환위기·금융위기보다 빠른 폭락 속도

그렇다고 이번 주가 폭락의 심각성을, 앞선 두 번의 경제위기 상황과 비교해 볼 수 있는 기준이 아예 없는 것은 아니다. 투박하긴 하지만 주식시장에서 흔히 ‘약세장’이라고 부르는 베어마켓(Bear Market)으로의 진입 시점을 분석하는 방법으로 현재 벌어지고 있는 주식 폭락 상황의 심각성을 어림잡아 짐작해 볼 수는 있다.

1997년 시작돼 1998년 정점으로 치달았던 외환위기의 경우 베어마켓으로 진입하기까지 약 4개월이 걸렸다. 그리고 10년 후 글로벌 금융위기 당시 베어마켓 진입에는 55일, 약 두 달이 소요됐다. 그런데 기자의 확인 결과 이번 코로나19 사태의 공포가 몰고 온 2020년 한국 주식 시장의 베어마켓 진입 기간은 불과 35일이었다.

즉 코로나19 사태로 불거진 지금의 주식시장 폭락 속도가, 한국 경제 최대 위기 상황으로 불렸던 외환위기 때보다도 약 50일 가까이 빠르다는 뜻이다. 전 세계 경제를 동반 침체 상태로 몰고 갔던 글로벌 금융위기 때와 비교해도 20일이나 빠르다.

주식시장의 추락 속도가 빠르다는 것이 반드시 폭락의 폭까지 크다는 의미는 아니다. 하지만 저점 전망조차 힘든 지금 같은 폭락장에서 폭락의 속도와 요인을 파악하고 이해하는 것은 중요한 의미가 있다. 불확실성을 최대한 줄일 수 있고, 이성이 작용하는 시장으로 접근하는 기초적인 지표로도 활용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이번 폭락에서 바닥이 어디쯤일지 가늠해 보는 것이 정말 불가능한 것일까. 극소수이기는 하지만 시장 일각에서는 “전망과 추론의 근거가 매우 미약하다”는 점을 분명히 밝히면서도 “과거 벌어졌던 시장 폭락 경험을 통해 투박하게라도 저점과 저평가 구간에 대한 분석이 필요하다”는 목소리가 있는 게 사실이다.

외환위기와 글로벌 금융위기 당시 한국 주식시장은 각각 -65%와 -55% 정도 가라앉았다. 이 부분에 주목해야 한다는 것이다. 현재 아시아와 유럽, 미국에 이르기까지 전 세계 경제를 마비시키고 있는 코로나19 폭풍의 강도와 과거 두 차례 폭락의 강도를 고려하면, 폭락 전 한국 주식시장의 가치에서 최소한 50% 정도 추락할 수 있다는 것이다. 코스피 지수를 기준으로 현재 한국 주식시장은 약 -33%에서 -35%쯤 떨어졌다. 그러니 약 -15%에서 -17%쯤 하락의 폭이 더 깊어질 수 있다는 것이다.

한국 주식시장 반토막 날 가능성

이렇게 혼란스러운 시기 ‘바닥으로 불리는 주식시장의 저점’과 ‘향후 시장의 방향성’에 대해 시장 전문가들의 관점은 어떨까.

삼성증권 리서치센터를 이끌고 있는 오현석 센터장은 기자에게 “‘저점과 바닥이 어디냐’를 판단하는 것 자체가 무의미한 상황”이라며 “반등 가능성 혹은 시장이 어떻게 움직일 것이라는 전망의 근거를 찾기가 불가능해 보인다”고 했다. 오 센터장은 “지금 주식시장은 펀더멘털(Fundamental)이나 기업들의 가치를 분석해 ‘이렇다, 혹은 저렇다’라고 이야기할 수 있는 상황이 아니다”라며 “이성적인 근거가 아니라 오로지 감정적인 움직임에 의해 급락과 급등이 반복되는 상황”이라고 했다.

그는 “최근 2주 만에 코스피 지수가 약 500포인트 날아갔다”며 “이건 우리 시장의 펀더멘털과 기업들의 가치를 평가한 지표로는 어떻게 설명할 수 있는 현상이 아니다”라고 했다. 그는 또 “주식시장뿐만이 아니라, 채권과 환율 등 다른 시장들도 같은 상황”이라며 “분명한 것은 지금이 12년 전 글로벌 금융위기 때보다 변동성이 훨씬 크다는 점”이라고 했다.

하나금융투자 리서치센터의 조용준 센터장은 역시 “이런 상황에서 미래를 전망한다는 게 쉽지 않다”고 했다. 하지만 조 센터장은 앞서 벌어졌던 폭락 경험에서 발견한 몇 가지 내용에 주목할 필요는 있다고 했다. 그는 “글로벌 금융위기 당시 기업 이익이 30% 이상 떨어졌고, 주가는 50% 정도 하락했었다”며 “지금의 위기 수준을 금융위기 수준으로 본다면 이것이 참고 사항은 되지 않겠냐”고 했다.

여기에 당시와 지금의 시장 환경, 폭락의 이유, 시장을 주도하는 기업들의 성격이 전혀 다르다는 요인들까지 충분히 감안해야 한다는 점도 강조했다. 이런 요인들을 감안하면 현재 한국과 미국 시장을 주도하는 기업들의 이익이 과연 ‘2008년처럼 30% 이상 떨어질 것인가’를 주목할 필요가 있다는 게 그의 말이다.

또 각국 정부가 2008년 금융위기 때보다 신속하고 적극적으로 시장 안정 방안을 내놓고 있다는 점도 주목할 필요가 있다고 했다. 이런 요인들을 모두 감안하면 금융위기 때보다 시장이 빠르게 떨어질 수 있지만, 안정화도 생각보다 빠르게 나타날 수 있지 않겠냐는 희망 정도는 가져볼 수 있을 것이라는 게 그의 설명이다.

그는 “결국 이번 폭락의 단초가 된 코로나19의 치료제나 백신이 등장하는 속도가 시장 안정의 열쇠가 될 것으로 보인다”고 했다.

“바닥 전망, 방향성 예측 무의미한 상황”

현재 벌어지고 있는 주식시장 폭락은 비단 한국만의 상황은 아니다. 올 초만 해도 고공비행을 하던 미국 주식시장 역시 3월 중순 이후 3대 지수인 다우존스와 나스닥, S&P500 지수를 중심으로 폭락하고 있다. 유로스톡스와 독일 DAX, 프랑스 CAC 등 유로존과 영국 FTSE 등 유럽의 주식시장 역시 무섭게 추락하고 있다. 닛케이225 지수로 대표되는 일본 주식시장도 급락했고, 홍콩 항셍과 중국 상하이지수, 대만 가권, 인도 SENSEX, 러시아 RTS 등 아시아 주요국과 신흥국 시장들 역시 폭락의 칼날을 그대로 맞고 있다.

문제는 경제의 기초체력이 허약하거나 대규모 자본 이탈을 규제하기 힘든 몇몇 국가와 시장의 경우 이 같은 폭락이 자칫 주식시장의 붕괴라는 더 심각한 상황으로 번질 수 있다는 것이다. 한국 시장의 움직임을 예의 주시해야 하는 이유다.

한국 자본 시장은 사실상 개방된 구조다. 외국인은 물론 심지어 기관 등 한국계 대형 투자 자본의 대규모 시장 이탈조차 늦추거나 제한하는 것이 쉽지 않은 경제시스템이라는 의미다. 여기에 한국 시장을 구성하고 있는 기업들의 수익성과 재무건전성이 우려스러울 만큼 급격하게 악화됐다. 중소·중견 기업뿐 아니라 이름만 대면 알 만한 주요 기업들까지 채권 만기와 상환 압박에 신음하고 있다. 사실상 자금 부족 등 유동성 이슈에 발목이 잡힌 기업들이 우려스러운 수준으로 급증해 있다는 것이다.

기업 부문에서만 우려가 커지고 있는 게 아니다. 시장에 효과적이고 효율적인 유동성 공급자 역할을 해야 할 정부를 향해서도 이미 재정건전성 등 경제 체력에 대한 문제가 불거져 있다. 중앙은행인 한국은행의 기준금리와 통화정책은 오래전부터 실기론에 직면해 있을 만큼 아슬아슬한 모습을 보여온 게 사실이다.

폭락의 속도가 빠르고 그 폭이 클수록 시장과 시장을 구성하는 기업들의 강점과 매력보다, 이들이 품고 있던 약점과 불확실성, 공포감이 더욱 크게 부각될 수밖에 없다. 결국 이런 약점을 얼마나 빠르게, 또 분명하게 지워낼 수 있느냐가 불확실성 제거와 시장 공포를 줄이는 유일한 방법이다. 코로나19 사태가 몰고 온 주식시장 폭락이 얼마나 깊고 오래 지속될 것인지 가늠하기조차 쉽지 않은 상황이다. 이런 때일수록 한국 시장이 노출해온 약점부터 꼼꼼하게 지워나가는 노력이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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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동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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