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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601호] 2020.03.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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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학 연구의 최전선]CERN의 산증인, 입자물리학자 박인규 교수

최준석  선임기자 jschoi@chosun.com

1990년대 노태우 대통령 시절, 미국의 아버지 부시 대통령이 한국에 온 적이 있다. 서울시립대 박인규 서울시립대 교수는 당시 고려대 물리학과 학생이었다. 지난 2월 18일 서울시립대 연구실에서 만난 박 교수는 그때를 떠올리며 “아버지 부시 때문에 입자물리학자가 되었다”라고 말했다. 텍사스에 입자물리실험을 위한 대형가속기(SSC)를 짓고 있던 미국은 방한한 아버지 부시를 통해 한국 정부에 SSC 프로젝트에 참여해줄 것을 요구했다. 박 교수는 ‘일본이 10% 기여하니 한국도 2% 기여하라’는 내용으로 기억한다고 했다.
   
   “당시 입자물리학(실험)이 앞으로 많이 성장할 거라는 얘기가 돌았다. 선배들이 ‘지금은 입자물리학의 시대다’ ‘장학금도 줄 것’이라고 말했다.”
   
   
   아버지 부시 방한 계기로 입자물리학 선택
   
   당초 박 교수는 아인슈타인의 상대성이론을 공부하러 물리학과에 진학했고, 고려대 석사과정 때도 상대성이론으로 논문을 썼다. 상대성이론 전문가인 당시 한양대 이철훈 교수를 찾아가 배웠다. 그런데 박사 공부를 위해 유학을 떠나야 했을 때 그는 ‘입자물리학’으로 방향을 바꿨다.
   
   그는 유학을 떠나면서 SSC를 아직 짓고 있던 미국 대신 입자가속기가 가동 중인 스위스 제네바로 향했다. 제네바 지하의 유럽핵입자물리연구소(CERN)의 실험시설이 목적지였다. CERN에서 훈련받은 뒤 미국 텍사스의 SSC로 가자는 생각이었다. 1992년 프랑스 파리 11대학에 적을 둔 뒤 그곳에서 CERN 실험에 참여했다. 학교는 파리에 있었으나 제네바에 드나들면서 실험하였다. 당시 CERN에서 가동 중인 입자가속기는 LEP(Large Electron Positron collider·대형전자양전자충돌기)였다. LEP는 1989년부터 가동되었고, 2000년 11월까지 데이터를 얻었다.
   
   이때 CERN의 LEP가속기를 이용한 입자검출실험에 참여한 한국의 젊은 연구자들이 있었다. 박인규 교수는 “CERN에 파견된 1세대 한국 물리학자들이었다”며 자신 외에 이강영(경상대)·이재식(전남대)·김영균(광주교대) 교수 등등의 이름을 언급했다. 당시 박인규 교수는 ‘알레프’ 실험에, 이강영·이재식·김영균 세 사람은 ‘L3’ 실험(리더는 새뮤얼 팅, 1976년 노벨물리학상)에 참여했다. 알레프와 L3는 입자검출실험 그룹 이름이며, 이들 그룹이 사용하는 입자검출기 이름이기도 하다. 검출기는 27㎞ 길이인 LEP의 원형 터널 내 특정 지점에 설치되어 있었고, 입자충돌은 입자검출기가 있는 지점에서 일어나도록 되어 있었다.
   
   1992년 어느 날 알레프 실험의 리더인 자크 르 프랑수아 박사가 그룹 미팅에 들어오더니 “좋은 소식과 나쁜 소식이 있다”라고 말했다. 그는 “나쁜 소식은 빌 클린턴(아버지 부시의 후임 대통령)이 SSC 계획을 죽였다는 것이다. 좋은 소식이란 그게 유럽에는 좋을 수 있다는 것이다. CERN이 추진 중인 차세대 입자가속기 LHC(대형강입자충돌기) 계획이 현실화할 가능성이 높아졌다”고 했다.
   
   
   CERN에서 타우 측정으로 박사 받아
   
   당시 박인규 박사과정 학생은 CERN에서 타우라는 입자의 수명을 정밀측정했다. 타우는 전자와 한 가족에 속하는 입자다. 몸무게, 즉 질량은 전자보다 훨씬 무겁다. 그는 타우의 수명이 289.0±2.7±1.3fs(fs는 10-15초)라고 측정(수명 중에 들어 있는 숫자 2.7은 통계적 오차이고 1.3은 구조적 오차)했다. 이런 연구를 토대로 그는 1995년 2월 파리 11대학에서 박사학위를 받았다. 그는 “CERN에서 실험하면서 입자물리 데이터 분석 전문가가 되었다. 컴퓨터를 잘 다룰 수 있게 되었다”고 말했다. 실제 서울시립대 물리학과의 홈페이지를 보면 그의 전공 영역은 ‘입자물리와 전산물리’라고 되어 있다. 여기서 ‘전산물리’는 컴퓨터로 물리학을 하는 걸 말한다.
   
   박인규 박사는 첫 번째 박사후연구원 시절을 스페인 바르셀로나에서 보냈다. 이곳의 고에너지물리연구소인 IFAE에서 3년 가까이 있었다. 이때도 스위스 제네바를 오가며 실험과 연구를 했다. 1996년에는 입자가속기 LHC에 붙일 입자검출기 중 하나인 아틀라스에 들어가는 칼로리미터(열량계) 제작에도 참여했다. 그는 이때 ‘전산물리’ 실력을 발휘, 입자검출기에서 나오는 입자 신호를 모니터링하는 소프트웨어를 짰다. 실험물리학자 겸 전산물리 연구자로서 기여했다. 바르셀로나에서의 박사후연구실 시절이 끝나가면서 일자리를 잡아야 했는데 마침 한국에 외환위기가 닥쳤다. 1998년이었다. 한국에서는 도저히 직장을 구할 수가 없었다.
   
   그래서 그는 바르셀로나에 머물면서 전산물리 실력을 발휘해 ‘로봇’을 만들었다. 구인공고가 온라인 사이트에 나오면 자동으로 지원서를 보내는 프로그램이었다. 로봇은 취업공고가 뜨는지 인터넷 사이트를 확인하고, 그 사람이 남긴 이메일 주소를 찾아 ‘Dear Mr.○○’으로 시작하는 지원서를 해당 이메일로 보내게 했다. 가령 구인구직 사이트 중 하나인 ‘Tip Top Job’ 사이트를 지켜보도록 한 것이었다. 로봇이 자동으로 알아서 보낸 구직 지원서를 보고 독일 기업 지멘스가 연락을 해왔다. 소프트웨어 엔지니어를 찾는다고 했다. 미국 예일대학에서도 연락이 왔다. “ROOT 소프트웨어를 다룰 수 있는 사람을 찾는다. 뉴욕주 브룩헤이븐에 있는 브룩헤이븐국립연구소(BNL) 실험이 앞으로 ROOT 프로그램을 쓰게 되었다. 우리가 개발한 프로그램을 ROOT로 바꿔줄 수 있으면 좋겠다”는 내용이었다. 두 가지 선택지를 놓고 고민하다가 박인규 박사는 미국 예일대학으로 갔다. 어머니가 “예일대 교수가 되는 건 집안의 명예다”라고 좋아하셨던 것도 한몫했다. 물론 예일대 교수로 가는 건 아니었다.
   
   1998년 예일대학이 있는 미국 커네티컷주 뉴헤이븐에 가서 스티븐 맨리 교수 그룹에서 일했다. 하지만 박인규 박사를 고용했던 스티븐 맨리 교수가 정년 심사에서 떨어져 1999년 후반 예일대를 떠나야 했다. 맨리 교수가 “로체스터대학에 부교수 자리를 얻어 뉴욕주 로체스터로 간다. 어떻게 할래? 같이 갈래?”라고 물어왔다. 이 제안을 받아들여 박인규 교수는 로체스터로 옮겨갔다. 로체스터대학에서는 브룩헤이븐 국립연구소 가속기 실험에 3년간 참여했다. 6년 차 미국 생활이 시작되던 2003년 가을쯤 로체스터에 살면서 ‘교포’가 되려고 작정하고 5000달러를 이민 전문 변호사에게 주고 영주권을 신청했다. 영주권을 신청하면 그때부터 180일간 미국을 떠나면 안 된다. 그런데 서울시립대학 물리학과에서 컴퓨터 잘하는 ‘전산물리학자’를 찾는다고 연락이 왔다. 서울시립대 물리학과를 이끌던 민현수 교수가 다른 대학과의 차별화를 위해 ‘전산물리학’을 키우고 있다고 했다. 결국 영주권을 포기하고 크리스마스 때 면접을 하고 한국에 돌아왔다.
   
   
   로봇까지 만들어내는 전산물리 실력
   
   박인규 교수를 따라 서울시립대 내 박 교수의 LAB(실험실) 세 곳을 보았다. 개학 전이고 코로나19 바이러스가 대유행인데도, 학생들은 책상 앞에 바짝 붙어 앉아 뭔가를 하고 있었다. 박 교수는 “2004년부터 컴퓨터 교육을 많이 했다. 리눅스, 웹 html, latex(과학 논문 쓰기), 파이선, C++, ROOT 등을 가르쳤다. 시립대 물리학과 학생이라면 다 컴퓨터를 잘한다”고 자랑했다.
   
   박 교수는 2012년 7월 4일 기자들 앞에 선 적이 있다. 이날 스위스 제네바의 CERN은 ‘힉스입자’를 발견했다고 발표했고, 한국CMS실험그룹의 대표이던 박인규 교수는 힉스입자 발견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한국인들에게 설명했다. CMS는 CERN의 새로운 가속기(LHC)를 갖고 입자충돌 실험을 하는 그룹이다. LHC의 27㎞ 길이 진공파이프관의 한 지점에 설치된 입자검출기 이름이기도 하다. LHC에 부착된 입자검출기는 모두 4개다.
   
   한국에는 입자가속기가 없다. 핵물리학과 입자물리학에서 높은 에너지 영역을 연구하는 연구자, 즉 고에너지 물리학자는 가속기가 있는 나라로 갈 수밖에 없다. 대신 한국 정부는 2007년 CERN 측과 공동연구에 합의하고 ‘한-CERN 협력사업’을 시작했다. CERN은 유럽 국가들이 세운 연구소인데, 이 실험에 유럽 국가가 아닌 한국이 공식적으로 파트너로 참여하게 된 것이다. 한국은 LHC에 부착된 4개의 검출기 그룹 중 CMS와 앨리스 실험에 참여하기로 했고, 박인규 교수는 서울시립대학 대표로 CMS실험에 참여했다. 한국 CMS그룹의 초대 책임자는 최영일 성균관대 교수였다.
   
   박인규 교수는 2007년부터 제네바의 CERN 안에 한국 사무실도 마련하고 컴퓨터도 사는 등 사무실을 꾸렸다. 한국CMS그룹(대표 양운기 서울대 교수)은 지금도 대학원생들을 CERN에 보내 연구하게 하고 있다. 박인규 교수는 2010년 3월부터 한국CMS그룹 대표로 일했고, 그해 입자가속기 LHC가 가동되면서 데이터를 쏟아냈다.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입자물리학자들이 LHC에서 기대했던 두 가지 중 하나인 ‘힉스입자’가 검출됐다. 그가 한국 대표로 한국 언론을 상대하게 된 배경이다.
   
   
▲ 박인규 교수가 2016년 촛불시위 사진을 갖고 캔들 카운터 알고리즘을 활용해 시위 참가자를 센 결과 60만명으로 나왔다. photo 박인규 교수

   CERN에 기여한 26억짜리 프로젝트
   
   2012년쯤 그는 또 다른 구상을 했다. 한국이 CMS실험에 하드웨어로 기여하게 만들자는 것이었다. 가속기(LHC)나 가속기에 장착해놓은 입자검출기 CMS는 모두 유럽 국가들이 만든 것이다. 가속기도 그렇지만 입자검출기도 몇 년마다 보수하고 업그레이드를 해야 한다. 그때 박인규 교수는 기존에 사용하던 RPC(저항판 검출기)를 대체한 GEM(Gas Electron Multiplier·기체전자증폭기)에 주목했다. GEM은 입자 충돌에서 나오는 입자인 뮤온 검출기에 장착된다.
   
   박인규 교수는 한국CMS그룹 대표로 CERN의 미팅에 참여하면서 CMS그룹이 GEM을 추가로 장착할 것이라는 걸 알았다. 한국 그룹이 GEM을 만들어 납품할 수 있겠다고 판단했다. 한국은 CERN과의 협약에 의해 20억원 상당을 기여해야 한다. 이를 현금으로 주기보다는, 한국 중소기업에 20억원을 주고 GEM을 개발해 CERN에 납품하게 하자는 그림을 그렸다. 그러면 한국 중소기업은 기술도 개발하고 고용확대 효과도 기대할 수 있다. 과기부의 실무책임자(당시 실무라인은 유국희 과장, 정동준 사무관)들도 반색했다.
   
   CERN에 가서 한국이 GEM포일을 제공하겠다고 제안했다. 그리고 GEM을 만들 수 있는 중소기업을 물색해 충북 음성에 공장을 갖고 있는 ‘메카로’의 이재정 대표를 설득했다. 힉스입자가 발견된 지 얼마 되지 않던 때였는데 “기초과학 발전에 기여할 수 있다”는 말에 이재정 대표가 ‘한번 해보자’고 했다.
   
   아주 얇은 연성회로기판(두께 50㎛·마이크로미터)에 구멍을 정확하게 뚫는 게 이 작업의 핵심이었다. 구멍 한 개 크기는 70㎛이고, 구멍 간의 간격은 140㎛다. 뮤온입자가 검출기 내 기체 원자를 때리면 전자 한 개가 나오는데 이 전자는 구멍을 통해 아래로 내려간다. 이 구멍 주위에는 높은 전기장이 걸려 있다. 전자 한 개가 지나갔는데, 아래쪽에서는 전자 20개가 나온다. 이에 대해 박 교수는 이렇게 설명했다. “구멍을 미끄럼틀로 생각해 보자. 전자가 가속을 아주 크게 받으면서 20배나 많은 전자가 나오게 된다. 이 판을 세 겹으로 만들어보자. 한 개의 전자로 시작했는데, 구멍을 세 개 통과하면 20×20×20 해서 8000개가 된다. 뮤온이 들어왔는지를 확인하려면 어느 구멍으로 전자가 쏟아지는가를 보면 된다.”
   
   얇은 판에 구멍을 정확하게 뚫는 게 쉽지 않았다. GEM검출기에 들어가는 포일 한 개 크기는 가로 1m, 세로 50㎝ 크기. 박 교수는 “포일 한 장에 구멍을 2000만개쯤 뚫어야 한다”고 말했다. 메카로는 결국 5년이 걸려 CERN과는 다른 방식으로 정확하게 구멍을 뚫어냈다. CERN은 위에서 파내려가는 단면 방식이었으나, 메카로는 아래위 양쪽에서 뚫는 양면 방식을 써서 더 정밀하게 작업하는 데 성공했다. 2017년이었다. 이에 대해 박 교수는 “한국의 선진 반도체 기술이 있기에 가능했다”고 말했다.
   
   메카로는 반도체 부품장비 회사다. GEM은 2017~2018년에 첫 번째 납품했고, LHC가 정기 유지보수 작업을 마치고 재가동에 들어가는 2021년까지 두 번째 단계로 납품하게 된다. 2024년에 마지막으로 납품한다. 그러면 모두 1000장의 GEM을 공급하게 되며, 이는 총 26억원에 해당하는 한국 측의 CERN에 대한 기여가 될 것이라고 했다. GEM포일 제작 작업은 서울시립대, 서울대, 성균관대 세 곳에서 하고 있으며, 박인규 교수는 한국 그룹의 GEM검출기 업그레이드 작업 총괄책임을 맡고 있다.
   
   
   한국 중소기업과 만든 GEM포일의 활용도
   
   입자검출기에 사용하기 위해 만든 GEM포일은 다른 용도로도 사용할 수 있다. 박인규 교수가 GEM포일 제작 기술을 국산화한 메카로가 만든 상품 이미지를 하나 보여줬다. ‘치료용 X선 이미징 기술’이다. 렌치, 치킨, 그리고 서울시립대 인근의 경동시장에서 사온 개구리를 X선으로 찍은 사진도 보여줬다. 박인규 교수의 제자들이 찍은 사진들이었다.
   
   현재 의료용 엑스레이 촬영은 질병을 발견하기 위한 진단 용도이다. 그런데 GEM검출기로 박 교수는 ‘진단용’이 아니라 ‘치료용’ 엑스레이 촬영기를 만들 수 있다고 했다. 현재의 X선 건판은 치료용 고에너지 X선을 쏘이면 망가진다. 안에 들어 있는 반도체가 빔으로 인해 망가지기 때문이다. 하지만 GEM검출기는 고에너지 X선으로 때려도 멀쩡하다. 박 교수는 “다시 말해 X선 이미징 기술을 우리가 개발한 것이다. 현재의 디지털 엑스레이 기술은 또 오래 쓰면 화질이 떨어진다. GEM검출기 포일은 괜찮다. 현재 이탈리아 병원 일부가 치료용 X선 이미징 기술을 도입한 걸로 알고 있다”고 했다.
   
   더 좋은 건 컬러 X선 촬영을 할 수 있다는 점이다. 옛 그림에 사용된 물감을 알아내서 훼손된 그림을 복원하는 데 새로운 기술을 쓸 수 있다. 컬러 X선은 납, 카드뮴 등 원소들에 다르게 반응한다. 이 성질을 이용하면 납으로 본 이미지, 구리로 본 이미지로 구분해 미술품을 분석할 수 있다.
   
   그는 전산물리학이 자신의 두 개 주요 연구 영역 중 하나라고 했다. 그는 2016년 박근혜 대통령의 하야를 요구하는 촛불시위 때는 인파 규모를 알기 위해 컴퓨터 알고리즘(Candle Counter Algorithm)을 만들기도 했다. 주최 측과 경찰 추산이 언제나 크게 차이 났기 때문이다. 가령 한번은 경찰 추산 26만명, 주최 측은 100만명이 모였다고 엇갈린 주장을 했다. 박인규 교수는 “입자충돌기에서 나오는 입자충돌 사진을 보다가, 시위 현장의 사진을 보니 똑같았다. 그래서 촛불을 입자로 보고, 입자 개수를 세는 알고리즘을 만들었다”고 말했다. 촛불=입자 방식으로 센 결과, 참석자 수가 60만명으로 나왔다. 전산물리와 입자물리학을 하는 과학자가 시위대 규모를 정확히 세어 보기 위해 지식을 쓸 수 있다는 게 흥미로웠다.
   
   박인규 교수는 자신의 연구 궤적과 관련 “상대성이론을 하다가, 입자실험 하다가, 검출기 개발하고, 컴퓨터 소프트웨어를 했다. 뭐 하나 제대로 하지 않고 계속 연구 분야를 바꿨다”라며 웃었다. 하지만 그가 재미있게 연구 생활을 하고 있다고 생각했다. 한 우물 공략도 좋으나, 여러 우물을 보고 다니는 것도 나쁘다고 할 수 없다. 사람의 기질 문제라고 생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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