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교안 미래통합당 전 대표가 지난 4월 15일 서울 여의도 국회 도서관에 마련된 21대 국회의원선거 개표상황실에서 총선 결과 관련 입장 발표를 하고 있다. ⓒphoto 뉴시스
황교안 미래통합당 전 대표가 지난 4월 15일 서울 여의도 국회 도서관에 마련된 21대 국회의원선거 개표상황실에서 총선 결과 관련 입장 발표를 하고 있다. ⓒphoto 뉴시스

보수 야당의 기록적 참패의 원인은 무엇인가. 간단하다. 실력도 부족하고 운도 따라주지 않았기 때문이다. 후자부터 살펴보자. 코로나19가 선거전 초반에는 정부 여당에 악재가 될 것으로 보였으나, 우리보다 선진국이라 여겨왔던 서유럽 국가와 미국의 상황이 급속도로 악화하자 한국의 선방(善防)이 부각되며 악재가 호재로 바뀌었다. 더욱이 코로나19 바람을 타고 긴급재난지원금, 재난기본소득 등 합법적 돈 선거가 가능해졌다. 2018년 지방선거 대승으로 확보한 민주당의 튼튼한 인프라는 이 과정에서 톡톡히 한몫해냈다.

그렇다면 코로나19 팬데믹이 없었다면, 야당의 승리가 가능했을까. 격차는 줄어들었겠지만, 승리는 힘들었을 것이다. 전략전술 구사 능력에서 통합당은 민주당에 크게 뒤졌다. 무엇보다도 메시지 창출 경쟁에서 완패하였다. 방역과 경제 두 마리 토끼를 다 잡겠다는 초기의 혼선을 집권세력은 재빨리 코로나19 국난극복으로 전환하였지만, 통합당은 ‘바꿔야 산다’는 추상적이고 모호한 슬로건으로 일관했다. 국가위기가 닥치면 국민 대다수가 정부를 중심으로 단결해 대응하려 한다는 역사적 현상을 무시한 처사였다. 정권심판은 국난극복 앞에서 맥을 못 추었다.

통합당은 방역만큼은 거당적으로 협력하겠다는 자세를 취하면서 코로나19발(發) 경제위기 대처방법에서 차별화를 꾀했어야 했다. 예를 들어 여당의 재난기본소득과 대비되는 고용유지지원금, 자영업자와 소상공인 핀셋 지원 등을 내걸고 정책 논쟁을 유도했어야 했다. 그러나 하위 70% 긴급재난지원금에 대한 대안으로 황교안 전 미래통합당 대표가 전 국민 1인당 50만원 지급을 주장하면서 명분과 실리 모두를 잃었다. 동조화해야 할 때 차별화를 하고, 차별화해야 할 때 동조화를 하는 전략적 오류를 범한 것이다.

선거운동은 유권자의 마음을 얻는 행위이다. 다수 유권자의 열망을 포착해서 간결한 메시지로 제시하여야 한다. 통합당은 ‘정권심판’만 외쳤지 우리가 무엇을 어떻게 하겠다는 시대정신을 담은 핵심 메시지를 내놓지 못했다. 박근혜 탄핵으로 분열했던 보수가 다시 합친 것은 알겠는데, 그래서 뭘 하겠다는 건지 구체적 비전과 가치를 제시하지 못했다. 메시지 창출 및 이슈 파이팅에서 통합당은 민주당에 완패했다.

중심가치 및 핵심 메시지의 부재는 보수 통합의 시너지 효과를 절감시켰다. 일반 국민의 머릿속에서는 이미 정리가 끝난 “탄핵의 강을 건넌다”를 둘러싼 황교안과 유승민의 갈등 및 회동 불발은 보수 통합이 미래지향이 아니라 과거 봉합이라는 느낌을 줄 뿐이었다. 이는 결국 어떤 인물을 공천할 것인가 하는 기준의 모호함으로 이어졌다. 청년과 여성을 우대하면서도 사기탄핵 무효, 세월호 유가족 비하 등 극단적 주장을 펼쳐온 인사들도 공천자 명단에 포함시켜 화를 자초하였다.

정치인보다는 법조인이 훨씬 잘 어울리는 황교안은 안정적이고 일관된 리더십을 보여주지 못했다. 특히 자신이 영입하고 전권을 부여한 김형오 공관위원장과 한선교 미래한국당 대표와의 충돌 및 이별은 보수 유권자들의 4년 전 공천 파동 트라우마를 소환하면서 게도 구럭도 다 잃는 결과를 초래하였다.

참패 이후 나타난 모습 역시 퇴행적이다. 무소속으로 생환한 홍준표는 안방 주인을 자처하며 감 놔라 배 놔라 하고 있다. 홍준표 컷오프는 황교안의 협량이 빚어낸 졸작이었지만, 그렇다고 해서 2018년 지방선거 참패의 책임이 있는 홍준표가 큰소리칠 게재는 아니었다. 앞서 실패했던 리더십이 최근 실패한 리더십을 대체한다고 하니, 이종걸 민주당 의원은 ‘야당복 시즌2’가 시작될 거라며 환호작약하고 있다.

세월호 저격수 차명진은 이번에는 사전투표 조작 의혹으로 목청을 높이고 있다. 애초부터 그는 확신범이었다. 보스인 김문수를 따라 자유통일당으로 가지 않은 이유는 정치적 입장이 달라서가 아니라 통합당에 남는 것이 득표에 유리할 것이라는 계산 때문이었다. 통합당 지도부는 그런 그를 제대로 관리하지 못한 채, 총선이 차명진 선거로 변질되는 것을 예방하지 못했다. 청와대를 그만둔 최강욱이 더불어시민당이 아닌 열린민주당으로 간 이유가 ‘조국 프레임’ 작동을 염려한 양정철이 퇴짜를 놓았기 때문이었다는 것과 대비된다.

보수정치가 거듭나기 위해서는 극단주의와 결별하지 않으면 안 된다. 이번 선거에서 정책 대안 제시보다 독설과 막말로 대여투쟁을 해왔던 후보들이 대부분 패한 것은 중도무당층의 “민주당이 마땅치 않은데, 통합당은 더 그렇다”는 심리와 무관치 않을 것이다. ‘대깨문’ 정치인들의 폭언과 독설도 많은데 왜 우리 쪽만 문제 삼느냐는 항변은 한가할 뿐이다. 정치지형과 언론환경이 완전히 기울어진 불리한 조건에서 집권여당에 승리하기 위해서는 품격에서 확고한 우위를 점하지 않으면 안 된다. 폭언과 독설은 대개 상대를 이롭게 하는 이적행위로 귀결된다.

일부 우파 유튜버들의 사전투표 조작 의혹에 현혹된 정치인들도 빨리 미몽(迷夢)에서 깨어나야 한다. 뚜렷한 물증 없이 결과에 승복하지 않는 모습은 국민을 한 번 더 화나게 할 뿐이다. 정치인과 유튜버는 상호협력할 수 있지만, 기본적으로 목적함수가 다르다. 유튜버는 자극적 소재를 선정적으로 다루어 열혈구독자를 많이 모으면 그만이지만, 정치인은 열혈지지자뿐만 아니라 상식과 합리를 중시하는 침묵하는 다수의 지지를 얻어야 승리할 수 있다.

진영 논리에 입각한 확증편향은 좌우 공히 해악이지만, 정치공학적으로 따지면 여당보다 야당에 훨씬 불리하게 작용한다. 힘 없는 자의 확증편향은 힘 있는 자의 확증편향을 제압하기 힘들다. 홍준표와 황교안은 태극기부대 및 우파 유튜버와의 거리유지에 실패하였다. 아직도 보수가 이 사회의 주류라는 착각에 빠져 있었기 때문은 아닐까. 특히 황교안의 관료스러움은 시대착오적 만용에 가까웠다.

이번 총선은 지배세력 교체의 완결판이었다. 노무현이 이루지 못한 꿈을 문재인이 이루어낸 것이다. 중앙정부, 지방정부, 국회, 법원, 언론 등 거의 모든 분야에서 문파들은 권력의 실세가 되었다. 이들이 아직 제압에 성공하지 못한 곳은 윤석열이 버티고 있는 검찰 정도다. 노무현이 대통령 재임 시절 한탄하였던 보수에 유리하게 기울어진 운동장은 그 역방향으로 더 심하게 기울어졌다. 이제 보수는 완벽한 소수파로 전락하였다.

김대중 정권과 노무현 정권 10년 동안 보수세력은 야당의 시간을 보냈지만, 이렇게까지 균형추가 기울지는 않았다. 지금과 같은 세력 판도는 실로 한 번도 경험해 보지 못한 환경이다. 거듭남이든 혁신이든, 보수의 몸부림은 이러한 현실에 대한 냉엄한 인식으로부터 시작해야 할 것이다. 아직도 자신들이 이 사회의 주류라는 오만과 착각은 독이 될 뿐이다.

신지호 평론가·전 국회의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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