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hoto 김종연 영상미디어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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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원상 극지연구소 박사(해수면변동예측사업단장)는 지난 2월 28일 남극에서 돌아왔다. 지난해 12월 26일 갔으니 두 달간 머물렀다. 그는 남극을 2006년 이후 13번 다녀온 극지전문가이다. 지난 3월 26일 서울 마포구의 한 카페에서 만난 그는 “남극대륙의 얼음이 너무 빨리 녹고 있다”고 우려했다. 남극대륙의 얼음이 녹으면 해수면이 올라가는데, 북극 바다 얼음이 녹는 것과는 비교할 수 없이 해수면 상승을 일으킨다는 경고였다. 예컨대 북극 그린란드 얼음이 녹으면 해수면이 7m 올라가나, 남극 얼음이 모두 녹으면 58m가 올라간다.

남극 얼음 모두 녹으면 해수면 58m 상승

이원상 박사는 오늘날 기후과학자의 처지가 고대 그리스 신화에 나오는 카산드라에 비교된다고 했다. 카산드라는 트로이성의 공주로 예언 능력은 갖고 있었으나 사람들이 그의 말에 귀를 기울이지 않는 저주를 받았다. 그 때문에 목마(木馬)를 성안으로 들이면 트로이가 멸망할 것이라고 말했음에도 트로이 시민들은 카산드라의 예언을 귀담아듣지 않았다. 물론 카산드라의 예언은 옳았고, 트로이는 그리스의 계략에 넘어가 망했다.

이원상 박사는 “지구 평균온도가 올라가고, 해수면 높이가 올라간다고 과학자가 아무리 말해도 사람들이 먼 미래 이야기라며 믿지 않는다. 과학과 정책과의 간극이 크다. 과학자가 느끼는 위급성을 어떻게 일반에게 전달할까 고민을 많이 한다. 사실을 직시해달라”고 말했다. 이 박사는 자신이 갖고 있는 과학적 질문은 “기후변화가 인간 세상을 어떻게 바꿀지”에 있다고 했다. 특히 극 지역 얼음이 얼마나 빨리 녹을지, 그리고 왜 녹는지, 특히 해수면 상승을 얼마나 빨리 가져올 것인지를 알고 싶다고 했다.

그의 말을 듣다가 새삼 깨닫는 것이 있었다. ‘남극대륙에 얼음이 이렇게 많았나? 다 녹을 경우 지구 평균 해수면을 58m나 끌어올린다니.’ 실제 그는 “남극에는 엄청나게 많은 얼음이 있다. 얼음 두께가 평균 2~4㎞일 것”이라고 강조했다. 남극은 추워서 눈이 오면 그대로 얼음으로 얼어버린다. 남극 중심 온도는 영하 80~90도이다. 몇 년 전 위성으로 측정했을 때 영하 100도가 나온 곳도 있다. 입이 다물어지지 않는 극한의 온도다. 남극이 추운 이유에 대해 그는 세 가지가 있다고 설명했다. 우선 위도가 높아 햇빛이 적게 닿는 건 물론이고 도착하는 빛조차 얼음이 대부분 반사해버리고 만다. 그리고 남극을 감싸고 있는 제트기류가 따뜻한 공기의 유입을 제한하고 있다는 것이다. 마지막으로는 남극대륙을 도는 남극순환류(ACC)가 얼어붙는 데 기여하고 있다고 한다. 남극순환류가 따뜻한 물이 다른 바다에서 들어오는 걸 막고 있다는 것이다. 그렇기에 남극은 계속 냉동실 상태에 있다고 한다. 남극대륙에 해양연구소 부설 극지연구소가 세운 두 번째 기지인 장보고기지 주변도 한겨울에는 영하 30도라고 했다.

1년에 평균 3.59㎜씩 상승

해수면 상승은 기후변화가 가져올 재난 중에서도 도드라진다. 기온 상승이라는 것은 국지적으로 강하게 나타날 수 있는 반면, 해수면 상승은 누구도 피해갈 수 없다. 전 지구에 공통으로 나타나는 재난이다. 이원상 박사는 해수면 상승에는 크게 두 가지 요인이 있다면서 첫 번째는 물의 열팽창, 두 번째는 수량의 증가라고 했다. 주전자에 물을 가득 담고 끓이면 넘친다. 이는 물의 온도가 올라가면서 물의 부피가 팽창하기 때문이다. 이게 ‘열팽창’이다. 과거에는 열팽창이 해수면 변동 수치의 절반 이상에 기여한다고 생각했다.

두 번째 해수면 상승의 요인은 바닷물 수량의 증가다. 히말라야나 안데스 빙하가 녹고, 그린란드나 남극대륙의 얼음이 녹으면서 그 물이 바다로 유입되고 있다. 지금까지는 육지의 얼음이 녹고 그린란드의 얼음이 녹은 게 해수면 상승에 가장 큰 영향을 미쳤다. 해수면 상승에 대한 기여도는 현재까지는 열팽창 44%, 그린란드 24%, 히말라야·안데스 빙하 19%, 남극대륙 얼음 13%이다. 이원상 박사는 “기온이 상승해서 얼음이 더 빨리 녹는다. 얼음이 녹아 바다로 유입되는 물의 기여가 커지고 있다. 특히 남극대륙 얼음이 녹아 바다로 들어가는 물의 기여가 향후 확대될 것”이라고 말했다. 해수면 상승 속도는 2000년대 초·중반 가속화하여, 전 지구적으로 1년에 평균 3.59㎜씩 상승하는 상태다.

2100년에는 해수면이 얼마나 올라갈까. 지금도 세계적 저지대인 방글라데시의 벵골만 같은 곳은 생활터전이 물에 자꾸 잠기면서 고통을 겪고 있다. 이와 관련 이원상 박사는 2019년 IPCC(기후변화에 관한 정부 간 협의체·의장 이회성)가 특별 보고서를 채택했다고 말했다. IPCC는 5~7년 주기로 보고서를 내고 있으나, 해수면 상승이 너무 가팔라지자 2019년에 특별 보고서를 발행했다. 지난해 9월 모나코 총회에서 승인된 보고서 제목은 ‘해양 및 빙권의 기후변화 특별 보고서(SROCC)’. 2001년에 나온 IPCC 3차 보고서의 해수면 상승 예측치는 9~88㎝였다. 9~88㎝로 예측치 범위가 큰 건 불확실성이 많아서였다. 2007년 보고서는 해수면 상승을 59㎝로 수정해서 예측했고, 2013년 보고서는 98㎝ 상승을, 그리고 2019년 보고서는 1.1m 상승을 예측했다. 이원상 박사는 “해수면 상승을 예상하는 수치 모델에 남극 요소가 들어갔는지 아닌지에 따라 수치가 크게 달라졌다. 남극에서 얼음이 더 많이 녹고 있는 걸로 확인돼 예상 수치가 더 올라갔다”고 말했다.

1990년 초반 이후 남극 얼음 3조t 녹아

이 박사에 따르면, 1990년대 초반 이후 20년간 남극에서 3조t의 얼음이 녹았고, 이로 인한 전 지구 해수면 상승 효과는 같은 기간에 7.8㎜였다. 남극대륙의 얼음이 녹는 속도는 2007년부터 급상승했는데 과학자들은 그 이유를 몰라 조사에 나섰다. 조사 결과 남극대륙의 동부는 녹는 속도가 완만하거나 오히려 얼음의 양이 조금씩 증가하고 있었으나, 서부 지역의 녹는 속도가 가팔랐다. 이원상 박사가 보여주는 남극대륙 지도를 보니 서부 지역, 즉 서남극에 한국 극지연구소의 세종기지가 있다. 그런데 이곳이 얼음이 빨리 녹는 지역이다. 반면 장보고기지는 동남극에 있다. 이원상 박사는 지난겨울 아라온호(쇄빙선)를 타고 서남극의 스웨이츠 빙하 지역에 가서 체류하며 이 지역 연구를 지휘하고 왔다. 남극의 해양 시즌은 12월 초에서 3월 말까지, 육상 시즌은 10월 말부터 3월 초까지다.

남극대륙의 서쪽과 동쪽은 왜 얼음 녹는 속도가 다를까. 이원상 박사가 남극대륙 지도를 보여주는데 얼음에 덮여 있는, 그래서 흰색으로 칠해져 있는 원형 모양의 남극대륙이다. 세종기지는 시계로 치면 10시 방향에, 즉 뾰족하게 튀어나온 킹조지섬에 있다. 극지연구소의 두 번째 기지인 장보고기지는 시계방향 6시에 있다. 서남극의 여러 곳이 붉은색으로 칠해져 있고, 붉은색은 그곳의 얼음이 빨리 녹고 있음을 나타낸다.

그가 두 번째 남극대륙 지도를 노트북 컴퓨터 모니터에 띄웠다. 남극대륙 표면의 얼음을 걷어냈을 경우를 보여주는, 남극대륙의 맨살을 드러낸 지도다. 이원상 박사는 “남극의 얼음 바닥을 500m 해상도로 그린 지형도”라고 설명했다. 이 지도를 보니 남극대륙은 거대한 하나의 대륙이 아니었다. 몇 개의 큰 땅덩어리와 많은 섬으로 되어 있었다. 특히 남극의 동부와 서부는 지형이 달랐다. 동부는 해수면보다 높은 땅이 대부분이나, 서부는 해수면 아래의 땅이 많다.

남극은 커다란 하나의 땅덩어리가 아니다. 해수면 아래의 지역이 많다. 이 지역의 얼음이 더 빨리 녹고 있다. ⓒ자료 : 이원상
남극은 커다란 하나의 땅덩어리가 아니다. 해수면 아래의 지역이 많다. 이 지역의 얼음이 더 빨리 녹고 있다. ⓒ자료 : 이원상

지형 때문에 서남극 얼음이 빨리 녹아

“서남극의 얼음이 동남극보다 빨리 녹는 대표적인 이유 중 하나가 바로 지형 차이 때문이다. 서남극의 빙상(WAIS·West Antarctic Ice Sheet)은 지형의 영향 때문에 얼음이 녹으면서 내륙으로 밀린다. 내륙 쪽으로 바닥이 깊어지니 그곳으로 무거운 얼음이 후퇴한다. 그리고 서남극의 해안 쪽에서는 따뜻한 물이 바다 쪽 얼음을 녹여 들어온다. 내륙으로 밀리고, 해안 쪽 얼음을 녹여 들어오니 서남극은 불안정하다.”

서남극의 얼음이 다 녹으면 지구 전체적으로 5.6m의 해수면 상승효과가 있을 것으로 예측한다. 서남극의 얼음이 녹는 속도는 매우 빨라, 급진적으로 예상하는 사람은 100년 안에 다 녹을 거라고 말한다. 보통은 1000년의 시간 스케일에서 그런 일이 일어날 수 있다고 본다. 이 남극 지도 제작에 이원상 박사도 참여했다. 남극을 500m 크기 격자로 나눠 그린 남극대륙 지형도는 지난 2월 학술지 ‘네이처 지오사이언스(Nature Geoscience)’에 발표됐다. 이 프로젝트는 국제 공동연구였다. 이원상 박사 연구팀은 장보고기지 인근 200×200㎞ 구간을 맡았다. 얼음 투과 레이더 장치를 갖고 헬기를 타고 다니며 관측했다. 남극 시즌 두 번에 걸쳐 일을 했다. 얼음 밑의 바닥 모양과 물이 있는지, 그래서 얼음이 보다 잘 미끄러지는지 알아보았다.

해수면 1m 상승하면 인천공항 피해

이원상 박사에 따르면, 한국의 일부 지역은 해수면 상승으로 인한 침수 피해가 지구 평균보다 심할 것으로 예상된다. 지구 평균 해수면 상승이 연 3.6㎜이나, 제주는 4.26㎜, 동해는 3.50㎜ 올라간 것으로 보고되었다.(2019년 기준) 반면 서해안(2.48㎜)과 남해안(2.44㎜)의 해수면 상승 속도는 상대적으로 낮다. “포항 지진 이후 소 잃고 외양간 고치기에 바쁘다. 지진 대비가 안 되었기 때문이다. 지금 해수면 변동 연구가 지진과 같다. 해수면이 상승하면 복구 비용이 지진과 비교할 바가 아니다. 침수될 것으로 예상되는 한반도 연안에 공항과 발전소가 많다. 어떻게 할 것인가. 기후변화에 대응해야 한다는 말은 많이 하나 행동이 없다. 추진 전략이 명확하지 않다.” 그가 보여주는 자료를 보니, 해수면이 1m 상승할 때 피해를 보는 기간시설에 인천공항, 인천 북항, 평택항, 당진항, 새만금, 영광원전, 목포신항 등이 들어 있다.

이원상 박사가 이끌고 있는 해수면 변동 예측사업단 활동을 물었더니 최근 연구를 집중하고 있는 ‘스웨이츠(Thwaites) 빙하’에 대해 설명해줬다. 스웨이츠 빙하는 남극 세종기지와 장보고기지 사이에 있고, 남극대륙 전체적으로 보면 서쪽에 위치해 있다. 스웨이츠 빙하는 남극대륙에서 가장 빨리 녹고 있다. 극지연구소는 2019년부터 2023년까지 4년 프로젝트로 스웨이츠 빙하를 연구하고 있다. 지난 2월 말까지 쇄빙선인 아라온호를 타고 이원상 박사가 60일간 다녀온 곳도 스웨이츠 빙하다. 상설기지가 인근에 없기에 아라온호를 타고 2년마다 간다. 쇄빙선이 없으면 이 지역은 접근이 불가능하다. 빙하에서 떨어져나가 바다에 떠 있는 얼음, 그리고 바닷물이 얼어서 된 해빙이 많기 때문이다. 극지연구소 팀은 스웨이츠 빙하의 육상과 해상에 관측망을 설치하고, 얼음(빙붕) 아래로 따뜻한 물이 들어가는 현상과 얼음이 얼마나 빨리 녹고 있는지를 관측한다.

가장 빨리 녹는 스웨이츠 빙하 연구에 집중

스웨이츠 빙하 연구는 미국과 영국이 먼저 시작했다. 두 국가의 연구그룹이 공동으로 600억원을 들여 2018년 초 착수했다. 이 연구가 주목받는 건 학술지 사이언스와 네이처가 2019년 초 “스웨이츠 빙하 연구가 주목된다”라고 보도한 데서도 확인할 수 있다. 한국은 이들보다 약간 늦었지만 200억원을 들여 2019년 6월부터 연구에 뛰어들었다. 이원상 박사가 이 연구의 리더다. 그는 “스웨이츠 빙하 연구는 한국의 지구과학 연구과제 중에서 굉장히 큰 과제 중 하나”라면서 “한국은 남극 연구의 후발주자이나, 그간 큰 규모의 정부 지원이 있었기에 빨리 따라잡을 수 있었다”고 말했다. 극지연구소가 이끄는 스웨이츠 빙하 연구그룹은 이름이 ‘LIONESS-TG’이다. 이 그룹에는 미국 해양대기청(NOAA)을 비롯하여 6개국 9개 연구기관 연구자가 들어와 있다. 극지연구소가 스웨이츠 빙하 연구를 위한 문호를 외국 연구자에게 개방해놓고 있기 때문이다. 이 그룹이 풀고자 하는 질문은 여러 개 있으나, 그중 첫 번째 질문은 ‘얼마나 많은 양의 얼음이 얼마나 빨리 녹고 있는가’이다.

이원상 박사는 서울대 지질학과 1993학번이다. 지진학 연구로 2004년 서울대에서 박사학위를 받았다. 지진을 연구한 이유에 대해 이원상 박사는 “지진학이 지구 물리의 꽃이라고 지도교수인 이기화 교수님이 늘 말씀하셨다”고 말했다. 박사학위 논문 제목은 ‘맨틀의 불균질성에 관한 연구’. 일본 센다이에 있는 도호쿠(東北)대학에 가서 박사과정 때 1년, 그리고 박사후연구원 때 2년을 연구했다. 세계적인 지진 연구자 사토 하루오 교수가 당시 이 학교에 있었다. 사토 교수는 지진파 산란 연구자. 석사과정 때 공부하다가 그가 쓴 지진학 교과서를 보았는데, 의문이 있어 내용 확인을 위해 이메일을 보낸 게 사토 교수와의 인연이 됐다. 사토 교수는 친절하게 답변해줬고, 그래서 박사과정 때인 2001년부터 1년간 센다이에 교환학생으로 가서 공부했다. 박사학위를 받은 뒤에도 2006년까지 2년간 연구했다. 극지연구소에 몸을 담은 건 2006년 10월. 그리고 두 달 지난 같은해 12월 그는 남극 세종기지로 첫 출장을 떠났다. 그리고 지금까지 남극대륙에서 총 26개월 머물렀다.

이원상 박사가 학자가 되면서 연구한 지진과 극지연구소 간의 접점은 무엇일까. 그는 “전통적인 지진학 관련 연구를 하고 있지는 않다”면서도 지진학 원리를 이용해 남극 바다에서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지를 본다고 설명했다. 관련 연구가 해저화산 활동, 해양 포유류의 소리, 빙하 관련 소음 세 가지 분야가 있다고 했다. 세종기지 옆의 바다 바닥은 지금도 벌어지고 있다. 해저에 화산도 있고 지체 구조 활동도 많다. 마이크를 물속에 넣어놓고 해저 바다의 소리를 1년 내내 듣는다. 물속에서는 멀리 있는 소리가 또렷하게 들리기 때문이다.

고래가 부르는 노래도 그의 관심 대상이다. 남극 얼음이 깨지면서 바닷속의 소음이 커지고 있는데 고래가 이 소음에 어떻게 반응하는지 본다. 고래가 동료들과 대화하기 위해 더 큰 소리를 내는지, 아니면 소음이 시끄러운 남극 지역을 피해 가는지를 연구한다. 남극의 얼음이 깨지는 소리와 관련해 얼음지진(Icequake) 연구도 했다.

그는 “지질학을 공부하면 많이 돌아다닐 수 있을 것 같아서 지질학과에 갔다”고 했다. 대학에 들어간 27년 전 예상은 적중했다. 이원상 박사는 앞으로도 남극에 매년 가고 2년마다 한 번씩 아라온호를 타고 스웨이츠 빙하에 갈 것으로 보인다. 그의 연구가 한국인에게 해수면 상승의 위험을 정확히 경고할 것으로 기대한다. 그리고 이 기사가 그에게 내려진 카산드라의 저주를 푸는 데 조금이라고 기여할 수 있기를 바란다.

최준석 선임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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