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왼쪽부터) 그레첸 휘트머 주지사. 엘리자베스 워런 의원.  카말라 해리스 의원. 에이미 클로버샤 의원. ⓒphoto 뉴시스
(왼쪽부터) 그레첸 휘트머 주지사. 엘리자베스 워런 의원. 카말라 해리스 의원. 에이미 클로버샤 의원. ⓒphoto 뉴시스

“인류가 만든 가장 쓸모없는 직업이다.”

미국 초대 부통령을 지낸 존 애덤스가 말한 ‘부통령 무용론’은 실권 없는 권력자가 된 그의 아쉬움을 대변했다. 미국에서 부통령은 이중적인 자리다. 미국 헌법을 보면 부통령은 그다지 실권이 없고 대통령 집무실에 끼치는 영향력도 제한됐다. 부통령과 그의 측근들은 백악관 본관 대신 서쪽 편에 자리한 ‘아이젠하워 행정동 빌딩(EEOB)’에서 머문다. 그들은 대통령 혹은 대통령 측근과 미팅을 할 때마다 지하도를 따라 100m 정도 걸어 대통령 집무실로 이동해야 한다. 이 지리적 거리만큼이나 부통령은 권력의 중심과 떨어져 있다. 도널드 트럼프 정부의 마이크 펜스 부통령이 처한 입장도 크게 다르지 않다. 펜스 부통령은 코로나19 사태 이후 관련 부처 직원을 총괄하는 TF를 이끌게 됐지만 정례 브리핑을 관장하는 건 트럼프 대통령이며 펜스 부통령이 주도권을 발휘하는 장면은 극히 제한돼 있다. 

그런데 이 부통령이란 자리는 권력과 가장 가까이 자리 잡고 있다. 부통령은 ‘A Heartbeat Away’, 말 그대로 심장 박동 소리가 들릴 정도로 대통령과 가까이 있다. 대통령이 사망하거나 사임해 물러나면 부통령은 대통령직을 승계한다. 부통령이 해야 할 가장 중요한 임무다. 승계가 아니더라도 부통령은 대통령으로 가는 빠른 길 중 하나다. 국정 운영을 경험했다는 점에서 부통령 출신은 대권 레이스에서 유리하다. 2020년 미 대통령 선거에 민주당 후보로 사실상 낙점된 조 바이든 후보가 증명하고 있다.

보통 현직 대통령에 도전하는 야당 후보는 여름 전당대회 직전에 러닝메이트를 선택한다. 그런데 바이든이 지명할 러닝메이트는 벌써부터 관심을 끌고 있다. ‘넘버 투는 누구일까’라는 질문에 이름을 올리는 후보들이 10여명에 달하고 모두 여성이다. 지난 3월 15일 열린 민주당 경선 후보 토론회에서 바이든이 “난 부통령 후보로 여성을 지명하겠다”고 약속했기 때문이다. 그의 공언 탓에 절반의 남성은 이미 탈락했다. 너무 일찍 결정된 대선 후보, 게다가 최초의 여성 부통령이 탄생할지도 모르기에 바이든의 파트너 이야기는 이른 시기부터 달아오르고 있다. 여기에는 과거 부통령을 고르는 것과는 다른 상황도 한몫했다. 부통령이 갖는 의미가 이전과 달라서다.

지금까지 부통령 후보는 정치공학적 계산으로 선택됐다. 대통령 후보의 강점을 강조하는 사람, 혹은 약점을 메워주는 사람으로 고르는 것이 보통이었다. 대부분 약점을 보완할 수 있을지가 우선적으로 고려됐다. 2008년 대선에 출마했던 존 매케인 공화당 후보도 여성을 러닝메이트로 선택했다. 부통령 후보가 된 세라 페일린 당시 알래스카 주지사는 정치 경력이 빈약했고 전국적 지명도가 떨어지는 40대의 젊은 여성 정치인이었다. 선정 이유는 그가 매케인의 보완재가 될 수 있었기 때문이었다. 상대적으로 고령인 매케인 대신 젊은 층의 표심을 잡고 오바마 당시 민주당 후보에 밀려 낙마한 힐러리 클린턴 후보의 여성표를 흡수하기 위해 선택된 사람이었다.

똑같이 여성을 파트너로 맞이하겠다는 바이든의 약속은 더욱 중요하게 취급받고 있다. 미국 흑인 정치계의 대부이자 민주당 원내총무인 제임스 클라이번 하원의원은 “바이든(의 선택)을 존중해야 하는 건 해리 트루먼 이후 가장 중요한 선택이 될 것이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트루먼 전 대통령은 고령의 프랭클린 루스벨트 대통령이 1945년 4월 사망한 뒤 대통령직을 승계했다. 그의 앞에는 제2차 세계대전이라는 난제가 놓여 있었다. 바이든이 당선된다면 비슷한 상황에 놓이게 된다. 2021년 취임할 바이든의 나이는 78세다. 그리고 지금 미국은 코로나19라는 전쟁 같은 상황을 겪고 있다. 그와 함께할 부통령도 이런 위기를 함께 해결해야 한다.

부통령 후보 선정이 갖는 정치적 메시지가 중요해지자 바이든은 지지자들에게 뉴스레터를 보냈다. “나는 버락 오바마에게 무엇을 찾아야 하는지 배웠다.” 바이든 캠프는 오바마 전 대통령의 측근인 에릭 홀더 전 법무장관으로부터 부통령 선정 작업에 관한 조언을 구했다. 그걸 바탕으로 바이든은 자신이 생각하는 러닝메이트 선정 기준 두 가지를 제시했다. 하나는 국가가 마주한 도전에 대해 우선순위와 철학이 맞는 사람, 그리고 즉시라도 대통령직에 들어갈 준비가 갖춰진 사람이다. 여성이라고 해서 상대적으로 얇은 이력서를 내밀 수 없는 기준인 셈이다.

바이든이 당선된다는 건 미국이 최고령 대통령을 맞는단 뜻이다. 나이와 건강 탓에 부통령은 당장 내일이라도 좋은 대통령이 될 수 있는 준비가 돼 있어야 한다. 유권자 역시 같은 생각을 갖고 부통령 후보에 시선을 줄 수밖에 없다. 코로나19로 백악관의 집무 능력이 중요해졌다는 것도 부통령 후보를 고르는 잣대다. 지난 4월 15일 폴리티코가 발표한 여론조사에서 유권자의 60%는 바이든의 러닝메이트로 ‘입법과 행정의 경험’을 중요하게 여겼다. 여성이란 점을 중요하게 생각한 유권자는 29%, 유색인종을 포인트로 꼽은 유권자는 22%에 불과했다. 타일러 싱클레어 모닝컨설팅 부사장은 “주지사들이 높은 지지율을 얻는 것에서 보듯 이런 팬데믹 속에서 유권자들은 행정 및 입법 경험을 높이 산다”고 말했다.

이번 부통령 후보가 당장의 선거만큼 민주당의 미래를 고려하는 선택이 될 수 있단 점은 주목할 대목이다. 바이든이 승리하더라도 연임하지 않을 수 있다는 시나리오가 가능해서다. 댈러스 모닝뉴스는 “많은 사람은 그가 당선되더라도 나이 때문에 대통령 임기를 한 번밖에 할 수 없을 것이라 믿고 있다. 이것은 그의 선택에 큰 부담을 준다. 왜냐하면 부통령 후보를 선택하는 건 2024년에 민주당을 이끌 유력한 후계자를 뽑는 일이기 때문이다”라고 지적했다.

러닝메이트로 등장한 민주당 경선 라이벌

최근의 보도들을 종합해 보면 민주당 지지층 사이에서는 카말라 해리스 상원의원(캘리포니아), 엘리자베스 워런 상원의원(매사추세츠), 에이미 클로버샤 상원의원(미네소타), 그레첸 휘트머 주지사(미시간)가 자주 거론된다. 이들은 모두 장단점이 분명한 후보다.

해리스는 캘리포니아주 법무장관 출신으로 유능한 관료였고 도덕적인 검사라는 평가를 받았다. 2020년 민주당 대선 초반 스포트라이트를 받으며 전국적 인지도도 쌓았다. 아버지가 자메이카인, 어머니는 인도인이라는 점에서 인종적 다양성을 담보할 수 있고 바이든의 약점인 유색인종 득표에도 도움을 줄 수 있다. 마이클 고든 비즈니스인사이더 칼럼니스트는 “고령인 바이든이 갖지 못한 에너지를 가져올 수 있고 진보 진영과 중도 진영의 가교 역할을 하며 유권자들에게 보다 어필할 수 있는 포지션을 갖고 있는 것도 장점이다”라고 설명했다. 반면 해리스가 2024년에 1위 티켓을 차지할 수 있는지에 대해서는 우려할 점이 있다. 민주당 경선 시작 때 얻었던 해리스의 지지율 15%는 지난해 12월 중도 포기할 때 4%로 떨어져 있었다. 이코노미스트가 여론조사기관 유고브에 의뢰해 발표한 자료를 보면 해리스에 대한 호감도는 30%대지만 비호감도는 40% 중반을 기록하고 있다. 대중에게 의외로 지속적인 인기를 얻지 못했다는 점이 불안한 징후로 평가받는다.

워런은 의심할 여지없는 능력을 갖고 있다. 폭넓은 정책적 관심과 전문 지식은 다른 후보들을 압도한다. 7년이라는 비교적 짧은 정치인 경력이지만 능숙한 관리자였고 혁명가였다. 폴 크루그먼 뉴욕시립대 교수는 칼럼에서 워런을 ‘십자군’으로 표현하며 “2008년의 금융위기 직후 창설돼 금융권 개혁의 초석을 깔았다는 평가를 받은 소비자금융보호국(CFPB)은 그의 머리에서 나온 작품이었다”며 실행력에 높은 점수를 줬다. 진보적 정치인으로 젊은 유권자들에게 매력이 떨어진다는 바이든의 약점을 메워줄 후보로도 꼽힌다. LA타임스는 “워런은 대선 출마를 중단하는 과정에서도 코로나19 사태에서 미국 정치인 중 가장 사려 깊고 긴급한 대응을 했다”고 언급하며 백악관에 워런이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다만 나이가 문제다. 바이든보단 어리다고 하지만 워런의 나이도 올해 70세다. 2020년 선거에는 어울릴지 몰라도 2024년에는 적합하지 않다는 지적이 나온다.

시선 쏠리는 러스트벨트의 여성 정치인들

3선인 클로버샤는 스윙스테이트(선거 때마다 지지세가 흔들리는 격전지)인 미네소타 상원의원 선거에서 매번 압도적으로 승리했다. 만약 그를 품으면 2016년 트럼프를 지지했던 중서부 러스트벨트, 그리고 백인 노동자를 끌어올 수 있을지 모른다. 호감도도 높은 정치인이다.

정치분석 매체인 ‘리얼클리어 폴리틱스’에 따르면 클로버샤의 순호감도는 3.3으로 바이든의 0.8과 비교해 훨씬 긍정적이다. 워싱턴포스트는 “트럼프를 이기는 민주당의 전략은 간단하다. 임기 내내 그의 대통령직을 못마땅하게 여겨온 대다수의 미국인들을 단결시키면 된다. 유능하고 점잖은 사람들을 출마시키면 되는데 바이든-클로버샤 조합은 완벽한 조합이다”고 주장했다.

다만 클로버샤의 득표력은 바이든처럼 중장년층에 몰려 있어 겹친다. 지난해에는 상원의원 시절 보좌진을 향해 폭언과 모욕을 해왔다는 버즈피드의 보도도 있었다. 폴리티코 역시 “2011~2016년 사이 클로버샤 의원실의 스태프 이직률이 가장 높았다”고 보도했다. 뉴욕매거진은 “직원들을 향한 학대는 클로버샤의 고위직 적합성에 대해 의문을 제기한다”고 전했다. 높은 스트레스 상황에서 평정심을 유지할 수 있는지 언론들이 되묻고 있는 건 악재다.

휘트머는 코로나19 사태가 주목하게 만든 대표적 정치인이다.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이 ‘미시간의 그 여자’라고 부르며 가장 거세게 공격하는 주지사가 휘트머다. 미시간은 미국 50개 주에서 가장 강력한 방역 대책을 실시하고 있다. 그리고 리더인 휘트머는 트럼프 대통령과 설전을 벌이며 연방정부의 능력을 비판해왔다. 클로버샤의 지역구처럼 미시간이 선거에서 위상이 높은 곳이라는 것도 휘트머의 정치적 자산이다. 백인 노동자층이 많은 러스트벨트 지역이며 바이든 진영이 대선 승리를 위해 반드시 따내야 하는 곳에 자리 잡은 주지사다. 하지만 휘트머의 짧은 중앙정치 경력은 선뜻 선택을 주저하게 만든다. 주지사가 된 지 2년도 채 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이전에는 주 상원의원으로만 지냈던 휘트머였다.

이른 시기부터 바이든의 선택에 관해 하마평이 많아지자 일부에서는 부통령 후보 선택이 과대평가됐다는 의견도 나오고 있다. 러닝메이트가 생각하는 것만큼 중요하지 않다는 얘기다. 정치전문 매체 더힐은 “막상 현실은 부통령을 누구로 선택하는지가 선거를 좌우하지 않는다”고 지적했다. 다만 부통령 후보군 기사가 많아질수록 바이든의 약점에 관한 언급도 덩달아 많아지는 건 아이러니다. 트럼프를 꺾을 후보라는 이미지가 강조돼야 할 시점에 오히려 그의 많은 나이, 젊은 층과 라틴계의 부족한 지지, 노회하고 참신하지 못한 이미지 등에 관한 이야기가 기사 수만큼 반복 재생 중이다.

김회권 국제·IT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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