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BO TV의 실화 영화 ‘배드 에듀케이션(Bad Education)’에서 미국 뉴욕주 롱아일랜드 교육구의 명문 공립학교 로즐린고교의 행정감독관 프랭크 타손으로 나온 휴 잭맨(52)과 영상 인터뷰를 했다. 프랭크 타손은 로즐린고교를 전국 최우수 학교 중 하나로 올려놓는 업적을 남겼으나, 막대한 공금을 횡령한 것이 교내 신문에 폭로되고 2004년 체포돼 실형을 산 인물이다. 휴 잭맨은 뉴욕의 자택에서 인터뷰에 응했는데 늘 그렇듯이 만면에 미소를 지으면서 겸손하고 상냥한 자세로 질문에 대답했다. 건전하고 역동적인 사람이다.

- 프랭크에 관해 어떻게 연구했나. 그를 실제 만났는가. “그를 만나진 않았다. 그에 관한 수많은 신문기사와 비디오를 장시간 읽고 봤다. 그리고 그를 아는 사람들과도 얘기를 나누었다. 영화의 각본을 쓴 사람이 로즐린고교 출신이어서 그의 얘기를 많이 들었다. 가급적 사실에 충실하려고 노력했다.”

- 프랭크 타손은 외모에 유난히 신경을 쓰는 사람이었는데 배우인 당신은 어떤가. “오늘 인터뷰를 위해 면도했다는 것을 고백한다. 이 인터뷰가 내게 있어선 3주 만에 처음 갖는 공식 일정이다. 나는 외모에 대해 별로 신경을 쓰지 않는다. 프랭크 타손은 학교를 대표하기 때문에 외모가 매우 중요하다고 주장한 사람으로 공금 3만달러를 1년 세탁비로 쓰기도 했다. 배우 생활을 시작할 때 사람들은 내게 이미지의 중요성을 얘기해주었지만 난 그것에 대해 마음을 쓰기보다는 연기에 에너지를 쏟는 것에 더 신경 쓴다.”

- 당신은 스캔들이 없는 사람인데 만약 스캔들에 말려든다면 프랭크 타손처럼 침착한 태도를 취할 수 있나. “그러지 못할 것이다. 난 어렸을 때부터 문제를 일으키지 않으려고 피해 다녔다. 홀아버지 밑에서 자라 혼자 있는 시간이 많았다. 사건이나 문제를 일으키지 않고 조용히 지냈다. 다른 아이들처럼 남들에게 나를 나타내려고 야단을 떨지도 않았다. 여하튼 어떤 스캔들이나 문제에 휩쓸려든다면 난 침착하지 못할 것이다.”

- 이 영화에 나오기로 한 이유는 무엇인가. “우선 실화라는 점이다. 그리고 이 얘기가 인간성의 애매모호한 회색지대를 다루고 있기 때문이다. 쉽게 변할 수 있는 진실의 본질에 매력을 느꼈다. 타손은 처음에 작은 액수를 유용하고 별것 아니라고 자기변명을 한다. 이는 마치 슈퍼마켓에서 포도 한 알을 따 먹고 ‘한 알이니 괜찮다’고 생각하는 것이나 마찬가지다. 그러다가 그 액수가 점차 눈처럼 불어난 것인데, 진실이란 이처럼 애매모호한 것이다. 이와 함께 사건을 폭로한 15세 교내 신문 여학생 기자의 용기가 가상했기 때문이다. 이 영화는 어린 학생의 성장기이기도 하다.”

- 당신은 다양한 장르의 영화에 나왔는데 특히 좋아하는 장르가 있나. “난 만화가 원작인 영화와 스릴러, 그리고 드라마와 뮤지컬 등 모든 장르의 영화들을 다 좋아한다. 나쁜 사람으로 나와도 좋다. 나쁜 사람 역을 맡는다고 해서 그를 나쁜 사람이라고 생각하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그 역이 좋은 사람이라고 생각하고 연기를 한다.”

- 타손의 부정을 판단하지 않고 그에 대해 어떻게 접근할 수 있었는가. “그의 잘잘못을 생각하면 제대로 역을 해낼 수 없다. 그리고 그 역을 믿고 사랑해야 한다. 역으로서 그를 옹호하면서 전력투구해야 그를 제대로 보여줄 수 있다. 타손이 학교에서 일할 때인 1990년대 중반은 교사 같은 직업의 성과로 막대한 액수의 혜택이 주어졌던 때였다. 따라서 타손은 공금을 유용하고도 자신이 학교를 우수학교로 만든 일등공신이니 괜찮다고 생각한 것이다. 유용한 돈을 자기 보수로 생각한 것이다. 그는 기소된 뒤에도 자기 잘못을 전연 뉘우치지 않았다. 흥미진진한 사람으로 매력적인 역이다.”

- 코로나19 사태에 어떻게 대처하고 있나. “근 30년째 명상을 해오고 있다. 명상이란 수면과도 같다. 어떤 때는 잠잠하나 어떤 때는 풍랑이 일게 마련이다. 그러나 수면 저 깊은 아래에는 늘 평온함이 있다. 그것이 바로 명상이다. 그리고 보통 때처럼 일상적인 활동을 하면서 개를 데리고 산책을 한다. 내가 지금 걱정하는 것은 내가 아니라 아이들이다. 외부와 격리돼 있어야 하는 아이들의 정서적인 면이 걱정된다. 또 과거 10년간 대화를 안 했던 사람들과 얘기를 하고 있다. 요즘 혼자 있는 시간이 많아져서인지 사람들이 서로 대화를 많이 나누는 것 같다. 이 재난이 끝난 후에도 이런 대화가 계속되길 희망한다. 그래서 서로의 마음과 경험을 공유할 수 있는 집단사회가 형성되기를 바란다.”

- 타손에게 돈은 세상의 전부나 마찬가지인데 당신에게 돈은 무슨 의미를 지녔는가. “내게 있어 돈이란 가장 중요한 것은 아니다. 하지만 재정 면에서 남보다 훨씬 나은 위치에 있다는 것은 인정한다.”

- 이번 코로나19 환난으로 무엇을 배웠다고 생각하나. “‘인간은 계획하고 신은 웃는다’라는 말이 있다. 우린 남보다 자기를 먼저 생각하게 마련이다. 이 재난을 계기로 나를 비롯한 사람들이 한발 물러서 우리가 집착해온 것들을 돌아보고 있다. 그러면서 자신들뿐만 아니라 남들에 대해서도 생각할 기회를 갖게 되었다고 믿는다. 그리고 내일 일을 모르니 모든 것을 단순화하자는 것도 깨닫고 있다. 우리가 실로 의지할 수 있는 것은 공동체와 가족이다. 공동체에 대한 우리의 개념이 이번 사태로 크게 강화됐다고 믿는다. 이런 재난이 전 세계를 동시에 휩쓸고 있는 것은 인류 역사상 처음 있는 일인 것 같다. 이것이 우리가 함께 뭉치는 계기가 되기를 바란다.”

- 학교 다닐 때 받은 훌륭한 조언은 무엇인가. “나의 아버지는 늘 내게 교육을 강조했다. 끊임없이 배우라고 독려했다. 그래야 자신감이 생기고 앞으로 나아갈 수 있다고 가르쳤다. 또 호주에서 연기를 가르쳐준 스승도 많은 조언을 해줬다. 그는 연기의 비결은 호흡이며 현존하는 존재를 숨 쉬는 것이라고 가르쳤다. 내가 직업인으로서 배운 것은 다 그 스승이 가르쳐준 것인데 그는 몇 달 전에 별세했다.”

- 프랭크 타손처럼 어떤 이미지를 유지하기 위해 압박감을 느낀 경험이 있는가. “물론이다. 배우란 동성애자로서 이중생활을 한 타손과 같이 다른 사람인 것처럼 ‘척하는 가면’을 쓰는 사람이다. 그러나 이것은 비단 배우뿐만 아니라 우리 모두가 겪는 일이다. 난 요즘 내가 허점이 있는 사람이며 결코 완전한 사람이 아니라는 것을 받아들이자고 다짐하고 있다. 마음을 열고 정직하며 또 취약한 것이 있는 삶이 보다 나은 삶이라고 생각한다.”

- 프랭크 타손의 요즘 동정에 대해 알고 있는가. “많이 알고 있다. 1년 전에 그는 뉴욕 브롱스에 살면서 시간당 50달러를 받고 온라인으로 여러 가지를 지도하고 있었다. 그는 컬럼비아대학에서 박사학위를 받은 사람으로 훌륭한 가정교사가 될 자격이 있다. 난 프랭크 타손 역에 대해 복합적인 감정을 느낀다. 누구나 잘못을 저지를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 영화는 무엇보다 경각심을 깨우쳐 주자는 것이다. 그것이 내가 역을 맡은 또 다른 이유 중 하나다.”

- 집에서 TV로 무슨 프로그램을 보는가. “과거 못 본 영화들을 보려고 한다. 가급적 고전영화를 많이 본다. 그리고 온라인으로 컬럼비아대를 위해 영화 강의를 하고 있다. 최근에는 1942년작인 잭 베니와 캐럴 롬바드가 나온 코미디 ‘투 비 오어 낫 투 비’를 봤다. 그리고 TV 작품들도 보고 있다.”

박흥진 할리우드외신기자협회(HFPA) 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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