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곳적부터 그랬다. 우리나라는 잘 살았다.

정확히 말하자면 이 지구상에 생명체가 살 만한 땅이 조성되기 시작하면서 한반도는 가장 살기 좋은 땅이었다.

처음 지구에 육지와 바다가 뚜렷이 구분되어서 대륙이 형성됐을 때, 땅덩이는 하나였다. 지금의 지질학자들은 그 거대 대륙을 ‘판게아(Pangea)’라고 부른다. 그때부터도 지금 한반도의 자리는 가장 많은 생물이 번성할 수 있는 조건을 갖추고 있었다. 천천히, 아주 천천히 판게아가 갈라져서 두 개의 대륙이 되고, 다시 6개의 대륙이 되어서 지금까지 2억년 이상을, 한반도는 계속해서 생명체가 번성하기 가장 좋은 땅으로서의 조건을 지녀오고 있다.

왜일까?

일단 중요한 건 열대나 극지방이 아니라 기온이 적절한 위도에 위치하고 있다는 것일 테다. 그 못지않게 중요한 이유는 지구가 시계 반대 방향으로 자전한다는 것이다. 그 결과 지구상에서는 바람이 주로 서쪽에서 동쪽으로 분다.

지구상 대륙분포의 변천 속 동아시아. ⓒ출처: WorldAtlas.com
지구상 대륙분포의 변천 속 동아시아. ⓒ출처: WorldAtlas.com

위 그림에서 붉은 동그라미 친 부분은 현재 동아시아에 해당하는데, 그보다 서쪽으로는 거대한 땅덩어리가 있어서 이 지역엔 항상 흙먼지가 날아와 쌓일 수밖에 없다. 따라서 심한 비바람과 홍수에 흙이 씻겨 내려가도, 또 농사를 계속 지어 지력이 고갈되어도, 새로운 흙이 꾸준히 보충될 수 있다. 식물은 거기 뿌리를 내리고 살 수 있고, 동물은 그 식물을 먹고 살 수 있다.

동아시아라면 한국·중국·일본인데, 그중에서 어느 나라가 가장 먹고살기 괜찮았을까?

일단 중생대까지는 그게 문제가 되지 않는다. 지도에서 알 수 있듯이, 그때까지만 해도 한·중·일이 한 덩어리였기 때문이다. 중생대는 약 1억8000만년 동안 지속됐는데, 지구 평균기온이 섭씨 0도 이하로 떨어지는 빙하기가 한번도 없던 온난기였다. 이 시대의 대표 동물은 파충류인 공룡이었고, 대표 식물은 공룡의 먹이였던 소철류와 고사리 종류였다. 현재 세계에서 단위면적당 공룡 화석 및 발자국 등이 가장 많이 남아 있는 곳은 한반도 남부 지방이다. 이 팩트는 중생대에 이 땅에 생명체가 많이 번식하고 있었음을 입증한다.

약 1억년 전부터 중국 대륙과 한반도 사이에 틈이 벌어지기 시작했고, 약 500만년 전부터 일본이 한반도에서 떨어져 나오기 시작했다. 신생대에 들어오면서 중국 대륙, 한반도, 일본 열도의 틈새는 점점 더 벌어졌다. 기온이 높았던 중생대와는 달리 신생대엔 빙하기가 차지하는 비율이 커서 아주 추운 기후일 때가 많았다.

기온이 낮아지면 물의 부피가 줄어든다. 지구상에서 물이 엄청나게 많은 곳은 바다다. 따라서 지구 전체적인 기온이 오르내리게 되면 바다의 부피도 늘었다 줄었다 한다. 그걸 알려주는 게 해수면의 높이다. 한랭기 때는 바다 전체의 부피가 줄게 되고 그 결과로 해수면이 낮아진다. 바로 이 때문에 빙하기에는 지금보다 훨씬 더 육지가 많이 드러나 있었다. 동아시아에서는 중국 대륙, 한반도, 일본 열도가 거의 붙어 있었다.

2만 년 전의 동아시아. 녹색 부분이 육지고, 푸른색 부분이 바다다. ⓒ출처: Proudman Oceanographic Laboratories,
2만 년 전의 동아시아. 녹색 부분이 육지고, 푸른색 부분이 바다다. ⓒ출처: Proudman Oceanographic Laboratories,

신생대 후기에서도 마지막 빙하기가 물러간 1만년 전 이후부터는 동아시아 3국이 뚜렷이 구분되기 시작했다. 국경은 아직 없었겠지만, 모여 사는 사람들의 집단 구분은 있었을 것이다. 그 세 지역 중 가장 살기 좋았던 곳은 어디였을까?

지질이나 지리 문제에 어느 정도 지식이 있는 사람이라면 한반도를 꼽는 데 주저하지 않을 것이다. 일본 열도는 지판 경계면에 닿아 있어 화산, 지진 등 자연재해가 심하고 태평양의 영향으로 태풍을 비롯한 바람도 세다,

중국은 대부분 지역이 건조하고 황량한 기후이고, 한국 서해의 맞은편인 동해안 지역에 주로 인구가 밀집돼 있다. 그런데 같은 바다를 끼고 양쪽에 있어도, 양쪽 바닷가가 생명을 품을 수 있는 조건이 다르다. 한국 서해안에는 동남아시아 쪽에서 오는 난류가 흐를 뿐 아니라 경사가 완만한 지형적 조건으로 개펄이 넓게 발달해 있다. 따라서 풍요한 해안 생태계를 형성, 많은 생명체를 품을 수 있다. 그 바닷물이 위도가 높은 발해만을 돌아 나오면서 차가워져 중국 쪽 해안을 흐를 때는 한류가 된다. 그에 따라 중국은 같은 위도라도 한반도보다 기온이 낮고, 또 바다의 영향이 적어 건조하고 극단적인 기후를 갖게 된다.

한반도 주변 해류. ⓒ출처: 국립해양조사원
한반도 주변 해류. ⓒ출처: 국립해양조사원

그뿐 아니라 한반도는 생명이 사는 데 꼭 필요한 물도 적절하게 공급되는 곳이다. 차가운 기류인 시베리아 기단과 오호츠크해 기단이 더운 기류인 양쯔강 기단, 적도 기단, 북태평양 기단과 만나는 곳이기 때문이다. 식물이 잘 생장하지 않는 겨울엔 북쪽 기단의 힘이 커서 비가 많이 내리지 않고, 생장기인 봄부터 가을까지는 건조하고 차가운 공기가 따뜻하고 습한 공기와 부딪쳐 충분한 비가 내리는 천혜의 조건을 갖추고 있다.

세계사의 예를 보면, 살기 좋은 환경 조건을 갖춘 곳에 인구도 밀집하고 문명도 발달한다. 한반도도 그랬을까? 이 질문에 대한 답은 아주 단순한 “예”다. 그럼 다음 질문이 이어질 것이다. 한반도에 살았던 인간 집단이 과거에는 아주 번영했을까? 얼마나 번영했을까? 그런데 왜 그 사실이 잘 알려지지 않고 있을까?

이 질문들에 대한 답은 좀 더 복잡할 것 같다. 지금까지 많은 왜곡이 있었기 때문이다. 이 시리즈는 그 왜곡의 덤불을 헤치고, 우리의 제대로 된 옛 모습을 찾아가는 여정이 될 것이다.

이진아 환경·생명 저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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