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6년 12월 14일(현지시각) 당시 대통령 당선인 신분이었던 도널드 트럼프 미 대통령(오른쪽)이 아마존, 페이스북 등 IT기업 리더들과 만났다. ⓒphoto 뉴시스
2016년 12월 14일(현지시각) 당시 대통령 당선인 신분이었던 도널드 트럼프 미 대통령(오른쪽)이 아마존, 페이스북 등 IT기업 리더들과 만났다. ⓒphoto 뉴시스

실리콘밸리의 평화로운 주말 저녁을 깬 건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이었다. 지난 5월 16일 저녁 8시56분, 테크 업계의 빅플레이어들은 트위터에서 뜬금없는 트럼프의 비난을 들었다. “급진좌파는 페이스북, 인스타그램, 트위터, 구글을 통제하고 있다. 행정부는 이런 불법적인 상황을 바로잡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불법적인 상황이 무엇인지는 얘기하지 않았다. 다만 트윗 마지막에 동영상 링크를 통해 불만이 무엇인지 알 수 있었다.

트럼프 대통령은 요즘 보수 블로거 겸 정치평론가인 미셸 말킨의 지지자다. 말킨은 홀로코스트를 부정한 인사들을 옹호한 이력을 갖고 있어서 주류 우파에서도 거리를 둔다. 트윗에 첨부된 영상에서 말킨은 “실리콘밸리 테크 기업들이 기술을 활용해 검열한다”고 주장했다. 검열로 불이익을 받는 쪽은 당연히 보수세력이라고 주장했다. 트윗의 타이밍이 절묘했던 건 발언 하루 전인 지난 5월 15일 테크 업계에서 벌어진 일들과 맞물려서다. 15일은 ‘반독점’이라는 키워드가 내내 주목받았다. 주인공은 트럼프 대통령이 날을 겨눈 페이스북과 구글이었다.

몸집 큰 기업들이 몸을 움츠리고 있는 지금도 기술 업계의 빅플레이어들, 특히 페이스북은 예외적 존재다. 지난 5월 15일 페이스북은 4억달러 규모의 인수합병을 해내며 이를 증명했다. 페이스북 역사에서 다섯 번째로 큰 거래였는데 상대는 ‘지피(GIPHY)’라는 재미있는 기업이다.

낯설지도 모를 지피는 우리 삶에 꽤 깊이 침투해 있다. 이곳은 ‘움짤’이라고 부르는 GIF를 제작하고 검색할 수 있는 사이트를 운영한다. 카카오톡에서는 움짤이 재생되지 않아서 활용할 수 없다. 대신 트위터나 아이메시지, 라인, 인스타그램 등에서는 지피의 움짤을 쓸 수 있다. 온라인에서 자신의 감정을 표현하고 싶은 사람들이 반드시 찾는 곳이다.

오랜만에 벌어진 빅딜이었고 관련 기사들이 쏟아졌다. 일부에서는 4억달러라는 가격이 너무 비싸다고 했지만 수긍하는 분위기가 우세했다. GIF는 모든 소셜미디어에서 핵심적인 서비스인데 지피는 가장 큰 GIF 검색엔진을 보유하고 있다. 지피가 하루 동안 제공하는 GIF는 70억개에 달한다. 이 중 약 35억개가 페이스북에서 활용된다. 지피의 위상, 그리고 지피가 없어서는 안 될 페이스북의 입장을 고려한다면 비싼 값을 치르지 않았다고 볼 수 있다. 미 IT 전문매체 더버지(The Verge)는 “페이스북이 지피의 인수를 발표했을 때 비웃는 사람은 거의 없었다”고 전했다.

“페북, 4억달러 인수합병하지 말라”

대신 워싱턴에서 부정적인 반응들이 쏟아졌다. 상원의원 중 일부는 이번 빅딜이 공정한 거래였는지 묻고 있었다. 여기에는 엘리자베스 워런, 에미이 클로버샤 등 민주당 대선 레이스를 뛰었던 거물급들이 포함됐다. 이들은 코로나19 팬데믹 중에 이뤄진 모든 인수·합병을 중단할 것을 요구하고 있었다. 재정적으로 어려운 상황을 거대 기업들이 기회로 삼는 걸 금지하자는 얘기였다. 워런 측은 페이스북의 인수 소식을 듣자마자 “페이스북의 사례는 거대 기업이 권력을 더욱 공고히 하기 위해 전염병 대유행을 이용한 경우다”라며 반대했다. 클로버샤 역시 “법무부나 연방거래위원회(FTC)가 이번 거래를 조사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초당적 합류도 있었다. 이번 페이스북 반대 집단에는 조시 할리 공화당 상원의원이 함께했다. 그는 페이스북의 데이터 활용에 주목했다. “페이스북은 데이터를 가져갈 수 있는 더 많은 방법을 찾고 있다. 우리 데이터를 더 많이 수집하기 위해 페이스북은 지피를 원한다.”

그의 주장은 일리가 있다. 지피는 페이스북뿐만 아니라 애플의 아이메시지, 트위터, 틱톡 등에 동일한 GIF 검색 서비스를 제공한다. 블룸버그는 “지피는 페이스북 외 다른 플랫폼의 건전성이나 사람들의 사용빈도 등에 대해 나름의 관점을 갖고 있다. 이것은 페이스북이 중요하게 생각하는 통찰력의 일종이다”라고 설명했다. 할리는 한 걸음 더 나아가 훨씬 강경한 모양새다. 그는 “과거의 인수·합병에 대해 독점금지법 조사를 받는 동안 페이스북은 그 어떤 기업도 인수하면 안 된다”고 말했다.

켄 팩스턴 텍사스주 법무장관 등 미국의 주 법무장관들이 지난해 9월 9일(현지시각) 미 워싱턴DC 대법원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구글에 대한 반독점 조사 계획을 밝혔다. ⓒphoto 뉴시스
켄 팩스턴 텍사스주 법무장관 등 미국의 주 법무장관들이 지난해 9월 9일(현지시각) 미 워싱턴DC 대법원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구글에 대한 반독점 조사 계획을 밝혔다. ⓒphoto 뉴시스

독점금지법 기소당할 위기 처한 구글

그의 말마따나 페이스북은 독점 이슈에 발목이 잡혀 있다. 문제가 된 방식은 크게 두 가지였다. 하나는 경쟁사를 인수해 경쟁 자체를 없앴다. 인스타그램이나 왓츠앱 등 과거의 라이벌이 사라진 경쟁자다. 경쟁사의 핵심 기능을 카피하는 것도 문제였다. 페이스북은 인수에 실패한 스냅챗의 스토리 기능을 인스타그램에서 유사하게 활용했다. ‘스토리’는 24시간 동안 업로드한 영상들이 쭉 연달아 게시되며 시간이 지나면 사라지고 남지 않는 기능이다. 모방이 가져온 결과는 무엇이었을까. 스냅챗의 성장을 눌러버렸다.

이런 비판 속에 지난해 9월 페이스북은 독점금지법의 조사 대상이 됐다. 지난해 9월 6일 뉴욕주를 포함한 7개 주 법무장관은 페이스북에 대한 독점금지법 조사를 실시하기로 했다. 레티샤 제임스 뉴욕주 법무장관은 “우리는 페이스북이 소비자 데이터를 위태롭게 하는지, 소비자 입장에서 선택의 질을 떨어뜨리고 있는지, 광고 가격을 독단적으로 인상하고 있는지를 알기 위해 모든 조사 방법을 사용하겠다”고 말했다. 불과 한 달 뒤 페이스북 조사에 동참한 주는 47개나 됐을 정도니 여론을 짐작할 수 있었다.

지피 인수로 페이스북의 독점 이슈가 떠오른 지난 5월 15일에는 구글마저 곤란해졌다. 월스트리트저널은 이날 “법무부와 주 법무장관들이 구글을 상대로 독점금지법 소송을 제기할 것 같다”고 보도했다. 이 사건 역시 출발점은 페이스북처럼 2019년 9월로 거슬러 올라가야 한다. 당시 구글은 페이스북보다 훨씬 어려운 상황에 처했는데 무려 50명의 주 법무장관을 상대해야 했기 때문이다. 그해 9월 9일 미국 전역을 커버하는 법무장관 그룹은 구글의 반독점 조사에 나서기로 했다.

이들은 구글의 디지털 광고사업에 초점을 맞췄다. 구글 중심으로 조성된 생태계 안에서 구글이 어떻게 광고시장 지배력을 남용하고 있는지, 소비자 데이터를 어떻게 활용하고 있는지를 살펴보는 게 포인트였다. 그룹을 이끄는 사람은 공화당원이자 텍사스주 법무장관인 켄 팩스턴이었다. 그 역시 광고에 초점을 맞춰 조사할 것이라고 했지만 막상 선거자금(미국의 주 법무장관은 선출직이다)을 모금하기 위한 메일에서는 “(구글은) 미국인들이 정치 문제에 관해 정보를 찾을 때 사람들이 보는 것을 미묘하게 통제하고 있다”고 언급하며 논란을 일으켰다.

조사가 시작된다는 게 소송까지 연결되는 건 아니다. 조사 단계에서 끝날 수도, 소송 전에 합의할 수도 있다. 그런데 월스트리트저널의 보도대로라면 구글은 법원으로 끌려가야 한다. 팩스턴은 기사에서 “가을까지 조사가 마무리되기를 희망한다. 우리는 그 후에 법정에 갈 것이다”라고 말했다. 만약 소송이 이뤄진다면 2020년 미 대선이 한창 진행 중인 시기에 할 것으로 보인다.

“보수의 분노, 기소하려는 욕구 자극해”

미국의 독점금지법은 어떤 산업에서 한 기업이 과도한 권력을 쥐는 걸 방지하는 게 목적이다. 주 및 연방정부 차원에서 적용되는데 인수·합병을 방지하거나 자회사별로 해체해 모기업의 영향력을 줄이는 게 가능하다. 벌금을 부과할 수도 있다. 페이스북과 구글은 오랫동안 독점금지법 적용 여부를 두고 논란 거리였다. 그 어느 때보다 높은 시장점유율을 자랑하고 있기에 간혹 저지르는 실수가 크게 느껴졌다. 2016년 미 대선 때 페이스북이 사용자들의 개인정보 보호에 미흡했던 일이 대표적이다. 이들의 영향력을 경계할 필요가 생긴 계기였다. 오바마 정부에서 국가경제위원회(NEC) 위원장을 지낸 진 스펄링은 규제 찬성론자다. 그는 팟캐스트에 출연해 “나는 이 회사들이 가치가 크다는 걸 알고 있지만 페이스북이 왓츠앱과 인스타그램을 소유할 필요가 있는지는 모른다. 페이스북이 정치 광고나 프라이버시에 대해서 잘못된 결정을 내렸을 때 인스타그램과 왓츠앱이 대안을 제시할 수 있다면 더 좋은 사회가 됐을 거라고 생각한다. 이건 경쟁에 반대한다는 뜻이 아니다. 경쟁을 어떻게 구성하느냐에 관한 문제다”라고 말했다.

다시 앞으로 돌아가서 트럼프 대통령이 “행정부는 불법적인 상황을 바로잡으려고 노력하고 있다”고 언급한 건 독점금지법 적용을 위해 노력하고 있다는 뜻과 맞물린다. 문자 그대로라면 문제없다. 하지만 대통령이 끼어들면서 독점금지법은 경제적 논리 대신 당파적 논리가 작동하기 시작했다. 독점 논란 하루 뒤에 나온 대통령의 트윗, 대선을 목전에 둔 올해 가을에 벌어질지 모르는 독점금지법 소송 등은 정치적으로 해석될 소지가 다분해졌다. IT매체 더버지는 “테크기업에 대한 보수의 분노는 기업들을 기소하려는 정치적 욕구를 어느 정도 자극했다”고 분석했다.

페이스북이나 구글의 독점은 어제오늘 일이 아니다. 왜 지금이냐는 질문이 나올 수밖에 없다. 독점금지법은 트럼프 대통령이 오래전부터 만지작거리던 카드다. 2018년 8월 백악관 출입기자들 앞에 선 그는 구글, 페이스북, 트위터 등의 이름을 거론하며 “이들 기업은 조심해야 할 거다”라고 말했다. 후속조치에 대해서는 말하지 않았지만 래리 커들로 NEC 위원장은 “(이 기업들을) 살펴보고 있으며 어느 정도 조사할 것이다”라고 말했다. 검색 결과를 문제 삼으면 수정헌법 1조를 위반할 수 있으니 시장 독점을 문제 삼는 게 효과적이라는 얘기가 나오기 시작했다. 독점이라는 화두를 여기까지 끌고 온 동력원이 트럼프 대통령이라고 보는 게 무리는 아닌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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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회권 국제·IT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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