덥수룩한 수염에 큼지막한 안경을 낀 스파이크 리(63)는 때로 상소리를 섞어가며 깔깔대고 웃고 박수까지 치면서 질문에 대답했다. 그러다가도 요즘 미국에서 일어나고 있는 인종차별에 저항하는 시민들의 대규모 시위 같은 물음에는 매우 진지하고 심각해졌다. 그는 미국의 인종차별에 치열하게 항거해 온 할리우드 스타다.

넷플릭스 영화 ‘다 5 블러즈(Da 5 Bloods)’를 감독한 스파이크 리와 영상 인터뷰를 했다. 이 영화는 베트남전에 참전했던 4명의 흑인 군인이 전우의 유해와 함께 전쟁 때 감춰둔 금괴를 찾기 위해 베트남을 방문하면서 벌어지는 전쟁 액션 드라마다. 스파이크 리는 뉴욕주 브루클린에 있는 자기 영화사 사무실에서 인터뷰에 응했다.

- 요즘 미국에서는 경찰에 의해 목이 졸려 사망한 흑인 조지 플로이드의 죽음을 계기로 인종차별에 항의하는 전 국민적 시위가 연일 벌어지고 있다. 흑인이 경찰에 의해 부당하게 살해당한 경우는 이번이 처음이 아닌데, 역사가 반복된다고 생각하는가. “조지 플로이드의 죽음을 보면 미국의 인종차별은 변하지 않고 계속되고 있다. 역사는 언제나 반복되어 왔다. 그러나 나는 요즘의 시위를 보면서 낙관적인 생각을 하게 됐다. 시위에 흑인과 황인종뿐 아니라 수많은 젊은 백인이 동참한 것을 보고 희망을 가지게 됐다. 이런 현상은 과거 민권운동 때도 있었다. 그런 면에서도 역사는 반복된다고 볼 수 있겠다.”

- 코로나19 사태로 영화가 극장에서 상영되지 못하는 것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는가. “하나님은 신비롭게 일한다는 말이 있다. 코로나19 사태가 일어날 줄 누가 알았겠는가. 원래 ‘다 5 블러즈’는 5월에 열릴 칸영화제서 경쟁부문에 올라 세계 최초로 상영될 예정이었다. 나는 영화제의 심사위원장으로 위촉됐었다. 영화제 상영 후 극장에서 개봉할 계획이었으나 코로나19 때문에 모든 것이 변한 것이다.”

- 영화를 베트남과 태국에서 찍은 경험이 어땠는지. “영화의 대부분은 태국의 치앙마이와 방콕에서 찍었고, 마지막 부분은 베트남의 호찌민시에서 촬영했다. 매우 즐겁고 배운 것이 많은 경험이었다. 그동안 내가 방문한 동양 국가는 일본뿐이다. 태국과 베트남을 방문했을 때 그곳의 영화인들이 우리를 반갑게 맞아줘 매우 아름다운 경험을 했다. 그런데 지독히 덥더라. 그리고 호우 계절이 오기 전에 촬영을 마치기 위해서 서둘러야 했다. 아주 훌륭했던 경험으로 다시 방문하기를 기대한다.”

- 1970년대와 1980년대에 ‘지옥의 묵시록’과 ‘7월 4일생’을 비롯해 여러 편의 베트남전 영화가 만들어졌는데 이들 영화와 당신은 어떤 관계인가. “나는 베트남전 영화인 ‘플래툰’과 ‘7월 4일생’을 만든 올리버 스톤을 깊이 존경한다. 그는 베트남전을 상상만 한 사람이 아니고 전투에 직접 참가했던 군인이었다. ‘지옥의 묵시록’을 만든 나의 영화 형제 프랜시스 포드 코폴라도 몹시 사랑한다. 이번 영화를 보면 ‘지옥의 묵시록’ 두 장면을 재현한 것을 알 수 있을 것이다.”

- 베트남전을 어떻게 기억하는가. “베트남전이 한창인 1967년에 나는 열 살이어서 징집은 안 됐지만 세상에서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 줄은 알았다. 베트남전은 미국에서 처음 TV로 생생하게 중계한 전쟁이어서 우리 가족도 집에서 TV로 그 전쟁을 봤다. 영화에서 베트남전 회상 장면을 ‘수퍼16’ 카메라로 찍은 이유도 과거 베트남전 기록영화들이 수퍼16으로 찍었기 때문이다. 그 밖에 내가 뚜렷이 기억하는 또 다른 과거사로는 마틴 루터 킹 박사의 암살과 반전운동, 닉슨의 사임 등이다.”

- 삶에서 과거로 돌아가 고칠 것이 있다면 무엇인가. “학교 다닐 때 공부를 좀 더 열심히 했어야 하는 것이라고나 할까.”

- 몇 달 후면 대통령 선거가 있는데 그에 대해 하고 싶은 말은. “투표를 반드시 해야 한다. 그(트럼프)는 사라져야 한다. 나는 이 자가 또 당선되면 미국뿐 아니라 전 세계가 위험에 빠지게 될 것이라고 믿는다.”

- 당신의 영화는 흑인의 눈으로 본 것인데 모든 사람에게 다 공감을 준다고 생각하는가. “사람들이 이해 못 하는 영화를 몇 편 만들었다. ‘25시’나 ‘뱀부즐리드’ 같은 것들은 사람들이 처음에는 이해를 못 했으나 뒤늦게 재발견한 영화들이다. 그리고 ‘두 더 라잇 싱’도 처음에는 폭동을 사주하는 영화라는 비판을 받았다. 저명한 비평가들로부터 피를 부르는 영화라는 말을 들었다.”

- 지금 미국에서 일어나고 있는 시민들의 시위에 대해 다른 나라들이 알 필요가 있다고 보는가. “미국에서 일어나고 있는 일을 전 세계가 보고 알아야 한다. 인종차별 문제란 비단 미국만의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 미국은 개선되고 있다고 생각하는가. “더러 개선되었다는 것은 인정한다. 그러나 툭하면 흑인이 경찰에 의해 살해되는 것만은 변하지 않았다. 더 나쁜 일은 살인자들이 단죄되지 않고 자유롭게 활보한다는 것이다.”

넷플릭스 영화 ‘다 5 블러즈(Da 5 Bloods)’의 한 장면.
넷플릭스 영화 ‘다 5 블러즈(Da 5 Bloods)’의 한 장면.

- 예술이 세상을 변화시킬 수 있다고 생각하는지. “나는 예술이 세상을 변화시킬 수 있다고 굳게 믿는 사람이다. 문제는 어느 정도 변화시키느냐는 것이다. 흑인들은 어떻게 해야 인종차별을 없앨 수 있겠느냐는 질문을 종종 받는데 그 해답은 전적으로 백인에게 달렸다. 내가 이번 시위에 많은 젊은 백인들이 동참하는 것을 보고 낙관적인 생각을 갖게 된 이유도 거기에 있다.”

- 가장 감동 깊게 본 영화는 무엇인가. “어머니가 영화광이어서 아주 어렸을 때부터 영화를 봤다. 내가 깊은 감동을 받은 영화는 ‘지옥의 묵시록’이다. 뉴욕대 영화 대학원에 다니면서 여름방학 동안 컬럼비아사에서 인턴으로 일하기 위해 처음 LA에 왔을 때 선셋거리에 있던 시네라마 돔에서 봤다. 촬영과 음향이 어찌나 훌륭한지 영화에 푹 빠졌었다. 헬기 소리가 너무 사실 같아 고개를 돌려가며 극장 안을 둘러보았던 기억이 난다. 이번 영화에 ‘지옥의 묵시록’ 장면을 흉내 낸 것도 이 때문이다.”

- 이제 와서 이 영화를 만들기로 한 이유가 무엇인가. “원래 이 영화 각본의 제목은 ‘라스트 투어’로 4명의 베트남전 참전 백인 군인들이 숨겨둔 금고를 찾기 위해 베트남에 돌아간다는 내용이었다. 그것을 처음 영화의 공동 제작자였던 로이드 레빈이 올리버 스톤에게 갖다 주었는데 2년 후 스톤이 만들지 못하겠다고 해서 레빈이 나에게 가져온 것이다. 그래서 영화의 주인공들을 백인에서 흑인으로 바꿔 만들었다.”

- 과거 베트남전에 참전했던 흑인 군인들은 귀향 후 사람들로부터 어떤 대접을 받았는가. “그 전쟁은 비도덕적인 데다가 미군들이 저지른 만행이 TV로 방영돼 귀향한 군인들은 흑백 가릴 것 없이 사람들로부터 멸시를 받았다. 사람들은 군인들에게 침을 뱉었다.”

- 나이와 함께 경험이 늘면서 영화에 실험적 요소를 가미하고 있는데 앞으로도 계속해 새로운 시도를 할 것인가. “그 질문에 대해 나의 영웅인 구로사와 아키라 감독의 말로 대답을 대신하겠다. 그가 생애 마지막 영화를 만든 후 가진 인터뷰에서 기자가 ‘아직도 영화에 관해 배울 것이 있느냐’고 묻자 구로사와는 ‘나는 아직도 영화로부터 배울 것이 무한하다’고 대답했다. 나는 지금도 이 말을 가슴 깊이 간직하면서 배움에는 끝이 없다고 생각한다. 따라서 앞으로도 내가 만드는 영화에 과거 하지 못했던 것을 시도할 것이다.”

박흥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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