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여정 노동당 제1부부장이 오빠인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과 함께 백마를 타고 백두산에 오르고 있다. 조선중앙TV가 지난해 10월 16일 보도한 사진이다. ⓒphoto 연합
김여정 노동당 제1부부장이 오빠인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과 함께 백마를 타고 백두산에 오르고 있다. 조선중앙TV가 지난해 10월 16일 보도한 사진이다. ⓒphoto 연합

최근 북한의 대남정책이 비타협적인 강경 적대노선으로 급전환하고 있다. 지난 6월 16일 북한은 개성공업지구 내 남북공동연락사무소를 전격 폭파하며 향후 군사적 행동까지 협박하고 나섰다. 이를 직접적으로 촉발시킨 것은 지난 6월 4일 자 김여정 북한 노동당 제1부부장 명의의 ‘스스로 화를 청하지 말라’라는 제목의 담화이다.

여기서 김여정은 탈북자의 대북전단 살포가 최고존엄을 비롯한 북한 체제를 비방중상하는 적대행위라고 규정하며, 남한 당국이 이를 방치하고 있다고 강력 규탄한 바 있다. 또한 전단 살포를 금지하는 법을 만들 것을 강제하며 “금강산 관광 폐지, 개성공업지구 완전 철거, 남북공동연락사무소 폐쇄 및 남북군사합의서 파기” 등으로 협박한 바 있다.

점차 고조되는 대남 강경 행동 수위

통일부는 이 담화가 나온 지 4시간40분 만에 ‘전단살포금지법’을 입법하겠다고 발표하는 굴욕적(?) 행태를 보였다. 그러나 북한은 이에 만족하지 않고 지난 6월 5일 통일전선부 대변인 담화(‘적은 역시 적이라는 결론을 내리게 한다’)를 통해 한국 정부를 더 강한 논조로 악성비방하였다. 또한 김여정이 대남사업을 총괄하는 제1부부장임을 공개하고 김여정이 담화 내용을 실무적으로 집행하기 위한 검토 사업을 대남사업 부문에 지시하여 착수하고 있다고 밝혔다. 6월 9일에는 김여정의 지시를 거론하며 대남사업을 철저히 대적(對敵)사업으로 전환하겠다며, 이의 첫 단계 행동으로서 남북 사이의 모든 통신연락선을 완전 차단하는 조치를 취했다.

이어 지난 6월 12일에는 장금철 통일전선부장이 담화(‘북남 관계는 이미 수습할 수 없는 지경에 이르렀다’)를 통해 흘러가는 시간이 앞으로 후회스럽고 괴로울 것이라고 협박한 바 있다. 6월 13일 김여정은 또다시 담화를 발표하며 “머지않아 쓸모없는 북남공동연락사무소가 형체도 없이 무너지는 비참한 광경을 보게 될 것”이라고 경고한 지 4일 만에 연락사무소를 폭파해버린 것이다.

남북공동연락사무소의 처리과정을 보면 처음에는 ‘폐쇄’(6월 4일 김여정 1차 담화)에서 ‘폐지’(6월 5일 통일전선부 대변인 담화)를 경고하다 갑자기 수위를 높여 김여정의 ‘폭파 지시’(6월 13일 2차 담화) 후 사흘 만에 실제 폭파(6월 16일)라는 만행을 저질렀다. 다음 날인 6월 17일 김여정은 장문의 3차 담화(‘철면피한 감언리설을 듣자니 역스럽다’)를 발표하며 문 대통령을 겨냥한 악성비방과 대남협박의 수위를 높였다. 같은 날 장금철 통일전선부장도 남한과 상종하지 않겠다는 2차 담화(‘께끈한 것들과는 더는 마주 앉을 일이 없을 것이다’)를 발표하며 대남협박의 강도를 높였다.

향후 예고한 비무장지대와 개성공업지구 및 금강산지구 군부대 진출, 각종 군사훈련 재개, 대남삐라 살포 외에 국지전 규모의 무력 군사도발도 배제할 수 없는 상황이다. 남북군사합의서 파기도 시간문제로 보인다.

장마당 물가는 안정적, 후계구도가 고민

대다수 전문가와 언론은 지속되는 유엔, 미국 및 서방세계의 대북제재와 함께 코로나19의 영향으로 북한 경제가 한계에 달해, 이를 돌파하기 위해 북한이 대남 강경행동을 연출하며 경제난을 해소하려는 술책으로 분석하고 있다. 필자는 이에 동의하지 않는다. 만약 이게 목적이라면 미·북 하노이 회담 결렬 이후 교착상태에 빠진 남북관계를 개선하기 위해 북한과의 대화에 안달(?)이 나 있는 문 정부와 대화를 통해 해결하는 것이 훨씬 효율적이고 편익이 크기 때문이다. 쌀, 비료, 분유, 생필품 등 인도적 차원에서의 대북지원은 국제사회의 대북제재에 관계없이 가능한데 이렇게 모욕을 주며 압박할 필요가 없다.

또한 북한 장마당의 물가 동향(지난 5월 기준)을 보면, 쌀값은 1㎏에 4300 ~4500원대, 달러 환율은 1달러에 8300원대로 비교적 안정적이라 할 수 있다. 즉 북한 일반 주민의 경제가 한계 상황이 아니라는 것이다.

북한이 수위를 높이며 대남 강경노선으로 치닫고 있는 핵심적 이유는 대남사업의 지도권을 부여받은 김여정의 영도력을 대내외에 과시하려는 것이며, 이는 김정은의 비상 후계체제 구축의 일환이다.

김정은은 만 36세의 젊은 나이지만 체중이 110~120㎏의 초고도비만 상태로 당뇨, 심장병, 혈압, 관절통 등 온갖 성인병을 앓고 있다. 일상적 생활은 가능하지만 돌발사 등의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는 상황이다. 김정은 입장에서는 명색이 북한 통치자인데, 자기가 변고(變故)를 당한 상황이 발생할 때 과연 누가 북한 김씨 집단의 이른바 혁명전통을 계승하여 정권의 연속성을 유지할 것인가에 대해 고민을 하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

북한의 ‘수령후계자론’에 입각해 이른바 주체의 혁명위업을 대(代)를 이어 계승 발전시킬 수 있는 후계자의 덕목을 갖춘 자는 김정은의 자식밖에 없으나, 3명 모두 10세 미만으로 권력을 승계하기 어려운 게 현실이다. 따라서 김정은이 친여동생인 ‘김여정’을 비상시 후계체제 계승자로 지목하고 이의 영도체계 구축 작업을 진행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이를 뒷받침하는 근거로는 노동신문 6월 10일 자 ‘혁명의 피줄기를 꿋꿋이 이어’라는 기사를 들 수 있다. 이 기사는 백두혈통을 강조하며 “대를 이어 꿋꿋이 계승되어야 하는 것이 혁명전통”이라며 “우리 혁명의 피줄기, 백두의 혈통을 굳세게 이어나가”야 한다고 강조하고 있다. 김정은이 아버지 김정일 사망 후 ‘대(代)’를 이어 백두혈통을 이미 계승하고 있는 상황과 김정은의 나이로 볼 때 후계구도를 추진할 상황이 아니라는 점에서 위 보도는 여러 점을 시사해주고 있다.

북한이 지난 6월 18일 남북공동연락사무소를 폭파하고 있다. ⓒphoto 연합
북한이 지난 6월 18일 남북공동연락사무소를 폭파하고 있다. ⓒphoto 연합

김여정이 거치는 후계 5단계 작업

또한 1974년 김정일이 내부적으로 후계자로 지목되어 1980년 제6차 당대회에서 공식화할 때까지 불렸던 ‘당 중앙(김정일)’이란 호칭이 최근에 여러 번 북한 언론매체에 등장하고 있다는 점 등을 감안할 때 후계구도가 가시화하고 있다고 보인다.

김여정은 김정은이 권력을 승계한 직후부터 20대 초반의 나이에 친오빠를 보좌하며 당 선전선동부 부부장, 조직지도부 부부장, 김정은 서기실 부실장 등의 직책을 수행해왔다. 현재 당 정치국 후보위원, 당 중앙위원, 당 제1부부장 등의 직책을 가지고 있다. 그동안 3차례의 남북회담 배석, 2차례의 미·북회담 배석, 시진핑과의 중·북회담 배석 등 권력의 핵심에서 김정은을 보좌하고 있는 북한 내의 유일한 실세이다.

그러나 문제가 만만치 않다. 김여정(1988년생)이 비록 백두혈통이지만 32세에 불과하고 여성이다. 과연 저항 없이 권력을 승계할지, 또한 승계하더라도 북한 주민의 충성을 이끌어내 제대로 권력을 유지할지 김정은의 고민이 클 수밖에 없다. 이런 상황에서 김정은이 북한 김씨 정권의 목표이자 핵심과제인 전조선혁명(전한반도의 적화통일)을 수행하는 대남사업을 김여정에게 총괄하게 하는 결단을 내린 것이다.

북한의 수령후계자론과 이전 후계구도 구축 절차를 정식화해 보면 ①당의 영도체계 진행(후계자 지목) ②후계자 중심의 당조직 및 인사개편 ③ 후계자 우상화작업 ④통치이데올로기(주체사상·선군사상)에 대한 해석권 장악 ⑤대남사업권(대남전략권) 인수로 이어졌다. 이 다섯 가지 절차를 거쳐야 후계체제 구축이 완성된다. 김정일도 20년간 이러한 절차를 거쳤으며, 김정은도 2년 정도의 짧은 기간이지만 이를 속성으로 거쳤다.

그러나 김여정으로의 후계체제 구축은 정상적이 아닌 비상 상황에서의 작업이다. 비상 후계구도인 관계로, 김정은이 마지막 5단계인 ‘대남사업의 지도권’을 김여정에게 먼저 부여하며 비상 후계체제 구축을 마무리하려는 것으로 보인다.

현재 김정은은 대남사업 중 남북회담과 교류업무, 통일전선공작 및 대남심리전 등을 전담하는 통일전선부의 업무를 김여정에게 먼저 지도케 했다. 비합법 비정규 군사공작과 간첩공작을 수행하는 전문부서인 정찰총국과 문화교류국의 업무는 부분적으로 지도하는 수준에서 행사하는 것으로 보인다. 지난 6월 8일 대남담당 당 부위원장인 김영철과 대등한 위치에서 대남사업부서의 총화회의를 주관한 것도 이를 뒷받침해준다.

김여정이 자신의 약점인 나이와 여성이라는 한계를 극복하고 기존의 패턴에서 벗어나 대담하고 통 크게 공세적인 대남공작을 전개하며 자신의 존재감을 대내외적으로 과시하려다 보니 강경에 강경으로 나오는 것이다. 이는 김정은 승인하에서 전개되는 것이다. 수십 년간 대남사업에 종사했던 대남일꾼들이 허겁지겁 놀라는 형국을 연출해, 확실하게 김여정에게 충성을 다하도록 강제하는 것이다. 또한 김여정의 통 큰 대남사업 지도로 남한 정권을 굴복시켰다는 신화도 창조하려는 것이다.

‘대장’과 ‘중앙군사위 부위원장’ 직책만 남아

결국 김정은의 비상 후계권력체계 구축의 일환으로 김여정의 대남사업 영도력을 확실하게 보여주려는 것이 최근 벌어진 일련의 사태라고 볼 수 있다. 따라서 향후 북한의 대남정책은 비타협적이고 초공세적인 대남 강경으로 치닫을 것으로 보인다.

비상 후계영도체계를 마무리하기 위해서는 향후 김여정에게 북한군 대장 정도의 군사칭호와 당 중앙군사위원회 부위원장 직책만 부여하면 최고사령관(김정은)의 유고 시 저항 없이 후계권력을 계승할 것으로 보인다.

끝으로 김여정의 후계권력 구축과정에서는 충성을 강요하며 필연적으로 대대적인 ‘피의 숙청’ 작업이 뒤따를 수밖에 없다. 북쪽에서 불어올 피 냄새를 상기하며, 우리의 대북정책을 안정적으로 다듬어야 할 시기이나 문 정부에는 그러한 대응을 기대하기 힘들다는 게 한국의 불행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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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동열 자유민주연구원 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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