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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615호] 2020.07.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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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할리우드 통신]80세 생일 맞은 비틀스 멤버 링고 스타를 전화로 불러내다

LA= 박흥진  할리우드외신기자협회(HFPA) 회원  2020-07-07 오후 2:45:01

▲ 76세 때인 지난 2015년 드럼 연주를 하는 링고 스타. photo 연합
전설적 록그룹 비틀스의 드러머 링고 스타는 나이답지 않게 정정하고 씩씩했다. 7월 7일로 80세가 되는 링고 스타를 영상 인터뷰했다. ‘코주부’ 링고는 활발한 제스처와 함께 농담과 유머를 섞어가며 질문에 대답했는데 박장대소하는 모습에서 매우 서민적인 사람이라는 인상을 받았다. 링고 스타는 나머지 비틀스 멤버들과 함께 나온 ‘하드 데이즈 나이트’를 비롯해 여러 편의 영화에 출연했다. 그의 부인도 007시리즈 ‘나를 사랑한 스파이’에서 ‘본드걸’로 나온 미국 태생의 배우 바바라 바흐이다. 링고 스타는 LA 자택에서 인터뷰에 응했다.
   
   
   - 당신은 팔순에도 공연을 하는 축복받은 사람인데 과거를 돌아볼 때 혹시 후회하는 일이라도 있는가. “난 노래 부르고 연주하는 것을 정말로 사랑한다. 난 요즘 과거보다 더 많이 공연을 하고 있다. 과거 비틀스 때는 연 1회밖에 순회공연을 하지 않았던 반면 요즘에는 두 차례씩 하고 있다. 난 여러 가지로 축복받은 사람이다. 특히 큰 축복은 독자인 내가 여러 명의 자녀와 손자와 손녀, 그리고 증손자를 포함해 대가족의 가장이 됐다는 사실이다. 내 삶에서 바바라를 만난 것도 또 다른 큰 축복이다. 후회라면 젊었을 때 내 큰 꿈이었던 블루스 가수가 되기 위해 미국 텍사스주의 휴스턴으로 이민하려다 포기한 것이다. 하지만 이젠 그것에 대해 별로 생각하지 않는다. 대신 다른 선택을 잘했기에 지금의 내가 있는 것이다. 내가 13살 때 결핵으로 병원에 입원했을 때 음악 선생이 찾아와 작은 드럼을 주고 갔다. 바로 그 순간부터 난 오직 드러머가 되겠다고 다짐했다. 그리고 지금도 드럼을 치고 있다. 음악가란 진짜로 좋은 직업이다. 우리 사전에는 은퇴라는 말이 없다. 그래서 앞으로도 80년 넘도록 음악을 할 것이다.”
   
   - 아버지와 할아버지가 되면서 무엇을 배웠는가. “난 최대한으로 좋은 아버지가 되려고 애썼다. 더 좋은 아버지가 될 수도 있었을 텐데 하고 생각할 때가 있다. 아직도 막 태어난 첫아들 잭을 안았을 때의 기억이 생생하다. 그것은 하나의 기적으로 그저 경탄할 수밖에 없었다. 아이들은 언제나 축복이다. 난 어렸을 때 혼자 자라 늘 형이 있었으면 하고 바랐는데 세계에서 최고의 밴드인 비틀스의 멤버들이 형제를 대신해줬다. 삶이 내게 친절을 베풀어 세 형제를 가졌었다.”
   
   - 올해 생일 축하를 어떻게 할 것인가. “12년 전 시카고에서 생일을 며칠 앞두고 한 기자가 내게 생일선물로 무엇을 받기를 원하느냐고 질문을 했다. 그때 난 사람들이 내 생일 정오에 잠시나마 평화와 사랑의 순간을 가지기를 바란다고 대답했다. 즉흥적인 대답이었다. 실제 12년 전 생일날 사람들이 날 위해 만든 생일 케이크 촛불을 끄면서 그들과 함께 손가락으로 V 자를 그리면서 평화와 사랑을 외쳤다. 그 후로 매년 같은 시간에 그런 식으로 생일을 축하하고 있다. 지금 전 세계 27개국에서 내 생일을 축하하고 있다. 올해는 80세가 되는 해여서 할리우드에서 큰 행사를 치를 예정이었으나 코로나19 사태로 그럴 수가 없게 됐다. 그 대신 폴 매카트니의 공연 비디오와 내 공연 비디오를 섞어 스트리밍으로 내보낼 예정이다. 여전히 내 생일은 평화와 사랑으로 축하하는 날이 될 것이다.”
   
▲ 전성기 때의 비틀스.

   - 비틀스는 미국 공연 때 흑백이 분리된 공연장에서 노래 부르기를 거부했는데 요즘 미국에서 벌어지고 있는 인종차별 반대운동을 어떻게 보는가. “미시시피 공연 때였다. 우린 흑백분리를 제대로 이해할 수가 없었다. 우리의 우상인 레이 찰스와 스티비 원더를 비롯해 많은 가수는 다 아프리칸 아메리칸들이었다. 그래서 우린 흑백분리 공연장에서는 노래를 못 하겠다고 말했다. 사람은 다 같은 사람이기 때문이다. 그랬더니 공연 담당자들이 우리 뜻을 받아들이더라. 미시시피에서는 처음 있는 일이었다. 올해 일어난 인종차별에 대한 저항운동은 실로 괄목할 만한 것이다. LA와 전 미국을 거쳐 영국과 프랑스로까지 확대되면서 큰 운동이 되고 있다. 흥분되는 것은 거리에 나온 사람들 중 75%가 18세에서 25세의 젊은층이라는 점이다. 그들은 우리 다음 세대다. 이제 모든 것을 개선할 그들의 때가 온 것이다. 그들은 구세대와 정부의 마음을 변화시켜야 한다. 큰 변화가 오기를 희망한다.”
   
   - 젊어서 당신에게 깊은 영향을 미친 음악가는 누구인가. “10대 초에 음악을 듣기 시작하면서 행크 윌리엄스와 키티 웰스가 부르는 컨트리 웨스턴을 사랑하게 됐다. 그리고 윌리 넬슨도 큰 영향을 준 사람이다. 난 블루스도 사랑했다. 그래서 19살 때 내가 가장 좋아하는 블루스 가수 라이트닝 홉킨스가 활동하는 곳인 휴스턴으로 이주하기로 작정했다가 미 대사관이 요구하는 서류절차가 하도 까다로워 포기했다. 난 그때 내가 일하던 공장의 밴드에서 노래를 부르다가 비틀스에 합류했다. 비틀스는 아직도 젊은 세대 음악인들에게 귀감이 되는 밴드로 음악을 하고자 하는 젊은이라면 누구나 다 우리 음악을 듣는다. 내게 우상과도 같은 드러머는 코지 코울이다.”
   
   - 존 레논의 아내 오노 요코와의 관계는 어땠는지. “지금도 요코에 대해 뚜렷이 기억하는 일이 있다. 어느 날 내가 음반 취입을 위해 스튜디오에 들어갔는데 요코가 침대에 누워 있었다. 그래서 내가 존에게 이게 도대체 어찌된 일이냐고 물었다. 존이 말하기를 일이 끝나고 귀가한 뒤 자기와 요코가 오늘 무슨 일을 했는지 잘 기억하기 위해서라고 하더라. 그러니까 존은 노래를 불렀고 요코는 침대에 누워 있었다고 서로 기억한다는 것이다. 요코는 음반도 냈지만 노래 실력은 대단치 않았다. 여하간 그는 매우 즐거운 사람이다. 난 요코와 존이 함께 취입한 음반을 위해 연주하기도 했다. 우리는 그렇게 서로를 도왔다. 나와 요코는 뉴욕에서 만나면 서로 ‘하이’ 하고 인사한다.”
   
   - 당신은 여러 편의 영화에 나왔고 당신의 아내도 배우인데 당신이 가장 좋아하는 영화를 3편만 고른다면. “내가 좋아하는 영화는 아주 많다. 어렸을 때부터 토요일이 되면 고향 리버풀에 있는 극장엘 갔는데 서부영화를 본 뒤엔 카우보이 차림을 했고 해적영화를 보면 해적 차림을 하고 칼부림 흉내를 냈다. 기억나는 영화로는 ‘로즈메리의 아기’가 있다. 그러나 3편만 고르라는 것은 마치 생애 가장 좋아하는 레코드 3개를 고르라는 것이나 마찬가지다. 나는 많은 영화와 음악을 좋아하기 때문에 3편만 고르기가 힘들다.”
   
   - 명성이 짐이 되기라도 했는가. “우린 처음에 단지 청중을 위해 좋은 음악을 만들려고 했었다. 그러다 너무 커지면서 그에 대한 대가를 지불해야 했다. 식당에도 갈 수가 없었다. 1967년으로 기억한다. 식당에서 저녁을 먹으며 포크를 입에 가져가는 순간 한 여자가 다가와 포크를 밀쳐내면서 여기에 사인해달라고 하더라. 그래서 내가 ‘노, 나 밥 먹는 중입니다’라고 거절했더니 이 여자가 ‘네 전 생애는 이제 끝났어’라고 내뱉었다. 그 뒤로 팬들이 뭐라고 말하든지 개인적으로 받아들이지 않기로 결심했다. 명성이란 자기가 하고픈 일을 하기 위해 지불해야 하는 대가다. 그런데 세월이 흐르면서 그 명성이 슬슬 흐려지는 것 같다. 이젠 가고픈 곳은 어디든지 편히 갈 수 있다. 더구나 요즘은 코로나19로 마스크를 쓰니 누구도 날 알아보는 사람이 없다.”
   
   - 요즘 젊은 가수들 중 당신처럼 장수할 사람이 누구라고 생각하는가. “솔직히 말해 누가 장수할지 모르겠다. 우리도 처음엔 이렇게 오래갈지 몰랐다. 처음엔 여러 차례 음반 취입을 거절당하기도 했다. 요즘은 우리 때처럼 밴드가 연주하는 클럽도 거의 없고 공연장은 다 빅스타를 위한 대규모여서 신인이 시작할 장소가 희귀하다. 옛날보다 신인들이 시작하기가 어려워졌지만 다행히 스트리밍이 있다. 우리 노래들도 스트리밍으로 나가고 있다. 그러니 난 비닐음반에서 시작해 스트리밍까지 온 가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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