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hoto 양수열 영상미디어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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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은진 중앙대 화학과 교수는 아침에 일어나면 스마트폰에서 미국화학회(ACS)와 독일 와일리(Wiley) 애플리케이션을 열어본다. 자신이 연구하는 유기화학 분야인 ‘가시광 반응’에서 어떤 논문이 나왔는지를 확인하기 위해서다. 그는 “거의 매일 가시광 유기반응 관련 논문이 나온다. 내가 학생들과 연구하고 있는 주제가 나오는 경우가 적지 않다. 그러면 연구를 포기하게 된다. 해당 논문 링크를 학생들에게 보내면서 ‘우리 망했다’고 얘기한다”라고 말했다. 현재 가시광촉매 분야는 논문을 누가 빨리 내느냐는 시간 싸움을 벌이고 있다.

지난 6월 11일 서울 동작구 흑석동 중앙대에서 만난 그는 “내가 친환경 가시광촉매 연구를 시작한 2011년에는 이 분야 논문이 일 년에 불과 수십 편 발표되었다. 지금은 수천 편씩 쏟아진다. 이 분야에 대한 관심이 커지면서 한국의 큰 대학은 물론이고, 특히 중국 화학자들이 뛰어들어 논문을 양산하고 있다”라고 말했다.

약을 만들 때 필요한 유기합성법 연구

그는 미국 위스콘신대학 매디슨캠퍼스에서 2008년 박사학위를 받고 보스턴의 MIT(매사추세츠공과대학)에서 박사후연구원으로 일했다. 2011년 한양대 에리카캠퍼스 교수로 부임했고, 2015년부터 중앙대에서 일하고 있다. 조 교수는 “내가 하는 유기합성은 기초연구다. 유기합성은 어떤 유기물들을 서로 연결하거나 새로운 작용기를 붙이는 방법을 연구한다. 합성을 하기 위한 방법을 개발한다. 최종적으로 물질을 만드는 게 목표가 아니다. 그러니 빛이 나는 연구는 아니다”라고 말했다. 하지만 약을 만드는 화학자가 필요로 하는 것이 조 교수와 같은 화학자가 개발한 유기합성법이라고 한다.

조 교수는 “나는 가시광 유기반응을 연구하는 사람, 그리고 플루오린(불소·F·원자번호 9번)을 하는 사람으로 알려져 있다”라고 말했다. 가시광촉매 연구는 그가 독립적인 연구자로 일할 수 있게 된 한양대 교수 시절에 시작했다. 그는 한국에서 가장 초기에 이 분야 연구를 시작한 사람 중 하나다.

그럼 그가 연구하는 가시광촉매가 뭘까. 이는 라디칼반응을 이끌어내기 위한 수단이다. 어떤 물질의 분자나 이온이나 작고 큰 물질에 상관없이, 짝지어지지 않은 전자가 있으면 그런 물질을 라디칼이라고 한다. 짝지어지지 않은 전자가 있기에 다른 분자나 원자와 반응을 잘 일으킨다. 전에는 라디칼반응을 유도하기 위한 시약으로 주석(Sn·원자번호 50번)화합물이나 자외선을 사용했다. 이들은 반응성이 아주 강한 반면, 독성이 크다는 단점이 있다. 그래서 화학자들은 친환경 가시광촉매에 주목하게 되었다. 2008년 가시광 유기반응을 위한 광촉매로 루테늄(Ru·원자번호 44번)을 이용하기 시작하면서 이 분야가 다시 주목받기 시작했다. 미국 프린스턴대에 있는 데이비드 맥밀런 교수와 위스콘신대의 윤태식 교수가 거의 동시에 금속광촉매 연구를 내놓았다. 윤태식 교수는 조은진 교수의 박사논문을 심사한 논문심사위원 중 한 명이기도 하다. 그런 인연으로 조은진 교수는 윤 교수의 가시광촉매 연구에 자연스럽게 관심을 갖게 되었다.

조 교수는 박사논문을 쓰고 난 후 위스콘신주 매디슨에서 첫아이를 출산했다. 부군은 지금 이화여대 화학나노과학과의 김준수 교수(물리화학자). 조 박사는 출산 후 박사후연구원으로 일하기 위해 2009년 보스턴으로 갔다. MIT의 스티브 버크월드(Steve Buchwald) 교수 실험실에서 일하며, 팔라듐(Pd·원자번호 46번)을 촉매로 사용해서 불소작용기 CF3를 유기물질에 넣는 연구를 했다. 그리고 2년 뒤 보스턴을 떠나 귀국, 한양대 에리카캠퍼스에서 일하게 되었다. 조 교수는 자신의 연구 여정을 이렇게 설명했다. “내 연구의 흐름을 보면 이렇다. 서울대 석사과정 때 이은 교수님 실험실에서 배운 라디칼반응이 있고, 위스콘신대학 박사과정 때는 이대성 교수님 지도하에 합성 기술을 배웠고, 윤태식 교수님으로부터 ‘가시광촉매’ 연구를 접한 바 있다. 그리고 박사후연구원 때 불소작용기(CF3·트라이플루오로메틸레이션)을 유기화합물에 붙이는 연구를 했다. 이것들을 모두 합해 응용해서 찾은 주제가 독립적인 연구자가 된 나의 첫 연구다.”

그는 9년 전 연구 시작 때를 돌아보며 “가시광을 이용한 유기반응도 뜨거운 연구 분야이고, 불소화합물 유기반응도 핫한 분야이다. 내 연구는 두 개 분야가 만난 것이다. 가시광촉매를 갖고 라디칼반응을 만들어내는데, 라디칼반응이 일어나게 하는 대상이 불소작용기였다. 그래서 두 분야의 다른 연구자들이 내 논문들을 많이 인용했다”라고 말했다.

조 교수가 사용한 가시광촉매는 이리듐, 루테늄, 백금 등이 있다. 이들 금속광촉매는 스스로는 반응에 참여하지 않고 가시광선으로 받은 에너지를 유기물질에 전달해 라디칼로 만든다. 즉 라디칼반응을 유도한다. 조은진 교수의 경우 가시광촉매를 이용해 불소작용기에 라디칼반응을 유도하고, 그 불소작용기를 유기화합물에 붙이는 게 연구의 목표였다. 이때 불소작용기를 붙이는 유기화합물은 어느 것이든 상관없다. 조 교수는 “가시광 반응 연구가 어마어마하게 많다. 나는 다양한 불소작용기를 유기화합물에 붙여보는 데 연구의 초점을 맞췄다”라고 말했다.

약효 지속 시간을 늘리는 불소의 힘

‘불소’ 하면 충치를 막기 위해 수돗물에 집어넣는 물질이라는 게 기억난다. 불소는 ‘불소화학’이라는 용어가 있을 정도로 화학자들 사이에서 널리 연구되며 사용되고 있다. 불소화합물은 재료 쪽도 그렇고, 의약에서도 관심이 많다. 불소는 원소 중에서 전기음성도가 가장 크다. 전기음성도는 다른 전자를 좋아하는, 잡아당기는 능력이다. 즉 불소는 F━이온이 되려는 성질이 강하다. 가령 불소와 탄소가 결합한 C━F 공유결합은 탄소의 결합 중에서 가장 강하다. 조 교수는 “강한 결합성이나 전기음성도가 가장 높은 성질로 인해 불소가 포함된 작용기를 붙이면, 대상 유기물질의 화학적·물리적 성질이 달라질 수 있다. 그래서 유용하다. 물론 이 부분을 다 이해하지 못하고 있어 여전히 연구가 활발하다”라고 말했다.

예컨대 약품에 불소가 들어가면 약효 지속시간이 달라질 수 있다. 약품 광고를 보면 ‘약효 72시간 지속’ ‘약효 24시간 지속’과 같은 문구를 볼 수 있다. 이는 불소가 들어가서 생긴 효능일 수 있다. A라는 물질이 몸속에 들어가서 1시간 만에 분해되고 몸 밖으로 배출된다면 약을 1시간마다 먹어야 할 것이다. 그런데 물질에 불소작용기인 CF3를 붙였더니 ‘신진대사안정성’이 강해지면서 3일에 한 번만 먹어도 되는 약이 될 수 있다. 또 약은 목표로 하는 세포에 잘 도달해야 한다. 그런데 현실적으로 도달률이 2~3%밖에 안 될 수 있다. 그런데 당뇨치료제 제노비아는 불소작용기인 CF3를 붙였더니 목표 도달률이 76%로 늘어난 경우다. 불소가 들어가서 도달률이 껑충 뛰었다.

조 교수는 “약품의 25%는 불소화합물인 플루오로알킬그룹을 포함한다”면서 “불소작용기를 붙여 최종 물질을 만드는 일을 내가 하지는 않는다. 약 개발자가 한다. 이들이 불소작용기를 붙이는 방법을 누군가는 개발해야 하고, 그 일을 나 같은 연구자가 하는 것이다. 친환경적인 플루오로알킬레이션 방법을 개발, 불소작용기를 포함하는 기능성 물질을 더 효율적으로 합성할 수 있게 한다”라고 말했다.

조은진 교수의 첫 연구 결과는 2012년 2월에 나왔다. 연구 성과를 얻는 데 시간이 오래 걸리지는 않았다. 이때 연구한 불소작용기가 CF3다. CF3는 그가 박사후연구원 시절 MIT에서 연구한 작용기다. 팔라듐을 촉매로 해서 CF3를 유기물질에 붙이는 연구를 했는데, 그는 이때 CF3가 속한 플루오로알킬그룹이 중요하다는 걸 알았다. 그런데 조 교수가 독립적인 연구자로 첫 논문을 거의 완성했을 때, 유명한 학술지 네이처에 비슷한 연구가 나온 걸 보았다. 촉매와 시약은 다르나, 가시광 반응이라는 것과 CF3를 유기물질에 붙이는 연구라는 게 같았다. 조은진 교수는 적지 않게 실망했다. 그래서 임팩트팩터(연구의 가치를 평가하는 점수)가 낮은 학술지에 논문을 발표했다. 그는 “그 뒤에도 안타까운 일이 많았다”라고 말했다.

이후 계속 연구를 했고, CF3 말고도 CF2 등 다양한 불소작용기를 붙이는 실험을 했다. 그리고 불소작용기와 함께 산소나 황(S·원자번호 16번)을 붙여 보기도 했다. 황이 들어가면 유기화합물의 성질이 또 달라질 수 있다. 불소를 붙였을 때 달라지는데, 거기에 추가적으로 성질 변화가 일어난다.

200회 넘게 인용된 논문들도 있어

조 교수에게 그동안의 연구 성과들이 어떤 논문들에 실렸느냐고 물었다. 다른 화학자들은 ‘앙게반테 케미’(독일 화학회지)에 논문이 나갔느니, ‘JACS’(미국 화학회지)에 나갔느니 하며 자랑하던데, 그런 유명한 화학학술지에도 논문이 실렸느냐고 물었다. 조 교수는 “앙게반테에 몇 개 있고, JACS도 있다”라고 말했다. “그런 얘기를 좀 해주셔야 하는 것 아니냐”고 하자 “다른 사람들은 그런 데에 정말 많이 논문을 쓴다. 잘하는 분들이 워낙 많다. 나는 내세울 게 하나도 없다”라고 겸손해했다.

조 교수의 논문 중에는 임팩트팩터가 낮은 저널들에 보낸 초기 논문들도 200회 넘게 인용된 게 있다. 그는 “잘 안 보이는 학술지에 실린 논문이 많이 인용되는 걸 보면, 내 연구가 주목받은 건 사실이다. 그런 논문이 쌓여서 가시광촉매로 플루오로알킬그룹을 가장 많이 붙인 사람 중 한 명이 되었다”라고 말했다.

그에게 그간 붙여본 불소작용기 숫자가 어떻게 되느냐를 물었다. 조 교수는 “모른다. 논문을 확인해 보자”라고 하더니 “겹치는 것도 있으나 2012년 이후 18개”라고 말했다. 그가 연구한 불소작용기 중 가장 유명한 게 CF3인데 CF3를 알카인(삼중결합이 하나 이상 있는 탄화수소물)에 붙인 연구는 2014년 독일화학회지(앙게반테 케미)에 실렸고, 이게 지금까지 가장 많이 인용된 논문 중 하나라고 한다. 그는 불소작용기들을 알카인 말고도 알켄(이중결합이 하나 이상 있는 탄화수소물), 헤테로고리 등에 붙이는 연구도 했다.(헤테로고리화합물은 탄소로 만들어진 고리에 탄소 대신 질소나 산소, 황 원자가 들어간 걸 가리킨다.) 조 교수는 “불소로 연구를 시작해 헤테로고리로 연구 영역을 키웠다. 확장한 것이다. 헤테로고리화합물 합성법도 많이 연구하고 있다”라고 말했다.

가시광촉매 분야에서 조은진 교수의 위치는 그가 2016년 ‘가시광 연구’ 분야 특별호의 ‘어카운트(account) 논문’이 나올 때 저자 중 한 명으로 초청받은 데서 확인된다. ‘어카운트 논문’은 처음 듣는 용어였다. 조 교수에 따르면, ‘어카운트 논문’과 비슷한 것으로 ‘리뷰(review) 논문’이 있다. 리뷰 논문은 특정 연구 분야의 연구 현황을 정리하는 것인 반면 ‘어카운트 논문’은 특정 분야 연구를 정리하는 건 같으나 연구자 자신이 자기 연구를 정리해 논문으로 작성한다. 조 교수의 논문이 실린 학술지(Accounts of Chemical Research)의 가시광 분야 특별호에는 모두 20명이 저자로 초청받았는데 조 교수는 한국인으로는 유일했다. 또 같은 해 조 교수는 한국 언론으로부터도 놀라운 평가를 받았다. 중앙일보가 선정한 ‘논문의 질로 따져본 40대 이하 연구자’에서 인용횟수가 높아 자연과학 분야 1위 연구자로 선정된 것이다.

최근의 과제는 니켈촉매 연구

한·중·일 불소 심포지엄이 있다. 격년 주기로 열리는 행사다. 조 교수는 가시광촉매 연구와 함께 불소화학 연구 분야에서도 인정받아 이 학회에 참가해 왔다. 중국에는 대학에 불소학과도 있는데, 상하이유기화학대학(SIOC)이라는 우수한 학교가 세계에서 유일하게 불소학과를 운영하고 있다. 불소학회는 2018년 도쿄에서 행사가 열렸고, 올해는 중국에서 열릴 순서이나 코로나19 사태로 모이는 건 취소되었다.

조은진 교수가 최근 시작한 연구 토픽은 니켈을 촉매로 하는 유기반응이다. “요즘은 가시광 반응보다 우리 방 연구 과제의 3분의 2가 니켈촉매 연구다. 2년 전 연구를 시작했다. 가시광 반응은 다른 그룹들이 너무 많이 하고 있어 나같이 작은 그룹은 경쟁에 치인다. 다른 분야를 찾아야겠다고 생각해서 새로 시작한 게 니켈촉매 반응이다.”

지난해 첫 논문이 나와 앙게반테 케미에 실렸다. ‘니켈촉매를 이용한 벤조퓨란 합성’이라는 연구였다. 조 교수는 니켈촉매 반응에 대해 “이리듐, 팔라듐 등 내가 촉매로 사용해 봤던 물질은 가격이 비싸다. 니켈은 가격이 낮다. 니켈은 또 이들과 마찬가지로 전이금속이지만, 상대적으로 연구가 덜 됐다. 발전 가능성이 무궁무진하다고 본다”라고 말했다. 그동안 연구가 덜 된 건 이유가 있기 때문일 것이다. 니켈은 반응성이 떨어진다고 알려졌다. 조 교수는 “나는 새로운 접근법을 찾고 있다”라고 말했다. 그는 니켈촉매 논문을 몇 개 준비하고 있고, 그렇게 되면 자신의 연구실은 니켈 연구방으로 알려지게 될 것이라고 했다.

조 교수는 미국 위스콘신대에서 박사학위를 3년 만에 받았다. 본인이 자랑을 하지 않아, 왜 그렇게 빨리 학위를 받을 수 있었는지는 듣지 못했다. 2005년에 유학을 가서 2008년에 학위를 손에 넣은 셈인데, 박사논문은 금 혹은 백금, 또는 루테늄을 이용한 다양한 유기합성 방법 개발, 그리고 전합성 연구로 썼다.

조 교수는 한국의 여성 화학자 현황에 대한 질문을 받고 “여자 교수가 지금은 한국에 매우 많다. 최근 새로 부임한 유기합성 분야의 거의 절반이 여자 교수”라고 답했다. 화학은 여학생이 좋아하는 분야이며, 현재 대학 화학부 학생의 절반이 여학생이라고 했다. 조 교수는 “한국 유기화학 분야의 수준이 대단히 높다. 해외 박사학위 소유자보다 한국에서 박사학위를 받은 사람들의 수준이 더 높다”라고 말했다.

최준석 선임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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