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7월 23일 요바린다의 닉슨 도서관 겸 박물관에서 연설하는 폼페이오 국무장관. ⓒphoto 뉴시스
지난 7월 23일 요바린다의 닉슨 도서관 겸 박물관에서 연설하는 폼페이오 국무장관. ⓒphoto 뉴시스

미국 LA에서 동남쪽으로 64㎞ 떨어진 작은 도시 요바린다에는 미국 제37대 대통령 리처드 닉슨 도서관 겸 박물관(Richard Nixon Library And Museum)이 있다. 닉슨 대통령의 부친인 프랜시스 닉슨이 직접 짓고, 리처드를 포함한 다섯 자녀를 키운 낡은 주택이 지금도 남아 있다. 지난 7월 23일(현지시각) 이 건물 앞에서 중요한 행사가 열렸다. 도서관 측이 마이크 폼페이오 미 국무장관을 초청, 향후 미국 정부의 대중국 정책에 관한 연설회를 가진 것이다. 이 자리에는 닉슨 대통령의 두 딸인 트리샤와 줄리, 그리고 트리샤의 아들인 크리스토퍼도 함께 참석했다. 또 미국에서 활동하는 반(反)중국 인사들도 참석했다.

‘핑퐁외교’의 주역 리처드 닉슨 도서관

이날 행사의 막을 연 피터 윌슨 전 캘리포니아 주지사는 폼페이오를 소개하면서 이렇게 말했다.

“중국을 미국과 서방세계에 문을 열도록 한 것은 닉슨 대통령의 비전과 결단, 그리고 용기였다. 그는 대통령 시절은 물론이고, 퇴임 후에도 미국의 국가이익의 초석이 되는 상호 이익 및 의무에 기반한 대중국 관계를 세우는 데 노력했다. 오늘날 미국에 사는 우리는 그러한 대중국 관계를 위한 닉슨 대통령의 노력과 희망이 성취되었는지, 혹은 그것이 훼손되었는지 평가할 의무가 있다. 오늘 폼페이오 국무장관이 중국 정책에 관한 중요한 연설 장소로 닉슨 도서관을 선택한 이유가 여기에 있다.”

이날 연설은, 닉슨 대통령의 역사적 외교 업적인 중국과의 ‘핑퐁외교’ 50주년(2022년)을 앞두고 그의 출생지에서 미 국무장관이 새로운 대중국 정책을 발표했다는 점에서 또 하나의 역사적 이정표라 할 만하다. “자유 국가들과 힘을 합쳐 중국의 행동을 바꾸겠다”는 폼페이오의 연설 내용은 세계 주요 매체에 중요 뉴스로 보도되었다. 미국과 중국의 결별(decoupling)과 전면적 대결은 이제 누구도 의심할 수 없는 국제사회의 상수(常數)가 되었다. 약 24분에 달하는 폼페이오의 연설은 표면적으로 나타나는 미·중 간 대결의 이면에 숨은 미국인들의 심리(특히 위기감과 낭패감)와 가치관, 종교관, 외교전략까지 엿볼 수 있다는 점에서 자세히 살펴볼 가치가 있다. 또 그의 연설은 향후 벌어질 두 강대국의 길고 긴 패권전쟁을 예고한다는 점에서, 미·중 사이에서 고민하는 문재인 정부도 주목할 필요가 있다.

포용정책으로 미국은 더 안전해졌나?

폼페이오는 먼저 “이번 연설은 미·중 관계의 다른 측면, 즉 수십 년간 쌓여온 미·중 관계의 불균형, 중국 공산당의 장기적 설계에 대해 설명하려는 것”이라고 운을 뗐다. 그는 “내년(2021년)이면 키신저 박사가 비밀스럽게 중국을 방문한 지 50년이 된다. 그리고 닉슨 대통령이 중국을 방문한 지 50년이 되는 2022년도 얼마 남지 않았다”면서 다음과 같이 말했다.

“우리는 중국에 대한 포용정책(engagement policy)이 상호 존중과 협력의 밝은 약속이 실현되는 미래를 만들 것이라고 상상했다. 그러나 오늘날 우리는 중국이 세계에 한 약속을 지키지 않음으로써 모든 사람이 마스크를 쓰고 코로나19 사망자가 늘어나는 현실을 바라보고 있다. 우리는 매일 아침마다 홍콩과 신장웨이우얼자치구에서 자행되는 중국 당국의 탄압에 관한 헤드라인 뉴스를 읽는다. 우리는 또 미국의 일자리를 빼앗아간 중국의 무역 착취와 점점 위협적으로 변해가는 중국의 군대도 보고 있다. 중국과의 개입전략 50년이 된 지금, 자유와 민주주의를 향한 중국의 진화를 제안했던 우리 지도자들의 이론은 사실로 증명되었나? 국무부 장관의 관점에서, 미국은 더 안전해졌는가? 우리 자신과 우리의 뒤를 이을 세대들에게 평화의 가능성이 커졌는가? 우리는 ‘냉엄한 진실(hard truth)’을 인정해야 한다. 만약 우리가 시진핑이 꿈꾸는 중국의 세기가 아니라 자유로운 21세기를 원한다면, ‘중국에 대한 맹목적인 포용정책(blind engagement with China)’의 패러다임은 안 된다는 것을 인정해야 한다. 우리는 그것(포용정책)을 계속해서는 안 되고, 그것으로 돌아가서도 안 된다. 트럼프 대통령이 분명히 밝힌 바와 같이, 우리는 미국의 경제와 우리의 생활방식을 지킬 전략이 필요하다. 자유 세계는 이 새로운 폭정을 이겨야 한다.”

폼페이오는 자신의 연설 목적이 닉슨의 유산을 깨뜨리는 데 있지 않다는 점도 분명히 했다. 그는 “닉슨 대통령은 그 시대에 마땅히 해야 할 일을 했다는 점을 분명히 해두고 싶다”면서 1967년 닉슨이 ‘포린 어페어스’에 기고한 글을 소개하며 다음과 같이 말했다.

“닉슨 대통령은 그 글에서 ‘장기적 관점을 가진다면 우리는 중국을 영원히 세계 국가군(family of nations)의 바깥에 둘 수 없다. 중국이 변하기 전에는 세계도 안전하지 않다. 따라서 우리의 목표는 (중국의) 변화를 유도하는 것이다’라고 지적했다. 이 글에서 핵심 문구는 ‘변화를 유도하는 것(to induce change)’이라고 생각한다. 이를 위해 닉슨 대통령은 역사적인 베이징 방문을 통해 포용전략을 시작했다. 당시 미국의 정책입안자들은 중국이 더 번영할수록 더욱 개방적이고 국내도 더욱 자유로워질 것이며 대외적으로도 덜 위협적이 되리라고 가정했다. 그리고 그것은 필연인 것처럼 보였다.

“우리는 ‘평화로운 부상’이란 중국 말에 속았다”

그러나 필연의 시대는 끝났다. 우리가 추구해왔던 포용정책은 닉슨 대통령이 유도하고자 했던 중국 내부의 변화를 가져오지 못했다. 진실은 우리의 정책이 중국의 실패한 경제를 오히려 부활시켰다는 것이며, 그 결과 베이징이 자신을 먹여 기른 국제사회의 손을 물어버리는 결과를 초래했다. 우리는 중국인들에게 문을 활짝 열었지만, 결과적으로 중국 공산당은 우리의 자유롭고 개방된 사회를 악용했다. 공산당은 서구의 기업들이 중국 시장에 진출하게 하는 대신 자국의 인권탄압에는 침묵할 것을 요구했다. 메리어트호텔, 아메리칸항공, 델타항공, 유나이티드항공 모두 베이징 정부가 화내지 않도록 자사의 웹사이트에서 대만에 대한 언급을 삭제했다. 이곳에서 멀지 않은 할리우드에서는 미국이 창조적 자유의 중심지이자 사회정의의 결정권자를 자임하였음에도, 중국에 가장 경미한 비우호적 언급조차도 자기 검열을 한다. 지난주 윌리엄 바 법무장관은 연설에서 이렇게 말했다. ‘중국 통치자들의 궁극적인 야망은 미국과 거래(무역)하는 것이 아니다. 그것은 미국을 습격(raid)하는 것이다.’”

폼페이오는 지난 수십 년간 미국이 경험한 낭패감과 무력감을 토로하면서 “왜 자유로운 국가에 이런 나쁜 일이 일어났을까”라고 자문했다. 이어 그는 “아마도 우리는 중국의 악성 변종 공산주의에 너무나 순진하였거나, 혹은 냉전의 승리에 도취해 있었거나, 베이징의 ‘평화로운 부상(和平屈起)’이란 말에 속아넘어갔다. 이유가 뭐든지 간에 지금 중국은 내부적으로는 더욱 독재적이고, 대외적으로는 곳곳에서 자유를 위협하고 있다”고 강조했다.

“중국 공산당은 믿지 말고 검증하라”

폼페이오는 이어 “중국과의 대화는 유지하겠지만, 대화의 방식은 이전과 달라져야 한다”고 못 박았다. 그는 “몇 주 전 호놀룰루에서 양제츠(중국 외교담당 국무위원)를 만났지만, 그는 자신들의 행동을 바꾸는 어떤 제안도 없었고 그의 말은 공허했다”면서 “내가 추측건대, 그의 기대는 과거 미 행정부가 그랬던 것처럼 내가 중국의 요구에 굴복하는 것이었다. 나는 굴복하지 않았고, 트럼프 대통령 역시 그러지 않았다”고 밝혔다. 이어 폼페이오는 “우리가 잊지 말아야 할 것은, 중국 공산당은 마르크스-레닌 체제라는 점이다. 시진핑은 파산한 전체주의 이데올로기의 진정한 신봉자이다. 미국은 이 근본적 정치이념의 차이를 무시해선 안 된다. 하원 정보위와 중앙정보국(CIA), 그리고 국무장관으로 일한 경험이 내게 알려준 핵심 사항은, 공산 중국을 진정으로 바꾸는 유일한 방법은 중국 지도자들의 말이 아니라 그들의 행동에 기초하여 대응해야 한다는 점이다. 레이건 대통령은 소련을 다룰 때 ‘믿으라, 그러나 검증하라(trust but verify)’고 말했다. 지금 중국 공산당을 다룰 때는 ‘믿지 말고 검증하라(distrust and verify)’고 나는 말한다”고 지적했다.

폼페이오는 또 “우리는 중국을 정상적인 국가로 다루어서는 안 된다. 중국과 거래하는 것은 법을 지키는 국가와 거래하는 것과 다르다. 좋은 예가 화웨이(華爲)다. 우리는 화웨이가 통신정보를 보호하는 순수한 통신기업인 것처럼 위장하지 못하도록 했다”고 밝혔다. 폼페이오가 “미국에 오는 중국 유학생과 노동자 중 상당수는 지적재산권을 훔쳐 자국으로 가져가기 위해 이곳에 온다는 사실을 우린 알고 있다. 휴스턴 주재 중국 총영사관의 폐쇄를 발표했는데, 그것은 스파이 행위와 지적재산권 도둑질의 본부였기 때문이었다”고 말하자 관중들의 박수가 쏟아졌다. 그는 “우리는 또한 중국 공산당과 완전히 다른 중국 국민, 역동적이며 자유를 사랑하는 국민들을 포용하여 그들에게 힘을 실어주어야 한다. 그것은 대면 외교(in-person diplomacy)에서 시작된다. 나는 중국 신장웨이우얼자치구의 노동수용소를 탈출한 위구르인과 카자흐인을 만났고, 홍콩 민주투사와 천안문 민주화운동 생존자도 만났다. 그중 왕단(王丹)과 웨이징성(魏京生)이 이곳에 와 있다”면서 두 사람을 청중에게 소개했다.

폼페이오는 “냉전시기 군에 복무하면서 배운 사실은, 공산주의자는 항상 거짓말을 한다는 것이다”라며 “그들이 하는 가장 큰 거짓말은 자신들(공산주의자들)이야말로 감시받고 억압받아 말하길 두려워하는 14억 국민을 대변한다고 생각한다는 것이다. 그러나 사실은 정반대다. 중국 공산당은 국민의 정직한 의견을 다른 어떤 적보다 무서워한다”고 강조했다. 그는 이어 “만약 우한(武漢)의 의사들이 새로운 바이러스의 출현에 대해 경종을 울리는 것이 허용되어 우리가 그들로부터 그 소식을 들을 수 있었다면, 중국 국내뿐만 아니라 세계도 지금 얼마나 더 나을지 생각해보라. 지난 수십 년 동안 우리 지도자들은 우리가 마주하고 있는 체제의 본질에 대해 경고하는 중국 반체제 인사들의 말을 무시하고 평가절하했다. 우리는 더 이상 그 경고를 무시해선 안 된다”고 말했다.

“공산주의자는 항상 거짓말을 한다”

폼페이오는 이어 “중국 공산당의 행동을 바꾸는 일은 중국 국민만의 사명일 수는 없다. 자유 국가들이 자유를 지키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 그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지만, 나는 우리가 할 수 있다는 신념을 가지고 있다. 우리는 과거에 이 일을 해본 적이 있기 때문에 나는 그것을 확신한다”고 덧붙였다. 그는 중국 연구자들 사이에서 유행하는 ‘미국 몰락, 중국 부상론’을 거부했다. 그는 “우리가 (중국의 부상이) 필연적인 시대에 살고 있다거나, 어떤 함정이 미리 정해져 있다거나, 중국 공산당의 우위가 미래라는 식의 개념을 나는 거부한다. 자유 세계는 여전히 이기고 있다. 전 세계 사람들은 여전히 (미국이라는) 개방된 사회에 오기를 원한다. 그들이 중국에 정착하기 위해 필사적으로 노력하지는 않는다”고 말했다.

폼페이오는 “때가 왔다. 자유 국가들이 행동할 때다. 모든 나라는 자신의 주권과 경제적 번영 및 이상(理想)을 중국 공산당의 촉수(觸手)로부터 어떻게 지킬 것인지 스스로 이해해야만 한다”고 지적했다. 이어 그는 “일부 국가는 중국의 보복에 대한 두려움 때문에 당분간 우리와 함께할 능력도 용기도 갖지 못한다. 실제로 나토(NATO)는 베이징이 중국 시장에 대한 접근을 제한할까 두려워 홍콩을 지지하는 데 함께하지 않았다”고 꼬집었다. 이어 그는 “만약 우리가 지금 행동하지 않는다면, 궁극적으로 중국 공산당은 우리의 자유를 침식하여 우리 사회가 오랫동안 쌓아온 법치의 질서를 뒤집어버릴 것이다. 만약 우리가 지금 무릎을 꿇는다면, 우리 아이들의 아이들이 중국 공산당의 자비에 운명을 맡기는 신세가 될 것이다”라고 경고했다. 그러면서 폼페이오는 “UN, NATO, G7, G20, 우리의 단합된 경제·외교·군사력은 확실히 이 도전을 상대하기에 충분할 것이다. 중국 공산당으로부터 우리의 자유를 지키는 것이 이 시대 우리의 사명”이라면서 “신이 중국 인민과 미국인들을 축복하기”를 기원하면서 연설을 마쳤다.

폼페이오의 연설이 나온 지 6일 뒤인 7월 29일 중국 외교부 왕원빈(汪文斌) 대변인은 정례 브리핑에서 “미국의 일부 정치인들이 소위 ‘중·미 간의 접촉 외교가 실패했다’ ‘미국의 중국 개조가 실패했다’고 주장하고 있는데, 이는 나라마다 각기 다른 발전의 길이 있다는 사실을 무시한 행동이자, 냉전적 사고에서 나온 편견”이라고 깎아내렸다. 중국 외교학원의 수하오(蘇浩) 전략평화연구센터 주임은 “대선에서 불리해진 트럼프가 정치적 이득을 얻기 위해 극단적 선택을 할 수 있다”면서 “중국은 미국과 전면적으로 대립하기보다 일정한 정도 노선 전환의 공간을 남겨둘 필요가 있다”는 의견을 피력했다. 이런 점으로 미루어볼 때, 중국은 미국의 공세에 당분간 수세적으로 대응하면서 시간을 끌 것으로 예상된다.

하지만 이러한 중국의 대응방식이 사태 해결에 도움이 될 것 같지는 않다. 왜냐하면 폼페이오의 연설이 향후 미·중 패권경쟁의 성격과 방향을 예고하고 있기 때문이다. 미국은 총으로 독립을 쟁취하고 총으로 내전(남북전쟁)까지 치른 역사를 갖고 있다. 서부영화에서 보듯이, 미국인은 일단 총을 꺼냈으면 반드시 상대가 죽어야 끝난다. 폼페이오의 연설은 미국이 중국을 향해 총을 꺼내들었다는 신호다. 중국이 무릎을 꿇든 미국이 주저앉든, 한쪽이 무너져야 이 패권전쟁은 끝난다. 모든 면에서 미국이 유리하다. 중국에 비해 압도적인 군사력을 가진 미국이 군사력을 써보지도 않고 중국에 패권을 넘겨주는 일은 없을 것이다. 11월 대선에서 민주당 바이든 후보가 승리한다 해도, 미국의 대중국 정책은 바뀌지 않을 것이다. 국제사회도 미국 편이 많다.

중국이 패권경쟁을 끝내는 두 가지 방법

중국이 이 패권전쟁을 끝내는 방법은 두 가지다. 하나는 경제·군사의 장기전에서 미국의 압박을 이겨내어 미국이 제풀에 주저앉도록 하는 것이다. 그러나 이 가능성은 매우 낮다. 다른 하나는, ‘중국몽(中國夢)’이란 국가 목표를 내걸고 강경 대외정책을 펴온 시진핑이 낙마(落馬)하는 것이다. 반(反)시진핑 세력이 연합하여 시진핑을 몰아낸 뒤 새로운 지도자가 미국에 화해의 손길을 내미는 것이다. 만약 경제 악화로 국민 분노가 폭발하면, 공산당은 권력투쟁이란 방법으로 시진핑을 갑자기 낙마시킬 수도 있다. ‘병사(病死)’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그동안 밖으로 알려지진 않았지만, 중국 내부에서는 시진핑을 제거하려는 수많은 시도가 있었다. 미국이 원하는 것도 시진핑 전체주의 체제를 끝내는 것이다. 미·중 신냉전은 21세기 국제질서는 물론 중국 국내정치의 세력판도에도 큰 변화를 몰고 올 가능성이 있다.

지해범 조선일보 동북아연구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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