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9월 10일 열린 수인·분당선 개통식에 참석한 이재명 경기지사, 김현미 국토교통부 장관, 박남춘 인천시장(오른쪽부터). ⓒphoto 국토교통부
지난 9월 10일 열린 수인·분당선 개통식에 참석한 이재명 경기지사, 김현미 국토교통부 장관, 박남춘 인천시장(오른쪽부터). ⓒphoto 국토교통부

서울에 사는 외국인 A씨는 최근 지하철을 이용하려다 어리둥절한 경험을 했다. 분당선의 영문표기가 ‘Suin·Bundang Line(수인·분당선)’으로 바뀌어서다. 근처에는 비슷한 이름의 ‘Sinbundang Line(신분당선)’이란 노선도 보였다. ‘Suin(수인)’과 ‘Sin(신)’은 알파벳 한 글자(u)가 있고 없고 차이지만, ‘수인(水仁·수원인천)’과 ‘신(新)’이 가진 뜻을 알 턱 없는 A씨에게 주는 혼란은 컸다. A씨는 “노선이 다른데 한국어 이름도 비슷하고 영문명은 더 비슷해 혼란스럽다”고 했다.

지난 9월 12일 경기도 수원과 인천을 연결하는 수인선 전 구간이 개통하면서 수인선과 분당선이 수원역에서 직결됐다. 새로 탄생한 직결 노선의 이름은 ‘수인·분당선’. 하지만 두 노선을 직결시킨 새 노선명은 이름 자체가 길고, 가운뎃점(·)마저 들어간 데다가, 영문명(Suin·Bundang Line)은 더 난해하다는 지적이 많다. 특히 알파벳 한 글자(u)만 빠진 이름의 ‘신분당선(Sinbundang Line)’도 이미 존재하고 있어 외국인 이용객에게 적지 않은 혼란을 주고 있다는 지적이다.

국토교통부의 ‘철도노선 및 역의 명칭 관리지침’에 따르면, “노선의 기점과 종점의 지명 중 첫 글자 또는 첫 두 글자로 노선명을 정한다”고 되어 있다. “다만 효율적인 노선명 관리를 위해 지리적 명칭(서해선), 행정구역 명칭(과천선) 또는 특정명칭(인천국제공항선)을 사용할 수 있다”는 예외 조항도 붙어 있다. 수원과 인천의 기종점 명칭을 한 글자씩 딴 ‘수인선’, 분당이란 행정구역(성남시 분당구)에서 이름을 딴 ‘분당선’은 각각의 조건에 부합한다.

2018년 일부 개정된 철도노선명 관리지침은 “다른 노선의 일부 구간을 이용하여 하나로 연결된 노선 등은 다른 노선의 일부 구간을 중복 사용하여 하나의 노선명을 부여할 수 있다”고 규정하고 있다. ‘수인선’과 ‘분당선’을 한데 직결 개통한 ‘수인·분당선’이란 이름은 이 같은 규정에 근거해 탄생했다.

하지만 노선 이름을 단순 결합하면 노선명 자체가 누더기로 변한다는 데 해당 규정의 맹점이 있다. 기종점식 작명법과 행정구역 작명법이 혼재된 ‘수인·분당선’이 대표적이다. 수인·분당선은 이름만 보면 각각 인천과 청량리(서울)를 기종점으로 하는 노선 정보가 온전하게 반영되지 않는다.

열차의 진행 방향이 드러나는 것도 아니다. 열차 진행 방향을 노선명에 반영하면, ‘인천~수원~분당~청량리’ 순이거나, ‘청량리~분당~수원~인천’ 순으로 반영돼야 맞는다. 하지만 수인·분당선은 ‘수원~인천~분당’ 순으로 뒤죽박죽 섞여 있다. 차라리 앞뒤를 바꿔 ‘분당·수인선’으로 부르는 것만 못하다는 지적이다.

서울디자인재단, 번호체계 권고

수인·분당선을 둘러싼 이 같은 논란은 2014년 경의선과 중앙선을 직결한 ‘경의·중앙선’ 개통 때와 판박이다. 경의·중앙선은 용산역에서 직결돼 서울을 동서로 관통하는 광역전철인데, 노선 운영자인 한국철도공사(코레일)는 별다른 고민 없이 ‘경의선’과 ‘중앙선’이란 기존 이름을 단순히 이어붙인 새 노선명을 만들었다. 덕분에 경의중앙선의 영문명은 ‘Gyeongui·Jungang Line’으로 외국인은 제대로 발음하고 표기하기조차 어려울 만큼 길어졌다.

외국인도 많이 이용하는 수도권 전철의 쉽고 친절한 표기법의 필요성은 일찍부터 제기됐다. 서울시 산하 서울디자인재단은 2014년 경의·중앙선 직결 개통 때 서울과 경기도를 넘나드는 광역전철에도 번호체계를 부여하자는 제안을 내놓은 바 있다. 1~9번대 번호를 단 기존 서울지하철에 더해 서울로 진입하는 광역전철 노선에도 번호식 작명법을 도입해 외국인도 알아보기 쉽게 만들자는 제안이었다. “‘경의중앙선’ ‘분당선’ 등 긴 글씨를 모두 적는 형태의 환승정보 제공 체계는 향후 지속적 정보 증가로 문제가 가중될 것”이란 경고도 했다.

하지만 이 같은 제안은 여태껏 실현되지 못하고 있다. 특히 ‘수인·분당선’의 한 축인 ‘분당선’은 노선명을 바꿔야 한다는 지적이 꾸준히 제기돼왔다. 분당신도시 조성에 맞춰 신설된 노선이라고는 하나 52.9㎞에 달하는 전체 노선에서 분당신도시가 자리한 성남시 통과 구간은 15.3㎞에 불과하다. 서울 시내 통과 구간(16.5㎞)보다도 짧다. 정차역 수도 서울시 관내 역이 14곳으로, 성남시(10곳)보다 많다. 노선도 점차 연장돼 성남을 너머 용인·수원에까지 이르지만 여전히 ‘분당선’이란 이름표를 달고 있다. 심지어 용인시에 있는 분당선 차량기지 역시 ‘분당차량사업소’란 이름을 여전히 붙이고 있다.

국토부 노선명 관리지침과도 상충

2013년 분당선이 수원까지 연장개통된 직후 염태영 수원시장이 분당선의 이름을 새롭게 종착지가 된 수원의 이름을 반영해 ‘수원선’ 등으로 변경해 달라는 요구를 코레일 측에 정식 제기하기도 했다. 하지만 당시 성남시장이었던 이재명 현 경기지사가 ‘분당선’ 고수를 고집하고 코레일이 이를 받아들이면서 무산된 바 있다.

이는 국토부의 노선명 관리지침과도 상충되는 측면이 있다. 국토부의 ‘철도노선 및 역의 명칭 관리지침’에 따르면 ‘기존의 노선이 일부 연장되거나 개량사업 등으로 노선의 위치가 변경되는 경우 노선명은 여객의 효율적 안내 등을 위하여 일관성이 유지될 수 있도록 기존의 명칭을 그대로 사용하는 것을 원칙으로 하되, 기점 및 종점 등이 현저히 변경되어 여객의 효율적 안내를 위하여 필요한 경우 등에는 이를 변경할 수 있다’고 명시하고 있다.

분당선은 1994년 첫 개통 당시에 비해 기점 및 종점이 현저히 변경된 후자에 해당한다. 당초 개통 때는 ‘수서(서울 강남구)~오리(성남 분당구)’에 그쳤으나, 북으로는 한강 이북의 왕십리와 청량리, 남으로는 용인, 수원까지 연장됐다. 하지만 국토부와 코레일은 여태껏 별다른 조치를 취하지 않았다. 이제는 분당선이 수인선과 직결되면서 기종점이 아예 경기도를 넘어 인천광역시로 옮겨갔지만 ‘분당선’이란 이름은 끈질기게 살아남았다.

애매한 규정은 또 한 번의 전쟁을 예고하고 있다. ‘수인·분당선’과 비슷한 이름으로 혼란을 주는 ‘신분당선’에서다. 당초 강남과 분당을 최단거리로 연결할 목적으로 놓은 ‘신분당선’은 수원과 용인 일부를 포함하는 광교신도시까지 연장된 상태다. 신분당선도 향후 북으로 용산, 남으로는 수원 호매실지구까지 연장될 예정이다. 그때도 ‘신분당선’이란 이름을 유지할 수 있을지는 철도계 초미의 관심사다. 철도계의 한 관계자는 “수도권 통합 번호체계 도입이 정답”이라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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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동훈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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