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정은 위원장이 노동당 창당 75주년 열병식에서 연설 중 눈물을 흘리다가(위) 신형 ICBM이 지나가자 웃고 있다. ⓒphoto 조선중앙TV
김정은 위원장이 노동당 창당 75주년 열병식에서 연설 중 눈물을 흘리다가(위) 신형 ICBM이 지나가자 웃고 있다. ⓒphoto 조선중앙TV

“올해 예상치 않게 직면했던 방역 전선과 자연재해 복구 전선에서 인민군 장병들이 발휘한 애국적이고 영웅적인 헌신은 누구든 감사의 눈물 없이는 대할 수 없는 것들이다. 이 영광의 밤에 그들 모두와 함께 있지 못한 것이 마음이 아프다.”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지난 10월 10일 0시부터 3시까지 평양 김일성광장에서 열린 노동당 창당 75주년 열병식에 참석해 연설 도중 눈물을 흘리면서 코로나19와 태풍 등 각종 재난을 언급한 대목이다. 김정은은 미리 준비해온 원고를 읽다가 감정이 북받친 듯 몇 번이나 울먹이고 연신 눈물을 닦았다. 김정은은 북한 주민들에게 “미안하다” “고맙다” “감사하다”는 표현을 17차례나 사용하는 등 마치 ‘계몽군주’ 같은 모습을 보였다.

눈물과 애민정치

김정은이 눈물을 흘린 것은 처음이 아니다. 김정은은 2014년 11월 수산사업소를 방문해 공연을 보던 중 한 예술소조원이 ‘물고기 대풍’을 김일성과 김정일에게도 보여주고 싶다고 말하자 눈물을 흘렸다. 김정은은 또 2015년 1월 1일 고아원인 평양 육아원을 방문했을 때도 원아들의 설맞이 공연을 보면서 울었다. 북한 관영 언론매체들은 김정은이 눈물을 보일 때마다 ‘애민(愛民) 지도자’ 이미지를 부각하는 데 열을 올렸다. 당시 조선노동당 기관지 ‘노동신문’은 “낮이나 밤이나, 눈이 오나 비가 오나 열렬한 인민 사랑의 열과 정으로 심장을 끓이신 경애하는 원수님”이라는 표현을 써가며 김정은의 ‘애민정치’를 선전했다. 김정은은 2017년 신년사를 발표했을 때도 “능력이 따라가지 못하는 안타까움과 자책 속에서 지난 한 해를 보냈다”고 말하며 눈물을 글썽였다. 이런 맥락에서 볼 때 이번 노동당 창당 75주년의 눈물도 그동안의 효과와 선전에서 보듯 철저하게 계산된 것일 수 있다.

김정은이 ‘악어의 눈물’을 통해 애민정치를 앞세우는 것은 북한 주민들을 의식하고 있기 때문이다. 먹고사는 문제를 해결하지 못할 경우 체제가 붕괴되고 자신도 형장의 이슬로 사라질 수 있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는 김정은은 할아버지 김일성과 아버지 김정은으로 이어져 내려온 ‘수령의 무오류성’을 탈피하는 것만이 유일한 해결책이라는 것을 인식했다고 할 수 있다.

북한에서 최고지도자는 신(神)이나 다름없다. 어떤 오류도 있을 수 없는 존재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김정은이 집권한 이후 미국의 강력한 제재 조치, 코로나19 사태에 따른 국경 폐쇄와 방역 조치 및 태풍과 수해 등으로 북한 경제는 이미 최악의 상황에 빠졌다. 때문에 김정은의 속셈은 ‘수령의 무오류성’이라는 선대의 절대권력을 내세울 경우 오히려 북한 주민들의 강력한 반발을 초래할 수 있다고 판단해 애민정치를 통해 돌파구를 마련하려는 것이라고 볼 수 있다.

김정은이 연설에서 “나는 우리 인민의 하늘 같은 믿음을 지키는 일에 설사 몸이 찢기고 부서진다고 해도 그 믿음만은 목숨까지 바쳐서라도 무조건 지킬 것”이라고 강조한 것도 ‘잔인한 독재자’라는 이미지에서 벗어나 ‘인민을 돌보는 자애로운 지도자’라는 모습을 보여주려는 것이다. 하지만 최고급 회색 양복을 입고 손목에는 스위스산 명품 시계를 찬 그는 북한 주민들의 삶을 알지 못할 뿐 아니라 고단한 생활을 경험한 적도 전혀 없다. 그들의 주식인 강냉이밥조차 먹어본 적이 없다. 이번에 노동당 창당 75주년 열병식을 한밤중에 실시함으로써 동원된 북한 주민들과 군 병사들이 얼마나 피곤했는지조차 알 수 없었을 것이다.

북한이 노동당 창당 75주년 열병식에서 공개한 신형 ICBM(왼쪽)과 신형 SLBM인 북극성-4A형. ⓒphoto 조선중앙TV
북한이 노동당 창당 75주년 열병식에서 공개한 신형 ICBM(왼쪽)과 신형 SLBM인 북극성-4A형. ⓒphoto 조선중앙TV

수령의 무오류성에서 탈피하려는 목적

김정은은 다른 한편으론 ‘악어의 이빨’을 드러냈다. 김정은은 연설에서 미국을 직접 언급하지는 않은 채 수위를 조절했지만, 미국 본토를 타격할 수 있는 신형 대륙간탄도미사일(ICBM)이 등장할 땐 만면에 웃음을 보였다. 김정은은 “적대 세력들의 지속적으로 가중되는 핵 위협을 포괄하는 모든 위험한 시도들과 위협적 행동들을 억제하고 통제 관리하기 위해 자위적 정당방위 수단으로서의 전쟁 억제력을 계속 강화해 나갈 것”이라고 밝혔다. 김정은은 “우리의 전쟁 억제력이 결코 남용되거나 절대로 선제적으로 쓰이지는 않겠지만, 만약 그 어떤 세력이든 우리 국가의 안전을 다쳐놓는다면(침해한다면), 우리를 겨냥해 군사력을 사용하려 든다면 나는 우리의 가장 강력한 공격적인 힘을 선제적으로 총동원하여 응징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김정은이 연설에서 ‘핵’이나 ‘미국’을 적시하지도 않고 ‘전쟁 억제력’이라는 표현을 사용한 것은 무엇보다 미국 대선에서 재선을 노리는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을 ‘배려’한 것이라고 볼 수 있다. 뉴욕타임스는 “김정은이 신형 ICBM을 시험발사하지 않고 공개만 한 것은 미국 대선을 앞두고 불필요하게 트럼프 대통령을 도발하지 않으려는 것으로 보인다”고 지적했다. 김정은으로선 신형 ICBM 시험발사라는 ‘레드라인’을 넘을 경우 트럼프 대통령의 재선에 방해가 될 수 있다는 점을 고려해 ‘도발’보다는 ‘과시’를 선택한 것이라고 분석할 수 있다. 김정은은 트럼프 대통령의 코로나19 확진 소식이 알려진 다음 날 쾌유를 바라는 공개 전문을 보낸 바 있다.

김정은은 그러면서도 자신이 언급했던 ‘새로운 전략무기’를 선보임으로써 미국을 타격할 수 있다는 의지를 노골적으로 드러냈다. 김정은은 지난해 12월 31일 당 중앙위원회 7기 5차 전원회의를 마무리하며 “머지않아 새로운 전략무기를 목격하게 될 것”이라고 예고한 바 있다. 실제로 북한 정권이 이번 열병식을 통해 공개한 신형 ICBM과 잠수함발사탄도미사일(SLBM)인 북극성-4A형은 상당히 위협적인 전략 무기라고 볼 수 있다. 김정은의 속내는 미국 대선에서 트럼프 대통령이 재선에 성공하든, 민주당의 조 바이든 후보가 당선되든 강력한 제재 조치를 계속할 경우 결코 타협하지 않겠다는 의도를 분명히 한 것이라고 해석할 수 있다.

“2021년 초 새로운 ICBM 시험발사 분명”

특히 아직 시험발사를 하지 않은 신형 ICBM과 SLBM을 공개한 것은 미국 대선 이후 이를 지렛대로 삼아 차기 미국 정부를 압박하려는 의도라고 분석할 수 있다. 뉴욕타임스는 “ICBM 공개는 김정은이 미국 대선에서 누가 당선되든 앞으로의 회담에서 지렛대를 강화하기 위해 미국 본토를 타격할 능력이 있음을 보여준 것”이라고 지적했다. 브루스 클링너 미국 헤리티지재단 선임연구원은 “누가 미국 대통령으로 선출되든 북한은 2021년 초 새로운 ICBM을 시험발사할 것이 분명하다”고 전망했다.

그렇다면 북한 정권이 공개한 신형 ICBM과 SLBM은 김정은이 함박웃음을 터뜨릴 만큼 엄청나게 위력적일까. 북한의 신형 ICBM은 기존의 화성-15형이 9축형(18륜형) 이동식 발사대(TEL)에 실려 있었던 데 비해 2축이 늘어난 11축형(22륜형) 신형 TEL에 실려 열병식에 등장했다. 이에 따라 신형 ICBM의 길이는 화성-15형(21m)보다 2~3m 정도가 늘어난 23~24m에 달할 것으로 추정된다. 외형상으로 직경도 화성-15형(2m)보다 약간 커진 것으로 보인다. 미사일 동체 길이와 직경이 커진 것은 추력을 높이기 위해 1단 추진체에 엔진 4개를 달았기 때문이다.

추력을 키우면 사거리가 늘어난다. 신형 ICBM의 TEL도 화성-15형 TEL과 비교해 볼 때 상당히 달라졌다. TEL 제작 기술도 발전한 것으로 분석된다. 일각에선 러시아와 중국의 신형 ICBM보다 더욱 크다는 평가도 나온다. 러시아 신형 ICBM인 토폴-M의 길이는 22.7m, 중국의 신형 ICBM인 둥펑(東風·DF)-41의 길이는 21m다. 이들은 모두 8축형(16륜형) TEL에 탑재돼 있다. 화성-15형의 9축형 TEL도 세계 최대급이었는데 북한 정권은 이번에 전 세계에서 가장 바퀴가 많이 달린 ICBM TEL을 선보인 것이다. 신형 ICBM의 후미에 사각형 거치대가 달려 있는데 이는 TEL에서 미사일을 수직으로 세워 발사할 때 사용하는 지지대로 보인다. 이 경우 신형 ICBM은 TEL에 거치대를 붙인 상태로 설치해 발사할 수도 있다. 화성-15형은 TEL에서 거리를 두고 거치대를 별도로 세워 발사했다. 화성-15형처럼 지상 거치대를 세워 발사할 경우 시간이 지체돼 발사 전 파괴될 수 있다.

게다가 신형 ICBM은 화성-15형보다 위력이 훨씬 큰 핵탄두를 탑재하거나 2~3개의 다탄두를 탑재할 수 있을 것으로 추정된다. 실제로 신형 ICBM의 탄두부 형태는 둥글고 뭉툭한 화성-15형과 달리 미국 ICBM인 미니트맨-3와 닮았다. 이 탄두부에 후(後)추진체로 불리는 PBV(Post Boost Vehicle)를 장착한 것으로 보인다. PBV는 다탄두 탑재형 ICBM 개발에 필수적인 기술이다. 다탄두를 탑재하면 ICBM 1발로 워싱턴과 뉴욕 등 미국의 주요 도시들을 동시에 타격할 수 있다.

신형 ICBM은 총 1t 이상의 탄두를 1만3000㎞ 이상 운반할 수 있는 것으로 평가된다. 멜리사 해넘 미국 스탠퍼드대 연구원은 “북한의 신형 ICBM은 ‘괴물(monster)’이라고 말할 수 있는데, 미국의 미사일 방어체계로 볼 때 공포스러운 일”이라면서 “액체연료이며, 매우 거대하고, 분리형 독립 목표 재돌입 핵탄두(MIRV)를 탑재할 수 있다”고 분석했다. 마이클 엘먼 미국 국제전략문제연구소(IISS) 선임연구원도 “북한의 신형 ICBM은 미국 본토 내 어느 곳이든 2000~3000㎏ 상당의 핵폭탄을 투하할 수 있을 것”이라고 추정했다. 제프리 루이스 미국 미들베리국제학연구소 동아시아비확산센터 소장은 “북한의 신형 ICBM은 화성-15형보다 훨씬 크다”고 평가했다. 안킷 판다 미국과학자연맹 선임연구원도 “최대 규모의 도로 이동식 액체연료 미사일”이라고 분석했다. 고이즈미 유 일본 도쿄대 첨단과학기술연구센터 특임조교는 “북한의 신형 ICBM은 세계 최대급 이동식 ICBM”이라면서 “복수 탄두 탑재가 가능할 수도 있다”고 지적했다.

북한이 지난해 3월 29일 시험발사한 초대형 방사포. ⓒphoto 노동신문
북한이 지난해 3월 29일 시험발사한 초대형 방사포. ⓒphoto 노동신문

경제원조를 향한 ‘악어의 꼬리’

북한 정권이 이번에 공개한 신형 SLBM도 주목할 필요가 있다. 동체에 ‘북극성-4A’란 글씨가 선명하게 새겨진 신형 SLBM은 최초 SLBM인 북극성-1형보다 직경이 2~3배로 커지고, 지난해 발사한 북극성-3형에 비해서도 직경은 굵어진 반면 길이는 짧아졌다. 여러 발의 탄두를 탑재하기 위해 직경은 늘린 반면 잠수함 탑재를 위해 길이는 짧게 한 것으로 보인다. 북극성-4A형은 고체연료를 사용하고 탄소섬유로 제작해 동체를 경량화한 것으로 보이며, 사거리도 북극성-3형(사거리 2000㎞)보다 늘어난 것으로 추정된다. 4000〜5000t급 잠수함 탑재용일 가능성이 높다. 잠수함에서 발사하는 SLBM은 탐지가 어렵기 때문에 ICBM보다 훨씬 더 위협적인 무기라고 볼 수 있다.

이번 열병식에서 공개한 신형 ICBM과 SLBM으로 볼 때 간과하기 쉬운 중요한 점이 있다. 김정은이 자위적 억제력을 강조한 것을 자칫하면 미국, 러시아, 중국 등 핵 강국들이 천명하는 ‘선제 핵사용 금지’와 동일한 것처럼 오해해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핵 강국들은 ‘상대가 우리를 핵으로 공격하지 않는 한 우리가 먼저 핵을 사용하지 않는다’는 원칙을 강조한다. 핵 강국들은 전면전이 벌어져도 핵전쟁으로 확전하지 않도록 하면서 위협을 줄이는 전략을 구사한다. 반면 김정은은 “국가의 안전을 침해한다면 가장 강력한 공격적인 힘을 사용할 수 있다”고 밝혀 사실상 선제 핵공격을 감행하겠다는 ‘악어의 이빨’을 드러냈다. 김정은의 속내는 언제든 핵무기를 사용할 수 있다는 점을 강조함으로써 자신의 3대 세습 독재체제를 보존하겠다는 것이다. 김정은이 언급한 ‘국가의 안전’이라는 표현은 자신과 3대 세습 독재체제를 말한다. 수령 독재체제인 북한에서 국가는 수령을 의미하기 때문이다.

김정은은 또 문재인 정부에도 ‘악어의 꼬리’를 흔들어댔다. 김정은은 “사랑하는 남녘의 동포”라고 지칭하면서 “하루빨리 (코로나19) 보건 위기가 극복되고 북과 남이 다시 두 손을 마주 잡는 날이 찾아오기를 기원한다”고 유화적인 제스처를 보였다. 김정은의 이런 연설은 남북연락사무소 폭파와 공무원 살해라는 만행에도 불구하고 대북 포용 정책에 집착하는 문재인 대통령에 호응하는 모습을 보임으로써 남북관계 개선에 나서겠다는 의지를 피력한 것이라고 볼 수 있다. 김정은의 의도는 최악의 상황에 빠진 경제난을 해결하기 위해 남북관계 개선이라는 카드를 활용해 문재인 정부로부터 대규모 원조를 받아내려는 것이라고 볼 수 있다. 물론 김정은이 이번 열병식에서 각종 신형 무기를 과시함으로써 ‘악어의 꼬리’가 치명적인 위협수단이 된다는 점도 분명하게 각인시켰다.

실제로 이번 열병식에선 북한판 이스칸데르(KN-23)와 에이태킴스(KN-26 전술 지대지 미사일) 등 단거리 미사일 2종과, 4~6연장 등 3종의 초대형 방사포, 전차포 및 대전차 미사일을 탑재한 스트라이커 장갑차와 신형 전차, 다기능 레이더와 미사일(TOR)을 탑재한 신형 지대공 미사일 등이 등장했다. 특히 KN-23 단거리 탄도미사일과 KN-26 전술 지대지 미사일 및 초대형 방사포는 서울은 물론 주요 도시와 군사 기지 및 주한미군 기지까지 초토화시킬 수 있는 강력한 무기들이다. 이런데도 한·미 연합군사훈련도 실시하지 않고, 국제사회의 제재에도 개별 관광 등 북한을 지원할 방안을 모색하면서 오로지 ‘종전선언’에만 집착하는 문 대통령은 대오각성할 필요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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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장훈 국제문제애널리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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