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신이 창설한 CORE가 LA에 만든 코로나19 검진센터에서 인터뷰 중인 숀 펜. ⓒphoto 뉴시스
자신이 창설한 CORE가 LA에 만든 코로나19 검진센터에서 인터뷰 중인 숀 펜. ⓒphoto 뉴시스

진보적 색채가 강한 날카로운 눈매의 행동파 배우 숀 펜(60)은 LA 자택에서 가진 영상 인터뷰 내내 담배를 피우며 질문에 진지하게 대답했다. 그는 매우 지적인 사람이다. 아카데미상을 두 번이나 탄 연기파 배우이자 제작자요 감독이기도 하지만 연예 활동보다 전 세계의 재난과 위기에 처한 사람들을 돕는 데 더 열성인 인본주의자다. 그가 2010년 아이티 대지진 피해자들을 돕기 위해 창설한 CORE(Community Organized Relief Effort·지역사회 조직 구호노력)는 그 후 전 세계의 난민과 재난 피해자들을 돕고 있는데 숀 펜과 함께 이 기구를 공동으로 창설한 사람이 한국계 미국인 앤 리다. CORE는 코로나19 사태를 맞아 LA를 비롯한 미국 전역에 유색인종과 저소득층, 소외받는 사람들을 위한 무료 검진소를 설치하고 이들을 돕고 있다.

- 앤 리와 어떻게 함께 일하게 되었는가. “앤 리는 영화와는 아무 관계가 없는 사람으로 유엔을 위해 오랫동안 구조활동을 펴온 경험자다. 아이티 대지진이 난 후 그곳에서 일할 때 앤 리는 나름대로 구조활동을 하고 있었다. 우리가 만난 것은 아이티에서 구조활동을 하고 있던 미군의 ‘인본주의 미션’이라는 프로그램을 통해서인데 처음에 앤 리는 날카로운 눈초리로 날 바라보면서 ‘이 빌어먹을 배우가 도대체 왜 여기에 왔지’ 하는 듯이 검색을 했다. 그러다가 서로 대화를 하면서 내가 그를 킬킬대고 웃게 만들면서 서로 가까워졌다. 우리는 따로 일할 것이 아니라 새 명칭을 가진 하나의 단체CORE로 통합하기로 했다. 이 단체의 회장 자리는 앤 리에게 주고 난 이사장 직책을 갖기로 했다. 따라서 앤 리는 나와 함께 이 단체를 조직한 공동 창설자이다.”

- ‘흑인 목숨도 중요하다’는 운동과 타 인종에 대한 증오에 무감각한 할리우드의 영화사들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는가. “문제는 그들이 자기들은 인권사업이 아니라 영화산업에 종사하고 있다고 생각하는 데 있다. 이야말로 제도화한 사고방식이다. 우리는 모두 인권사업에 종사하고 있다. 또 그것이 최우선적 의무여야 한다. 인간성에 실패한다면 영화산업도 있을 수 없다. 이번 흑인 민권운동과 코로나19 사태로 매우 긍정적인 일들도 볼 수 있었다. 코로나19로 인해 우리의 원초적인 인간성이 도전을 받으면서 우리는 자유와 평등과 기쁨을 동반한 채 어떻게 생존할 수 있는가를 생각하게 됐다. 그리고 우리는 ‘흑인 목숨도 중요하다’는 운동에 희망을 가져야 한다. 이 운동을 지지한다면 진짜 변화가 올 수 있다고 믿는다.”

아이티 대지진 당시 현지에서 봉사활동을 했던 숀 펜. ⓒphoto CORE
아이티 대지진 당시 현지에서 봉사활동을 했던 숀 펜. ⓒphoto CORE

- 구조사업과 연예인 활동을 병행하기가 쉽지 않을 텐데. “나는 뚜렷한 목적이 있는 것이라면 모두 같은 거라고 생각하는 사람이다. 그런 면에서 구조 작업과 영화 작업은 서로 다른 악기로 반주하는 같은 노래인 셈이다. 그저 힘을 내 곡조를 따르면 된다. 재난구조와 영화제작은 같은 작업이긴 하지만 가치만은 구조 작업이 훨씬 더 크다.”

- 당신이 감독하고, 딸 딜란과 함께 출연한 ‘플랙데이’에 관해 말해 달라. “흥분되면서도 두려운 경험이었다. 내가 딸이 실패할지도 모를 상황을 조성한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딸은 촬영 첫날부터 세트에 있던 제작진들이 입을 다물지 못할 정도로 진실로 가득 찬 연기를 보여줬다. 기적이나 마찬가지였다. 그것을 보는 것은 스릴 만점이었다. 이 영화에서 배우인 나 자신을 처음으로 감독했고, 아울러 딸을 돌봐야 하는 입장이어서 짐이 매우 무거웠다. 평생 가야 깨달을 수 있는 연기라는 것이 무엇인지를 딸이 보여주면서 그 무거움을 덜어주었다. 세상에서 가장 좋아하는 배우가 내 딸이다. 그의 연기를 보면서 함께 작업한다는 것은 실로 흥분되는 일이다. 우린 편집도 같이 했다.”

- 당신은 사람들이 자선사업에 쉽게 돈을 기부하지 않는다고 말했는데 당신은 돈을 어디다 쓰고 싶은가. “개인적으로는 나를 이동해주는 차나 비행기에 쓰고 싶다. 그러나 대저택에는 관심이 없다. 차도 멋진 것이 아니라 그저 움직여주기만 하면 된다. 아침에 일어나서 그날 내가 하고픈 것에 쓰고 싶은데 엄청나게 많은 돈을 가지지도 않았고 또 그렇게 많은 돈을 쓴 적도 없다. 과거 10년간은 CORE 기금 모금활동에 전력했는데 내 돈을 기꺼이 이 기구를 위해 쓸 것이다. 지금은 이 기구를 위해 돈을 어떻게 마련할 것인가에 대해 생각하느라 여념이 없다. 돈을 쓴다는 것에 대해선 별로 생각하지 못한다.”

- 코로나19 사태가 전 세계를 휩쓸고 있는데 어느 나라가 이에 대해 훌륭한 대처를 했다고 생각하는지. “먼저 캐나다다. 캐나다는 처음에 문제가 심각했지만 지금은 발병률이 바닥으로 내려간 상태다. 이유 중 하나는 그 나라의 개성 때문이다. 캐나다는 나를 비롯한 미국인들과 달리 오만한 바이러스도, 고약하거나 분열된 의식구조도 가지지 않았다. 캐나다는 정당의 차이를 불문하고 과학의 근본적 요소를 인정한다. 그다음으로는 검진과 양성 반응자를 접촉한 사람들에 대한 추적, 그리고 양성 반응자들에 대한 외부접촉 금지 및 사회적 훈련이 잘된 한국이 뛰어난 대책과 조치를 취했다고 생각한다.”

LA 자택에서 영상 인터뷰 중인 숀 펜. ⓒphoto HFPA
LA 자택에서 영상 인터뷰 중인 숀 펜. ⓒphoto HFPA

- 요즘처럼 심리적, 육체적으로 힘든 때에 어디서 정신적으로 힘을 얻는가. “요즘은 다른 사람들처럼 매일 다람쥐 쳇바퀴 도는 것 같은 날들을 보내면서 여러 가지로 현실을 따져본다. 우리가 아직 모르는 것이 많은 이 바이러스로부터 나 자신의 안전을 생각하다가도 선뜻 먼저 머리에 떠오르는 것이 막 해고된 어린 세 아이를 둔 사람들이나, 바이러스에 전염될 가능성이 있는 공간에 살면서도 이사를 할 수 없는 사람들, 그리고 먹을 것을 살 돈이 없는 사람들이다. 이런 사람들을 CORE가 돕고 있긴 하지만 이 단체가 모든 일을 다 할 수는 없다. 난 자신들의 지역사회를 위해 피와 땀을 흘리는 젊은 사람들이 주축인 800여명의 CORE 회원들로부터 영감을 얻고 있다. 나는 다른 사람들이 가지지 못한 조명시설이 잘된 깨끗한 집에 살고 있으며, 아이들과 92세인 어머니가 다 건강한 운이 좋은 사람이다. 이런 것이 나로 하여금 이 어려운 때를 견디게 만드는 약이다. 다람쥐 쳇바퀴 도는 날들을 살지만 내일은 또 다른 날이지 않겠는가.”

- 당신은 전보다 영화 활동이 뜸한데 할리우드에 신물이 났는가. “그런 것은 아니다. 나는 영화를 사랑한다. 그런데 요즘에는 사려 깊고 뛰어난 작품들이 극장을 떠나 TV로 이동하고 있다. 이런 경향은 코로나19 사태로 인해 오랫동안 극장들이 문을 닫으면서 더 활성화하고 있다. 앞으로 극장이 다시 문을 연다고 해도 과거와 같은 작용을 할지 심히 의문이다. 블록버스터 영화를 제외하고 과연 관객들이 전처럼 극장을 찾아올지 의문이다. 난 나와 목적의식이 같은 사람이라면 언제든지 영화를 함께 만들 수 있다. 모든 장르의 영화를 좋아하는데 극장에서 상영되는 영화들이 균형을 갖추기를 바란다. 요즘 영화들은 대부분 서커스를 구경하는 거나 마찬가지여서 나를 슬프게 한다. 개인적으로 블록버스터 영화는 1년에 하나만 보면 된다. 요즘에는 영화에 나오는 배우들과 장면, 그리고 대사를 아는 영화들을 찾아보기가 힘들다. 이것은 결코 바람직한 현상이 아니다.”

- 지금 사귀고 있는 여성은 누구인가. “난 참으로 뛰어나고 멋진 여자를 뜨겁게 사랑하고 있다.(28세의 레일라 조지로 배우 빈센트 도노프리오의 딸이다.) 그도 CORE의 일원으로 코로나19 검진 작업을 비롯해 피해자들을 돕는 일을 열심히 하고 있다.”

박흥진 할리우드외신기자협회(HFPA) 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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