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개월로 제한된 정부의 고용유지지원금을 더 받지 못하게 되면서 한계에 다다른 여행사들이 나타나는 가운데 지난 11월 17일 오후 인천국제공항 1터미널 출국장의 여행사 부스가 한산하다. ⓒphoto 뉴시스
6개월로 제한된 정부의 고용유지지원금을 더 받지 못하게 되면서 한계에 다다른 여행사들이 나타나는 가운데 지난 11월 17일 오후 인천국제공항 1터미널 출국장의 여행사 부스가 한산하다. ⓒphoto 뉴시스

“백신이 풀리면 곧 나아질 거라고 하지만, 저희에겐 너무 먼 미래입니다. 앞이 보이지 않습니다.”

중소 규모의 여행사 대표 김모(54)씨의 목소리는 축 처져 있었다. 한때 여행업계에서 ‘알짜배기 회사 대표’라고 부러움을 사던 그는 이제 일일 아르바이트를 전전하는 처지가 됐다. 그는 30년 전 여행사 사원으로 시작해 2002년 직접 회사를 차렸다. 혼자 시작한 회사는 직원 13명을 두는 규모로 차츰 성장했다. 하지만 2016년 중국의 사드 보복과 지난해 일본 불매운동으로 흔들리기 시작한 그의 사업체는 올해 초 코로나19로 인해 사실상 폐업 위기에 처했다.

“직원을 4명으로 줄였습니다. 올해 3월부터 정부의 고용유지지원금과 유급휴업에 이은 유급휴직으로 8개월을 겨우 버텨왔는데, 11월부터는 무급휴직에 들어갔습니다. 이제 12월부터는 직원들이 실업급여를 받게 해주는 방법밖에 없습니다. 직원이 4명뿐이어도 4대보험 비용만 총 120만원가량 들어갑니다. 사무실은 월세 180만원짜리 강남 빌딩에서 45만원짜리 서울 마포구의 오피스텔로 옮겼습니다. 그래도 각종 고정비용까지 합치면 한 달에 나가는 돈이 500만원 가까이 됩니다. 수입은 0입니다.”

그는 사실상 혼자 사무실을 지키는 중이라고 했다. 그마저도 매일 출근하지 않는다. 어차피 일이 없기 때문이다. 대부분 집에서 시간을 보내거나 주변 사람들의 소개로 주차요원, 일용직 건설노동 등을 하며 생활비를 번다. 김씨는 “처음에는 참담하고 절망적이었지만 이제는 무덤덤하다. 방법이 없다”면서 “그냥 버티는 수밖에 없다”며 한숨을 쉬었다.

최근 코로나19 백신이 내년 초에는 배포될 것이라는 소식이 나오면서 여행업계에도 곧 되살아날 것이라는 기대감이 번지고 있다. 일부 국내 여행사의 주가가 급상승하기도 했다. 한 여행사는 내년 해외여행 상품 예약을 받았는데 한때 홈페이지 서버가 다운되고 2200여명이 예약을 걸어둘 정도로 큰 관심을 얻었다.

하지만 세간의 이런 기대와 달리 실제 여행업계 종사자들은 “여행업계가 이전으로 돌아가기는 어려울 것”이라는 반응이다. 설사 백신이 상용화되고 여행을 가려는 사람들이 생겨도 전처럼 ‘단체여행’을 떠나지는 않을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다.

중견급 이상 여행사는 흔히 ‘패키지’로 잘 알려진 단체관광 상품을 판매해 수익을 올린다. 중소 여행사는 회사·동창회 등에서 단체로 함께 떠나는 여행을 ‘수주’해오는 것이 주된 사업이다. 여행업계 종사자들은 “백신이 나오더라도 코로나19가 완전 종식되기 전에는 누가 책임지고 단체여행을 추진하려 하겠나”라고 입을 모은다. 코로나19가 완화되어 여행이 재개되어도 회사나 기관에서 진행하는 단체여행이 과거처럼 활성화되기는 어렵다는 것이다.

또 다른 중소여행사 사장 조모씨는 “나이가 50이 넘었는데 지금 무슨 일을 다시 할 수 있을지 모르겠다”면서도 “나보다 안타까운 건 한창 돈을 벌어야 할 30~40대 직원들”이라고 했다. 조씨가 운영하는 여행사의 경우 직원 중 80% 이상이 40대인데, 사회 경력 대부분을 여행, 관광업계에서 쌓아온 이들이 새로운 직장을 찾기가 현실적으로 어려운 까닭이다. 조씨는 그동안 모아둔 돈과 정부지원금 등으로 회사에 들어가는 비용을 메우고, 대리운전 등 단기 아르바이트로 생활비를 벌고 있다고 했다.

금융감독원 전자공시시스템에 따르면 올해 9월 말 여행업종 상장사 6곳의 직원 수는 4758명으로 지난해 말보다 400명가량 줄었다. 이 중 하나투어의 직원 수가 2354명으로 146명(5.8%) 줄었고 모두투어 91명(7.9%), 노랑풍선 75명(13.6%), 레드캡투어 48명(10.8%), 참좋은여행 26명(7.0%), 세중 14명(11.0%) 순으로 감소했다.

주요 여행사의 매출은 더 처참한 수준이다. 지난 11월 4일 공시된 3분기 실적에 따르면, 국내 최대 여행사인 하나투어의 매출액은 101억원으로 전년 같은 기간 대비 95% 하락했다. 영업이익은 -302억원(-992%)을 기록했다. 업계 2위로 꼽히는 모두투어의 매출액은 29억원, 영업이익은 -75억원(-239%)으로 나타났다.

패키지 여행은 이제 끝났다

더 큰 문제는 고용 상태를 유지 중인 직원들 상당수가 앞으로 아예 급여를 받지 못할 상황에 처했다는 것이다. 정부는 올해 3월부터 기본급 50%가량의 고용유지지원금을 지원해왔는데, 이마저도 12월부터 끊기기 때문이다. 앞선 사례에서 급여를 아예 받을 수 없게 된 김씨 회사 직원들이 전원 퇴사를 통해 실업급여를 신청하려는 이유다.

하나투어는 지난 6월부터 필수인력을 제외하고 이어온 무급휴직을 내년 3월까지 4개월 더 연장하기로 했다. 올해 들어 9월까지 영업손실이 1000억원을 넘은 하나투어는 지난 3~5월 유급휴직에 이어 지난 6월부터 필수인력을 제외하고 무급휴직을 하고 있다. 모두투어는 지난 8월부터 직원 1100명 중 90% 이상이 무급휴직에 들어갔다. 고용유지지원금이 끊기면 이 직원들은 아예 한 푼의 급여도 받지 못한다. 이런 상황 탓에 내년에는 여행업계가 대대적인 구조조정에 들어갈 수밖에 없을 것이라는 전망도 나온다.

지난 10월 정부는 코로나19로 인해 침체된 내수시장 소비를 진작시키겠다며 각종 소비쿠폰을 지급했는데, 숙박·여행·외식 3개 분야는 방역에 위험성이 있다고 판단해 대상에서 제외했다. 대신 공연, 전시, 영화, 체육 분야에서 소비쿠폰 사용을 허용해 여행업계의 불만을 샀다.

사스와 메르스 등 과거의 감염병 사태를 비교적 잘 견뎌온 국내 여행사는 코로나19로 인해 업계가 전면 재편될 수 있는 상황에 놓였다. 익명을 요구한 중견급 여행사 대표는 “내년부터는 회사 대표와 임원, 사원 할 것 없이 그야말로 각자도생의 길에 들어갈 것”이라면서 “지금보다 더 어려운 상황을 준비하고 있다”고 했다. 그러면서 “설사 코로나19가 종식되어도 이 시국을 겪은 젊은이 중 누가 여행사에 취직하고 싶어 하고 창업에 뛰어들겠나. 여행사는 인력과 네트워크가 사업 기반의 핵심인데 이 침체기가 금방 회복될 것 같지는 않아 보인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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곽승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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