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hoto 뉴시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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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제 봐도 자상하고 다정한 조지 클루니(59)는 특유의 엷은 미소를 지으면서 유머를 섞어가며 대답했다. 물어보는 사람이 숙연해질 정도로 진지한 태도였다. 그는 할리우드외신기자협회 회원들과는 친구 같은 사이다. 오랜만에 영상으로 만나도 마치 반가운 이웃을 만나는 듯한 친근감이 느껴진다. 최근 조지 클루니는 넷플릭스의 영화 ‘미드나이트 스카이’에서 원인불명의 재앙으로 사람이 살 수 없게 된 북극 관측소에 어린 소녀와 함께 남은 과학자 오거스틴으로 나온다. 그는 임무를 마치고 귀환하는 우주선의 우주인들에게 경고 메시지를 보낸다. ‘미드나이트 스카이’는 12월 13일부터 넷플릭스에서 방영한다.

- 영화가 전하고자 하는 메시지는 무엇인가. “영화의 원작인 책보다 각본을 먼저 읽었다. 우리가 주의하지 않으면 서로에게 어떤 해를 끼칠 수 있는지를 말한 아름다운 이야기다. 과학을 믿지 않고, 분열과 증오를 걱정하지 않는다면, 우리는 스스로를 파괴하고 만다는 얘기다. 즉 인간은 매우 약한 존재라는 것을 일깨워 준다. 구원과 후회에 관한 작은 얘기를 큰 화면에 옮기고 싶었다. 촬영이 매우 힘들 거라고 생각했지만 날 흥분시키는 내용이어서 괘념치 않았다.”

- 영화는 사랑과 가족, 가정의 중요성을 깨닫는 데는 시간이 상관없다는 것을 일러주는데 당신은 언제 이런 것들의 중요성을 깨달았는가. “촬영 후 후반 작업에 들어가면서 코로나19가 엄습하기 시작했다. 그때 이 영화가 말하고자 하는 상호 의사소통과 가정의 중요성을 새삼 깨달았다. 그리고 우리가 사랑하는 사람들과 함께한다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지도 알게 됐다. 영화를 통해 실제 삶에서 무엇이 중요한지를 깨닫게 된 것이다. 올해 같은 때야말로 우리는 사랑하는 사람들과 함께 있어야 할 필요가 있다. 또 매일매일을 가능한 한 최선을 다해 사용해야 한다는 것을 절실히 느끼고 있다. 난 지금 나의 부모가 무척 그립다. 그러나 지금으로선 LA의 집에서 아내와 아이들과 함께 좋은 시간을 가지는 것이 최선이라고 생각한다.”

- 영화에서 오거스틴은 어린 소녀를 돌보게 되는데, 아이들(쌍둥이 남매)의 아버지가 되면서 그런 내용이 과거보다 더 절실히 마음에 와 닿는가. “그렇다. 난 투덜대는 불평꾼인 오거스틴이 어린 소녀를 돌보게 된다는 아이디어가 좋았다. 그러나 난 내 아이들에겐 투덜대지 않는다. 여하튼 아버지가 된 후에 전보다 아이들을 더 많이 이해하게 됐다. 앞으로의 세대에 대한 책임감도 보다 더 이해하게 됐다.”

- 곧 다가올 크리스마스를 어떻게 보낼 예정인가. “지난 추수감사절처럼 집에서 아내와 아이들과 함께 보낼 것이다. 추수감사절에는 내가 4인분의 요리를 했다. LA는 비나 눈이 안 와 밖에 나가 산책하기가 좋다. 그것마저 당분간은 못 하게 됐지만. 이제 백신이 나왔으니 조금만 더 참으면 될 것이다. 그때까지 꼼짝 말고 집에 있을 예정이다. 그러니 크리스마스도 가족과 함께 검소하게 보낼 것이다. 사실 우리는 지난 2월 말 이후로 별로 움직이지 않았다.”

‘미드나이트 스카이’의 한 장면. ⓒphoto 뉴시스
‘미드나이트 스카이’의 한 장면. ⓒphoto 뉴시스

- 영화 속에서 오거스틴은 죽음을 앞두고도 보람된 일을 하려고 하는데 그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는가. “영화의 각본을 읽었을 때 먼저 떠오른 것이 핵 재앙으로 인류가 전멸하는 내용을 그린 영화 ‘그날이 오면(On the Beach)’이었다. 그 영화는 너무나 염세적인 반면 우리 영화는 끝에 희망과 구원이 있다. 이와 함께 또 다른 중요한 부분은 후회라는 것이다. 그때 너는 가족과 함께 있었는가, 바른 직업을 선택했는가, 붙잡고 싶었던 기회를 포착했는가 등과 같은 질문을 떠올리면서 후회하기 시작하면 그건 암과도 같은 것이다. 우린 궁극적으로 죽음에 이르게 된다. 오거스틴은 죽음에 앞서 자기 구원을 찾고 있는 것이다. 그는 자기가 그동안 하지 않은 모든 것을 올바르게 함으로써 자기 구원을 하고자 한 것이다.”

- 수염이 잔뜩 난 오거스틴의 수척한 몸을 연기하기 위해 체중을 줄였는가. “촬영을 위해 체중을 감량해야 했을 때 이탈리아에 있었다. 그 맛있는 음식들을 마음대로 못 먹고 최소한의 음식만 섭취해야 했는데 그런 점에서 메달감이다. 수염을 일부러 흉할 정도로 길렀다. 그런데 내 아들은 그런 수염을 아주 좋아했다. 수염 속에 물건을 감출 수가 있기 때문이란다. 그러나 아내와 딸은 영화 촬영이 끝난 후 수염을 말끔히 깎자 아주 좋아했다. 수염 속에서 내 얼굴을 제대로 찾을 수가 없었기 때문이라고 한다.”

- 집안일을 돕는가. “난 무일푼의 총각으로 오래 살았다. 세탁과 설거지와 청소 및 페인트 칠하기 같은 것을 혼자서 했다. 그리고 목제가구 수선도 혼자 했다. 지금 그런 일들을 되풀이하고 있다. 아직도 할 수 있구나 하고 생각하니 기분이 좋다. 난 어디에 있든 살아남을 수 있다. 가족과 함께 무인도에 떨어져도 가족을 위해 집을 지을 수가 있다. 그런 일보다 영상으로 인터뷰하기가 더 힘들다.”

- 부자인 당신은 아이들에게 돈의 가치를 어떻게 알려주겠는가. “직업의 가치와 함께 생에 있어 자기 자신의 길을 개척하는 것과 자기 위치의 정립, 그리고 남을 생각하고 돌보는 것의 중요성을 가르쳐 줄 생각이다. 어렸을 때 크리스마스가 되면 우리 집에 돈이 없었기 때문에 남의 집 잔디를 깎아주고 받은 돈으로 알지도 못하는 가난한 집의 아이들을 위한 선물을 사다 주곤 했다. 그런 것을 아이들에게 심어줄 생각이다. 이와 함께 단지 가족뿐만이 아니라 서로 다른 모든 사람들에게도 책임이 있다는 것을 가르쳐 줄 것이다.”

- 지구를 점점 더 못 살 곳으로 만드는 기후변화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는가. “영화에서는 그에 대해 관객이 유추하도록 남겨 두었다. 우리는 대기권에 구멍이 생기는 것을 비롯해 온갖 재앙에 시달리고 있다. 그런데도 미국의 최고 자리에 있는 사람이 기후변화와 코로나19에 대한 전문 과학자들의 의견을 믿지 않는다는 것은 참으로 위험한 일이다. 왜냐하면 다른 나라들이 미국의 본을 따라 행동하기 십상이기 때문이다. 다행히 내년 1월 20일 이후로는 그 자리에 언론을 국민의 적으로 생각하지 않는 사람이 오를 것이다. 과학을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이야말로 기후변화라는 존재에 대한 위협에 대처하는 중요한 디딤돌이다.”

- 영화는 유산에 관해서도 말하고 있는데 당신은 후에 무엇을 남기고 싶은가. “아내 아말(인권 변호사)과 나는 세상에서 가장 중요한 문제에 관여했다는 것을 유산으로 남기고 싶다. 인종차별과 자연 및 인공 재난에 대한 대처, 그 해결 방안을 모색하는 일에 참여했다는 것을 유산으로 남기고 싶다. 그것이 전부다. 내 아이들에게도 이런 것을 유산으로 남기도록 가르쳐 줄 것이다.”

- 왜 테킬라(상표 카사미고스) 사업에서 손을 뗐는지. “완전히 손을 뗀 것은 아니다. 회사만 팔았을 뿐이지 아직도 그 사업에 깊숙이 관여하고 있다. 나와 내 동업자는 상품 제조를 책임지고 있다. 아직도 회사로부터 봉급을 받고 있다. 우리는 2년 전부터 메스칼(아가베 식물로 만든 술)을 만들어 팔고 있는데 재미도 있고 장사도 아주 잘된다. 그 술은 판매용이 아니라 크리스마스 선물용으로 만들었는데 뜻밖에 인기가 좋다.”

- 장기간의 우주비행을 한다면 어떤 영상을 가져가고 싶은가. “영화 속 한 우주비행사처럼 가족과 함께 식사하는 영상을 가지고 갈 것이다. 아이들이 이탈리아어로 노래를 부르면 나와 아내는 그들을 위해 아침을 준비하는 장면을 담아 갈 것이다. 영화에 이와 닮은 영상을 삽입한 것도 그것이 내가 아름답고 귀중하게 여기는 내 삶의 한 순간이기 때문이다.”

- 아들이 천식을 앓는다고 들었는데. “때때로 신경이 쓰이긴 하지만 심각하지는 않다. 나도 천식을 앓았다. 아들은 천식과 눈썹을 비롯해 내 유전인자를 많이 물려받은 것 같다.”

박흥진 할리우드외신기자협회(HFPA) 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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