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기 가야연맹의 종주국이었던 가락국(금관가야)과 중국 황하 중류 유역 중심지는 빈번히 교류하던 사이였다. 중국 신나라 화폐 화천과 다양한 철기 유물들이 그 증거다. 가락국과 양쯔강 중류 유역 중심지는 그보다 더 오랫동안, 더 안정적으로 긴밀한 관계를 맺고 있었던 것 같다. 박창범 교수의 고대 천문관측 지도를 기초로 여러 가지 요인을 통합해서 분석해본 결과 그 관련성이 명료해졌다.

가락국이 일본 규슈의 몇몇 지역에, 거의 자기 나라인 것처럼 드나들었다는 사실은 이미 상식이 되어가고 있다. 구체적으로 가락국은 중국까지, 또 일본까지 어떤 경로로 해서 갔을까? 다음 지도는 지금까지 유물과 기록, 기타 다양한 관련 자료를 토대로 재구성한 가야의 교역로를 보여준다.

이 시리즈에서 검토해 온 자료에 근거해서 표시한 가야의 교역로 및 파트너 도시. 빨간 원은 주요 교역 대상 도시국가를, 녹색 원은 가야가 해로상을 움직일 때 협력했던 파트너 도시를 표시한다. 제공: 이진아
이 시리즈에서 검토해 온 자료에 근거해서 표시한 가야의 교역로 및 파트너 도시. 빨간 원은 주요 교역 대상 도시국가를, 녹색 원은 가야가 해로상을 움직일 때 협력했던 파트너 도시를 표시한다. 제공: 이진아

지도에 표시된 것처럼, 이 항로에는 크게 두 가지 유형의 파트너 도시들이 있었다.

하나는 토지가 협소하지만, 산과 바다 사이에 적절한 지형을 형성할 수 있어서, 항해 중 안전하게 머물다가 갈 수 있는 항구다. 이런 항구를 가리키는 말로, 영어에 ‘헤이븐(haven)’이라는 단어가 있다. 영한사전에는 흔히 ‘피난처’, 혹은 ‘안식처’로 번역되어 있지만, 이 말은 원래 긴 항로에서 운항 상황이 악화될 때 쉬어갈 수 있는 안전한 곳을 의미하는 것이었다.

두 번째는 큰 강과 바닷물이 합쳐지는 지점에 있으며 넓은 평야를 배후지를 갖고 있는 곳이다. 한자어 ‘포(浦)’가 바로 이런 곳을 가리키는 말이다. 바다를 통해 먼 곳에서 온 상선을 맞아 들여, 거기서 넘겨 받은 물자를 배후지에서 소비하게 하고, 거꾸로 배후지의 물자를 모아 멀리 떨어진 소비처로 가져가게 하는 교역항이다.

이 두 가지 유형의 파트너 도시 일상의 모습을 잠깐 들여다보자.

#1. 작은 포구 마을에 큰 돛단배가 들어온다. 가락국에서 무기, 농기구, 동전 등 철과 구리 가공품, 도자기 등을 싣고 서해안을 따라 올라오는 배다. 목적지인 양쯔강 중류까지 가는 길은 아직도 한참 멀다. 해는 중천에 떠 있고 발걸음은 바쁘지만, 점점 거세지는 바람이 심상치 않아 안전하게 배를 정박할 수 있는 곳을 찾아 이곳에 머물게 된 것이다.

이 포구는 작아도 기상 사정이 나쁠 때, 혹은 밤에, 배가 쉬어가기 좋은 조건을 갖추고 있다. 뒤로는 험산이 있어서 육지 세력이 접근하는 것을 막아주며, 오목하게 들어간 해안선이 품은 잔잔한 바닷물은 조석 간만의 차가 크지 않아 배를 띠우기 적합하다. 다만 산과 바다 사이의 육지가 너무 협소해서, 농사만으로는 먹고 살 것이 충분치 않았을 것이다. 이곳 주민들이 가락국과 중국 사이를 왕래하는 배를 고마워 하는 이유다.

이번 바람은 며칠이나 갈런지? 가락국 배의 선원들은 큰 짐은 배에 그대로 두고, 주민들에게 줄 곡식, 베, 토기 같은 것만 챙겨서 포구 마을에 오른다. 그 대가로 이들이 며칠이고 마음 놓고 쉬다 갈 수 있도록, 따뜻한 음식과 술, 그리고 주민들의 환대가 주어질 것이다.

페니키아의 주 교역대상국이었던 카르타고 항구에서 배가 도착, 거래가 진행되는 모습을 그린 19세기 영국 판화. 가락국의 교역항에서도 비슷한 양상이 전개되었을 것이다.  출처: 퍼블릭 도메인
페니키아의 주 교역대상국이었던 카르타고 항구에서 배가 도착, 거래가 진행되는 모습을 그린 19세기 영국 판화. 가락국의 교역항에서도 비슷한 양상이 전개되었을 것이다. 출처: 퍼블릭 도메인

#2. 강 하류에 있는 포구에는 밀물 때엔 바닷물이 들어와, 가락국에서 오는 큰 배도 충분히 들어올 수 있다. 큰 배에서 작은 배로 짐을 옮겨진다. 동전이 줄줄이 꿰어진 꾸러미가 가득 든 자루, 철제 무기와 농기구를 무수히 묶은 다발, 그리고 실용적인 것에서 장식적인 것까지 다양한 도자기 종류를 볏짚으로 잘 싸서 넣은 나무 상자…. 동아시아 일대에서 가락국만이 만들어낼 수 있는 고(高)퀄리티 제품들이다.

작은 배 가득 짐이 실리면, 이번에는 포구에 쌓아두었던 짐이 큰 배로 옮겨진다. 그 작은 배들이 강을 따라 펼쳐져 있는 평야지대에서 모아 온 곡식과 직물들이다. 평야지대를 젖줄기처럼 흐르는 작은 강에는 작은 배들이 다니는 나루터가 있고, 작은 배들은 이곳저곳의 나루터와 강 하류 큰 포구들을 왔다 갔다 하며, 곡식과 직물, 그 밖의 토산품들을 철제 무기ㆍ도구 등을 교환하는 일을 부지런히 해낸다.

그렇게 해서 농토가 협소한 가락국 본토 사람들도 풍족하게 식량을 누리고, 가락국의 상품들은 동아시아 곳곳, 내륙 깊이 자리잡은 소국들까지 퍼져간다.

다시 위의 지도를 보자. 현재까지 유물, 기록, 기타 관련 근거들로 확인된 바로는, 가락국의 파트너 도시 중 첫 번째 유형, 즉 ‘헤이븐’ 개념에 속하는 곳으로는 중국 산둥반도 적산포(현재 스다오), 한반도의 당진, 해남, 대한해협의 쓰시마, 이키 등이 있었고, 두 번째 유영인 ‘포(浦)’ 개념에 속하는 곳으로는 창안, 우한, 낙랑, 광주, 제주, 후쿠오카, 구마모토 등이 있었으며, 대방은 이 두 가지 성격이 혼합된 곳으로 볼 수 있다.

이런 교역의 무대는 한반도에 국한되는 게 아니라, 동아시아 전체였다. 가락국은 지금 개념으로 말하면 OEM, 즉 위탁 생산과, 국제 마케팅의 귀재였다고 할만하다. 동아시아에서는 고대 사회 필수품이었던 무기와 농기구의 생산과 유통을 거의 장악하고 있었다. 좁은 가락국 본토가 원료인 철을 미처 다 생산하지 못했기 때문에, 외부에서 생산해서 가져와 가공해서 내다 팔았다.

원료인 철 만들기는 처음 약 260년 동안은 중국 양쯔강 중류의 우한 일대, 그 다음 약 200년 동안은 일본 구마가와 강 하류 야쯔시로 일대의 삼림 접경지대에서 주로 행해졌다. 이런 곳에서 풍부한 삼림을 이용해서 제련된 철은 큰 배에 실려 낙동강 하류에 모였다가, 도구로 가공되거나 아니면 철 덩어리 자체로, 역시 한반도를 중심으로 한 동아시아 이곳저곳으로 흩어져 간다.

철 생산과 마케팅 면에서 당시로선 동아시아 일대에서 따라올 자가 없을 정도로 뛰어났던 가락국이었지만, 예나 지금이나 비즈니스 세계란 경쟁이 치열한 곳이다. 기원전 1세기에서 서기 4세기 말까지 약 4~500년간 동아시아 대표 해양국이었다 해도, 당시에 동아시아에서 가락국만 해상활동을 했던 게 아니었다. 한반도만 해도 백제가 크게 경쟁이 되는 집단이었으며, 기원전 1세기 함께 만주평원의 부여국에서 내려와 가야연맹을 만들었던 형제와 같은 집단들로부터의 견제도 만만치 않았다.

같은 해역대를 이용하면서 서로 경쟁적인 집단이 있을 경우, 그 해역 안의 파트너 도시를 갈라먹기 경쟁을 하게 된다. 기원전 6세기 지중해에서 페니키아와 그리스가 그렇게 파트너 도시를 나누어 가졌었다. 이와 마찬가지로 전기 가야연맹 시대 한반도 서해를 둘러싼 해역에서도 주로 가락국과 백제가 파트너 도시 지역을 분할 점유했을 것이다. 원본 지도 출처: 퍼블릭 도메인
같은 해역대를 이용하면서 서로 경쟁적인 집단이 있을 경우, 그 해역 안의 파트너 도시를 갈라먹기 경쟁을 하게 된다. 기원전 6세기 지중해에서 페니키아와 그리스가 그렇게 파트너 도시를 나누어 가졌었다. 이와 마찬가지로 전기 가야연맹 시대 한반도 서해를 둘러싼 해역에서도 주로 가락국과 백제가 파트너 도시 지역을 분할 점유했을 것이다. 원본 지도 출처: 퍼블릭 도메인

가야는 이들과 함께 파트너 도시를 공유하거나 혹은 서로 배타적으로 다른 곳을 이용했을 것이다.특히 백제와는 한반도 서남해안과, 아마도 중국 동해안의 일부에서 적절한 기항지를 확보하는 경쟁이 치열했을 것이다. 기원전 500년 무렵, 지중해에서 그리스와 페니키아가 그랬던 것처럼 말이다.

한반도 남해안을 중심으로 해서 서쪽과 동쪽으로 길게 벋어 나간 가야의 교역로. 수로왕의 포부대로, “여뀌처럼 좁은 땅”에서 “7성이 머물 만한 곳”으로 확대되어 있다. 양 날개를 활짝 펴고 막 웅비하려는 커다란 새와 같은 형국이다. 그 새의 하늘은 동아시아 내지 세계의 바다였을 테다.

※주간조선 온라인 기사입니다.

이진아 환경생명 저술가
저작권자 © 주간조선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