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내내 얼굴 가득 미소를 짓는 영국 배우 로자먼드 파이크(41)는 백합처럼 우아하고 고고해 보였다. 두 손으로 제스처를 써가며 악센트 있는 발음으로 물음에 차분하고 질서정연하게 대답했다. ‘라디오액티브’에서 노벨상을 두 번이나 탄 과학자 마리 퀴리로 나온 파이크와 영상 인터뷰를 했다. 파이크는 자신의 다음 영화 ‘시간의 바퀴’를 찍고 있던 체코 프라하에서 인터뷰에 응했다. 이란계 프랑스인 여류감독 마르잔 사트라피가 연출한 ‘라디오액티브’는 스트리밍 서비스 아마존플러스를 통해 볼 수 있다.

- 과학에 관한 영화가 코로나19로 시달리는 때에 나온 것을 어떻게 생각하는가. “지금은 이 질병을 퇴치할 과학이 다른 때와 달리 우리들의 큰 관심사가 되고 있다. 갑자기 과학자가 사람들의 최우선적 인물로 부상하고 있을 때 영화가 만들어진 것은 흥미로운 일이다. 지금은 사람들이 과학과 그 발견에 대해 보통 이상으로 이해하고 있다. 그것들이 갖고 있는 긍정적인 가능성과 부정적인 가능성에 대해서도 보다 큰 관심을 가지리라고 본다.”

- 당신은 과학을 좋아하는가. “나는 과학을 사랑하는데 그 까닭은 과학이 보이지 않는 것을 보여주기 때문이다. 과학자들은 우리에게 자연의 섭리를 밝혀준다. 그것은 미지의 세상으로 들어가는 모험과도 같다. 마담 퀴리가 남편 피에르와 함께 세상을 변화시킬 라듐을 분리한 것은 여자가 아기를 낳는 경험과도 같다고 생각한다. 그것은 마법 같은 일이다.”

- 당신도 마담 퀴리와 같이 두 아이의 어머니인데 어머니가 되면서 인생관이 어떻게 변했는가. “삶에는 많은 변화의 경로가 있다. 어머니가 된다는 것도 그중 하나다. 그것은 당신을 변화시킨다. 생명을 주고 또 인간을 키운다는 것은 내게 있어 획기적이요 가장 자랑스러운 업적이다. 요즘 아이들에게 코로나19로 인해 그들이 확실하다고 믿었던 것들이 더 이상 확실하지 않게 된 것에 대해 가르치고 있다. 배우에서 초등학교 교사로 역할이 바뀌었다. 아이들에게 있어 세상은 끊임없이 변화한다. 어른들이라고 해서 모든 것을 다 아는 것은 아니라는 사실을 가르치고 있다.”

- 마담 퀴리와 당신이 서로 닮은 점이라도 있나. “그의 천재성에는 문턱에도 이르지 못하지만 그와 나는 삶에 대한 접근 방식이 닮았다. 나는 무언가에 강렬히 집중하기를 즐겨한다. 무슨 일을 하면 정열과 집중력을 다해 하는데 그런 점이 마담 퀴리와 닮았다고 생각한다.”

- 마담 퀴리와 같은 과학자를 실제로 만난 적이 있는가. “학교 동창으로 과학 분야에서 일하는 친구들이 있다. 한 명은 단백질에 관해 연구하는 생물학자이고 다른 한 명은 유전학자이다. 그런데 여성이 과학 분야에서 일하기란 쉬운 일이 아니다. 여성들은 모두 과학자로서의 필수조건인 호기심을 갖고 있는데도 말이다. 그런 점에서 이 영화가 10대를 비롯한 젊은 여성들에게 (과학에 대한) 큰 관심을 고취해 주었으면 하고 바란다.”

과학자 마리 퀴리의 일대기를 다룬 영화 ‘라디오액티브’의 장면들.
과학자 마리 퀴리의 일대기를 다룬 영화 ‘라디오액티브’의 장면들.

- 영화를 감독한 사트라피의 연출 방식이 매우 직선적이라고 말했는데 다른 감독들도 그런가. “사트라피만의 독특한 특성이라고 본다. 그의 연출 방식은 매우 신선하다. 그는 내가 보다 직선적인 연기를 하도록 많은 자유를 허락했다. 그것이 좋은 특성이라고 본다. 그로부터 많은 것을 배웠다. 사트라피는 그의 영화가매우 솔직하고 직선적이어서 조국인 이란에서 입국이 허락되지 않고 있다. 그는 보는 대로 진실을 얘기하는데 그것이야말로 고귀한 일이다. 그는 매우 맹렬한 사람이다.”

- 과학이란 좋게 쓸 수도 또 나쁘게 쓸 수도 있는 양날의 칼과 같은데 어떻게 생각하는가. “과학의 결실을 존중하며 대하는가, 아니면 악한 목적을 위해 사용하는가는 우리가 마음대로 통제할 수 없는 일이다. 그 문제는 오랫동안 논의되어온 것이기도 하다. 과학자는 단지 신비를 밝혀내는 일을 할 뿐이다. 과학자들이 자신의 결실을 소유할 수는 없는 일이다. 마리 퀴리가 방사능을 발견하지 않았더라면 누군가 다른 사람이 발견했을 것이다. 코로나19 백신을 발견한 과학자도 그것이 가져올지도 모를 부작용을 두려워하듯이 모든 과학의 산물은 좋은 점과 해로운 점의 양면성을 지녔다. 그런 면에서는 노벨의 다이너마이트와 마리 퀴리의 방사능도 인류에 좋은 일을 한 것과 동시에 파괴적인 일도 했다.”

- 마리 퀴리는 최초의 여성 노벨상 수상자로서 여성의 위상을 높였는데 당신은 여권 신장에 개인적으로 얼마나 헌신하고 있는가. “나도 여성으로서 그것에 나를 투자하고 있다. 늘 머릿속에 남녀동등이 내 권리라고 생각하고 믿으며 자랐다. 물론 나는 교육받은 백인 여성이라는 좋은 환경에서 자랐다. 그러나 늘 내 생각을 앞에 내놓으면 사람들이 들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세상 인구의 절반은 여성이다. 그런 점에서 영화나 TV 작품의 절반도 여성들의 얘기가 되어야 할 것이다. 단순히 교육받은 백인 여성들의 얘기가 아니라 모든 여성의 얘기가 되어야 한다. 온갖 상황에 처한 여성들의 얘기를 만들어 모든 여성에게 존경을 표해야 한다. 나는 젊은 여성들의 모범이 되려고 노력한다. 세트장에서도 마찬가지다. 연기를 막 시작한 젊은 여배우들이 무언가에 대해 두려워하고 확신을 느끼지 못할 때면 나를 100% 이용할 수가 있다고 알려주고 싶다.”

- 집에서 아이들을 교육하는 데 수학자인 당신 남편도 일조하는가. “마리 퀴리와 그의 남편 피에르 퀴리는 당시로서는 보기 드물게 동등한 파트너였다. 우리도 마찬가지다. 남편은 내가 촬영을 중단하고 집에서 아이들을 가르치는 것을 아주 좋아한다. 처음에는 나 혼자 아이들을 가르쳤는데 그러다가 남편에게 당신도 일주일에 며칠 동안 아이들을 가르친다면 모두가 기쁠 것이라고 말해 요즘에는 남편과 내가 서로 번갈아가며 아이들을 가르치고 있다. 나는 주로 문학을, 남편은 수학을 가르친다. 쉽지는 않지만 아이들 마음속을 살펴볼 수 있다는 것은 매우 값진 일이다.”

- 당신과 남편은 중국 문화에 심취했다고 들었는데. “그렇다. 남편은 중국어를 할 줄 알고 두 아이도 중국어와 함께 이중 언어를 구사할 줄 안다. 그래서 나도 얼마 전부터 중국어를 배우기 시작했다. 그리고 붓글씨도 시작했다. 어렵지만 신나는 일이다. 언젠가 중국 영화에서 중국어로 말하는 작은 역을 맡게 되기를 기대한다.”

- 당신이 지금까지 나온 영화들을 보면 맡은 역들이 대부분 강한 성격의 소유자이거나 정상적인 궤도를 이탈하는 다루기 어려운 여자들인데 실제로 당신도 다루기 힘든 사람인가. “아마도 상당히 그럴 것이다. 나는 삶을 가득하고 완전하게 살고 싶다. 나는 모험을 추구한다. 즐거운 것에 대해 호기심을 가지고 있는 사람으로 놀라는 것을 즐겨한다. 삶에 있어 별나고 놀랍고 또 예측할 수 없는 것들에서 큰 즐거움을 느낀다. 이런 모든 것들을 참으로 아끼고 있다.”

- 영화 준비를 어떻게 했는가. “좋은 감독은 좋은 대화자이다. 사트라피와 나는 영화를 위해 1년간 준비하면서 매우 밀접하게 서로를 이해하게 됐다. 사트라피는 그 1년간 내 마음과 머릿속에 마담 퀴리 역의 씨를 심어주었고 그 후 촬영장에 도착하면서 그 씨가 만개한 것이다. 역에 대한 이해가 나도 모르게 내 안에서 자라고 있었다.”

박흥진 할리우드외신기자협회(HFPA) 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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