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Z세대는 1980년대 초부터 2000년 사이에 태어난 밀레니얼(Millennial)세대와, 1990년대부터 2000년대 초반 태어난 Z세대를 합쳐 통칭하는 단어다. 그러니까 지금의 20~30대를 일컫는다. MZ세대를 설명하는 글은 많지만 막상 MZ세대의 목소리, 그 자체를 들여다보는 글은 드물다. 이들의 이야기는 기성세대의 뉴스에서 토픽처럼 다뤄지기만 한다. 대개 MZ세대의 이야기는 온라인에서 시작되고 마무리되는 이야기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이들의 이야기는 일부러 찾아보지 않으면 잘 들리지 않는다. 한번 들여다보자. MZ세대는 이전 세대와 완전히 다르다.

2021년이 되자마자 온라인 커뮤니티는 일제히 학폭(학교폭력)을 폭로하는 목소리로 뒤덮였다. 시작은 프로배구 선수로부터였다. 쌍둥이 배구선수로 잘 알려진 흥국생명의 이다영·이재영 선수에게서 학창시절부터 학교폭력 피해를 입었다고 주장하는 피해자가 온라인 커뮤니티 ‘네이트판’에 폭로 글을 올린 것이 시작이었다. 이다영·이재영 선수가 학폭 사실을 인정하고 사과하면서 ‘폭로’는 힘을 얻기 시작했다. 한창 인기를 얻기 시작한 배우 조병규, 박혜수를 비롯해 외국 팬이 많은 여성 아이돌그룹 (여자)아이들의 수진 등의 학폭 사실이 잇따라 폭로됐다. 주로 ‘네이트판’이나 ‘인스타그램’ 같은 소셜미디어, ‘에브리타임’ 같은 앱을 통해서다.

언론 제보·고발보다 소셜미디어

‘학폭 폭로’가 줄을 잇기 전에도 ‘폭로’가 유행처럼 번진 일이 있었다. 불합리한 성과급 지급 기준, 비인간적인 인사평가 제도 같은 것이 앱 ‘블라인드’를 통해 폭로되었다. 회사 내부 사정이 여과 없이 외부로 드러나버린 이 폭로들은 각 회사 경영진에 상당한 충격을 안겨주었다. 이전에는 회사에 불만이 있다 하더라도 여과 장치 없이 내부 사정이 폭로되는 일은 드물었다. 언론에 ‘제보’된 사건들은 회사 홍보팀의 노력으로 통제되곤 했다. 그러나 이제는 홍보팀이 손댈 수 없는 ‘폭로’가 가능한 상황이다.

지금의 MZ세대들은 제보나 고발 대신 폭로를 선택한다. 앞선 두 가지는 인사팀이나 언론 등 회사 내외부의 조직에 기댄 것이라면, 폭로는 다르다. MZ세대의 폭로는 이전과 다르다. 이들의 폭로는 개인적이다. 여과를 거치지 않는다. 거기에다 요즘의 폭로는 소셜미디어나 온라인 커뮤니티를 통해 제기된다. 네이트판에서 가장 많은 폭로가 일어나고, 인스타그램 같은 소셜미디어도 주요 폭로 장소다. 대학생들이 이용하는 에브리타임이나 직장인들이 사용하는 블라인드 같은 앱에서도 종종 폭로되곤 한다. 다시 말하자면 이제 폭로는 TV나 신문 같은 기존의 미디어를 통하지 않는다.

1991년생 A씨의 폭로는 MZ세대가 왜, 이렇게 폭로하는지를 짐작하게 하는 예시다. 통신사에 다니는 그는 얼마 전 앱 블라인드를 통해서 상사의 성희롱 사실을 폭로했다. 회사 동료와도 상의하지 않고 혼자 며칠간 고민한 끝에 올린 글이었다. A씨의 회사에서는 성희롱 사건이 종종 있었고 그때마다 인사위원회가 열리곤 했다. 그러나 A씨는 인사팀에 상사의 성희롱을 고발하지 않았다. 대신 회사 임직원이라면 누구나 글을 읽을 수 있는 블라인드에 글을 올렸다.

“대학 동기가 회사에서 집단괴롭힘을 당해 인사팀에 정식으로 문제를 제기했는데 몇 달 동안 인사위원회가 열리느니 마느니 사과를 받느니 마느니 하다가 유야무야됐다고 했어요. 제가 겪은 일은 정도가 약한 일이고 아마 인사팀에서는 적당히 제 상사한테 사과하라고 하고 말겠지요.”

그러나 블라인드에 쓴 글에는 A씨나 상사의 신상이 감춰져 있었다. 그는 이름을 드러내 상사를 벌주는 ‘고발’을 하고 싶었던 게 아니라고 말했다.

“제가 속이 터질 거 같아서 글을 썼어요. 그렇다고 해서 제가 불이익을 받고 싶지도 않았어요. 만약 상사에게 정식으로 항의하고 싸우고 사과받고 싶었다면 블라인드에 글을 쓰지 않았겠지요.”

피해자가 뒤로 숨는 폭로들

그러니까 MZ세대는 폭로하더라도 전면에 나서지 않는다. 요즘의 ‘학폭 폭로’를 보자. 학폭 가해자로 지목된 연예인이나 운동선수와 학교를 같이 다녔다는 것을 인증하더라도 자신의 신상명세는 가린다. 같이 찍은 사진을 증거로 올리더라도 자신의 얼굴은 가리는 식이다. 이들에게 폭로는 자신을 드러내놓고 모든 것을 까발리는 것이 아니다. 묻어두었던 상처를 꺼내어 ‘이런 일이 있었다’고 소리치는 것에 가깝다.

기존 미디어에서 이들의 폭로 글을 읽고 ‘인터뷰’하겠다며 접근한다고 가정해보자. 아마 인터뷰에 응하는 폭로자는 거의 없을 것이다. 실제로 이번 ‘학폭 폭로’ 사건에서 직접 피해자를 인터뷰한 언론 매체는 거의 없었다. 하지 않은 것이 아니라 하지 못한 것에 가깝다. 애초에 폭로자는 자신의 신상을 꽁꽁 감춰두고 폭로에 나섰기 때문에 접근하기가 어려운 것이 사실이다.

다만 이 MZ세대는 ‘다른 통로가 없어 여기에라도 폭로’하는 것이 아니다. 청와대 청원게시판이나 언론 제보는 그런 폭로자들이 향하는 곳이다. 네이트판은 아니다. ‘이곳이기 때문에 폭로’한다. 얼굴을 가리고 안전하게 묵혀두었던 상처를 털어내고자 하는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폭로는 ‘후속 처치’로 잘 이어지지 않는다. 이번 ‘학폭 폭로’에서도 학폭 가해자로 지목된 사람과 직접 만나 문제를 해결하고자 하는 피해자는 드물다. 대부분은 가해자로 지목된 이들의 대응에 다시 폭로했던 온라인 공간에 후속 글을 올리는 식으로 맞선다.

다른 폭로 사건에서도 마찬가지다. 만약 직접적이고 적극적인 문제 해결을 원했다면 이를 가능하게 하는 공식적인 조직에 ‘의뢰’했을 것이다. 폭로자들은 그 대신 간접적인 폭로를 선택했다.

문제는 이런 방식이 ‘팩트’에 대한 갑론을박을 가져온다는 것이다. 사건을 조사할 만한 중재자가 없다 보니 가해자와 피해자가 가상의 공간에서 대립하는 일을 반복할 때가 많다. 폭로된 사건은 ‘팩트’ 공방에 끝없이 글이 오고 가다 유야무야되는 경우가 잦다. 당장 배우 조병규나 박혜수에 대한 폭로도 그들이 학교폭력 가해자가 맞는다, 아니다로 논쟁이 벌어지고 있는 상황이다. 증거도 뚜렷하지 않고 피해자가 직접 나서지 않고 있기 때문에 ‘팩트’가 쉽게 가려지기는 어려워 보인다.

이렇게만 보면 MZ세대가 온라인 커뮤니티에 폭로하는 일은 목적성이 뚜렷하지 않은 일처럼 보인다. 그럼에도 MZ세대가 네이트판, 인스타그램에서만 폭로하는 데는 이유가 있다. 가장 큰 이유는 MZ세대가 기존 미디어를 믿지 않는다는 점이다.

MZ세대는 미디어와 권력을 믿지 않는다. 애초에 한국 사회는 사회 전반의 신뢰도가 많이 떨어진 상태이기는 하다. 지난해 9월 미국의 여론조사기관 퓨리서치센터가 발표한 자료를 보면 한국에서는 정부 기관을 신뢰한다는 응답자도 전체의 12%에 불과하고, 기업가를 신뢰한다는 응답 또한 5%만이 그렇다고 대답했다. 그중에서도 언론에 대한 신뢰도는 3%에 불과했는데 이는 조사 대상 국가 20개국 중 가장 낮은 수치다.

이런 분위기 속에서 MZ세대는 언론이나 공식적인 조직을 통해 폭로가 ‘잘’ 전달될 수 있을 거라고 믿지 않는다. 그래서 오히려 폭로할 만한 일을 오래 품고 지내는 편이다. MZ세대는 종종 충동적이고 직설적인 것처럼 보이지만 오히려 현실에 순응하는 편이다.

가장 풍요로운 시절에 태어난 것처럼 보이는 MZ세대의 삶이 사실은 비관적인 전망으로 가득 차 있다는 것은 많은 사람이 아는 바이다. ‘N포 세대’는 MZ세대의 또 다른 이름이다. ‘밀레니얼 선언’을 쓴 미국의 저널리스트 맬컴 해리스는 권위 있는 집단이 나서 MZ세대에게 “‘네 주제에 맞는 일’을 찾으라고 요구하는 세상이 시작될 수도 있다”고 말한다. 일단 경쟁하고 살아남아야 하기 때문에 묵혀두고 있었던 상처들을 MZ세대는 웬만해서는 질서를 흐트러트리면서까지 폭로하지 않는다. 대신 어떤 계기가 생기면 흐름을 타고 나설 수는 있다. 한번 ‘폭로 사건’이 일어나면 잇따라 나서는 사람이 많은 이유다.

폭로가 끝난 후의 침묵

그러나 MZ세대는 ‘처벌’이 제대로 이뤄지지 않는다는 것을 안다. 요즘 MZ세대가 가장 분노하는 대상이 있다면 바로 ‘법원’일 것이다. 음주운전, 성폭행, 아동학대 같은 범죄가 일어났을 때 가해자가 충분히 처벌받을 것이라고 기대하는 MZ세대는 거의 없다. MZ세대는 법감정에 맞지 않는 가벼운 판결들을 두고 법원 판결문에 “다만 …하다는 점을 고려해볼 때 감형의 이유가 된다”는 구절이 많다는 점을 꼬집어 ‘다만 판결’이라고 부르기도 한다.

‘다만 판결’은 MZ세대가 느끼는 불합리함의 예시일 뿐이다. 치열한 경쟁과 체제 순응의 연결 고리 속에서 MZ세대는 세상이 얼마나 불합리한지 몸소 깨닫고 지낸다. 이제는 보편적인 단어가 되어버린 금수저, 은수저 같은 수저론이 대표적이다. 조국 전 법무부 장관을 둘러싼 논란이나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정규직 전환 소식이 들려올 때마다 MZ세대가 보이는 보수적인 저항은 그 결과물이다.

하지만 앞서 말했듯이 MZ세대는 불합리함에 맞서 싸우지 않는다. MZ세대가 무엇보다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은 ‘나’이다. 시장조사 전문기업 엠브레인트렌드모니터가 전국 만 13~59세 남녀 1000명을 대상으로 조사한 바를 보면 ‘나 자신을 위해 사는 것이 인생에서 가장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연령이 낮을수록 더 많은 것으로 드러났다. ‘그렇다’고 대답한 40대는 56.5%였는 데 반해 20대에서는 72%가 ‘나 자신’이 가장 중요하다고 말한 것이다.

MZ세대가 학교폭력 피해를 입었다고 가정해보자. MZ세대는 그 즉시 학교폭력에 저항하지 않는다. 상처받고 피해 입은 채로 살아가다가 어느날 ‘계기’가 생겼을 때 폭로할 용기를 얻는다. 그러나 폭로로 인해 자신의 삶이 흔들리는 것은 원하지 않는다. 그래서 네이트판이나 블라인드 같은 익명 공간에 폭로한다. MZ세대가 원하는 것은 가해자가 처벌받는 것이 아니다. 그게 가능하지 않다는 것을 알고 있다. 대신 많은 사람이 가해자가 알려진 것만큼 선한 인물이 아니라는 사실을 알았으면 한다.

이번 ‘학폭 폭로’ 사건에서도 보면 피해자들이 학폭 피해를 호소하며 올린 수많은 글에서 가해자가 ‘처벌’받았으면 좋겠다고 명시한 글은 많지 않다. 가해자가 옳지 않은 행동을 했었다는 것, 그렇기 때문에 지금 인기를 얻고 유명세를 누릴 자격이 없다는 주장을 할 뿐이다.

이런 점에서 보면 MZ세대의 폭로는 ‘한풀이’에 가깝다. 한번 불붙듯이 일어난 폭로가 변화를 이끌어내지 못하고 한순간 가라앉는 것처럼 보이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왁자지껄한 폭로가 끝나면 언제 그랬냐는 듯 침묵이 다가올 것이다.

김서윤 하위문화연구가
저작권자 © 주간조선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