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맞벌이를 해 생활비를 각자 부담하다 직장을 못 다니게 됐는데 남편이 생활비를 전혀 주지 않아 빚이 생겼다. 다시 직장을 잡아 빚을 겨우 갚았는데 코로나로 실직해 또 어려운 상황이 됐다. 남편에게 생활비 이야기를 꺼냈더니 이혼을 요구했다. 대답을 안 하자 물건을 챙겨 집을 나갔다.”(30대 여성)

“아내와 자녀 교육 방식에 차이가 크다. 아내는 끊임없이 사교육을 시켰다. 아내는 아이들과 매일 다퉜고, 이로 인해 나도 아내와 다퉜다. 코로나로 아이들이 학원에 가지 못하자 아내는 초등학생 아이를 새벽까지 감시하며 공부를 시켰다. 아이들을 닦달하는 것을 지켜보는 것만도 숨이 막혀 집에 들어가는 것이 싫었다. 그랬더니 폭언을 퍼부었다. 이혼하기로 했는데 대화를 할 수 없는 상황이다.”(40대 남성)

코로나19로 부부가 함께 집에 있는 시간이 많아지고, 경제적으로 어려워지면서 잠재돼 있던 부부 문제가 봇물처럼 터져 나왔다. 지난해 한국가정법률상담소에는 앞서 소개한 사례처럼 코로나19로 인한 부부갈등이 심해지면서 이혼 상담을 요청한 사례가 쏟아졌다. 특히 부부싸움이 폭력으로 번진 경우도 크게 늘면서 가정폭력 문제가 심각한 것으로 나타났다.

코로나19로 악화된 부부관계

한국가정법률상담소 통계에 따르면 지난해 면접 상담건수는 총 1만4599건으로 그중 이혼상담은 4239건으로 29%를 차지했다. 이는 2019년 25.3%보다 증가한 것이다. 그중 여성 이혼상담 사유로 ‘남편의 부당대우(폭력)’가 1위로 무려 48.3%에 달했다. 이는 2019년 31.9%보다 크게 늘어난 것이다. 상담 여성들은 코로나19로 우울감, 답답함, 경제적 어려움, 부동산, 주식으로 인한 박탈감 등이 겹치면서 부부갈등이 더 많아졌고, 다툼이 반복되다 보니 남편에게 폭행까지 당했다고 호소한 경우가 많았다. 남성의 경우 눈에 띄는 현상은 이혼 6호 사유(더 이상 혼인을 지속하기 어려운 중대한 사유)에 해당하는 ‘자녀양육갈등’을 문제 삼아 이혼상담을 한 사례가 2019년 0.1%에서 0.9%로 9배가 늘었다는 점이다. 앞에 소개한 40대 남성 사례처럼 코로나19로 온 식구가 집에 있는 시간이 많아지면서 자녀 양육에 대한 이견이 부부관계를 악화시킨 것이다.

6호 사유 중 ‘경제갈등’의 비율도 남녀 모두 높게 나타났다. 코로나19로 실직과 폐업 등이 늘어나면서 안 그래도 위태로웠던 가정경제가 더 흔들리고, 경제적 위기는 고스란히 가정불화로 이어져 가족 모두 힘들어졌다고 상담한 사례가 많은 것으로 나타났다. 특히 남성들은 어려운 가정형편을 모두 자신의 탓으로 돌리고 자녀들 앞에서 아내가 폭언하며 무시할 때 견디기 힘들다고 했고, 여성들은 코로나19로 단순노무 등의 일자리마저 없어져 생계 위협을 받게 되면서 무능력한 남편에 대한 원망이 커졌다고 호소했다.

한국가정법률상담소 박소현 부장은 “코로나19 이후 부부갈등이 심해졌다는 뉴스가 많이 나왔다. 우리도 그 추이를 관심 있게 보고 있었는데 폭력으로 인한 이혼상담 통계 수치가 그걸 확인해준 셈이다”라고 말했다.

코로나(Covid)와 이혼(Divorce)을 합성한 ‘코비디보스(Covidivorce)’라는 신조어가 나올 만큼 이혼이 늘어날 것이라는 전망과는 달리 지난해 이혼 건수는 10만6512건으로 오히려 전년보다 4319건이 줄었다. 이에 대해 박소현 부장은 “경제 문제, 미래 불안 요소들이 커지면서 실제 이혼을 결행한 부부는 줄었지만 이혼상담 수치와 내용은 코로나19로 인한 가정의 위기가 더 심각해졌다는 것을 보여준다. 상담 추이와 이혼율은 시차가 있다. 지난해 상담 통계가 어떤 결과로 이어지는지 지켜봐야 한다”고 말했다.

한국가정법률상담소가 발표한 2020년 상담 통계를 보면 여성은 40대(32%)가, 남성은 60대 이상(43.5%)이 가장 많았다. 여성의 이혼상담 사유는 1위 남편의 부당대우(폭력)에 이어 2위는 기타사유(장기별거, 성격차이, 경제갈등, 빚 순), 3위는 남편의 가출이었다. 남성은 1위가 기타사유(장기별거, 성격차이, 경제갈등, 배우자의 이혼강요 순)이고, 2위 아내의 가출, 3위 아내의 부당대우(폭력) 순이었다. 여성은 “폭행당했다”, 남성은 “아내가 나를 버리고 나갔다”는 호소가 가장 많았다는 것이다.

91세 여성, 92세 남성이 최고령

2010년 이후 급증하고 있는 60대 이상 비율은 지난해에도 크게 늘었다. 60대 이상 여성의 이혼상담은 전체 연령대 중 22.3%로 10년 전에 비해 3.2배가 늘었다. 60대 남성의 비율은 43.5%로 10년 전과 비교하면 4.1배가 늘었다. 최근 몇 년 새 황혼이혼이 크게 늘고 있는 것을 그대로 보여주는 수치들이다. 상담자들이 호소하는 내용은 노년의 부부 문제를 한눈에 보여준다. 다음은 한국가정법률상담소가 60대 이상 상담자들의 상담 내용을 요약 정리한 것이다.

‘살자니 고생이고 이제 와 안 살자니 창피해. 평생 참고 살아 마음에 화병 가득, 살아온 세월이 소설. 남편 폭력, 외도 늙어서도 계속돼. 남편은 지금도 재산 가지고 유세. 자녀들도 재산 있는 아버지 편만 들어. 자녀들 보고 살았는데 자녀들은 나 몰라라’(노년 여성)

‘있어도 눈치, 나가도 눈치, 코로나로 갈 곳도 없어. 평생 가족 뒷바라지했는데 돈벌이 못 하니 외면. 한집 살아도 남보다 못해. 아내와 자녀들 폭언, 폭행 견디기 힘들어. 자녀들도 엄마 편만 들어, 죽지 못해 살아. 얼마 없는 재산 나누면 방 얻을 돈도 부족해’(노년 남성)

노년 상담 연령대도 높아지는 가운데 지난해 최고령은 여성 91세, 남성 92세였다. 91세 여성은 “남편이 외도와 폭력을 행사하는데 아이들 때문에 참고 살았다. 남편은 90대 중반인데 아직도 정정하고 바람을 핀다. 며칠 전에도 맞았다. 이제껏 참고 살아온 내가 불쌍하다”면서 “이 나이에도 이혼하는 사람이 있느냐”고 상담을 요청한 사례이다. 92세 남성은 “27년 전 재혼한 아내가 치매에 걸렸다. 집 한 채 있는 것은 아내 명의로 해주고 내 돈과 자식들이 주는 용돈으로 생활비를 감당해 왔는데 더 이상 포악을 떠는 아내를 감당하기 어렵다. 이혼하면 어떻게 되는가”를 물어왔다. 60대 이상 노년층이 꼽은 이혼사유는 70대 여성을 제외하고는 6호 사유가 가장 많았다. 6호 사유 중에는 장기별거가 1위였다. 70대 여성은 1위가 남편의 폭력이었다.

6호 사유 중 1위는 장기별거

연령대별 비율은 여성의 경우 40대(32.0%)가 가장 많고 50대, 60대 이상, 30대, 20대 순이었다. 남성은 둘 중 하나꼴로 60대 이상이었고 50대, 40대, 30대, 20대 순이었다. 눈에 띄는 것은 6호 사유 중 남녀 모두 ‘장기별거’와 ‘거짓말’이 큰 폭으로 늘었다는 것이다. ‘장기별거’의 경우 여성은 10년 전에 비해 5.0배, 남성은 5.9배가 증가해 남녀 모두 6호 사유 중 1위를 차지했다. 상담 내용을 보면 오랜 기간 별거하면서 서로 연락을 끊은 채 사실상 이혼 상태로 지내는 경우가 많았는데 “그동안 생활에 쫓겨 혼인관계를 정리할 생각을 못 하고 지냈는데 배우자가 있다는 이유로 재난지원금, 임대주택 등 지원을 받는 데 어려움을 겪고 있다”고 호소했다.

‘거짓말’도 지난해에 비해 남녀 모두 2배가 늘었다. 거짓말의 내용은 금전, 외도, 불성실한 생활 등 다양했다. 상담자들은 “상대가 처음에는 습관적으로 사소한 거짓말을 하다 외도 등 큰 문제에도 거짓말로 일관하는 태도에 신뢰가 깨져 이혼을 결심하게 됐다”는 내용이 많았다. 이혼상담 증가와 함께 미성년 자녀에 대한 친권, 양육권, 양육비, 면접교섭권에 대한 상담도 모두 증가했다. 양육비 관련해서는 자녀수와 연령에 따른 적정 액수, 일시급 지급 가능 여부, 직접지급명령 등 양육비 지급 의무를 이행하지 않은 경우 어떻게 집행할 수 있는지를 묻는 내용이 많았다.

성년후견 상담도 성년후견제도가 생긴 2013년 이후 꾸준히 늘고 있다. 장애나 질병 등으로 스스로 의사결정과 판단이 불가한 부모, 자녀, 형제의 법률행위, 재산관리, 신상보호 및 기타 생활에 필요한 사무를 처리하는 과정에서 은행, 보험회사 등으로부터 제도에 대한 안내를 받고 오는 경우가 대부분이었다. 사회복지서비스, 지원금이 늘어나면서 수급비를 적극적으로 관리하기 위해 후견인 청구를 해오는 경우가 많은 것으로 보인다.

황은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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