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hoto 뉴시스
ⓒphoto 뉴시스

게리 올드만(62)은 영화 ‘맹크’에서 오스카 각본상을 탄 허먼 J. 맹키위츠로 나온다. 맹키위츠는 오손 웰스가 제작, 감독, 주연을 맡은 ‘시민 케인’(1941)의 대본을 웰스와 함께 쓴 인물. 영화 역사상 천재로 꼽히는 오손 웰스는 26세에 ‘시민 케인’으로 할리우드에 데뷔했다. 평론가들로부터 영화사상 최고의 작품으로 평가받는 ‘시민 케인’이 조명한 주인공 찰스 포스터 케인은 언론 재벌 윌리엄 랜돌프 허스트를 모델로 삼은 것으로 알려져 있다.

영국 런던에서 영상 인터뷰에 응한 올드만은 질문에 가끔 미소를 지어가면서 위트를 섞어 성심성의껏 대답했다. ‘다키스트 아워’에서 처칠 역으로 오스카와 골든글로브 주연상을 탄 바 있는 올드만은 ‘맹크’에서 술꾼이자 뛰어난 얘기꾼인 맹키위츠 역을 ‘기고만장하게’ 연기해 오는 4월 25일에 열리는 올해 아카데미 남우주연상 후보에 오른 상태다. ‘맹크’는 ‘세븐’과 ‘소셜네트워크’를 만든 데이비드 핀처가 감독했다.

- 맹크는 뉴욕에서 활동한 극작가로 평소 멸시하던 할리우드로 온 인물이다. 그런 배역에 대해 후회라도 했는가. “맹크는 뉴욕에서 문학의 범주에 속하는 위대한 소설과 연극 극본을 써 자신의 탁월함을 보여주려고 했다. 그는 또 저널리스트로 위트가 대단한 사람이었는데 기찬 농담을 끝없이 구사하는 재주꾼이었다. 그런데도 뉴욕에서 성공하지 못한 이유는 술 때문이었다. 그래서 그는 할리우드로 온 것이다. 그리고 평소 우습게 여기던 할리우드의 화려한 생활 스타일에 반했다. 뉴욕에서 함께 작업하던 여러 작가에게도 푸른 잔디와 수영장과 태양과 방갈로가 있는 할리우드로 오라고 편지를 보내기도 했다. 그는 편지에서 ‘이곳에 오면 할 일이 태산같이 많은데 당신들과 경쟁할 만한 사람들은 다 천치들’이라고 쓰기도 했다. 그는 할리우드의 부귀영화에 매력을 느끼면서도 자기의 재능에 훨씬 못 미치는 사람들이 있는 할리우드를 멸시했다. 할리우드의 보수는 후했지만 그것은 큰 희생을 치르고 얻은 것이었다.”

- 술에 취한 장면을 제대로 보여주느라 같은 장면을 수없이 많이 찍었다고 들었다. 술꾼 역을 하면서 어떤 생각을 했는가. “먼저 위스키 마시는 술꾼의 불룩 나온 배를 위해 체중을 늘렸다. 그런데 체중을 다시 줄이는 것이 늘리는 것보다 힘이 들더라. 술로 말하자면 여러분이 잘 알다시피 나 역시 알코올중독자였다. 그러나 이제 근 24년간 술을 입에 대지 않았다. 술꾼 연기를 하면서 내 과거가 떠오르기도 했지만 술꾼 연기를 위해 반드시 술을 마실 필요는 없다. 과거 알코올에 젖어 있던 생각을 하면 된다. 그런데 맹크는 자신을 술 중독으로부터 벗어나게 해주려고 도와준 사람들을 적처럼 여겼다.”

- 허스트 저택에서의 만찬 장면을 100여번이나 찍었다는 말이 사실인지. “이 영화를 총 60일에 걸쳐 촬영했는데 그 장면을 100여번이나 찍었다면 우린 아직도 영화를 찍고 있을 것이다. 나는 하루에 12시간을 세트에서 촬영했는데 그동안 같은 장면을 20여번 찍든 150여번 찍든 문제가 안 된다. 감독의 뜻을 충족시키는 결과를 나오게 하는 것이 더 중요하기 때문이다. 반복되는 촬영에는 조명과 카메라 각도 같은 기술상의 문제도 있다. 만찬 장면을 찍는 데는 모두 닷새가 걸렸다. 데이비드 핀처가 매우 주도면밀한 감독이어서 아침 일찍 세트에 나가 연습을 하고 찍었다.”

영화 ‘맹크’의 한 장면. ⓒphoto 뉴시스
영화 ‘맹크’의 한 장면. ⓒphoto 뉴시스

- 1930년대 인물을 연기하기 위해 어떤 준비를 했는가. “맹크의 음성을 제대로 발성하기 위해 자료를 찾았으나 그에 대한 인터뷰 필름이나 그의 모습을 찍은 필름을 찾을 수가 없었다. 그래서 영화감독인 그의 동생 조의 필름을 보고 연구했다. 형제지간이니 음성과 동작이 비슷하리라고 생각했다. 우린 1940년대 영화를 여러 편 봤는데 난 나이가 들어 그 당시 영화들을 여럿 머릿속에 기억하고 있지만 함께 공연한 젊은 배우들인 아만다 사이프리드와 릴리 콜린스 같은 배우는 숙제하듯이 보고 공부해야 했다. 그다음 과제는 감독에게 달렸다. 연습 후 세트에 나가면 핀처가 그 부분은 좀 더 강하게 또 어떤 부분은 덜 강하게 해달라고 지시하면 그에 따랐다. 배우들은 모두 이렇게 자기를 약간 밀어대는 사람이 있어야 한다. 핀처는 오랜 시간에 걸쳐 이 영화를 만들려고 준비해왔기 때문에 머릿속으로 이미 촬영을 다 해두었다. 배우들로부터 자기가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를 훤히 알고 있었을 것이다.”

- 이 영화가 옛 할리우드나 맹크에 대해 전연 모르는 젊은 세대에도 어필하리라고 보는가. “물론 옛 할리우드나 ‘시민 케인’에 대해 알고 있으면 영화를 보는 즐거움이 한층 더 클 것이다. 그러나 그것을 모르는 젊은 사람들일지라도 그들이 소셜미디어를 통해 부자와 유명인사들에 관한 정보를 따라가듯이 이 영화도 명성과 할리우드 스타에 관한 것이어서 관심을 가질 것이라고 생각한다. 영화란 자기가 모르는 것에 대한 경험이다. 이 영화를 즐기기 위해선 반드시 영화 전문가가 될 필요도 없고 ‘시민 케인’에 대해 잘 몰라도 된다고 생각한다. 좋은 평을 읽은 사람들과 영화감독의 작품을 아는 사람들, 그리고 출연한 배우들을 보고 싶어 하는 사람들이 관람해주기를 희망한다. 영화 내용에 대해 아무것도 모를지라도 영화 자체가 훌륭하면 보게 마련이다.”

- 맹크 역에 어떻게 깊이 빠질 수가 있었는가. “맡은 역을 완전히 자기 것으로 만드는 것은 전적으로 각본에 달렸다. 훌륭한 각본은 잘 그려진 감정의 지도와도 같은 것이어서 그것을 보면서 따라가기 마련이다. 그러나 어떤 때는 맡은 역을 내 것으로 만드는 시간이 몇 달 걸리는 때도 있다. 그런가 하면 또 어떤 때는 영감이 순식간에 찾아와 단숨에 자기 것으로 만들기도 한다. 난 핀처를 지난 20년간 알아왔지만 그의 영화에 나오긴 이번이 처음이다. 핀처는 감독들 중에서도 최상급에 속하는 사람이다. 그런 핀처와 이렇게 좋은 각본 그리고 연기를 잘하는 여러 배우 및 훌륭한 제작진과 일할 수 있는 기회란 그렇게 자주 찾아오는 것이 아니다. 앞으로 이에 견줄 만한 작품이 또 내게 주어질지 의문이다. 내 생애 참으로 좋은 경험을 해서인지 아직도 영화의 대사를 외울 때가 있다.

박흥진 할리우드외신기자협회(HFPA) 회원
저작권자 © 주간조선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