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hoto 뉴시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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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헤헤헤” 하며 너스레 떠는 웃음으로 유명한 에디 머피(59)는 뜻밖에도 시종일관 심각하고 진지하게 질문에 대답했다. 가끔 농담을 하긴 했지만 숙연할 정도로 점잖아 딴 사람을 보는 것 같았다. 에디 머피는 코미디영화 ‘커밍 투 아메리카’(1988)의 속편 ‘커밍 2 아메리카’에서 아프리카 자문다 왕국의 아킴 왕자로 나온다. 아킴 왕자는 그동안 있는 줄도 몰랐던 아들을 후계자로 삼기 위해 미국을 찾는다. 머피는 LA의 자택에서 영상 인터뷰에 응했다. ‘커밍 2 아메리카’는 아마존 프라임 비디오로 스트리밍 된다.

- 아프리카에 가본 적이 있는가. “난 아프리카에 가본 적이 없다. 영화는 래퍼 릭 로스의 엄청나게 넓은 뒷마당에서 찍었다. 대지가 어찌나 방대한지 사자가 마음껏 뛰어다닐 만도 한데 거기에 성을 짓고 아프리카 초원처럼 꾸며 촬영을 했다.”

- 아프리카라는 단어를 들으면 떠오르는 생각이 무엇인가. “아프리카는 모든 것이 시작되는 어머니 나라와 같은 곳이다. 그곳은 인류의 요람이다.”

- 분장하는 데 얼마나 걸렸나. “6시간을 꼼짝 않고 의자에 앉아 있어야 하는 고된 일이었다. 분장에 오랜 시간이 걸리는 영화를 만들 때마다 다시는 그런 영화에 안 나오겠다고 다짐하다가도 나오곤 한다. 그러나 그 6시간의 인내로 좋은 영화와 좋은 인물이라는 결실을 맺게 된다면 보상을 받게 되는 것이다. 사람들이 분장한 나를 에디 머피로 보지 않고 극중 인물로 본다면 그야말로 배우로서 큰 보상이다.”

- ‘비벌리힐스 캅 4’를 언제 만들 것인가. “현재 각본을 집필 중이다. 감독은 ‘배드 보이즈’의 두 번째 속편인 ‘배드 보이즈 포 라이프’를 만든 두 벨기에 감독 아딜 엘 아비와 빌랄 팔라이다. 그들을 영상으로 만났는데 아주 총명하고 재주가 있고 에너지가 충만한 사람들이었다. 제작자는 ‘비벌리힐스 캅’ 시리즈의 제작자 제리 브룩하이머다. 여기에 나도 출연할 만반의 준비가 되어 있으니 모든 것이 순조롭게 진행 중인 셈이다. 문제는 각본이다. 각본만 훌륭한 것이 나오면 즉시 촬영에 들어갈 것이다.”

- 이번 영화는 아버지 역할에 관한 얘기이기도 한데 당신은 아버지가 되면서 어떻게 변화했는가. “이 영화의 전편을 만들었을 때 나는 27세로 아이가 없었다. 이제 내 나이 59세에 자식들이 10명이나 된다. 따라서 나도 많이 변했다. 20년 전만 해도 아무런 반응도 보이지 않았을 것에 대해서도 요즘 눈물을 흘린다. 아버지가 되면서 감정적으로 보다 부드러워졌다고 하겠다.”

- 코로나19 사태에 어떻게 대처하며 지내나. “보통 때보다 훨씬 더 많이 가족과 함께 지내고 있다. 이 전염병으로 우리는 가족을 비롯한 주위의 사람들과 더욱 가까워진 것이 사실이다. 이런 때일수록 유머가 중요하다. 내게 있어 유머란 안의 것을 밖으로 분출하는 것이다. 난 아주 재미있는 사람으로 카메라 앞에 있지 않을 때에도 마찬가지다.”

- 당신은 여러 영화의 속편을 만들었는데 시간이 지나 속편에서 과거의 당신을 만나는 소감이 어떤가. “과거 내가 한 역을 다시 만난다는 것은 일상적인 일이 되다시피 했다. 하도 여러 속편을 만들어 그냥 또 다른 하루의 일과에 지나지 않는 것 같다. 따라서 하기도 아주 쉽다.”

- 당신은 배우요 코미디언이며 가수요 제작자이다. 또 남편이며 가장이자 자선가인데 이 중 어느 것이 가장 자랑스러운가. “가족과 아이들이 가장 자랑스럽고 중요하다. 난 아이들이 10명인데 모두 착하고 총명하다. 이들이 내 가장 큰 업적이다. 아이들이 내 유산이다. 막내아들은 이제 두 살인데 사랑하긴 하지만 기저귀는 내가 갈아주지 않는다. 그 일에 아주 서투르기 때문이다.”

영화 ‘커밍 2 아메리카’의 한 장면. ⓒphoto 뉴시스
영화 ‘커밍 2 아메리카’의 한 장면. ⓒphoto 뉴시스

- 그럼 아킴 왕자 역의 아이디어는 어디서 취했나. “‘커밍 2 아메리카’의 아이디어는 내가 25세 때 애인과 헤어진 뒤 코미디 순회공연을 할 때 얻은 것이다. 그때 어떤 여자를 만났는데 그때만 해도 난 아직 풋내기여서 그 여자는 내가 누구인지를 몰랐다. 미국 사람들이 아킴이 아프리카의 왕자인 줄을 모르듯이 내가 누구인지를 모르는 여자와 사귄다는 것이 근사하게 느껴졌는데 영화의 아이디어는 거기서 나온 것이다.”

- 10명의 자녀 중 당신의 삶을 따르려고 하는 아이가 있는가. “꽤 여러 명이 예술에 흥미를 느끼고 있다. 딸 세 명과 아들 세 명은 연기에 관심이 있고 또 다른 딸 두 명은 글을 쓴다. 그리고 딸 하나는 그림을 그린다. 예술은 우리 가족의 사업이나 마찬가지다. 내가 예술적인 아버지여서 아이들은 예술적인 환경에 둘러싸여 산다. 따라서 아이들 중 몇 명은 다분히 예술적이다.”

- 흑인들의 영화가 외국에선 크게 히트하기가 힘든 이유는 무엇인가. “재주 있는 흑인 영화인들이 많지만 이들의 영화가 미국뿐 아니라 외국에서도 인기를 얻으려면 영화의 얘기가 보편적이어야 한다. ‘비벌리힐스 캅’을 비롯해 처음부터 내 영화가 미국뿐 아니라 외국에서도 히트한 것이 바로 이 보편성 때문이다. 40년 전에 그런 영화를 만들 수 있는 흑인 배우는 나를 비롯해 극소수에 지나지 않았다. 여러 흑인 영화인들이 미국 내 흑인들에 관한 사회적 불평등과 민권운동 같은 무거운 주제의 영화들을 만들었지만 이런 것들은 우리 자신들의 얘기이지 외국인들이 돈 내고 극장에서 보고 싶어 하는 것들이 아니다. 영화의 임무란 현실 도피를 시켜주는 것이다.”

- 할리우드가 흑인 사회를 제대로 대변하고 있다고 생각하는가. “영화산업은 백인들이 주도하고 있어, 할리우드가 흑인뿐 아니라 여성과 타 인종을 비롯한 소수계를 제대로 대변하지 못하고 있는 것은 어제오늘의 일이 아니다. 그러나 나는 내가 만들고 싶은 영화를 만든다. 그것들이 히트하면서 나만의 자리를 지키고 있다고 하겠다.”

- 당신은 도무지 늙지 않는데 그 비결은 무엇인가. “특별히 음식 조절을 하는 것은 아니고 유전인 것 같다. 내 생각에 코미디언들은 늘 엄청나게 많이 웃어 다른 사람들보다 덜 늙는 것 같다. 난 요즘도 일주일에 한두 번 눈물이 날 정도로 크게 웃는다. 그런 웃음이 젊음의 비결인 것 같다.”

- 인종차별을 당해 본 적이 있는가. “나는 20대 때부터 시작해 지금까지 영화를 만들면서 대부분 히트를 하는 바람에 할리우드에선 직업상으로 인종차별을 당해 본 적이 없다. 내가 흑인이라고 해서 만들고 싶은 영화를 못 만든 적도 없다. 그러나 사회적·개인적으로는 나도 모든 다른 흑인들처럼 인종차별을 당하며 자랐다.”

박흥진 할리우드외신기자협회(HFPA) 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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