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hoto 양수열 영상미디어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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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대 생명과학부 노성훈 교수는 늦깎이 연구자다. 박사는 42살에, 교수는 45살에 됐다. 미국 텍사스주 휴스턴에 있는 베일러(Baylor)의과대학에서 박사 공부를 할 때는 전체 대학원 학생 중 최고령자이기도 했다. 지난 5월 18일 서울대 유전공학연구소 1층 연구실에서 만난 노 교수는 “박사과정 시작 전에 고민을 많이 했더니, 박사 시작한 후에는 집중할 수 있었다. 과정을 빨리 마칠 수 있었고, 성과도 내놓을 수 있었다”라고 말했다.

노 교수는 박사후연구원으로는 미국 스탠퍼드대학에서 일했고 서울대 교수로 온 건 2018년 가을이다. 그는 초저온 전자현미경(Cryogenic Electron Microscopy)이라는 도구를 이용해 구조생물학을 연구한다. 그가 학자의 길을 늦게 밟은 얘기는 뒤에 하기로 하고, 먼저 연구 얘기를 들어본다.

노성훈 교수 연구실 이름은 ‘분자 이미징 연구실’. 그는 노화 관련 분자 기전(mechanism)을 연구한다. 그는 특히 리소좀이라는 세포 내 작은 기관과, 샤페론(Chaperone) 단백질을 공략했다. 리소좀이란 용어는 학창 시절에 들었으나, 샤페론 단백질은 낯설다.

단백질 수리·제거하는 샤페론과 리소좀

노 교수에 따르면 세포는 세포 내부의 잘못된 단백질을 수리하거나 제거한다. ‘수리’하는 건 ‘샤페론 단백질’이, ‘제거’하는 건 리소좀이 한다. 노 교수는 “어려운 말로 하면 리소좀은 ‘화학적 항상성’을 유지하는 일을 하고, 샤페론 단백질은 ‘단백질 항상성’을 유지하는 일을 한다. 샤페론이 고장이 나면 세포 내부에 단백질 쓰레기가 쌓이고, 리소좀이 고장 나면 조각내서 분해해 버려야 할 단백질이 제거가 되지 않는다”라고 설명했다. 이런 게 잘못되면 노화로 이어진다.

먼저 리소좀 이야기. 리소좀은 내부에 양성자(Proton)를 많이 갖고 있다. 전자와 만나 수소원자를 만드는 그 양성자다. 리소좀은 양성자를 많이 갖고, 그걸 일하는 동력으로 삼는다. 리소좀 안에 양성자를 꾹꾹 우겨넣는다. 리소좀 안의 pH(수소이온 농도 지수)를 잘 유지해야 제 기능을 발휘하기 때문이다. pH가 뜻하는 ‘수소이온’이 바로 ‘양성자’다. pH를 3~6으로 유지해야 한다. 리소좀 막에는 pH를 조절하는 단백질 펌프가 있다. 이 단백질 펌프는 리소좀 밖, 그러니까 세포질에서 양성자를 가져와 리소좀 내부에 공급한다. 이 일을 하는 단백질 펌프는 V-ATPase라는 이름을 갖고 있다. 리소좀 막에 자리 잡고 있는 거대한 단백질 복합체다. 노 교수는 “V-ATase는 약 30개 단백질로 이뤄져 있다. 분자량 단위로 보면 보통 단백질은 50킬로돌턴(dalton·Da)인데, V-ATPase는 1메가돌턴이다. 분자량이 보통 단백질보다 20배 가까이 큰 거다”라고 말했다.

생물학자들은 리소좀 내부의 화학적인 환경, 즉 pH를 조절하는 단백질 펌프가 있다는 건 알고 있었다. 하지만 구체적으로 양성자를 어떻게 전달하는지는 몰랐다. 노 교수는 이 주제를 파고들었고, 결과를 지난해 과학학술지 ‘사이언스 어드밴시스’에 보고했다.

V-ATPase 단백질 안에서 양성자(H+)가 모터를 통해 전달되는 걸 보여주는 개념도. 이미지 노성훈 교수
V-ATPase 단백질 안에서 양성자(H+)가 모터를 통해 전달되는 걸 보여주는 개념도. 이미지 노성훈 교수

단백질 복합체에 달려 있는 모터의 역할

노 교수가 자신의 연구실 벽면에 걸려 있는 모니터에 V-ATPase의 3차원 구조 이미지를 보여줬다. 이 거대한 단백질에는 두 개의 구멍(channel)이 있는데 하나는 세포질 쪽으로 나 있고, 다른 하나는 리소좀 내부 쪽으로 나 있다. 단백질은 리소좀 막에 박혀 있다. 이런 단백질을 ‘막단백질’이라고 한다. 그런데 두 개의 구멍이 연결되어 있지 않고 막혀 있다. 리소좀 밖에서 양성자가 구멍으로 들어와 리소좀 내부로 전달되어야 한다.

거대 단백질 복합체인 V-ATPase에는 일종의 모터가 달려 있다.<이미지 참조> 모터가 회전하면 연결된 단백질 터빈이 돌아간다. 그러면 리소좀 밖에 있는 양성자가 단백질 터빈으로 전달되는데 터빈의 한 바퀴 회전이 끝날 때쯤 갖고 있던 양성자를 리소좀 내부로 이어지는 통로에 내놓는다. 그러니까 터빈은 양성자를 전달하는 일을 하며, 양성자 통로는 직접적으로는 막혀 있으나 터빈을 통해 연결되어 있다.

단백질 터빈은 초당 10회를 돌고, 한 바퀴 돌 때 10개의 양성자를 전달한다. 양성자를 초당 100개 수송하는 것이다. pH를 유지하는 단백질, 즉 V-ATPase는 리소좀 막에 수천 개가 있다. 그러니 리소좀 안으로 전달되는 양성자 수가 엄청나다. 노 교수는 “터빈이 있다는 것도 알고 양성자를 전달한다는 전체적인 그림은 알려져 있었다. 나는 터빈이 구체적으로 어떻게 양성자를 얻고, 어떻게 떨어뜨리느냐가 궁금했다. 양성자는 아주 작은 입자인데, 그걸 한쪽 방향에서 선택적으로 가져다가 다른 방향으로 가서 떨어뜨리느냐 하는 화학적인 메커니즘이 궁금했고, 그걸 우리 그룹이 최초로 풀었다”라고 말했다. 노 교수는 “구체적으로 말하자면 아미노산이 어떻게 정확하게 배치되어 있는지를 우리가 처음으로 제안했다. 아미노산은 단백질을 이루는 기본 물질이다. 우리는 특히 단백질 안에 물 분자 통로가 있다는 걸 보였다”라고 말했다.

노 교수가 연구하는 ‘노화의 기전’ 관련 두 번째 주제는 ‘샤페론 분자’다. 세포 내에서 만들어지는 단백질은 고유의 모양으로 잘 접혀야 하고, 그러려면 샤페론 단백질의 도움이 필요하다. 샤페론 분자는 잘못 접힌 단백질을 가져가서 내부에 보관하기도 한다. 그런 게 ‘단백질 침전(aggregation)’이다. 뇌신경세포에 특정 단백질이 침전되어 많이 쌓일 때 일어나는 질환이 알츠하이머이고, 그게 너무 많이 쌓여 샤페론 분자가 감당할 수 없게 되면 문제가 발생한다.

노성훈 교수의 이 연구는 학술지 ‘셀(Cell)’에 발표했다. ‘셀’은 최상위 생명과학 학술지다. 논문이 실린 건 서울대에 온 뒤인 2019년 4월이었다. 미국 스탠퍼드대학에서 하던 연구를 서울대에 와서 마무리했다. 그가 연구한 샤페론 분자는 TRiC 샤페론이다. 이 분자는 샤페론 분자 중에서 가장 크다. 단백질 16개로 구성되어 있다. TriC는 전체 단백질의 10%를 상대로 그들이 잘 접히도록 도와준다. 사람들은 TriC가 어떻게 기능하는지를 몰랐는데 노 교수가 TRiC 샤페론의 구조 해석을 했다.

샤페론 기능 중에서 모르고 있던 것 중의 하나는 샤페론이 특정 단백질을 어떻게 받아, 자신의 내부로 집어넣는가였다. 그가 알아낸 건 샤페론이 일을 하기 위한 네트워크가 존재한다는 것이었다. 거대 샤페론 단백질이 있고, 그걸 도와주는 작은 샤페론(Co-shaperone)이 있어, 도와주는 샤페론이 특정 단백질을 거대한 샤페론에 갖다주고 있었다.

노 교수가 연구를 하는 도구는 초저온 전자현미경이라고 했다. 초저온 전자현미경은 왜 필요할까? 전자현미경은 오래됐으나, 초저온 전자현미경을 사용해서 생물학 시료를 관찰한 건 비교적 최근의 일이다. 시료를 초저온에서 관찰하는 건, 시료를 내부의 물이 잘 보존되어 있는 상태에서 보고자 하기 때문이다.

광학현미경은 1000~2000배의 확대율을 가지며, 세포나 세포소기관을 보는 데 사용한다. 전자현미경은 50만~100만배의 확대율이고, 이걸로 세포소기관과 단백질 구조를 볼 수 있다. 초저온 전자현미경은 1980년대 세 사람이 개발했다. 시료를 얼리는 법은 자크 뒤보셰(스위스 로잔대학)가 개발했고, 영상을 찍는 방법은 리처드 핸더슨(영국 케임브리지대학)이, 요아힘 프랑크(미국 컬럼비아대학)가 이미지를 분석하는 법을 개발했다. 세 사람은 2017년 노벨화학상을 받았다.

생체 시료를 원자 수준서 본다

이들이 장비를 개발하고 수십 년이 지나 노벨상을 받은 건, 이때쯤 초저온 전자현미경이 크게 주목받았기 때문이다. 초기에는 해상도에 문제가 있었으나, 2014년쯤 기술적인 부분이 해소되면서 초저온 전자현미경으로 생체 시료를 원자 수준에서 볼 수 있게 되었다. 노성훈 교수는 “지난 5년 새 초저온 전자현미경 분야가 극적으로 발전했다. 장비와 그 장비를 생물학에 적용한 사례가 빠르게 늘어났다”면서 “중요한 단백질의 설계도를 얻어내기 위한 경쟁이 치열하다”라고 말했다. 노 교수는 미국 텍사스 휴스턴에 있는 베일러의과대학에서 박사 공부를 할 때(2010~2015)는 기술적인 질문을 갖고 어떻게 더 좋은 장비를 만들 수 있을까를 연구했다. 이어 베일러의대와 스탠퍼드대학에서 박사후연구원으로 일할 때(2017~2018)는 생물학 주제를 갖고 연구했다. 그리고 서울대에서 일하고 있는 지금은 “어떻게 하면 전자현미경을 더 잘 활용해서 기술적인 부분을 개발하고, 그걸로 더 도전적인 생물학 연구를 할 수 있을까 하는 게 연구의 전체적인 그림”이라고 한다.

노 교수는 앞에서 노화 관련 단백질 구조 해석 연구 이야기를 들려줬다. 그는 “노화는 너무나 중요한 문제인데, 관련 메커니즘이 너무나 복잡하다”라고 말했다. “하나가 잘못되어 문제가 생기는 경우도 있고, 뭔가 종합적으로 잘못되어 문제가 생기기도 한다. 어떨 때는 굉장히 자세하게 들어가서 봐야 하고, 어떨 때는 조금 발을 빼고 전부 포괄적으로 봐야 이해할 수 있는 경우도 있다. 노화 기전이란 한 번에 접근하기 어려운 주제다. 생물학적 난제다.”

지금까지 그는 시료를 정제해서, 즉 박테리아 내 인체 세포 샘플을 씻어서 단백질을 얻어왔다. 그리고 액화질소로 급속 냉동시켜, 자연 상태와 비슷한 상태의 단백질을 현미경으로 찍었다. 시료를 정제하면 그것도 자연 상태는 아니다. 인위적인 손길이 닿았기에 세포 내부에 있을 때와는 다르다. 그래서 새로운 목표를 세웠다. 세포 내에 있는 단백질을 직접 찍으려고 한다. 실험실에서 배양한 세포 내의 단백질 촬영이 목표다. 이를 위한 장비를 세팅하고 있다.

세포 내 단백질 직접 촬영이 목표

노 교수는 “세포 내의 단백질 촬영은 반드시 가야 하는 길이다. 이건 세계적 흐름이고, 미래의 방향성이다”라고 말했다. 그런데 시간이 많지 않다. 그는 “5년 안에 이 분야에서 돌파구(break-through)가 나올 것이다. 진짜 단백질을 촬영해야 한다”라며 이를 위해 “따라잡기(catch-up)를 먼저 해야 한다. 최선을 다해서 선도 그룹으로부터 배우고 이를 통해 기술적인 장벽을 낮춰야 한다”라고 말했다. 그의 표정이 비장하다.

노성훈 교수는 경북대 미생물학과 94학번이다. 석사는 광주과학기술원(GIST)에서 구조생물학을 공부했다. 박사학위는 미국 텍사스 휴스턴 소재 베일러의과대학의 와 추(Wah Chiu) 교수 방에서 했다. 그는 석사를 마치고 LG생명과학에 들어가 6년 정도 일했다. 취업을 한 건 석사를 마쳤을 때였다. 박사 공부를 시작하고 연구자의 길을 걸어가느냐를 고민했으나, 길이 잘 보이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그러다가 30대 후반인 2008년 유학을 떠났다. 유학 가서도 하고자 하는 연구 분야를 바로 찾지 못했다. 텍사스 A&M으로 갔으나 방향을 찾지 못해 맴돌다가 이 대학으로 세미나를 하러 온 와 추 교수를 만났다. 와 추 교수 방에서 초저온 전자현미경을 갖고 석사 때 했던 구조생물학 연구를 했다. 이후 학위를 받고 베일러의대의 다른 교수(버트 오말리) 방에서 박사후연구원 생활을 시작했다. 이때 그는 네이처(Nature)에 제1저자로 논문을 발표했다. 중요한 세포 막단백질인 아세틸콜린 수용체의 구조를 알아낸 연구를 인정받았다.

그리고 박사 지도교수인 와 추 교수가 스탠퍼드로 옮길 때 그를 따라갔다. 스탠퍼드대학이 ‘세계적인 초저온 전자현미경 센터를 학교에 만들어달라’고 와추 교수에게 제안했던 것이다. 그리고 서울대에 와서는 자신만의 ‘서울대 초저온 전자현미경 센터(SNU Cryo EM Center)’를 구축하고 선도적인 연구자가 되기 위해 땀을 흘리고 있다.

최준석 선임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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