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hoto 뉴시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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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실주의 외교 전략가인 헨리 키신저 전 미국 국무장관은 저서 ‘외교(Diplomacy)’에서 “외교의 목표는 전쟁을 방지하는 데 있다”고 말한다. 이 같은 통찰은 우리에게 시대가 요구하는 한 가지 중대한 물음을 던질 때가 됐다는 것을 알려준다. 오늘날 치열한 미·중 패권 경쟁이 벌어지고 있는 동아시아와 서태평양 중심의 세계질서가 또다시 세계대전으로 치닫는 걸 막을 수 있느냐는 물음이다. 냉전 종식 이후 유지되어 온 강대국 간 평화 시대를 유지시키는 관건이 무엇인지 물어야 할 때라는 것이다.

우선 미국과 주요 동맹국들이 현재 중국을 상대로 추구하고 있는 외교가 키신저가 정의하는 외교의 목표에 부합하는지 확인이 필요하다. 특히 미국을 필두로 일본, 캐나다, 호주, 인도 등이 참여하고 있는 ‘인도·태평양 전략’과 이에 기초한 군사협력 네트워크인 ‘쿼드(the Quad)’로 대표되는 대중 전략 전반을, 키신저의 정의와 함께 냉전 시기 대소 봉쇄 전략을 입안했던 조지 F 케넌의 전략 등을 통해 점검할 필요가 있다. 이는 매우 중요한 문제다. 자유주의 진영의 대중 전략이 평화의 시대를 지속시키기 위한 전쟁 방지에 기여하고 있는지, 아니면 거꾸로 촉발 위험성을 안고 있는지 정확하게 가늠할 때 미·중 대전의 비극을 막을 수 있기 때문이다.

이 물음과 관련해 미국 외교의 현실주의를 잇고 있는 중견 국제정치학자들은 한결같이 ‘위험하다’는 신호를 보내고 있다. 특히 MIT의 배리 포젠과 미 싱크탱크 브루킹스의 마이클 오핸런, 토머스 라이트, 라이어 하스, 프린스턴대의 스티븐 월트 등은 중국의 부상에 맞선 미국의 대전략을 시급히 바꾸지 않을 경우 미·중 대전의 발발은 물론 미국의 국력도 크게 타격받을 수 있다고 입을 모은다. 중국은 2014년 구매력 기준 국내총생산(GDP)에서 이미 미국을 앞질렀다. 이런 막강한 경제력을 바탕으로 미국의 역내 패권은 물론 글로벌 패권까지 넘보고 있는 중국에 맞서 바이든 미 행정부가 추구해야 할 대전략은 자유주의 패권이라는 이상주의에서 세력균형이라는 현실주의로 이행해야 한다는 것이 현실주의자들의 지적이다.

가장 핵심적인 문제는 현재 미·중 간 전쟁 발발 가능성이 어느 정도까지 높아져 있느냐다. 오핸런은 지난해 출간된 저서 ‘평화 시대의 전쟁론(The Art of war in an Age of Peace)’에서 지난 몇 년간 중·일 간 영유권 갈등이 고조되어 온 동중국해 센카쿠열도(중국명 조어도)를 비롯해 작은 영토를 둘러싼 미·중 간 소규모 군사적 충돌이 제한적 핵전쟁 등 대전으로 확대될 가능성이 있다는 우려를 제기한다. 중국이 센카쿠열도를 점령할 경우 미·일이 봉쇄로 맞서거나 폭격으로 대응하면 실제 미·중 간에 재래식 전쟁이 발발할 가능성이 높다. 이런 전쟁이 발발할 경우 양국 모두 재래식 전쟁에서의 패배를 수용하는 대신 제한적 핵무기 사용으로 승리를 거두려는 전략을 고려할 수밖에 없다는 시나리오가 가능하다는 전망이다.

오핸런에 따르면 중국의 센카쿠 점령 시 미국의 폭격이 부를 재래식 전쟁 발발 가능성은 2013년 초 중국이 센카쿠열도 부근에 방공식별구역(CADIZ)을 선포함으로써 지배력을 강화했을 때 이미 제기됐다고 한다. 당시 중국이 이들 도서를 점령하면 어떻게 대응할 것이냐는 질문에 한 고위 미군 장성은 “폭격으로 되찾아올 수 있다”고 했는데 이런 답에서 그 가능성이 확인됐다는 것이다.

그런데 더 중요한 문제는 이 같은 재래식 전쟁이 발발하더라도 그것이 어떻게 제한적 핵전쟁으로까지 비화할 수 있느냐는 점이다. 오핸런은 이렇게 말한다. “많은 전략가들은 제한적 핵전쟁의 가능성을 심각하게 인식해오고 있다. 가장 민주적인 국가(미국)의 지도자들도 핵 무력의 우위라는 이점에서 지렛대를 얻기를 기대할 가능성이 있다. 그것은 핵전략, 무기 개발, 그리고 위기관리의 냉전사가 시사한다.”

미·중 제한적 핵전쟁 가능성

센카쿠열도와 같은 작은 영토들을 둘러싼 미·중 간 갈등이 위험한 것은 미·중 모두 갈수록 상황을 통제하기가 어려워지고 있기 때문이다. 중국과 러시아가 센카쿠열도 같은 작은 영토들을 ‘영향력 증대를 위한 전략적 영역’이란 관점에서 접근하고 있다는 점에서 그 같은 위험성은 더욱 고조되어 왔다고 브루킹스의 토머스 라이트는 2018년 출간된 저서 ‘전쟁이 아닌 모든 조치(All Measures Short of War)’에서 지적한다. 라이트는 중국과 러시아가 지난 몇 년간 동아시아와 유럽에서 ‘자신들만의 영향력이 미치는 영역’을 정의하는 횟수가 늘어나고 있다고 경고한다.

문제는 센카쿠열도를 둘러싸고 미·중 간에 재래식 전쟁이 발발하는 것을 예방하기 위한 전략이 무엇이냐는 것이다. 오핸런은 대중 봉쇄령이라는 방안을 제안한다. 1962년 10월 소련이 쿠바에 중거리탄도미사일 SS-4 기지를 건설하는 움직임이 미 첩보기 U2에 의해 포착됐을 때 당시 케네디 대통령이 그랬던 것처럼 중국의 센카쿠열도 점령 우려가 높아질 때 전격적으로 대중 봉쇄령을 선포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러나 중국이 미국의 봉쇄령을 거부하고 센카쿠열도 점령을 강행할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 그럴 경우 미국이 폭격으로 반격해 군사적 충돌이 빚어질 가능성이 높다. 미·중 간에 재래식 전쟁이 일단 발발하면 미·중이 제한적 핵전쟁을 선택하기에 앞서 보다 ‘폭력적인 충돌’로 확전될 잠재력이 시나리오상이나 현실적으로 존재한다는 것이 오핸런의 전망이다. 하지만 지리적으로 볼 때 미·중 양국 중 어느 쪽이 군사적 우위를 차지할 것인지 예측하기가 어렵다. 그래서 미·중 모두 타협을 통한 해결보다는 최대한의 야망을 추구하자는 유혹을 강하게 받을지 모른다고 오핸런은 우려한다. 미·중 모두 그 같은 유혹에 사로잡힐 경우 재래식 전쟁은 지리적으로 더욱 확대될 수 있고, 그럴 경우 중국은 중남부 해안 기지들에 의존할 것으로 예상되는 반면 미·일은 오키나와, 괌, 류큐, 그리고 일본의 본토 기지들에 의존할 가능성이 높다.

이처럼 센카쿠열도를 비롯한 무인도들을 둘러싼 갈등이 미·중·일 3국이 참여하는 전면전으로 이어질 수 있지만 이 시나리오가 일단 현실화하기 시작하면 어떻게 끝날 것인지는 전혀 예측하기 어렵다. 미국은 10배 우위의 핵 무력이 핵 확전 시 우위를 제공할 것으로 믿고 있는 반면, 중국은 지리적 근접성이 자신들에게 큰 이점을 가져다준다고 결론지을 가능성이 높다. 이는 미·중 모두 재래식 전쟁에서의 타협이나 패배를 수용할 가능성이 낮다는 것을 보여준다. 미·중 모두 어떻게든 승리를 거두기 위해 궁극적으로 제한적 핵전쟁으로 돌입할 가능성이 있다는 얘기다.

탈냉전 이후 미국의 공격적 전략

작은 영토들을 둘러싼 미·중 간 갈등이 제한적 핵전쟁으로까지 확전될 가능성이 현실적으로도 존재할까. 그런 우려를 제기하는 요인들이 무엇인지 살펴볼 필요가 있다. 이와 관련 미 현실주의자들은 대략 두 가지 요인을 꼽는다. 첫 번째 요인은 미국이 탈냉전 이후 30여년간 전쟁의 어려움과 비용을 낮게 평가해 온 많은 국방 전문가들의 주장을 바탕으로 주요 지역 분쟁을 군사적 수단에 의해 공격적으로 해결하려 시도해 왔다는 것이다. 나토 조약 5조 같은 것이 대표적이다. 이 조항은 적의 아주 작은 도발들에까지 미군의 신속하고 폭력적인 대응을 의미하는 것으로 해석되어 왔는데 이것이야말로 미국의 이런 전략 문화에서 말미암는다. 중국의 센카쿠 점령 시 폭격으로 퇴격시킬 것이라는 미군 장성의 언급처럼 미국은 자신의 역할에 대한 ‘공격적인 해석’을 부정한 적이 없다. 이 때문에 미 국방부가 미리 결정해놓은 전쟁 계획들이 소규모 위기들을 매우 빠르게 전면전으로 전환시킬 수 있다는 우려가 고조되고 있다.

두 번째 요인은 미국이 자유주의 질서를 위한 가치들을 추구하는 데 있어 군사력에 과도하게 의존해 왔다는 점이다. 미국은 지난 30여년간 이상주의에 기초한 자유주의 패권(liberal hegemony) 전략에 따라 전략적 중요성이 낮고 지리적으로도 멀리 떨어진 구 공산권 국가들과 테러지원국 등에까지 미군을 파견해 왔다. 이를 통해 이들 나라의 독재 정권을 무너뜨리고 자유민주주의 체제로 전환시키기 위한 ‘체제 전환 전쟁’들을 치러 왔다.

그 결과 공산주의 체제인 중국을 상대로도 언제 어떤 계기를 통해서든 체제 전환 전쟁을 벌여 완전한 승리를 거두겠다는 분위기가 자리 잡았다. 하지만 주요 지역의 동맹국들을 러시아와 중국의 군사적 위협으로부터 방어하기 위한 군사적 우위 태세를 갖추는 것과 이들 강대국에도 체제 전환 전쟁과 같은 완전한 승리를 위한 공세적 군사 우위 기조를 적용하는 것은 전혀 다른 문제라는 비판이 높다. 후자와 같은 군사적 태세 추구는 미·중 간 대전 발발로 이어질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대안은 무엇인가? 자유주의 패권이라는 대전략이 또다시 미·중 또는 미·러 간 전쟁 발발 가능성을 높이고 있다면 현재와 같은 평화의 시대를 계속 구가토록 만들기 위한 현실주의적 대전략은 무엇이냐는 질문이 제기된다. 이에 앞서 주목해야 할 것이 있다. 그것은 군사적 수단에 의한 자유주의 질서(liberal order)의 구축을 우상시하는 이상주의자들과 달리 현실주의자들은 법규 기반 질서(rule-based order)를 중시한다는 사실이다. 법규 기반 질서와 자유주의 질서 간 차이는 대전략의 관점에서 볼 때 중대한 의미를 갖는다. 자유주의 질서를 향한 전진은 21세기 들어서 서행해 왔거나 부분적으로 퇴행해 왔을지는 모르지만 법규 기반 질서는 ‘제법 괜찮은 상태’에 있기 때문이다. MIT의 현실주의자 배리 포젠은 2015년에 출간된 저서 ‘절제(Restraint)’에서 법규 기반 질서의 본질인 글로벌 주요 공공재들이 보호되고 있다는 점을 높게 평가한다. 예컨대 북한과 이란 등 일부 불량국가들의 저항에도 불구하고 핵무기 확산 방지 체제가 아직 작동하고 있고, 중국의 남중국해 내해화(內海化) 시도 등의 위기 상황 속에서도 공해상의 항행 자유와 국제 통상을 통한 세계경제와 안전한 여행이라는 글로벌 공공재들이 보호되고 있다는 것이다.

미국이 추구해야 할 ‘절제’의 대전략

케넌과 키신저의 후예 중 가장 먼저 새로운 현실주의 대전략을 제시한 학자 역시 배리 포젠이다. 포젠은 위의 책에서 미국의 21세기 대전략으로서 ‘절제’를 제안한다. 절제는 개전 여부와 전투에 일단 연관되었을 때 확전 여부를 결정할 가장 중요한 덕목이다. 미국은 어느 전쟁에서든 첫 발포에 조심해야 하며 완전한 승리(a complete victory)의 추구를 재고해야만 한다는 것이 포젠의 주장이다. 이 점에서 미국이 절제의 대전략을 추구할 경우 미·중 대전의 발발 가능성은 크게 낮아진다. 바이든 행정부 출범 이후 포젠이 제시한 절제의 대전략을 6년 만에 한층 더 발전시킨 학자가 마이클 오핸런이다. 오핸런은 ‘절제’에다 ‘단호함(resoluteness)’의 개념을 합쳐서 ‘단호한 절제(Resolute Restraint)’라는 대전략을 주창한다.

오핸런에 의하면 단호함이라는 개념은 현 동맹국들의 안보적 이해들에 대한 미국의 공약들을 계속 확고히 한다는 의미를 갖는다. 그래서 그는 해외 주둔 미군을 모두 철수시킨 후 유사시 파견하자는 포젠의 ‘역외 균형(offshore balancing)’을 추구하더라도 동아시아 주요 동맹들에 주둔한 미군은 예외로 하자고 말한다.

단호함은 또한 중국과 러시아 등 다른 강대국들에 의한 영토 확장 시도들에 대해 강력하게 반대한다는 의미도 갖는다. 이는 국가 간 상호의존을 촉진하는 글로벌 법규 기반 질서에 대한 미국의 공약을 재확인한다는 의미가 있다고 설명한다. 특히 중국이 남중국해상의 항행의 자유와 주변국들의 도서 영유권을 침해하는 것에 단호히 대응하겠다는 전략적 함의가 담겨 있다는 것이다.

‘절제’의 대전략은 냉전 봉쇄 독트린의 아버지인 조지 케넌의 아이디어들에 의해 영향을 크게 받았다. 특히 강력한 미국의 역할을 믿었던 케넌의 아이디어들 중 미국이 추구해야 할 대전략과 관련해 저평가된 세 가지가 큰 영향을 준 것으로 평가받는다. 첫 번째는 세계의 몇몇 지역은 다른 지역들보다 전략적 중요성을 더 많이 갖고 있다는 점이고, 두 번째는 군사동맹체들은 이로울 수 있으나 그것들은 주요 전략 지역들을 방어하기 위해 선택적이고 크게 활용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세 번째는 국가전략의 경제적 수단들은 국가안보전략을 만드는 데 있어서 군사적 수단들만큼 중요하다는 것이다.

브루킹스의 라이언 하스는 소장학자답게 포젠과 오핸런 같은 선배 학자들과 달리 훨씬 직접적인 현실주의 대전략을 제시한다. 그는 올해 출간된 저서 ‘더 강한(Stronger)’에서 중국을 상대로 한 대전략으로서 ‘경쟁적 상호 의존(competitive interdependence)’을 주창한다. 미국은 중국을 적으로 규정함으로써 미·중 관계를 군사적 대결로 치닫게 하지 말고 중국으로 하여금 경제적 부상과 체제 개혁을 통해 중국 국민들의 삶의 만족도를 높이고 기후변화 등 글로벌 도전과 위기 해결에 더 큰 기여를 하는 야심 있는 국가가 되도록 유도하자는 것이다. 이와 함께 미국은 자신만의 진보에 집중함으로써 경제 혁신에서 중국을 앞지르고 미국 국민의 보다 나은 삶을 위한 국가 경영을 해나감으로써 중국을 무색하게 만드는 것을 목표로 해야 한다고 라이어 하스는 부연한다.

만약 미국이 중국을 적국으로 간주하는 대전략을 추구할 경우 미국은 국내총생산(GDP) 대비 국방비 비중을 올해 3.29%에서 냉전이 시작되던 1950년대 초의 15%대까지 끌어올리게끔 만들 것이라고 하스는 우려한다. 그 같은 상황은 미국엔 재난이나 마찬가지가 될 것으로 예상된다. 국방비가 기초과학 연구, 건강보험 확대, 그리고 사회간접자본 시설 개선을 위한 정부 예산을 고갈시킬 것이기 때문이다. 문제는 여기서 끝나지 않는다. 이런 상황이 현실화하면 미·중 패권 경쟁의 향배를 결정하는 경제력에서 본격적으로 밀릴 가능성이 높아지기 때문이다.

현실주의 노선 고려하기 시작한 바이든

최근 커다란 비판을 받은 아프간 주둔 미군 철수는 바이든 행정부가 미국과 주요 동맹국들의 안보와 국익이 크게 걸려 있는 유럽과 동아시아에 집중하기 시작했다는 것을 보여준다. 이는 바이든 행정부가 조지 케넌의 첫 번째 아이디어를 수용했다는 것을 의미한다고 볼 수 있다. 바이든 행정부가 지난 4월 잠정적 국가안보전략 발표를 통해 ‘중산층 외교’를 추구하겠다고 선언한 것도 부의 양극화로 인해 경제적 어려움을 겪는 많은 국민들의 전쟁 반대 의사를 존중하겠다는 제스처다. 천문학적 예산이 소요되는 체제전환 전쟁을 통한 자유주의 질서의 확대도 절제하겠다는 맥락에서 읽힌다.

바이든 행정부가 수용한 케넌의 현실주의 구상은 여기서 그치지 않는다. 최근 미국은 삼성전자와 대만의 TSMC 등 동맹국 글로벌 반도체 기업들로 하여금 미국에 투자할 것을 요청하는 등 중국과의 4차 신기술 개발 경쟁에서 승리하는 데 올인하고 있다. 이는 바이든 행정부를 이끄는 이상주의 성향의 외교안보팀이 경제력이 국가안보전략의 심장이라는 케넌의 철학을 이해하기 시작했다는 것을 의미한다.

문제는 ‘군사동맹체가 이로울 수는 있으나 그것은 주요 전략 지역 방어를 위해 선택적으로 크게 활용하라’는 케넌의 두 번째 아이디어에 대한 바이든 행정부의 수용도가 아직은 미흡하다는 것이다. 바이든 행정부는 동아시아와 서태평양 지역에서 중국의 도전과 위협을 일본, 캐나다, 호주, 인도 등이 참여하는 군사동맹체에만 너무 의존해 대응하는 모습이다. 이는 바이든 행정부가 여전히 대중 전략을 자유주의 패권 차원에서 다루고 있다는 것을 보여준다. 케넌의 아이디어와 달리 바이든 행정부가 군사동맹체를 선택적이고 크게 활용하기보다는 핵심 플랫폼으로서 좁게 활용하고 있는 것이다.

지난 9월 24일 미국 백악관에서 열린 ‘쿼드’ 정상회의. 모티 인도 총리, 바이든 대통령, 모리슨 호주 총리, 스가 일본 총리 등이 참석했다. ⓒphoto 뉴시스
지난 9월 24일 미국 백악관에서 열린 ‘쿼드’ 정상회의. 모티 인도 총리, 바이든 대통령, 모리슨 호주 총리, 스가 일본 총리 등이 참석했다. ⓒphoto 뉴시스

한국 차기 정부의 첫 번째 과제는 쿼드 참여

포젠과 오핸런, 하스 등 미 현실주의자들이 절제와 경쟁적 상호 의존 등의 대전략을 미국이 펼침으로써 중국이 국민의 삶을 우선시하는 국가 경영을 하도록 유도하는 것이 대중 핵심 전략이 되어야 한다고 주장하는 것은 이 때문이다. 쿼드 같은 군사동맹체는 단호한 절제 또는 경쟁적 상호의존과 같은 대전략을 추구하면서 혹시 있을지 모를 중국의 군사적 위협에 대비하는 선택적 대안으로서 활용해야 한다는 주장이다. 이런 상황에서 한국의 선택은 무엇인가? 우선 한·미 동맹 강화가 한국의 국익과 안보에 가장 중요하다는 점에서 차기 정부의 첫 번째 과제는 쿼드 참여다. 그럼에도 미국이 이상주의 대전략의 추구로 인해 신기술 개발 등 경제력 경쟁에서 중국에 뒤지게 될 경우 이는 미국에만 재난이 아니라 한국에도 재난이 될 수 있다. 그렇다면 내년 3월 출범할 차기 정부와 담론 시장도 미국이 보다 현실주의 대전략으로 이행할 수 있도록 관여하는 노력을 차분하게 해나가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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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교관 한국국가대전략연구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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