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주요 대통령후보 부인들에 대한 대중적 호기심이 한껏 고조되고 있다. 이런 분위기 속에서 후보 부인들의 일거수일투족이 선거 국면에 미치는 영향력도 적지 않을 전망이다. 그들 중 한 사람은 머지않아 대통령 부인이 되어 국정에도 음양으로 영향을 미치게 된다.

대통령 부인의 역할은 딱히 정해져 있지 않다. 즉 ‘하기 나름’이다. 의례적 역할에 머무를 수도 있고, 국정에 관여할 수도 있다. 실제로 역사 속 대통령 부인들의 역할도 천차만별이다. 하지만 어느 경우든 대통령 부인은 대통령에게 커다란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는 특별한 존재다. 그래서 우리는 과연 바람직한 대통령 부인상은 어떤 것일까 묻지 않을 수 없다.

이런 흥미로운 질문을 던지고 진지하게 그 답을 찾아보려는 개척적인 시도가 있다. 바로 함성득의 ‘영부인론’(2001)이다. ‘영부인’의 사전적 의미는 남의 아내를 높여 부르는 호칭이다. 하지만 그것이 역사적으로 고관대작의 부인에게 사용되었고, 한동안 대통령 부인을 가리켰다. 이로 인해 권위적이라는 누명(?)을 쓰고 지금은 그 용어 자체가 아예 퇴출되었다.

“대통령에 대한 부인의 영향력은 쉽게 보이지도 않고 측정하기도 어렵지만 절대 무시할 수 없을 정도로 강력하다.” 이런 미묘한 특성 때문에 대통령 부인의 역할과 영향력에 대한 학문적 연구도 미진하다. 미국에서조차 1980년대에 이르러 비로소 본격적인 연구가 시작되었다. 우리나라는 아직도 신변잡기나 일방적 찬사 또는 비난이 주를 이루고 있는 실정이다.

미국의 경우를 보더라도 시대상과 개인적 특성에 따라 대통령 부인의 역할은 각양각색이다. 여성의 권리가 미미한 시절에 대통령 부인들은 적극적 역할을 수행할 엄두도 내지 못했다. 19세기 후반에 되어서야 제대로 정규 교육을 받은 대통령 부인들이 등장했다. 그들은 여성의 사회적 진출을 지지하는 모습을 보였으나 여전히 적극적 역할로 나아가지는 못했다.

20세기에 들어서서 대통령 부인들의 역할이 점차 확대되면서 현대적 대통령 부인상의 기틀이 잡히기 시작했다. 특히 프랭클린 루스벨트 대통령의 부인 엘리너 여사의 역할이 발군이었다. 그녀는 몸이 불편한 남편을 대신해 전국의 현장을 누비며 국민의 목소리를 모아 대통령에게 전했다. ‘나의 일기’라는 그녀의 일일 칼럼은 100개가 넘는 매체에 실리기도 했다.

엘리너 여사가 대통령 부인의 역할을 크게 확장했으나, 그 이후에 한동안 적극적인 대통령 부인은 출현하지 않았다. 하지만 여성의 지위가 향상되고 사회적 진출이 증가한 1970년대 이후에는 대통령 부인들도 적극적으로 나섰다. 특히 카터 대통령의 부인 로잘린 여사는 각료회의에 공식적 참여를 선언해 세상을 놀라게 했다. 뿐만 아니라 대통령 특사로 해외 순방에 나서기도 했다. 이처럼 그녀는 드러내놓고 대통령의 국정 운영에 두루 관여했다.

클린턴 대통령 부인 힐러리 여사는 선거 캠페인 시절부터 아예 “한 명 값으로 두 명을 사라”고 외쳤다. 실제로 백악관에 입성해서는 6명의 각료와 백악관 참모들이 참여하는 ‘의료보험특별개혁위원회’ 위원장을 맡았다. 그녀는 나중에 상원의원을 거쳐 대통령직에 도전했다가, 국무장관으로도 활약했다. 반면 이 시기에도 아버지 부시 대통령의 부인 바바라 여사와 아들 부시 대통령의 부인 로라 여사는 전통적 가치를 중시하며 가정적인 모습을 보였다.

이처럼 시대적 특징과 개인적 특성에 따라 대통령 부인의 역할은 다양하다. 강한 개성으로 시대적 굴레에 도전한 적극적 부인들도 있었고, 개방적 시대에도 전통적 모습을 지킨 현모양처들도 있었다. 다만 개방적 시대에도 적극적 역할을 한 부인들보다 바바라 여사나 로라 여사가 폭넓은 대중적 지지를 받은 것은 아이러니다. 그만큼 대통령 부인은 미묘한 자리다.

우리나라에는 (이 책이 쓰인 시점까지) 불과 8명의 대통령 부인이 있었다. 프란체스카 여사는 이국인으로 고립된 채 고령의 남편(이승만 대통령)의 건강을 염려했다. 그것이 ‘인의 장막’ 등 부작용을 초래했다. 윤보선 대통령의 부인 공덕귀 여사는 전문적 능력은 갖췄으나, 시대적 제약으로 전통적 역할에 만족했다. 그녀는 나중에 민주화 운동에 적극 헌신했다.

육영수 여사는 ‘청와대 안의 야당’을 자임하며 박정희 대통령에게 쓴소리를 마다하지 않았다. 또한 다양한 단체와 조직을 꾸려 앞장서서 적극적인 활동을 벌였다. 그녀는 많은 국민들에게 ‘영부인’의 전형으로 각인되었다. 반면 최규하 대통령의 부인 홍기 여사는 정치적 제약과 개인적 소박함으로 인해 대통령 부인으로서는 별다른 인상을 남기지 못했다.

전두환 대통령의 부인 이순자 여사는 매사 적극적인 모습을 보였다. 실제로 사회단체를 조직해 직접 운영의 전면에 나서기도 했다. 하지만 5공 자체의 인기가 없던 탓에 그런 활동이 되레 반감을 초래했다. 이에 대한 반작용으로 노태우 대통령의 부인인 김옥숙 여사는 겉으로 현모양처를 표방했다. 하지만 속으로는 적지 않은 영향력을 발휘한 것으로 알려졌다.

김영삼 대통령의 부인 손명순 여사는 평생 동안 현모양처의 자리를 지켰다. 반면 김대중 대통령의 부인 이희호 여사는 여성 운동·민주화 운동을 경험한 전문적 능력의 소유자였다. 다만 고령 등으로 기대만큼 활발한 역할을 하지는 못했다. 이 책이 쓰인 이후의 대통령 부인인 권양숙·김윤옥 여사 역시 적극적이고 뚜렷한 역할을 했다고 보기는 어렵다.

이처럼 우리나라도 시대상과 개인 특성에 따라 대통령 부인의 역할은 각양각색이다. 의례적 역할에 머문 경우, 정치적 영향력을 가진 경우, 나아가 자신의 프로젝트를 갖는 등 정책적 영향력까지 행사한 경우 등이다. 이를 지적·정치적 전문성 유무와 교차해 보면 〈표〉와 같은 여섯 가지 유형이 도출된다. 아마 권양숙·김윤옥 여사는 유형①, ② 어디쯤에 해당할 것이다.

이처럼 대통령 부인상은 부침을 겪은 가운데 최근에는 오히려 소극적 상태에 머물고 있다. 물론 대통령 부인상은 억지로 만들어지지 않는다. 시대적·개인적 특징으로 규정되는 면이 크다. 하지만 미국의 엘리너 프랭클린 여사처럼 개인적 도전으로 그 역할을 크게 확장한 경우도 있다. 앞으로 우리나라에서도 누군가 그런 파격을 벌일지는 두고 볼 일이다.

한편 대통령 부인에 대한 대중적 기대는 유형①이 좋다는 의견부터 유형⑥이 좋다는 의견까지 폭넓다. 그래도 분명한 것은 점차 적극적 역할이 요구되는 추세라는 점이다. 부디 자신의 장점과 능력에 기반하여 적절한 역할을 진지하게 모색하는 새로운 대통령 부인상을 기대해 본다. 이번 대통령선거를 통해 과연 어떤 대통령 부인이 탄생할지 아직은 오리무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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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종선 인문학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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