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석조. ‘임인년 호랑이’. 먹에 연한 색. 39.5×27.5㎝. 2021년
이석조. ‘임인년 호랑이’. 먹에 연한 색. 39.5×27.5㎝. 2021년

“범 내려온다/ 범이 내려온다/ 장림 깊은 골로/ 대한 짐승이 내려온다.”

이렇게 시작된 이날치밴드의 가사가 한동안 귓가를 맴돌았다. 얼마나 중독성이 강했던지 나도 모르게 흥얼거리다 기어이 또다시 동영상을 찾아본다. ‘안 본 사람은 있어도 한 번만 본 사람은 없다’는 그 동영상이다. 중독성 강한 것은 가사뿐만이 아니다. 앰비규어스댄스컴퍼니의 ‘막춤’은 또 어떠한가. 보기만 해도 흥이 나고 어깨춤이 절로 들썩거린다. 그들의 막춤을 보고 누군가는 “범이 탭댄스 추면서 내려온다”고 감탄했다. 거기에 상상을 초월하는 패션이라니. 점잖은 판소리에서는 언감생심 명함도 못 내밀 파격이다. 그런데 매력적이다. B급 감성으로 특A급 감동을 불러일으켰다는 평가다. 판소리가 이렇게 신선할 수 있다는 점에서 사람들은 격하게 환호했다. 누군가는 그들을 향해 ‘조선의 아이돌’ ‘조선의 힙합’이라는 찬사를 보냈다. 한국관광공사에서 만든 홍보영상 시리즈 ‘필 더 리듬 오브 코리아’ 시즌1에서 만난 이날치밴드와 앰비규어스댄스컴퍼니의 ‘범 내려온다’에 대한 이야기다.

진정한 맹수는 두려움 대신 경외심을

미국 미네소타주에서 활동하고 있는 이석조 작가가 임인년(壬寅年)을 축하하기 위해 그린 호랑이를 보는 순간 ‘범 내려온다’가 떠올랐다. ‘누에머리를 흔들며/ 양 귀 쭉 찢어지고/ 몸은 얼숭덜숭/ 꼬리는 잔뜩’ 세운 그 호랑이 말이다. 앰비규어스댄스컴퍼니의 막춤 때문일까. ‘범 내려온다’의 호랑이는 사나움이나 용맹함과는 거리가 멀게 느껴진다. 새 낫 같은 발톱으로 왕모래를 좌르르르르르르 흩트리고, 주홍 입 쩍 벌리고 자라 앞에 가 우뚝 서 홍앵앵앵 허는 소리를 지르지만 겨우 자라에 놀라서 목을 움찔하는 힘 없는 호랑이다. 과연 그럴까. 힘이 없는 것이 아니라 굳이 드러낼 필요가 없었을 것이다. 맹수의 왕이 체면이 있지. 어찌 감히 자라 같은 미물 앞에서 함부로 힘자랑을 하겠는가. 그저 딱 버티고 선 자태만으로도 맹수의 존재감을 충분히 드러내고도 남기 때문이다. 그래서 이석조는 저 귀여운 ‘임인년 호랑이’를 그린 후 다음과 같이 한마디 보탰다.

“탐관오리는 다 물어갈 것이다.”

아무리 부드러운 표정을 지어도 그 존재감만으로 탐관오리의 간담을 서늘하게 만들 호랑이. 그것이 바로 호랑이의 위엄이다. 호랑이는 임인년에만 이벤트로 깜짝 등장하지는 않는다.

호랑이는 열두 달을 상징하는 12지 중에서 1월(음력)에 해당한다. 한 해의 벽두는 언제나 호랑이의 등장과 함께 시작한다. 호랑이해가 아니라도 해마다 정월이면 호랑이가 한 해의 빗장을 열기 위해 산중에서 인간세상으로 내려온다. 맹수의 왕에 어울리는 예우다. 맹수의 왕이 등장했으니 삿된 기운은 아예 발붙일 수 없다. 목숨을 부지하려면 줄행랑을 치거나 눈에 띄지 않게 납작 엎드려야 한다. 탐관오리도 삿된 무리가 아닌가. 그래서 호랑이는 벽사(辟邪)의 의미로 받아들인다. 벽사는 요사스러운 귀신을 물리친다는 뜻이다. 그런데 올해는 호랑이해다. 맹수의 왕인 호랑이의 기운이 1월 한 달에 그치지 않고 1년 내내 지속된다는 뜻이다.

이석조의 호랑이는 저 먼 과거에서 시대를 뛰어넘어 느닷없이 나타난 것 같지만 나름 뼈대 있는 가문 출신이다. 호랑이해의 반짝 특수를 노린 것이 아니다. ‘임인년 호랑이’의 족보를 뒤지다 보면 조선 후기의 ‘맹호도’와 만날 수 있다. 먹잇감을 노린 듯 정면을 향한 얼굴, 잔뜩 웅크린 등, 바짝 세운 꼬리, 떡 버티고 선 뒷다리에 엇갈린 듯한 앞다리. ‘맹호도’는 호랑이의 신체를 가장 잘 드러냈다. 조선시대 화가들이 그린 호랑이는 거의 복사하듯 이 자세를 취했다. ‘맹호도’는 김홍도의 ‘송하맹호도’와 동일한 도상이다. 다만 소나무 없이 호랑이만 그렸을 뿐이다. 민화 호랑이도 마찬가지다. ‘맹호도’와 ‘송하맹호도’에서는 까치가 보이지 않지만 민화 호랑이에서는 까치가 등장한 점이 다르다.

작가미상. ‘맹호도’. 종이에 연한 색. 96×55.1㎝. 국립중앙박물관
작가미상. ‘맹호도’. 종이에 연한 색. 96×55.1㎝. 국립중앙박물관

뼈대 있는 가문 출신의 맹호도

우리나라에는 호랑이 그림이 많다. 호랑이 그림이 많다는 것은 호랑이가 많다는 뜻이다. 근대의 대표적인 문인 최남선은 호랑이를 ‘조선의 표상’이라 했다. 그는 조선에서 “최대의 맹수인 호랑이가 최고로 신성시됨은 당연한 일”이라고 주장했다. 한말 외국인들도 조선을 호랑이의 나라로 기억했다. 우리나라 속담이나 설화에는 호랑이와 관련된 이야기가 아주 많다. ‘호랑이 담배 피던 시절’이라든가 ‘팥죽 할머니와 호랑이’ 등 널린 것이 호랑이 관련 설화다. 그만큼 조선 산천에 호랑이가 많았다는 뜻이다. 호랑이가 많으니 자주 볼 수 있고, 자주 보니까 호랑이 그림을 잘 그릴 수 있었다. ‘맹호도’는 마치 살아 있는 호랑이가 그림 속에서 어슬렁거리며 걸어 나올 것처럼 사실적이다. 저 호랑이를 그리기까지 얼마나 많은 호랑이를 보았을까. 그 과정에서 또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호랑이에게 목숨을 잃었을까.

호랑이 그림이 많은 이유는 단지 호랑이를 자주 봤기 때문만은 아니다. 호랑이의 등장이 그만큼 충격적이고 공포스러웠기 때문이다. 호랑이로 인해 목숨을 잃는 호환(虎患)은 가장 큰 재난 중의 하나였다. 두려움은 경외심을 낳는다. 저 정도의 위력을 도대체 어떤 힘으로 막아낼 수 있겠는가. 그래서 호랑이는 무엇이든 이겨내고 벽사하는 힘이 있다고 믿게 되었다. 즉 호랑이는 호환을 일으키는 주범임과 동시에 악귀를 물리치는 벽사의 상징이 된 것이다.

과거에 호랑이가 산림을 지배했을 때는 호랑이의 껍질, 발톱, 이빨 등의 신체 일부를 지니는 것으로 벽사를 대신했다. 호랑이 발톱을 가지면 천연두에 걸리지 않는다는 믿음이 생겨난 것도 그 때문이다. 사람들은 설날에 벽이나 문에 호랑이 그림을 붙여두면 액을 물리친다고 믿었다. 오죽하면 신부의 신행길 가마 위를 호피로 덮었을까. 조선시대의 호랑이 민화가 상당히 많이 현존하는 점도 그 덕분이다. 수요가 많으니 공급도 많았을 테고 그중의 일부가 현재까지 전해지는 것이다.

호랑이의 능력은 벽사로 끝나지 않는다. 호랑이는 불교와 만나면서 불법을 수호하는 특별한 임무를 맡게 되었다. 산신령의 수호자 또는 대리자가 되었고 산신령 그 자체로도 인식되었다. 이런 상징성을 정치인들이 놓칠 리 없다. 왕이나 지배자들은 자신들의 권위와 위용을 과시하기 위해 호랑이의 상징성을 차용했다. 정치인들은 앞다투어 호랑이 가죽, 호피를 소유했다. 조선시대 공신들이나 사대부 초상화에서는 으레 호피를 깔고 앉은 모습이 전형을 이루었다. 호피는 그 무늬의 아름다움 때문에도 사랑받았지만 호피를 방석으로 깔아 권위를 드러내고자 하는 의도가 더 컸다. 보라. 내가 지금 맹수의 왕인 호랑이를 깔고 앉았음을. 이런 권위의식의 표현이었을 것이다. 그래서 호피무늬를 깐 자리는 상석이나 스승의 자리를 의미한다. 물론 이렇게 호피가 인기를 끈 이유가 단지 무늬의 아름다움과 권위의 상징성 때문만은 아니었다. 호랑이 털은 다른 동물털에 비해 아주 길다. 그만큼 따뜻하다. 지금처럼 따뜻한 패딩이나 파카가 없던 시절에 호피는 최고의 방한복이었을 것이다.

작가미상. ‘까치호랑이’. 종이에 채색. 19세기. 134×80.6㎝. 국립중앙박물관
작가미상. ‘까치호랑이’. 종이에 채색. 19세기. 134×80.6㎝. 국립중앙박물관

대운을 불러오는 호랑이 그림

호랑이는 두려움과 경외심을 불러일으키며 조선시대를 지배하는 키워드가 되었다. 그 날카로운 이빨만으로도 맹수의 위용은 물론 왕의 권위와 산신령의 주술력까지 과시하기에 충분했다. 그러나 조선 산천에 신출귀몰하게 등장했던 호랑이들은 일제강점기에 씨가 마른다. 호피를 구하는 데 혈안이 되었던 일본인들에 의해 조선의 상징이나 다름없었던 호랑이는 멸종되었다. 호랑이의 멸종은 곧 조선의 멸망이나 다름없었다. 그나마 호랑이 민화에서 옛 영화의 아련한 자취를 발견할 수 있을 뿐이다.

최근에 한 케이블TV에서 담요 광고를 보았다. 담요에는 민화 속에 등장하는 까치호랑이가 그려졌는데 이름은 ‘대호대운 호랑이담요’였다. ‘대호대운 호랑이담요’는 찬바람도 한기도 호랑이 기운으로 차단하며 복이 들어온다고 선전한다. 예로부터 민화 속 호랑이는 큰 복을 불러온다는 속설을 강조하는 것도 잊지 않는다. 인왕산호랑이를 그린 ‘대호대운 호랑이담요’를 덮고 임인년에 ‘대운 가득하시라’는 말로 구매를 촉구한다. 그 선전을 보면서 기막힌 마케팅 전략에 저절로 고개를 끄덕였다. 어찌됐든 ‘대호대운 호랑이담요’가 아직도 불티나게 팔리고 있다는 점은 진지하게 살펴봐야 할 문화현상이다. 이 땅에서 호랑이가 씨가 말라버린 지금도 한국인의 뇌리 속에는 여전히 호랑이에 대한 관념이 강고하다는 점이다. 삿된 기운은 막아주고 복은 지켜주는 호랑이와 함께 올 한 해도 만사형통하기를 바라는 마음,그것이 신앙처럼 가슴속에 자리 잡고 있는 것이다.

그런데 허균의 ‘십이지의 문화사’를 보면 인(寅)이 호랑이가 아니라고 한다. 인(寅)이 ‘윤택하다, 이끌어내다’는 뜻의 ‘연(演)’과 같은 글자로 ‘만물이 꿈틀댄다’는 뜻이라고 했다. 따라서 인은 주역의 64괘 중 가장 이상적인 형태인 지천태(地天泰)의 괘라는 것이다. 지천태는 땅을 의미하는 곤(坤)괘가 위에 있고 하늘을 상징하는 건(乾)괘가 밑에 있어 음양이 서로 교류하여 만물을 낳게 하는 상태를 뜻한다. 우리가 생각하는 호랑이와는 전혀 상관없는 해석이다. 그렇다고 전혀 상관없지도 않다. 이미 많은 사람들이 인을 호랑이로 인식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믿으면 그렇게 된다. 일종의 집단 무의식이라고 할 수 있다.

큰물에 빠진 호랑이의 생존법

임인(壬寅)은 ‘검은 호랑이’로 또는 ‘물에 빠진 호랑이’로 해석할 수 있다. ‘임(壬)’은 천간 중에서 북쪽에 해당한다. 북쪽은 오행으로 보면 물이고 그 색은 검다. 그래서 임인은 두 가지 의미로 해석이 가능하다. 호랑이가 물에 빠졌다. 물도 보통 물인가. 큰물에 빠졌다. 계(癸)가 작은 물이라면 임(壬)은 큰물이다. 실개천 같은 가느다란 물줄기가 ‘계’라면 장강이나 바다처럼 큰물이 ‘임’이다. 호랑이는 산이나(甲寅) 땅을(戊寅) 딛고 서 있어야 위용을 떨치는데 물에 빠졌다. 제자리를 떠났으니 호랑이의 포효소리가 제아무리 우렁차다 해도 뭍짐승들을 제압하기가 만만치 않을 것이다. 올 한 해가 작년 못지않은 여러 문제로 여전히 힘들 것이란 예상이 가능하다.

물은 생명을 살릴 수도 있고 죽일 수도 있는 양면성을 지녔다. 세계 4대 문명인 황하, 이집트, 메소포타미아, 인더스문명이 모두 물가에서 탄생했다. 물이 대지의 곳곳에 스며들어야 토지가 비옥해져 곡식이 자란다. 이것은 물이 가진 긍정적인 측면이다. 홍수가 나서 물난리가 나면 비옥했던 땅도 초토화된다. 물이 가진 위험한 측면이다. 중국의 신화시대에 살았던 우(禹)임금은 물을 잘 다스려 하(夏)나라를 세웠다. 그의 아버지 곤(鯤)은 홍수를 막기 위해 둑을 쌓았으나 대세를 이길 수는 없었다. 반면에 아들 우는 물길을 터서 물이 흘러가게 했다. 물을 다스리려는 자가 경계로 삼아야 할 사례다.

새날이 밝았다. 검은 호랑이의 해가 열렸다. 진짜 임인년은 설날부터 시작되니까 아직은 한 달 정도의 준비기간이 남아 있다. 그 기간 동안 새해의 살림살이에 대한 밑그림을 잘 그려야 한다. 큰물에 빠진 호랑이는 물길을 거슬러 허우적거릴 것인가. 아니면 물길을 잘 이용해 무사히 빠져 나와 백수의 왕의 위엄을 드러낼 것인가. 질병이든 인간사든 올해가 분수령이 될 것이다. 올해 어떻게 하느냐에 따라 그 영향이 내년까지 미칠 것이다. 2023년인 계묘(癸卯)년은 임인년의 큰물이 휩쓸고 간 잔물결(餘波)이 남는 해다.

위태위태하지만 믿는 구석도 없지 않다. 호랑이가 어떤 동물인가. 산신령에 가까운 맹수의 왕이 아닌가. 그 어떤 삿된 귀신도 접근을 못하는데 무엇이 무섭겠는가. 그런 기백으로 나아간다면 아무리 거센 큰물이 덮쳐도 슬기롭게 헤쳐나갈 수 있을 것이다. 우리 뒤에는 당당하게 버티고 선 ‘임인년 호랑이’가 있지 않은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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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정육 미술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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