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체 내부의 암세포를 확대한 사진. ⓒphoto 셔터스톡
인체 내부의 암세포를 확대한 사진. ⓒphoto 셔터스톡

한국인 사망원인 1위를 기록하고 있는 암. 암은 치료과정이 고통스럽고 오래가기 때문에 모두가 피하고 싶은 병이다. 암세포만 쏙쏙 골라 죽이는 환자 맞춤형 항암치료법은 없을까. 이제 그 길이 열렸다. ‘신델라(CINDELA·Cancer specific INDEL Attacker)’라는 암치료법이 개발된 덕분이다. 한마디로 정상세포 손상 없이 암세포만 선별하여 사멸하는 방식의 치료법이다.

신델라 치료법을 개발한 IBS 유전체항상성연구단 명경재 단장. ⓒphoto 김종연 영상미디어 기자
신델라 치료법을 개발한 IBS 유전체항상성연구단 명경재 단장. ⓒphoto 김종연 영상미디어 기자

변이된 DNA 이중나선만 골라 잘라내

지난 2월 23일 기초과학연구원(IBS) 유전체항상성연구단이 부작용 없이 모든 종류의 암에 적용할 수 있는 암치료법 ‘신델라’를 개발했다고 밝혔다. 크리스퍼-캐스9(CRISPR-Cas9)이라는 3세대 유전자가위를 이용해 암세포에만 존재하는 돌연변이 DNA의 이중나선만 선택해 잘라내는 치료법이다. 암세포는 DNA의 염기서열(A, C, G, T 등 4가지의 패턴)에 변화가 발생한 돌연변이 세포다. 염기가 삽입·결손(InDel)되어 염기서열 틀이 바뀐다. 이 손상된 염기서열을 복구시키는 새로운 기술들이 꾸준히 나오고 있지만 암은 여전히 치료가 쉽지 않다.

현재 암에 가장 효과적인 치료법은 외과수술과 화학항암제, 방사선 요법이다. 각각의 치료법은 암의 종류나 위치, 진행 상태, 환자의 건강 상태에 따라 결정한다. 문제는 이들 치료법이 암세포뿐 아니라 조직, 정상세포의 DNA 이중나선까지 손상시키는 부작용을 일으킨다는 점이다. 암의 성공적인 치료는 부작용 없는 완전한 제거나 모든 암조직의 파괴다. 그러한 기능을 부여한 것이 바로 크리스퍼-캐스9이다.

크리스퍼-캐스9은 우리가 사용하는 진짜 쇠붙이 가위가 아니다. DNA 염기서열을 인식, DNA 이중나선 가닥을 원하는 위치에서 잘라내는 단백질 효소다. 질병 대부분이 DNA에서 염기 하나가 바뀌면서 발생하는데, 유전자가위 크리스퍼-캐스9은 돌연변이가 일어나 염기서열이 뒤바뀐 DNA를 골라서 잘라낼 수 있다. 한마디로 동식물 세포의 유전자 교정 도구인 셈이다.

크리스퍼-캐스9은 최근 생명과학계에서 가장 ‘핫’한 기술로 꼽힌다. 크리스퍼(CRISPR)는 원래 세균의 면역체계에서 비롯된 학술 용어다. 세균이 천적 바이러스의 침입을 받게 될 경우 바이러스 DNA를 잘게 자른 다음 그 조각을 자신의 유전체에 삽입해 둔다. 이것이 크리스퍼다. 그런데 흥미롭게도 DNA 형태로 기억해둔 이 부분에서 작은 RNA가 만들어지고, 이것은 캐스9이라는 세균 자체의 단백질과 결합한다. 이후 같은 바이러스가 다시 침입하면 RNA가 바이러스 DNA를 찾아내 결합한 다음 캐스9이 이를 잘라내 바이러스 복제를 차단하는 것이다.

‘캐스9’ 단백질을 찾아낸 사람은 미국 버클리대의 다우드나 교수와 독일 하노버대 카펜디어 교수다. 2012년의 일이다. 이때부터 생명과학자들은 크리스퍼를 새로운 유전자가위로 개발하기 시작했고, IBS 유전체항상성연구단의 연구진이 제작한 유전자가위도 그중의 하나다.

연구진은 생물정보학 분석을 통해 유방암, 결장암, 백혈병, 교모세포종 등 여러 암 세포주에서 정상세포에서는 발견되지 않는 고유의 InDel(삽입·결손) 돌연변이를 찾아냈다. 이어 이를 표적으로 하는 획기적인 크리스퍼-캐스9 유전자가위를 제작한 뒤 생쥐 실험에 적용했다. 생쥐의 암세포와 정상세포에 크리스퍼-캐스9을 침투시킨 것이다.

결과는 놀라웠다. 크리스퍼-캐스9이 암세포만 선택적으로 찾아내 잘라버렸다. 유전자가위에는 암세포에만 존재하는 특정의 InDel 돌연변이를 인식하는 ‘가이드RNA’ 분자가 붙어 있어 DNA 염기서열 중 변이된 부위를 찾아낼 수 있다. 원하는 유전체 부위를 인식하기 위해서는 가이드RNA가 꼭 필요하다. InDel 돌연변이만을 특이적으로 잡아낼 수 있는 이 기술에 연구진은 특별히 ‘신델라’라는 이름을 붙였다. 작은 RNA가 DNA 염기서열을 인식하고 ‘캐스9’단백질이 자른다. DNA가 조각나면 암세포는 사멸된다. 기존 암 치료의 한계를 뛰어넘는 효과다. 이를 통해 신델라 치료법이 암세포를 맞춤형으로 사멸시킬 수 있음이 입증됐다.

캐스9에 결합하는 RNA를 바꾸면 바이러스 유전자의 염기서열도 자를 수 있다. 유전자 코드 라인에 절단효소가 연결되어 있는 셈이다. 이는 곧 질병을 유발하는 비정상적 유전자를 잘라내 다양한 질병도 근본적으로 치료할 수 있음을 의미한다.

새로운 암 치료법인 신델라는 암세포에 존재하는 InDel 돌연변이만 공격하기 때문에 정상세포에는 전혀 영향을 미치지 않는다. 연구진은 신델라 기술로 InDel 돌연변이의 DNA 이중나선을 많이 절단할수록 암세포 사멸 효과가 크고, 암세포의 성장을 억제할 수 있다는 사실 또한 확인했다.

임상시험 거쳐 상용화 목표

기존에도 유전자가위를 이용한 암 치료에 성과가 나왔지만 비효율적이었다. 각각의 암을 일으키는 돌연변이를 찾아 그 원인을 밝히고, 변이된 염기서열을 정상으로 되돌리는 유전자가위를 별도로 제작하는 방식이어서 치료 과정이 복잡하고 시간이 오래 걸렸다.

반면 신델라는 모든 암 형성 과정에서 공통으로 만들어지는 InDel 돌연변이의 DNA 이중나선만 자르기 때문에 어떤 암이든 적용이 가능하다. 연구팀을 이끈 명경재 단장(울산과학기술원 바이오메디컬공학과 특훈교수)은 신델라 기술이 모든 암에 적용할 수 있는 환자 맞춤형 플랫폼이 될 것이라고 말한다. 어떤 암에 걸렸든 또는 암이 재발되었든, 각종 암세포의 돌연변이 특성에 관계없이 암세포와 정상세포 DNA 염기서열의 차이를 비교해 변이된 서열을 선택적으로 공격, 부작용 없이 치료할 수 있기 때문이다.

연구팀의 최종 목표는 임상시험을 통한 신델라의 상용화다. 이를 위해 실제로 암에 걸린 환자로부터 직접 채취한 암세포에 신델라를 적용해 치료하는 실험을 진행하고 있다. 비록 실험 상태이긴 하지만 90%라는 높은 치료 효과를 보이는 것으로 알려졌다. 크리스퍼-캐스9이 정말 정확하게 표적 염기서열을 잘라내느냐 여부는 이미 사람의 DNA를 유전자가위로 잘라낸 뒤 다시 이어붙이는 ‘유전체 시퀀싱’이라는 유전공학 기법을 통해 확인한 바 있다.

연구팀은 크리스퍼-캐스9이 암세포에 잘 전달될 수 있도록 전달제 기술에 초점을 맞춰 효율성을 100%로 끌어올릴 예정이다. 또 임상시험 단계를 거쳐 상용화에도 박차를 가할 계획이다. 신델라가 실제 인류의 암 치료법으로 상용화되면 환자 맞춤형 4세대 항암제가 될 것으로 전망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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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형자 과학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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