키이우 오크마데 어린이병원 지하실. 방공호로 쓰이는 이곳에서 어린이 환자와 신생아, 산모 등이 공포에 떨며 지내고 있다. ⓒphoto 뉴시스
키이우 오크마데 어린이병원 지하실. 방공호로 쓰이는 이곳에서 어린이 환자와 신생아, 산모 등이 공포에 떨며 지내고 있다. ⓒphoto 뉴시스

블라디미르 푸틴의 전쟁 광기를 얘기하기 위해서는 키이우(키예프) 어린이병원 지하 신장투석실로 서둘러 내려가 봐야 한다. 복도에 갇힌 침울한 얼굴을 한 20여명의 아픈 아이들이 그곳에 있다. 간혹 절망적인 상태에서도 깔깔대고 웃는다. 그런 모습을 보는 것보다 전쟁의 광기를 이해하기에 더 좋은 것은 없다.

만일 아이들을 러시아군의 포격으로부터 살리기 위해 투석기계에서 떨어뜨려 놓아도 아이들은 죽는다. 그렇다고 아이들을 그대로 둬도 러시아군의 포격이 아이들을 죽일 것이다. 부모들은 아이들에 대한 사랑 때문에 이곳을 떠나지 못하고 있다. 그들은 푸틴의 조준경에 갇혀 있는 셈이다. 그래도 부모들과 아이들은 ‘미치고 미친 추추(Chou-Chou ‘Crazy-Crazy’ the Clown)’라는 별명의 광대 덕분에 깔깔댄다.

키이우 어린이병원에서는 ‘미치고 미친 추추’라고 불리는 광대(오른쪽)가 아픈 어린이들의 벗이 되고 있다. 이 광대는 도네츠크에서 피란 온 여성이다. ⓒphoto 존 스위니
키이우 어린이병원에서는 ‘미치고 미친 추추’라고 불리는 광대(오른쪽)가 아픈 어린이들의 벗이 되고 있다. 이 광대는 도네츠크에서 피란 온 여성이다. ⓒphoto 존 스위니

광대가 웃기는 전쟁터의 아픈 아이들

들것에 누운 예리한 눈매의 12살 소녀는 빨간 코와 온갖 치장을 한 광대가 자신이 아니라 더 어린 아이들을 위한 것임을 알고 쉽게 웃으려 하지 않는다. 그래도 쓴웃음을 짓고 있다. “이름이 뭐냐”고 내가 묻자 “알료냐”라고 대답한다. 내가 잘못 듣고 “엘런?”이라고 되물으니 옆에 있던 광대가 “일론 머스크”라고 놀린다. 나와 소녀는 미국의 로켓맨이 키이우 어린이병원 지하 신장투석실에 마침내 와 있다는 생각으로 같이 낄낄댔다. 광대 추추의 본명은 아나스타샤 칼류하. 그녀는 아이들을 아주 잘 웃겼다.

다음날 다시 병원으로 가서 추추를 찾아냈다. 그녀는 자신도 도네츠크에서 온 난민 중 한 명이라고 소개했다. 그녀의 고향 마을은 우크라이나의 동쪽 끝에 있는데 러시아군이 2014년 점령했다고 했다. 그녀는 “내 생각에 광대는 정치에 개입되어서는 안 되지만 이 전쟁은 반드시 중단되어야 한다”라고 광대에 어울리지 않는 심각한 말도 했다.

자신들은 아무런 죄가 없는데도 전쟁 때문에 자신의 몸에 속박된 아이들에게 아나스타샤가 선물한 기쁨은 어둠 속에서 반짝이는 빛이었다. 이 전쟁의 처음 2주 동안 상황이 매우 암울했던 때가 있었다. 키이우 TV송신탑이 러시아의 미사일에 공격받았을 때가 바로 그때였다. 통행금지 2시간도 전인 저녁 6시에 미사일이 날아왔다. 사람들이 마지막 볼일을 끝내고 집안의 방공호 안으로 서둘러 들어가기 전에 미사일이 떨어졌다. 다음 날 아침 나는 TV송신탑으로 향했다. 길가에서 손을 들어 지나가던 차를 잡아타고 가봤다. 나는 프리랜서 기자다. ‘블라드’라는 운전자가 털털거리는 조그맣고 빨간 스코다에 나를 태워줬다. 우리는 별일 없이 검문소 몇 개를 거쳐 다른 기자들이 오기 전에 TV송신탑 단지 안에 들어갔다. ‘로스트’라 불리는, 후디를 입고 총을 든 험상궂은 친구가 공격받은 TV송신조정센터 건물을 보여줬다. 석조건물은 미사일을 바로 맞아 아주 큰 구멍이 나 있었다. 건물 바로 옆 살짝 뿌려진 눈 위에 사망한 노동자가 흘린 선홍색 피 웅덩이도 있었다.

담요로 덮은 민간인 시체들

로스트가 “푸틴 죽일 놈(Fuck Putin)”이라고 말했다. 나도 “푸틴 죽일 놈”이라고 되받았다. 내가 “당신은 전쟁 전에 뭘 했느냐?”고 묻자 그는 “열기구 조종사였다”고 답했다. 우리는 전쟁의 기이함에 마주 보고 웃었다.

바로 옆 나무 사이로 보이는 바비 야르 기념탑 근처에 미사일이 떨어져 있었다. 바비 야르 기념탑은 유대인 홀로코스트(2차대전 중 독일군에 의해 우크라이나 유대인 3만3771명이 학살당했다) 중에서도 가장 비참했던 총격 대학살을 추모하기 위한 탑이다. 푸틴은 ‘우크라이나 정부는 신나치이고, 대통령과 총리는 유대인’이라고 믿고 있다. 그래서 바비 야르를 공격했다. 나는 푸틴은 캄캄한 상자 안(인의 장막에 싸여 제대로 된 정보가 없다는 말)에서 자신이 하는 일이 뭔지도 이해 못 하고 지렛대들을 움직이는 제정신(미치지 않았다는 뜻)을 가진 배우라고 생각한다. 그중 지렛대 몇 개는 더 이상 작동하지 않고 있다. 그래서 수많은 러시아군이 무기를 버리고 있다.

로스트는 나를 길 건너 단지 안으로 데리고 들어갔다. 두 개의 미사일이 목표를 벗어나 줄지어 있는 상가들을 때려서 불이 났다. 아직도 안에서 불길이 타고 있다. 짙은 연기가 뿜어져 나온다. 노인 한 명과 엄마와 아이 시체가 길에 널려 있다. 시체 안치소의 남자 한 명이 진한 녹색 화물차에서 담요를 찾아서 시체를 덮고 있다. 크렘린은 민간인들을 공격 목표로 삼지 않는다고 하지만 그건 새빨간 거짓말이다. 두 눈으로 민간인 희생자들을 보고 있다.

러시아군의 폭격으로 처참하게 파괴된 키이우 시내. ⓒphoto 존 스위니
러시아군의 폭격으로 처참하게 파괴된 키이우 시내. ⓒphoto 존 스위니

크렘린이 나를 해킹했을까

그래서일까. 한밤중에 마이크로소프트사로부터 내가 해킹당했다는 연락을 받았다. 해커가 크렘린 근처에 있다는데 이 참상을 봤기 때문에 그런 연락을 받았는지도 모른다. 어떤 일이 정확히 일어났는지는 모른다. 실패한 피싱 시도일 수도 있지만 차라리 러시아 해커가 더 나을 수도 있다. 여기에 있으면서 세상의 어떤 뉴스 매체에 실릴지 모르는 영상을 촬영하고 기사를 쓰고 있는 내가 크렘린의 목표가 된다는 일이 너무 자랑스럽다.

지금 전쟁은 푸틴의 뜻대로 전개되지 않는 것이 분명하다. 스탈린은 생애 마지막에 “나는 누구도 믿지 않는다. 심지어는 나 자신도”라고 말했다. 크렘린의 현재 지배자 푸틴도 그럴 것이다. 침공의 갈피를 못 잡는 그들의 혼란은 주로 푸틴이 자신의 의도를 군대와 공유하지 않으려는 데서 기인한다. 현재 그들은 자신들이 가진 모든 것을 우크라이나에 통제되지 않는 방식으로 절망적으로 쏟아붓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크라이나의 다윗은 러시아의 골리앗과 맞서 누구도 예상하지 못할 정도로 잘해내고 있다.

솔직하게 말해 나는 첫날부터 이 전쟁은 푸틴의 엄청난 실수로 증명될 것이라고 이미 말한 바 있다. 왜냐하면 전쟁 첫날부터 지금까지 키이우에는 전기도 잘 들어오고 있고 인터넷도 문제가 없다. 그래서 지금 한국의 주간조선에 내 원고를 메일로 보낼 수 있다. 나는 22년 동안 푸틴을 비난해 왔지만 아직도 여기 이렇게 살아 있다. 이는 주로 영화 ‘제3의 사나이’에서 칼로웨이 소령이 입었던 것과 같은 내 더플코트와 행운의 오렌지색 비니 덕분이라고 생각한다.

나는 절대 러시아 스파이같이 안 생겼는데도 블라드 뎀챈코라는 우크라이나 병사가 나를 체포했다. 지난 금요일 내가 한 일 때문이었는데 정말 짜증나는 일이었다. 사실은 내가 우크라이나 병사들을 촬영했다. 그 일은 분명 잘못된 일이긴 하다. 우리는 서로 고함을 지르며 잠깐 다툼을 벌였다. 그러나 그는 장총을 가지고 있었고 나는 빈손이었다. 나는 곧 총을 가진 우크라이나 전사들에 둘러싸여 의자에 앉아 있을 수밖에 없었다. 그들은 내 여권과 기자증을 검사하고 확인했다. 결국 그들은 우크라이나 정보기관인 보안국 직원을 불렀고, 보안국 직원은 자신이 처리하겠다면서 바로 인터넷에서 내 인적사항을 확인했다.

나는 2014년 말레이시아 항공기의 우크라이나 상공 격추 사건 직후 시베리아의 맘모스박물관에서 푸틴을 만나 차 한잔을 같이 나눈 적이 있었다. 그런 내 기사들을 모두 검색하면서 그들은 내 신분을 확인했다. 보안국 본부에서의 고난은 대단히 긴장된 시간이었다. 그 본부는 러시아군의 두 번째 미사일 공격 목표일 수 있었다. 그러나 그들은 결국 나를 풀어주었다. 그 후 블라드와 나는 절친이 되었다.

어제도 블라드는 러시아군과 싸우려고 키이우에서 20㎞ 떨어져 있는 최전선에 있었다. 러시아군은 소련 시절의 충성스러운 우크라이나를 기대하는 푸틴의 환상을 채워주려고 싸운다. 반면 블라드와 그의 동지들은 지하의 아픈 아이들을 위해 싸운다. 나는 내가 누구의 편인지 안다(I know whose side I am on).

존 스위니 분쟁지역 탐사전문 프리랜서

존 스위니(John Sweeney)는 분쟁지역 탐사전문 프리랜서다. 영국 주간지 옵서버에서 22년간 일했고, BBC의 탐사 프로그램 ‘파노라마’ 기자로도 14년을 일했다. 주로 독재국가(루마니아·리비아·이라크·짐바브웨 등)나 분쟁지역(보스니아·체첸·조지아 등)만을 찾아 취재해 왔다. 그동안 90여개국의 인권 문제와 부패상을 탐사보도해 세계적 명성을 얻었다. 2013년 3월에는 런던 정경대학교 학생 10명과 함께 북한을 다녀오기도 했다. 기자의 신분을 속이고 일행에 끼어들어 북한을 비밀리에 촬영했다. 그의 취재 내용은 BBC ‘파노라마’에서 ‘북한 잠입 탐사기(North Korea Undercover)’라는 제목으로 30분간 방영됐다. 이 프로그램은 당시 500만명이 시청했고 한국에서도 방영되었다. 스위니는 에미상, 국제엠네스티상을 수상한 바도 있다. 참고로 그의 소셜미디어 주소다. ‘트위터: @johnsweeneyroar, 패트리온(Patreon): JohnSweeneyRoar’

존 스위니 분쟁지역 탐사전문 프리랜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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