터키 베르가마에 있는 그리스 고대 유적지 페르가몬 극장. 40도 급경사에 1만명을 수용할 수 있는 규모다.
터키 베르가마에 있는 그리스 고대 유적지 페르가몬 극장. 40도 급경사에 1만명을 수용할 수 있는 규모다.

“세상 전부가 무대다. 남녀 모두 자기의 역할이 있고, (무대로 향하는) 출구와 입구도 있다. 자기 시대에 맞게 수많은 배역을 수행하는 것이 인간이다.”

윌리엄 셰익스피어가 남긴 말이다. ‘인생 무대론’이라고나 할까? 배우나 탤런트의 진짜 능력은 대사와 연기로 결정된다. 보통 인간은 다르다. 대사나 연기를 준비하지도 않고, 생면부지 상황에서 최적·최상의 역할을 보여줘야만 한다. 실패할 경우 맡겨진 배역에서 추락할 수도 있다. 그러나 목숨이 붙어 있는 한 무대는 사라지지 않는다. 출구에서부터 비난의 소리를 듣는다 해도 또 다른 새로운 배역이 기다리고 있다. 장남, 학생, 회사원, 남편, 아버지, 중년, 연금세대로 이어지는, 세월의 변화에 어울리는 역할을 주변에 펼쳐 보이게 된다.

‘간단한 것이 최고의 미덕(Simple is the Best)’이란 말은 고대 그리스 유적지에 갈 때마다 느끼는 명언이다. 도시 계획을 보면, 더할 수도 뺄 수도 없는 최적의 구도로 이뤄져 있기 때문이다. 일반적으로 도시마다 전부 8개의 기능을 갖추고 있다. 최고 정상은 ‘언덕 위 도시’를 의미하는 아크로폴리스(Acropolis)다. 오해하기 쉬운데 아크로폴리스의 주된 기능은 전쟁 때 피란처다. 적에게 밀리면서 마지막까지 도망가서 결사 항전할 공간이 산꼭대기 아크로폴리스의 원래 기능이자 의미다.

적의 공격 피해 높은 곳으로

신전은 아크로폴리스 밑에 들어선 그리스 도시의 중심지다. 도시의 수호신도 있지만, 정치가나 유력자가 경배하는 다른 신전들도 시민들 동의하에 들어설 수 있다. 그리스 신들은 영역 다툼이 없다. 사람들이 쉽게 접할 수 있도록 대리석으로 된 넓은 길이 신전으로 이어져 있다. 신전 근처에는 공공 도서관이 연결돼 있고, 시장 겸 공론장인 아고라(Agora)도 길게 들어서 있다. 선출직 대표자 회의장인 불레우테리온(Bouleuterion)과 도시의 영웅을 추모하는 헤룬(Heroön)도 아고라 주변에서 볼 수 있다. 도시에서 약간 떨어진 남쪽이나 서쪽은 노천극장(Theater·露天劇場)이, 북쪽에는 시민들의 공동무덤인 네크로폴리스(Necropolis)가 자리를 지킨다. 8개 기능을 가진 이런 도시 풍경은 그리스 영토였던 에게해 인근 어디를 가도 만날 수 있다. 항상 신을 모시면서 장사를 통해 일상생활을 하고, 지식도 축적하면서 다수를 위한 정치를 행한다. 도시를 위해 목숨을 바친 희생자들을 추모하면서 시민 개개인도 저세상으로 갈 준비를 한다. 인생에 필요한 모든 것이 압축된 공간이 그리스 도시다.

노천극장은 필자가 주목하는 그리스 도시의 ‘아름다운’ 풍경 중 하나다. 인류 역사상 처음으로 극장을 창조해낸 문화, 문명의 발상지가 바로 그리스다. 노천극장은 시민 모두가 찾는 민주주의의 현장이자, 개개인 삶의 의미와 가치를 확인시켜준 공간이다. 5000년 역사를 자랑하는 한반도지만, 20세기 이전에 대규모 상설 극장이 몇 개나 있었는지 의문이다. 필자의 판단이지만, 대략 5000명 이상 거주하는 그리스 도시라면 노천극장을 반드시 갖고 있다. 그리스 극장은 언덕이나 산중턱 어딘가에 들어서 있다. 아테네의 아크로폴리스가 그러하듯, 적의 공격을 피해 높은 곳에 들어서 있다. 이 과정에서 언덕의 바위를 깎아 극장으로 활용했다.

군사대국 로마는 산이 아니라 평지에 극장을 세웠다. 적을 제압할 압도적 군사력 때문이기도 하지만, 극장을 만들 ‘첨단 신소재’가 탄생하면서 평지로 내려간 것이다. 화산재로 만든 ‘로마 콘크리트(Roman Concret)’가 주인공이다. 큰 대리석이 아니라 작은 돌들을 콘크리트로 연결해 쌓아간다.

페르가몬 유적지를 지키는 에우네메스 3세 동상. 기원전 129년 페르가몬이 로마에 정복당할 때 마지막 왕이었다. 노천극장을 지은 에우메네스 2세의 아들로 마지막까지 로마에 항전해 싸웠다.
페르가몬 유적지를 지키는 에우네메스 3세 동상. 기원전 129년 페르가몬이 로마에 정복당할 때 마지막 왕이었다. 노천극장을 지은 에우메네스 2세의 아들로 마지막까지 로마에 항전해 싸웠다.

40도 급경사에 80열의 관람석

그리스 노천극장의 규모는 놀라울 정도다. 곳곳에서 확인했지만, 극장 수용능력이 도시 거주민 수보다도 많다. 도시 상주인구가 5000명일 경우, 극장 수용능력은 그보다 많은 6000석 정도다. 도시 시민은 물론, 다른 지역 사람들도 원한다면 언제든지 찾을 수 있는 ‘광활한 공간’이 그리스 노천극장이었던 셈이다. 로마는 한층 더 크게 만들어 심지어 노예에게조차도 극장 출입을 허용했다.

그리스 극장은 고대 유적지의 최대 하이라이트다. 최고의 인기 공간인 동시에, 가장 먼저 발길이 닿는 곳이 노천극장이다. 신전이나 아고라조차 대충 보지만, 극장은 반드시 들러 여기저기를 오가며 추억 만들기에 바쁘다. 그리스 유적지는 튼튼한 다리와 건강한 심장을 필요로 한다. 언덕이나 산 위의 도시 전체를 보려면 가쁜 숨과 함께 등산하듯 움직여야만 한다. 실제 낙상(落傷)한 사람들도 몇 번 봤지만, 어느 정도 체력이 보장되지 않는다면 사고를 당할 수도 있다. 그런데도 그리스 유적지의 극장에는 관광객 99%가 들른다. 어른뿐만 아니라 어린아이들도 극장을 좋아한다. 항상 의문이지만, 사람들은 왜 극장에 몰릴까? 이런저런 이유가 있겠지만, 셰익스피어가 말한 인생 무대론이 배경 중 하나일지 모르겠다. 평소 자각하지 못한 채 흘려보낸 인생 무대론이 그리스 극장을 통해 본능적으로 되살아났다고나 할까? 각자의 인생에 투영된 대사와 연기가 다른 사람 눈에는 어떻게 비칠까? 내가 맡은 배역에 대한 신과 인간의 평가는 어떤 것일지? 어제의 역할에 이어 내일은 또 어떤 캐릭터로 변해갈지? 수천 석으로 연결된 텅 빈 공간은 내 인생의 어제와 오늘 그리고 내일을 관찰하는 ‘초대형 거울’로 느껴진다. 다양한 인생 무대 속에서 살아가는 다채로운 자화상을 재발견할 수 있는 공간이 바로 그리스 노천극장이다.

‘세계에서 가장 급경사로 이뤄진 그리스 노천극장’.

터키 베르가마에 있는 그리스 고대 유적지 페르가몬(Pergamon) 극장 모습을 한마디로 압축한 표현이다. 정확히 재보지는 않았지만, 대략 40도 급경사다. 1만명을 수용할 초대형 노천극장이다. 중앙 무대를 기준으로 80열 관람석이 수직 도열해 있다. 서울 세종문화회관의 수용능력은 3000명이다. 한국 최대 규모 극장보다 3배 이상 큰 노천극장이 2000년 전에 건립됐다. 페르가몬은 에게해에서 26㎞ 떨어진 내륙도시다. 바다에 인접한 다른 그리스 도시와 달리, 산속 깊이 들어선 천혜의 요새였다. 그리스 이후 들어선 로마 치하에서는 무려 20만명이 거주했던 에게해, 아니 당시 전 세계 최대 도시 중 하나가 페르가몬이다.

멀리서 바라본 페르가몬 유적지. 해발 335m에 자리 잡고 있다.
멀리서 바라본 페르가몬 유적지. 해발 335m에 자리 잡고 있다.

우산소나무가 있는 풍경

지난 2월 초 페르가몬(베르가마)에 다시 들렀다. 벌써 네 번째 방문이다. 그리스인이 만든 초대형 거울을 통해 필자 스스로의 어제와 내일을 되살피고 싶었다. 에게해에서 내륙의 페르가몬으로 들어가는데 독특한 소나무가 산 전체에 넘실댄다. 한국에서는 볼 수 없는, ‘우산소나무(Umbrella Pine)’로 불리는 독특한 모양의 나무다. 말 그대로 우산을 편 모습으로, 여성들의 파마형 머리가 나무 꼭대기에 붙어 있는 듯하다. 보통 곁가지가 없이 굵은 일직선 중심의 나무 하나만이 우산 모양 소나무 잎들을 지탱하고 있다. 로마나 유럽에서도 간혹 볼 수 있지만, 페르가몬 주변은 우산소나무로 도배를 한 듯하다. 삼각형 한국 소나무와 모양이 전혀 다르다. 둥근 곡선 때문이겠지만, 풍요와 여유가 동시에 느껴지는 신비로운 풍경이다. 나중에 현지인에게 물어봤지만, 에게해 특산물인 소나무 씨앗의 대부분이 우산소나무에서 나온다고 한다. 씨앗 수확을 위해 가지를 인위적으로 쳐주기 때문에 우산 모양 나무로 변신한 셈이다. 분재 역사를 중국에 두는 사람들이 많지만, 에게해야말로 초대형 우산소나무를 활용한 분재의 원조라 부를 수 있을 듯하다.

페르가몬 유적지는 해발 335m에 들어서 있다. 노천극장은 대략 해발 300m 정도에 위치해 있다. 자동차를 타고 들어가는데 언덕 위 노천극장이 보인다. 인간의 손길이 닿지 않은 자연의 일부로 비친다. 평지에 없던 바람이 강하게 불어온다. 페르가몬 바로 밑에 흐르는 강바람으로 인해 달리는 차가 흔들릴 정도다. 페르가몬은 하루 만에 관광을 끝낼 정도의 유적지가 아니다. 필자 기준이지만, 1주일 내내 꼼꼼히 살펴볼 만한 깊고도 넓은 역사의 현장이다. 보통 그리스 유물·유적에 특화한 곳으로는 영국박물관을 가장 먼저 거론한다. 아테네 신전 조각들 대부분이 영국박물관 1층에 전시돼 있다. 총론 차원에서는 맞지만, 각론으로 들어가면 영국이 아닌 독일이 그리스 유물·유적 최고의 명소로 손꼽힌다. 베를린 한복판에 있는 페르가몬박물관이 주인공이다. 페르가몬박물관에는 제우스 신전의 조각은 물론, 에게해 주변 10여개 그리스 도시들의 유물·유적이 전시돼 있다. 양적으로나 질적으로 엄청나다. 베를린 페르가몬박물관에는 독일인이 재현한 제우스 신전이 들어서 있는데, 히틀러는 페르가몬 제우스 신전을 1930년대 나치 전당대회 무대로 활용한 인물이다. 유튜브에서 볼 수 있지만, 히틀러는 2800년 전에 탄생한 제우스 신전과 똑같은 모습의 초대형 무대 위에 서서 1시간 이상 연설을 했다.

티켓을 끊는 즉시 노천극장으로 향했다. 형태만 남은 제우스 신전이 눈에 들어왔다. 우산소나무 세 그루가 신전 한복판을 지키고 있다. 제우스 신전을 지나 오른쪽으로 내려가면 곧바로 극장이 펼쳐진다. 접하는 순간 탄성이 터져나오는 장엄한 모습이다. 인생의 절반을 여행으로 보내는 과정에서 지중해와 에게해의 수많은 노천극장들을 만날 수 있었다. 셀카에는 무심하지만, 극장에 가면 반드시 사진을 남긴다. 인간의 거울로서, 그리스인의 희로애락이 표류하는 성(聖)과 영(靈)의 공간이기 때문이다.

그리스 노천극장은 비슷한 듯하면서도 전부 다르다. 크기, 재료, 높이, 출구, 방향, 경사, 주변 풍경이 전부 다르고 특색이 있다. 전부 인상적이어서 그리스인들의 아름다운 영혼을 느낄 수 있다. 그러나 수많은 노천극장 가운데 페르가몬은 ‘아주’ 특별하다. 보는 순간 압도된다. 깎아지른 급경사의 암반 전부를 극장으로 만든 발상 자체가 대단하다. 페르가몬 극장은 다른 곳처럼 180도 반원형 구도가 아니다. 전체적으로 120도 정도의, 원형의 3분의1로 줄어든 좁은 부채형 공법으로 세워졌다. 180도로 늘릴 만한 공간이 없었기 때문이다. 전부 3층으로 된 구도로, 기원전 1세기 로마가 본격 통치하면서 대규모 확장에 들어갔다. 그리스 노천극장은 규모가 1층에 그쳤는데, 콘크리트를 활용한 로마가 2층, 3층 복층 구조로 바꿨다.

디오니소스 제단에서 본 페르가몬 노천극장. 대부분의 그리스 노천극장은 디오니소스 신전을 끼고 있다. 극장에서 행사가 열리기 전 디오니소스 제단에 살아있는 동물을 공물로 바쳤다.
디오니소스 제단에서 본 페르가몬 노천극장. 대부분의 그리스 노천극장은 디오니소스 신전을 끼고 있다. 극장에서 행사가 열리기 전 디오니소스 제단에 살아있는 동물을 공물로 바쳤다.

로마인들이 쌓아 올린 복층 구조

그리스 극장은 웃고 즐기는 21세기형 극장과 ‘전혀’ 다르다. 보통 와인의 신인 디오니소스(Dionysos)를 경배하고 찬미하는 과정에서 드라마가 공연됐다. 디오니소스는 부활과 자유의 신이다. 제우스의 불륜을 눈치챈 헤라가 어린 디오니소스를 죽이지만, 모두의 도움으로 다시 살아난다. 이후 평생을 여행으로 보내면서 와인을 인간들에게 전파한다. 최후의 만찬 도중, 예수는 와인을 자신의 피라고 말한다. 평생 여행으로 살아간 예수의 행적과 언어가 디오니소스와 비슷할지 모른다. 따라서 그리스 극장은 신을 경배하고 추앙하는 성스러운 곳이다. 인간이 만든 드라마를 지켜보는 고정 관객이 바로 신이다. 로마 이후 검투사들의 피로 얼룩진 ‘잔인한 욕(欲)’의 현장으로 변하지만 원래는 기독교의 교회에 준하는 성스러운 공간이다.

당시 노천극장은 신이 내리는 도덕, 윤리 교육의 현장으로 해석됐다. 성경에도 수차례 등장하지만, 근친상간은 인간의 본능 어딘가에 내재된 어두운 그림자 중 하나다. 오이디푸스 드라마를 보면서, 자신의 얼굴이자 행적이라 느낀 사람이 적지 않았을 것이다. 근친상간을 할 경우 어떤 천벌이 내려지는지를 공개적으로 보여준 현장이 바로 그리스 극장이다. 권력에 도취한 폭군에게는 ‘반드시’ 천벌이 따른다는 교훈도 그리스 드라마의 주된 테마 중 하나다. 나만은 예외가 아니다. 축복이든 천벌이든 ‘신 앞의 평등’이 그리스 노천극장이 갖는 메타포의 핵심이다. 그리스 드라마가 갖는 영원한 매력이기도 하지만, 남이 아닌 나의 얼굴을 비춰 주는 투명한 거울로서의 그리스 비극인 셈이다. 웃고 즐기는 것이 아니라, 두 눈을 부릅뜬 채 하나하나 새겨듣고 관찰해야 할 ‘리얼리티 쇼’의 무대가 바로 그리스 노천극장이다.

페르가몬 노천극장이 처음 등장한 것은 기원전 5세기 때다. 이후 규모가 2000석 정도로 확장된 것은 기원전 2세기 에우메네스(Eumenes) 2세 때부터다. 그리스 왕으로 아폴로를 모신 델피(Delphi) 신전에 노천극장을 헌납한 인물이기도 하다. 79세 장수 왕으로, 38년에 걸친 통치를 통해 페르가몬을 에게해 최고의 문화강국으로 만든다. 페르가몬은 당시 대국으로 떠오른 로마를 동맹국으로 삼아 급성장한다. 그러나 페르가몬 영토가 확장되자 로마가 경계한다. 로마의 경쟁자로 떠오른 에우메네스는 반역자로 몰려 매장된다. 페르가몬의 운명도 에우메네스 몰락과 함께 사양길로 접어든다.

그리스 드라마가 그러하듯 최후는 비극이다. 에우메네스의 위업도, 페르가몬의 영광도 까마득한 과거 역사로 남아 있을 뿐이다. 그러나 노천극장은 21세기인 지금까지 남아 있다. 인간의 희로애락을 대변한 성스러운 공간으로 모두를 반기고 있다. 인간 모두가 배우이자 세상 전부가 무대라는 것이 셰익스피어의 생각이다. 그리스 노천극장은 남이 아닌, 나의 대사와 연기를 스스로 되새겨볼 최적의 무대일지 모르겠다.

유민호 퍼시픽21 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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