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캘리포니아 산타모니카 해변의 일몰 풍경.
미국 캘리포니아 산타모니카 해변의 일몰 풍경.

다소 비일상적인 일상, 소설가 무라카미 하루키는 여행을 이렇게 말했습니다. 그러나 비일상이 일상이 된 요즘은 그 일상을 찾아 여행을 떠나야 할 것 같습니다. 미국 로스앤젤레스(LA)는 너무나 유명해서 ‘일상’처럼 느껴지는 도시입니다. 일 때문에 자주 방문하다 보니 저도 마찬가지였습니다. 그 평범한 도시가 특별해진 순간이 있었습니다.

10여년 전 엄마가 돌아가셨습니다. 늦봄 홀연히 떠나버린 엄마의 빈자리에 불면증이 차지하고 앉았습니다. 불면의 밤은 계절을 넘겨 다섯 달 가까이 이어졌습니다. 몸과 마음은 피폐해졌고 모든 일상이 무너졌습니다. 그 와중에 LA로 출장을 가야만 했습니다. 10시간이 넘는 비행시간 동안에도 두 눈은 말똥말똥했고, 도착하자마자 일정을 소화하느라 바빴습니다. 늦은 밤이 되어서야 허름한 호텔 방에 무거운 몸을 던졌습니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낯선 방에서 안도감이 들었습니다. 그날 저는 마치 잠을 자도 좋다는 허락을 받은 사람처럼 몇 달 만에 처음으로 단잠을 잤습니다. 엄마의 부재로 일상이 뒤바뀌어 버린 집을 벗어나서야 일상의 시계가 다시 작동한 것일까요?

야자수가 즐비한 LA의 거리 풍경.
야자수가 즐비한 LA의 거리 풍경.

그렇게 잠을 자고 난 후 잠자고 있던 나의 감각들도 하나씩 깨어났습니다. 햇살은 눈부시고 공기는 달았습니다. 해질녘 노을을 보는데 “와~”라는 감탄이 저절로 흘러나왔습니다. 산책을 나온 듯한 주민이 저를 보더니 이렇게 말했습니다. “오늘 하늘이 완벽하게 아름답네요. 당신은 운이 좋은 사람입니다.” 낯선 이의 말 한마디에 마음을 조이고 있던 끈이 툭 풀어지는 느낌이었습니다. 특별했던 그날, 그 노을은 나에게는 ‘다소 비일상적 풍경’이었지만 그 주민에게는 일상적인 풍경이었을 겁니다.

한국에서도 전시가 열렸던 미국의 사진가 사울 레이터는 자신이 살고 있는 뉴욕을 30년 동안 찍었습니다. “신비로운 일은 친숙한 장소에서 일어난다고 생각한다. 늘 세상 반대편으로 가야 하는 것은 아니다”라는 그의 말은 그의 사진에 고스란히 담겨 있습니다. 대부분 여행 하면 쉽게 가보지 못한 곳, 알려지지 않은 곳을 먼저 떠올립니다. 사진을 찍을 때도 남들과는 다른 풍경, 새로운 앵글을 찾습니다. 그러나 진짜 자연의 순간은 일상 속에 있습니다. 이날 일몰 시간을 확인하고 30분 전, 산타모니카 해변에 장비를 세팅하고 바다가 어둠을 삼키는 순간을 기다렸습니다. 해질녘은 광량이 풍부하지 않아 너무 감도를 높일 경우 입자가 거칠어질 수 있기 때문에 조리개 값을 맞추고 셔터 스피드를 조절했습니다. 그 이후로도 여러 번 LA를 찾았지만 그날 찍은 노을 사진이 최고입니다. 나를 다시 찾아준 도시, LA는 내게 가장 일상적이면서 가장 비일상적인 도시입니다.

유운상 사진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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