젤렌스키 우크라이나 대통령이 지난 4월 11일 국회도서관 대강당에서 각 정당 대표 등과 의원들이 참석한 가운데 화상 연설을 하고 있다. ⓒphoto 뉴시스
젤렌스키 우크라이나 대통령이 지난 4월 11일 국회도서관 대강당에서 각 정당 대표 등과 의원들이 참석한 가운데 화상 연설을 하고 있다. ⓒphoto 뉴시스

지난 4월 11일 국회에서 우크라이나 젤렌스키 대통령의 화상 연설이 있었다. 참여 인원은 50명 남짓. 박병석 의장을 포함한 의장단의 모습도 찾아볼 수 없었고, 그나마 참석한 의원들도 연설 중에 휴대폰을 들여다보거나 중간에 자리를 뜨는 경우도 있었다. 마침 지난 3월 일본 국회에서도 젤렌스키 대통령의 화상 연설이 있었다. 당시 중의원과 참의원을 합쳐 500명이 넘는 사람들이 참석해 일본 국회에는 빈자리가 없었다. 젤렌스키의 연설은 의원들의 뜨거운 환호로 시작해 기립박수로 끝이 났다. 앞서 영국이나 미국, 프랑스 등에서도 거의 비슷했다. 젤렌스키 대통령과 우크라이나 항전에 국제사회는 열렬한 지지를 보냈다.

 

이광재 외통위원장이 저지른 첫 번째 모욕

대한민국 국회가 보여준 우크라이나에 대한 외교적 결례는 하나가 아니다. 이번에 우리 국회는 우크라이나를 7번에 걸쳐 모욕했다. 당초 국회가 젤렌스키 대통령의 연설을 개최하지 않으려 했던 것이 첫 번째 모욕이다. 국회 외교통일위원회 위원장인 더불어민주당 이광재 의원이 직접 나서 “젤렌스키 대통령의 연설이 국회 차원에서 이루어지는 것은 부적절하다”고 말했을 정도다. 러시아와의 관계를 고려한다는 변명을 했으나, 자유민주주의 진영에 소속된 세계 국가들이 앞다투어 우크라이나에 힘을 보태는 것과는 확연히 대비됐다. 미국과 일본을 향해 ‘단호’ ‘강경’ ‘자립’을 외치던 사람들이 맞는가 싶을 정도로 러시아에 한없이 약한, 기회주의적 친(親)러시아 외교 행보가 노골적으로 드러나는 장면이었다. 그러다 결국 국회와 청와대 청원에서 젤렌스키 대통령을 초청해야 한다는 여론이 압도적으로 커지자 뒤늦게 초청했다.

젤렌스키 초청이 이미 ‘뒷북’이 된 상황에서 국회는 두 번째 무례를 범했다. 국가 원수를 국회에 초청하는 경우 국회 전체 명의로 초청하는 것이 당연하다. 그러나 우리 국회는 여론에 떠밀려 마지못해 젤렌스키 대통령을 초청했다는 것을 증명하기라도 하듯, 국회 전체가 아닌 외교통일위원회 명의로 축소해서 초청했다. 젤렌스키 대통령이 했던 24번의 연설 가운데 국회 또는 국제기구 전체 명의가 아닌 사례는 대한민국이 유일하다. 심지어 연설 장소도 국회 본회의장이 아닌 국회 도서관이었다. 본회의장 대형 스크린을 사용하게 되면 실시간 송출에 문제가 있다는 변명을 했으나, 다른 나라들의 경우 본회의장 내부에 화상 중계 시스템을 새로 설치하거나 기존의 것을 개조하면서까지 본회의장 화상 연설을 고수한 사례가 있다.

젤렌스키 대통령이 연설을 시작하기 전 전 국민의 눈살을 찌푸리게 하는 세 번째 모욕이 벌어졌다. 의전 순서에 따라 3당 원내대표들이 발언을 이어간 것이다. 촌각을 다투며 전쟁을 지휘해야 하는 대통령을 초청해 놓고 국회는 10분 가까이 기다리게 했다. 젤렌스키 대통령의 수면시간은 개전 이후 하루 평균 4시간이 채 안 된다고 한다. 외통위원장인 이광재 의원은 더 나아가 우크라이나 전쟁과는 관계없는 ‘자기홍보성’ 발언까지 연설 내용에 집어넣었다. 젤렌스키 대통령의 이전 23번의 연설에서는 단 한 번도 없던 일이었다.

네 번째 모욕은 젤렌스키 대통령의 연설 중에 일어났다. 연설 시청 장소가 텅텅 비어버린 것이다. 300명의 국회의원 중 고작 50명 정도만이 연설을 듣기 위해 왔다. 국제적 망신이라는 비판이 일자 이광재 위원장은 “의원들 각자 의원실에서 개별적으로 연설을 봤다”는 황당한 소리를 했다.

국회의원들은 보좌진이나 실무진을 대신 배석하게 하는 최소한의 예의조차 갖추지 않았던 것이다. 참여한 50인은 어떠했는가? 연설을 다 듣기도 전에 중간에 떠나버리거나, 잠을 자거나, 전화를 받거나, 휴대폰을 보는 장면도 실시간으로 국민들에게 생중계됐다.

다섯 번째는 더불어민주당 이용빈 의원의 발언이다. 모든 나라들이 젤렌스키 대통령의 연설이 끝난 후 기립박수로 응원한 반면, 우리 국회에서는 아무도 기립박수를 하지 않은 채 이용빈 의원의 부적절한 발언이 이어졌다. 이용빈 의원이 한 이야기는 지금 벌어지고 있는 우크라이나 전쟁과는 관련성이 매우 낮은 홍범도와 고려인에 집중됐다. 세계가 우크라이나 사람들이 겪는 전쟁의 참상에 아파하는 와중에 대한민국 국회의원은 우리 민족의 이야기만 꺼내든 셈이다. 대단히 협소한 외교적 인식이라고 하지 않을 수 없다. 대한민국 주재 우크라이나 대사와 외교관들은 그 모습을 현장에서 지켜보고 있었다.

여섯 번째도 가관이다. 오후 5시로 예상된 젤렌스키 대통령의 연설이 있기 4시간 전인 오후 1시에 푸틴을 지지하는 연구자가 포함된 학술토론행사가 국회에서 열렸다. 이 학술토론행사를 공동개최했던 더불어민주당 국회의원 8인 중 김영호 의원을 제외하면 모두 운동권 경력이 있는 사람들로, 친북·친중·친러 그리고 반(反)서방 행보를 보여왔던 사람들이다. 그 학술토론행사에는 “학살은 우크라이나에 이익이 됐다”면서 우크라이나에서 벌어지는 학살이 조작일 수 있다는 것으로 해석되는 주장을 한 인사도 포함되어 있다. 그런 사람이 포함된 토론회가 젤렌스키 대통령의 연설을 앞두고 버젓이 있었다는 것은 우크라이나에 대한 심각한 모욕이다.

 

연설 도중 잠자던 의원 ‘졸리지만 검수완박’

마지막 일곱 번째는 최소한의 수오지심도 없는 조정식 의원의 이야기다. 조정식 의원은, 젤렌스키 연설 중에 잠을 잤다. 그것도 커다란 결례인데, 그는 한술 더 떠서 잠을 자는 사진을 자신의 소셜미디어(SNS)에 게시하면서 ‘졸리지만 검수완박’ 하겠다며 외교적 무례를 호도했다.

이미 대선과정에서도 더불어민주당은 친북·친중·친러, 반서방 성향을 노골적으로 드러내며 젤렌스키 대통령을 조롱했다. 이재명 후보를 비롯한 민주당 인사들은 ‘우크라이나가 러시아를 자극했기 때문에 침략당했다’는 식의 망발을 했고, 윤석열 후보를 공격하는 과정에서 젤렌스키를 ‘초보 대통령’으로 폄훼하고 ‘코미디언 대통령’이라며 조롱했다. 이는 세계적 인터넷 게시판인 ‘레딧’에서도 회자되면서 국제적 망신을 샀다.

우리 국회가 우크라이나에 저지른 7가지의 심각한 모욕은 외교적으로 비난받아 마땅하다. 거기에는 국민의힘도 자유로울 수 없다. 젤렌스키 대통령의 연설장에는 국민의힘 의원들도 참여가 저조했고, 참여한 인원들조차 그의 말을 경청하지 않았다. 정권이 교체된 이상 당선인과 여당 모두 책임이 있다. 앞으로가 문제다. 국제사회에서 대한민국의 윤리적 호소력은 약해질 것이다. 자유민주주의 진영 사이의 끈끈한 연대는 그저 여기저기 눈치본다고 지켜지는 것이 아니다. 힘을 합칠 때 확실하게 합치고, 단호하게 대처할 때는 함께 단호해야 한다. 게다가 문재인 대통령은 해외 방문 때마다 한반도의 평화를 응원해 달라며 읍소했다. 심지어 아프리카 감비아에서조차 한반도 평화를 읍소했다. 그러나 정작 우리는 다른 나라의 평화에는 이처럼 무관심했다. 부끄러움은 왜 늘 국민이 감당해야 하는가.

김재섭 국민의힘 전 최고위원·도봉갑 당협위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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