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4월 6일 사망한 극우민족주의 정치인 지리노프스키(오른쪽)는 푸틴 대통령(왼쪽)으로부터 국가 최고훈장을 받았다. ⓒphoto 뉴시스
지난 4월 6일 사망한 극우민족주의 정치인 지리노프스키(오른쪽)는 푸틴 대통령(왼쪽)으로부터 국가 최고훈장을 받았다. ⓒphoto 뉴시스

지난 2월 24일 우크라이나를 침공한 러시아군은 수도 키이우 공략을 포기하고 동부의 돈바스 공략에 집중하고 있다. 미국과 유럽의 지원을 받는 우크라이나의 저항도 완강하여 개전 3개월이 다가오는 4월 20일 현재 종전의 기미는 보이지 않고 있다. 5월 9일 러시아의 전승절 이전에 승부가 난다는 주장도 있지만 올해 연말까지 또는 그 이후 수년간 전쟁이 지속될 가능성도 제기되고 있다. 전쟁이 길어질수록 원자재와 식량가격의 급등 등 국제경제에 대한 파장도 장기화될 가능성이 커진다. 서방에서는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의 독재를 소련 독재자 스탈린의 스탈린주의(Stalinism)에 빗대 푸틴주의(Putinism)라고 부르기도 한다. 푸틴주의의 사상적 배경으로 러시아 민족주의(Nationalism)가 지적되기도 한다. 러시아가 유럽과 아시아 대륙을 지배해야 한다는 유라시아주의(Eurasianism)를 주장하는 신비주의 정치철학자 알렉산드르 두긴(60)이 푸틴의 브레인이라는 분석도 나온다.

서구주의 vs 슬라브주의

러시아 사회에서는 전통적으로 유럽을 지향하는 서구주의와 러시아의 전통을 고수하는 슬라브주의 간의 갈등이 지속되어 왔다. 소련 건국 이후에는 사회주의 이념 때문에 두 이념의 갈등은 드러나지 않았다. 소련의 마지막 지도자인 미하일 고르바초프 공산당 서기장은 소련이 유럽의 일원이 되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는 소련이 나토(북대서양조약기구)에 가입할 수 있다는 입장을 보이기도 했다. 고르바초프에 이어 러시아의 첫 대통령이 된 보리스 옐친도 서구 지향 정책을 추진하였다. 두 지도자의 급진적인 서구적 개혁정책이 러시아 대중의 삶을 신속하게 개선하는 데 실패하면서 슬라브주의를 바탕으로 옐친에 반발하는 인물들이 주목을 받게 되었다.

소련 시절 반체제작가의 대명사였던 알렉산드르 솔제니친(1918~2008)은 옐친을 비판하고 푸틴을 지지했던 대표적 인물이다. ‘이반 데니소비치의 하루’ ‘암병동’ 등의 소설을 통해 공산주의를 비판한 솔제니친은 1970년 노벨문학상을 받았지만 소련으로부터 추방당해 미국에서 살았다. 그러나 그는 미국에 정착한 후 서구 사회의 과도한 물질주의, 기독교 정신의 상실 등을 비판하였다. 솔제니친은 소련이 몰락한 이후 러시아로 귀국했다. 솔제니친은 서구적인 급진개혁을 추진하는 옐친 정부가 러시아를 질곡으로 몰아넣고 있다고 비판하며 옐친이 수여하는 훈장도 거부하였다. 그는 “러시아는 공산주의로부터 가장 불행하고 기이한 방식으로 탈출하였다”고 안타까워하였다.

그러나 솔제니친은 푸틴에 대해서는 분명한 지지를 표하였다. 그는 푸틴 정권하에서 러시아는 러시아다움을 되찾고 있다고 찬양하기도 했다. 또 나토의 동진(東進)을 비판하였다. 그는 일찍이 우크라이나의 독립에 대해서도 러시아와 인척관계인 수백만 명의 사람들이 두 나라가 군사적인 진영이 다르다는 이유로 이산가족이 될 가능성을 우려하였다. 푸틴은 2007년 솔제니친의 집으로 찾아가 국가 최고훈장을 수여하였다.

많은 러시아인들이 미국과 대립하던 초강대국 소련을 그리워하지만 푸틴은 소련을 복원한다는 생각은 하지 않고 있다. 그는 “소련 붕괴를 안타까워하지 않는 사람은 심장이 없는 사람이고, 소련을 옛날 그대로 되살리고자 하는 사람은 뇌가 없는 사람이다”라고 말한 바 있다. 이 때문인지 푸틴 시대에는 제정러시아의 반공 정치철학자 이반 일린(1883~1954)이 각광받는 기현상도 벌어졌다.

일린은 러시아 공산혁명은 “러시아 역사상 최악의 재앙”이라고 평가한다. 푸틴이 소련의 붕괴가 “20세기 최악의 지정학적 재앙”이라고 강조한 것과 표현이 비슷하다. 일린은 볼셰비키혁명 이후 반공활동을 벌였다는 이유로 수차례 투옥되다가 1920년에 독일로 추방되었다. 일린은 슬라브주의에 입각한 보수적 정치철학자로 러시아를 공산혁명이라는 비극으로 이끈 요인은 러시아인들의 “나약하고 상처받은 자존감”이 국가와 국민 간에 상호불신을 유발한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그는 러시아 국민들 사이에 만연한 사유재산에 대한 부정적 태도도 공산혁명의 원인이 되었다고 지적했다.

공산주의에 대한 대안으로 일린은 러시아인들이 종교와 도덕성에 바탕을 둔 법치와 양심을 회복할 것을 제시하였다. 전체주의와 형식적 민주주의 모두에 반대하는 제3의 길을 추구한 것이다. 러시아정교, 애국주의, 법치주의, 사유재산제 등이 일린이 제시한 대안이었다.

푸틴의 배려로 2005년에는 일린의 저작집이 모스크바에서 출판되었다. 일린의 유해는 2009년 스위스 제네바에서 모스크바로 귀환되어 돈스코이수도원 묘지에 매장되었다. 당시 푸틴은 자신도 사망하면 돈스코이수도원 묘지에 묻히고 싶다고 말했다.

유라시아주의에 기운 러시아인들. 왼쪽부터 제정러시아 시대 반공 정치철학자 이반 일린, 소설가 솔제니친, 푸틴의 브레인으로 평가받는 정치철학자 알렉산드르 두긴. ⓒphoto 위키피디아·뉴시스
유라시아주의에 기운 러시아인들. 왼쪽부터 제정러시아 시대 반공 정치철학자 이반 일린, 소설가 솔제니친, 푸틴의 브레인으로 평가받는 정치철학자 알렉산드르 두긴. ⓒphoto 위키피디아·뉴시스

“폴란드를 폐허로 만들어야 한다”

최근 사망한 블라디미르 지리노프스키(1946~2022) 역시 슬라브주의에 입각한 반서구 성향의 대표적 인물이다. 그는 소련 붕괴 직후 극우민족주의자로 분류되며 가장 주목받는 포퓰리스트 정치인 중 한 명이었다. 극우민족주의 정당인 자유민주당을 창당한 그는 유대인이면서도 유대인을 “말썽 많은 족속”이라고 비판했다. 지리노프스키는 1990년대에 서구에 대한 군사적 공격을 주장하는 등 격렬한 반(反)서구 정책을 주장하였다. 이 때문에 할리우드에서는 ‘크림슨 타이드’(1995), ‘에어포스 원’(1997) 등 러시아 극우 민족주의자들의 준동을 담은 내용의 영화들이 제작되기도 하였다.

지리노프스키는 ‘유라시아주의’로 분류될 수 있는 주장을 일찍부터 했다. 지정학적 관점을 강조한 그는 러시아가 인도양과 지중해까지 진출하는 것만이 “러시아 민족을 구원하는 유일한 길”이라고 주장하는가 하면, 러시아가 아프가니스탄, 이란, 터키를 지배하게 될 것이라고 강변하였다. 그는 또 러시아가 무력을 동원해서라도 구소련의 영토는 물론 폴란드와 핀란드까지 차지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는 특히 “폴란드에 융단폭격을 가해 폐허로 만들어야 한다”고 극언했다. 지리노프스키는 “러시아와 우크라이나는 한 민족이며 서구가 적(敵)”이라고 강조했다.

1990년대 러시아 국민들은 초강대국 소련의 국민에서 가난한 러시아의 국민으로 전락하여 곤궁하게 살았다. 소련 국민일 때는 활개치며 동유럽을 여행했지만 소련 붕괴 이후에는 불청객으로 차별받기 일쑤였다. 러시아 국민들에게 지리노프스키의 황당한 주장은 현실적 고통을 잠시나마 망각하게 만드는 판타지처럼 작용하여 선풍적 인기를 끌었다.

지리노프스키 역시 푸틴을 지지하였다. 푸틴도 그에게 국가 최고훈장을 수여했다. 특히 지난 4월 6일 그가 사망하자 푸틴은 장례식장을 직접 찾아가 조의를 표하는 등 극진히 예우하였다. 그의 유해는 모스크바에서 최고 저명인사들의 묘지인 노보데비치수도원 묘지에 안장되었다. 이곳에는 개혁파 지도자였던 니키다 흐루쇼프 소련 공산당 서기장, 보리스 옐친 대통령 등의 묘소가 있다.

최근 들어 지리노프스키의 유라시아주의와 가장 흡사한 주장을 펴는 인물이 정치철학자이며 신비주의자인 알렉산드르 두긴이다. 두긴은 최근 ‘푸틴의 브레인’이라는 평가를 받을 정도로 주목받고 있다. 지리노프스키가 ‘러시아가 터키와 이란을 지나 인도까지 세력을 확장해야 한다’는 남쪽 팽창론을 주장한 데 더해 두긴은 아일랜드에서 블라디보스토크까지 유라시아 대륙 전체를 러시아가 차지해 미국에 대항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현대판 라스푸틴 두긴

두긴은 미국과 서구적 자유주의에 반대하며 스탈린과 소련을 옹호한다. 서방 학자들은 그의 주장이 나치즘이나 파시즘에 근접하고 있다고 평가한다. 그는 스스로를 보수주의자로 자처하며 국가, 가족, 교회 등의 전통적인 가치와 애국심을 중시한다. 두긴은 장발에 긴 수염을 늘어뜨리고 다니는 데다 러시아의 영혼을 워낙 강조하기 때문에 ‘현대판 라스푸틴’이라고 불리기도 한다.

두긴은 “푸틴을 비판하는 사람은 정신병자들뿐”이라고 할 정도로 맹렬하게 푸틴을 지지한다. 그는 “미 제국주의의 궁극적 목표는 미 제국주의가 악의 제국을 건설하는 데 마지막 장애물인 러시아”라고 주장한다. 그는 러시아 정부 내에 암약하는 미제국주의의 ‘제5열’들이 러시아를 약화시키고 외세에 넘기기 위해 부단히 애쓰고 있다고 주장한다. 때문에 러시아는 단결하여 이에 대처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는 일찍부터 “러시아의 부흥을 가로막는 유일한 장애물은 우크라이나”라며 우크라이나에 대한 무력 공격과 우크라이나 독립 불인정 등을 선동해왔다.

두긴은 이번 전쟁 이후인 지난 4월 12일에는 “우크라이나에서의 특수작전이 신(新)세계질서를 보여줄 것”이라고 주장하며 (미국 주도의) “일극체제에 도전하게 될 것”이라고 주장하기도 했다. 그는 “러시아군은 지금 일극체제를 강요하는 강대국들과 싸우고 있다. 우리는 이 전쟁에서 패할 수 없다. 패한다면 전 세계는 화염에 휩싸이게 될 것이다”라고 말했다. 러시아군이 키이우 공략을 중단하고 철수한 것도 “임시상황”이라고 설명하고 전쟁의 목표에 대해서는 다음과 같이 덧붙였다. “군대가 준비를 완료하면 돈바스가 먼저 소탕될 것이다.… 돈바스나 우크라이나의 특정지역 일부를 통제하는 것은 러시아의 승리가 아니다. 우리 병사들은 우크라이나 전역에 미리 정해둔 목표물들을 파괴하고 안전이 확립된 이후, 또는 젤렌스키(우크라이나 대통령)가 항복한 이후에나 비로소 귀환할 것이다.” 러시아가 우크라이나 전역을 차지하는 것이 목표라는 의미이다.

러시아의 이 같은 목표에 대해서는 우크라이나도 이미 잘 알고 있는 듯하다. 우크라이나의 유력 정치인인 율리야 티모셴코 전 총리는 지난 4월 18일 우크라이나 프라우다와의 인터뷰에서 푸틴의 행동에 대해 다음과 같이 예상했다.

“나는 총리 시절 푸틴과 여러 차례 만났으며, 토론도 하고, 합의도 해보려고 시도한 바 있다. 지금 내가 분명히 말하는데 그는 결코 중단하지 않을 것이다. 푸틴이 살아 있는 한 그는 결코 우크라이나 정복을 포기하지 않는다. 그가 원하는 것은 돈바스나 크름반도나 영토 분할이 아니다. 그는 우크라이나 전역을 차지하려 한다. 내가 푸틴을 잘 알고 하는 말이다. (그에게는) 협상이 있을 수 없다.”

티모셴코는 러시아와의 평화협상도 비판적으로 평가한다. 러시아 측이 협상을 하는 이유는 “우크라이나군의 사기를 저하시키고 전투의지를 약화시키기 위한 것”이라는 주장이다. 러시아에 “협상의 목표는 평화가 아니라 우크라이나를 약화시키는 것”이라는 설명이다. “협상은 우리를 약하게 만들려는 계략임을 우리 지도자들은 명심해야 한다. 러시아가 우리에게 강요하는 협상 조건은 우리의 주권을 파괴하는 것이다. 협상하면 국가발전과 강력한 안보체제를 만들어 내려는 우리의 전략에 제한이 가해진다. 우크라이나의 군대만이 우크라이나의 평화를 보장해주는 유일한 수호자이다.”

전쟁 이후 푸틴에 대한 러시아인들의 지지율이 83%까지 올랐지만, 젤렌스키에 대한 우크라이나인들의 지지율은 93%로 나타났다. 높은 지지율은 두 나라 지도자들이 전쟁에 올인하게 만드는 요인 중 하나로 볼 수 있다.

푸틴이 니콜라이1세와 닮은 이유

우크라이나 프라우다는 지난 4월 17일 두긴 등 러시아의 유라시아주의자들을 염두에 둔 듯 “영불해협까지 위협하던 러시아 군대는 우크라이나의 키이우에도 도달하지 못했다. 유럽을 파괴하기로 되어 있던 러시아 군대는 키이우도 파괴하지 못했다. 푸틴은 지금 부끄러워해야 마땅하다. 그는 공포를 조장하기 위해 수십억 달러를 썼지만 조롱당하는 신세로 전락했다”고 비난했다. 이 미디어는 푸틴이 2차대전을 ‘대애국전쟁’이라 부르면서 애국심을 종교로 만들어 정통성을 이끌어냈다고 분석했다. 이어 “러시아는 나치스에 대한 승전의 후계자라고 지속적으로 선언하고 이를 바탕으로 외부 세계에 대해 양보를 요구했다. 그러나 지난 2월 24일 이후 러시아는 전승자들이 아닌 패배자(나치스)를 승계하게 될 것이다.… 푸틴은 러시아를 빠르게 늙어가는 추악한 걸프렌드로 변모시켰다.”

미국 오클랜드대학의 숀 케네디 교수 등은 푸틴이 민족주의를 통해 권위주의 체제를 정당화했다는 점에서는 제정러시아의 니콜라이 1세와 비슷하다고 평가를 내리기도 했다. 그는 “니콜라이 1세나 푸틴은 서구적 개념인 민족주의와 민주주의라는 말을 사용하지만 자신들의 지배를 정당화하기 위하여 국가주의적인 관념을 부여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니콜라이 1세가 러시아정교, 차르의 권위, 민족을 강조했다면 푸틴은 애국심, 대통령 권력, 국가주의를 강조하며 독재를 정당화하고 있다는 것이다. 그는 푸틴의 정책과 언어가 니콜라이1세와 유사하다고 강조했다.

영국의 러시아 사학자인 올랜드 파이지스 역시 푸틴의 우크라이나 침공이 니콜라이 1세의 크름전쟁과 흡사하다고 주장한다. 그는 니콜라이 1세가 교권을 명분으로 전쟁을 벌였지만 국제적으로 고립되며 결국 실패했다면서 푸틴의 전쟁도 국제적 고립을 초래하여 결국은 실패로 끝나게 될 것이라고 예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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