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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짜 펍(Pub)문화는 놀고 소통하는 것

젊은 무명 가수들이 이곳을 찾는 이유

글 | 김정현 주간조선 기자


                                    
지난 4월 8일 오후8시 서울 광진구 건국대 앞 ‘맛의 거리’는 젊은 사람들로 붐볐다. 아직은 찬공기가 시원하게 코를 때리는 계절이지만 가벼운 차림의 여자들도 쉽게 눈에 띄었다. 대학생으로 보이는 무리의 경쾌한 발걸음에 기분이 들떴다. 술집을 찾는 사람들과 사람을 찾는 술집이 서로 뒤엉켜내는 질척한 잡음도 나쁘지 않았다. 호객행위를 하던 한 아주머니는 내게 전단지를 건네며 소주 한 병을 공짜로 줄 테니 와서 잡숴보라며 넉살 좋게 웃어 보였지만 정중히 사양하고 가던 길을 갔다. 네온사인 그득한 술집으로 덕지덕지 늘어선 대학 유흥가지만 내가 가고자 했던 곳은 일반 술집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내가 가고자 했던 곳은 음악과 사람들을 만날수 있는 ‘펍’이다. 펍 문화는 본래 유럽에서 넘어온 문화다. 음악을 들으며 맥주잔을 기울이는 것은 한국 술집과 별반 다르지 않다. 하지만 펍은 모르는 사람과 자연스럽게 말도 걸고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며 사교의 장이 되는 곳이다. 펍은 Public House의 약자로 공개적인 장소라는 의미를 담고 있다. 마주보고 앉아 폭탄주를 돌리며 ‘술’에 집중하는 한국 사람들에게는 익숙지 않은 문화일 수 있다. 특히 서울 이태원과 같이 외국인이 많은 곳이면 모를까 한국 사람들끼리 모여 외국 펍 문화를 100%즐기기란 쉽지 않은 측면이 있다. 그런데 외국인 하나 없는 곳에서 이런 펍 문화를 제대로 즐기는 곳이 있다고 해서 이날 찾아가던 중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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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대 앞 '미니펍'의 대표 여상헌씨. photo=오장환 영상미디어 기자

건국대 앞'미니펍'에 들어서자 이곳의 주인이자 보컬리스트인 여상헌(41)씨가 반갑게 맞아 주었다. 여씨는
 건국대학교를 졸업한 후 인터넷 커뮤니티 ‘프리첼’에서 최대 규모의 밴드 동아리에 참여하는 것으로 시작해 직장을 다니며 ‘특수 영업팀’이라는 나이트밴드의 보컬리스트로 활동했다. 그렇게 2년간 활동하다 여씨는 지난해 겨울쯤 다니던 회사를 그만두고 이 ‘미니펍’을 열었다. 음악에 대한 열정을 포기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여씨는 “이제는 나이가 있어 가수로써의 꿈보다는 음악을 하는 후배들에게 ‘꿈을 키우고 놀 수 있는 공간’을 제공해 주고 싶다”고 했다. 여씨는 “유흥만 즐비한 한국에서 가슴을 뭉클하게 할 수 있는 여가문화를 만들어 보고 싶다”는 포부도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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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재원씨가 노래를 부르고 있다. photo=오장환 영상미디어 기자

이날 메인 공연은 이곳 손님으로 왔다가 직원이 된 정재원(25)씨가 맡았다. 정씨는 원래 음대생이었지만
이곳에서 공연을 하면서 팬층이 생겨 지금은 페이스북에 정재원씨만의 팬페이지 ‘무감각’(www.facebook.com/Jungcover)이 생겼다. 팬페이지 ‘좋아요’ 수만 1만6000개에 달한다. 정씨는 “원래 주변에서 아무도 제가 노래하는 사람인 줄 몰랐대요”라고 고백했다. 정씨는 이 가게에 우연히 손님으로 왔다가 여 사장과 인연을 맺었다고 한다. 정씨는 이 미니펍을 ‘놀이터’라고 표현했다.
 
 
 “원래 저는 이곳에 손님으로 왔었어요. 그런데 편안하고 거리낌 없는 분위기에 단골이 됐어요. 노래가 좋아 스테이지에서 한두 곡 부르던 게 지금은 정식 공연을 하고 있어요. 다른 곳은 공연을 할 때 미리 약속을 잡고 해야 하지만 이곳은 지나가다가 그냥 들어와서 노래를 부를 만큼 분위기가 편해서 좋아요.”
 
 
 정씨의 무대는 약 2시간 동안 계속됐다. 정씨의 노래를 들으러 온 손님도 다양했다. 고3 수험생을 데리고 온 학부모님부터 직장동료, 학교 친구들, 그리고 펍 직원의 지인들도 있었다. 정씨가 가수 신승훈이 부른 ‘미소 속에 비친 그대’를 피아노 반주와 함께 열창하자 펍 안의 분위기가 한층 감성적으로 무르익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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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재원씨의 공연을 보기위해 '미니펍'을 방문한 직장 동료들. photo=오장환 영상미디어 기자

페이스북을 통해 정재원씨의 공연 소식을 알게 된 서모(32)씨와 강모(여·35)씨도 회사 일을 마치고 이곳을 찾았다. 직장동료라는 이들은 정씨의 공연을 관람하는 종일 정씨로부터 시선을 떼지 못했다. 정씨의 공연을 동영상에 담던 강씨는 “이 좋은 순간을 만끽해야지 왜 영상을 찍어”라며 금세 휴대폰을 넣고 다시 공연에 열중했다. 강씨는 나에게 “공연을 관람하는 가수와 가깝게 호흡을 맞출 수 있다는 게 좋다”며 다시 공연에 열중했다. 가족끼리 방문한 테이블도 여럿 눈에 띄었다. 술을 파는 펍에 부모가 미성년자 자녀를 직접 데리고 온 것이 궁금해 이야기를 들어 보았다. 술 대신 콜라를 앞에 둔 홍모(18)양은 “엄마가 이런 곳에 데려와 줘서 너무 좋다”며 흥분된 감정을 감추지 못했다. 홍양의 어머니 한모(40)씨는 “고3 딸과 술집에 같이 온 것은 처음”이라며 “딸이 좋아하고 이야기도 많이 나눌 수 있어서 좋다. 우리 동네에도 이런 펍이 있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손님들과 이야기를 나누는 사이 어느새 정씨의 무대가 끝나고 자유공연으로 오의성(24)씨가 무대로 올라갔다. 오씨는 이곳을 자주 찾는 손님이다. 손님이지만 자발적으로 가게일을 도울만큼 미니펍에 대한 애착이 크다. 그는 가수의 꿈을 키우고 있는 무명가수다. 펜페이지 ‘좋아요’ 수가 수만일 때도 있었다. 오씨는 이 미니펍이 좋아 일당을 받지 않고 나와 일을 돕고 노래를 부른다고 했다. “가게가 망하면 놀 곳이 없어질까봐 도와준다”는 오씨는 활짝 웃으며 다시 무대로 뛰어올라 갔다. 이 미니펍의 가장 큰 특징은 직원들 대부분이 오씨처럼 손님으로 왔다가 직원이 된 경우라는 점이다. 게다가 일을 관두고 난 후에도 다시 손님으로 찾아오기도 하고 시급 없이 서빙을 봐준다고 한다. 이곳에 대한 애착이 크기 때문이다. 이 미니펍의 또 다른 특색은 공연이 끝난 후 손님들과 직원들이 함께 뒤풀이를 한 다는 것이다. 취재차 들른 나도 취재가 끝난 후 뒤풀이를 통해 이들과 금세 친해질 수 있었다.

이 가게의 하이라이트가 바로 이 부분이다. 이런 뒤풀이는 새벽 4시건 아침 8시건 여 사장이 가게를 문을 닫기 전까지는 계속된다. 손님들이 가게에 들어오면 손님들과 함께 어울리기도 한다. 그렇게 이들과 인생 이야기를 나누면서 술잔을 기울이다 보면 어느새 한껏 기분이 좋아진 직원 중 누군가 마이크를 잡고 신청곡을 받는다. 즉흥에서 부르는 생(生) 음악을 안주 삼아 술잔을 기울이면 독한 보드카도 달게 느껴진다. 건국대 앞 미니펍에서 이곳 직원들과 뒤풀이를 해보지 않고는 진짜 ‘펍’을 와봤다고 할 수 없다. 아쉬운 점은 이런 펍이 건국대 인근에는 하나뿐이라는 점이다. 이렇게 음악성과 여유를 전부 충족시킬 수 있는 술집은 영업이익이 얼마 안 남기 때문이다. ‘미니펍’ 역시 경영이 순조롭지만은 않은 상황이다. 가격도 저렴하고 분위기도 좋지만 ‘음악’과 ‘소통’이라는 두 마리 토끼를 잡으려다 보니 술장사에 소홀해 질 수밖에 없다. 한국식 술집처럼 1차, 2차, 3차로 이어져야 테이블 회전율이 높고 술판을 벌여야 술도 많이 팔리는데 여씨의 자존심이 이를 허락하지 않는다. 여씨 말에 따르면 건물 임대료 및 기타 가게 운영비를 충당하려면 월 1800만원 매출이 나와줘야 한다고 한다. 하지만 적자만 겨우 면하고 있는 상황이라 고민이 많다. 이런 어려움에도 불구하고 그의 음악 사랑은 수그러들 것처럼 보이지 않았다. 여씨는 펍이라는 문화를 사람들에게 제대로 알리고 싶어했다. 그는 “아무리 경영이 어려워도 음악을 사랑하고 이 공간을 사랑하는 사람들을 위해서 절대 포기하지 않을 거예요”라며 밝게 웃어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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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상헌 씨와 그의 크루들. photo=오장환 영상미디어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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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일 : 2015-05-04 10:54 기사목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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