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처: 픽사베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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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노그래픽 프로젝트’. IBM과 내셔널지오그래피가 협력해서 2005년 런칭한 연구사업명이다. 세계 각지 사람들의 DNA 샘플을 기부받아서 인류 이동의 경로를 과학적으로 재구성하려는 프로젝트인데, DNA 분석, 컴퓨터 시뮬레이션, CAD, 인공지능 등 각종 첨단 과학기술이 동원되고 있다. 현재 약 45만 명이 참여 중인, 그야말로 세계적인 규모의 첨단 과학-인문학 융합 프로젝트다. 이 프로젝트 총관리자 미국의 스펜서 웰즈 박사는 말한다. “지금까지 쓰인 것 중 가장 위대한 역사서는 우리의 DNA 안에 감추어져 있다.”

사실 DNA야말로 왜곡의 손을 탈 우려가 전혀 없는 막강한 역사의 증언자다. 생물을 구성하고 있는 세포 하나하나에 똑 같이 들어 있는 세포핵, 그중에서도 염색체라는 부분에 담겨 있는 사슬 모양으로 된 구조물인 DNA. 마치 방대한 양의 콘텐츠를 담고 있는 지극히 미세한 마이크로필름처럼, DNA는 생물이 살아온 역사와 함께 살면서 활용해야 할 각종 노하우와 전략을 담고 있다. 그 기록은 생물 개체의 삶을 거치면서 계속 업데이트된다.

새롭게 권력을 잡아 강대국이 된 나라 사람들이 아무리 집요하게 이전 주인의 흔적을 지우려고 한다 해도, 모든 인간의 세포마다 똑같이 들어 있는 DNA를 어쩌지는 못할 것이다. 그런 게 있다는 사실을 꿈에조차 몰랐을 테고, 알았다 하더라도 손댈 수 있는 부분이 아니다.

그런데 DNA가 그 왜곡되지 않은 역사의 진실을 어떻게 우리에게 말해줄 수 있을까? 우리는 그 말을 어떻게 알아들을 수 있을까? 그걸 가능하게 해주는 것이 현대의 유전과학 관련 기술이다. DNA를 분석해서 진짜 자기의 자식인지 아닌지 알 수 있고 범죄자를 빼도 박도 못하게 잡아낼 수 있는 것과 똑같은 원리로, 지구상 여러 지역 사람들의 DNA를 분석해서 종합해보면, 인류가 과거 언제쯤 어디를 거치면서 이동해갔는지 명료하게 알 수 있게 된다.

다음은 가장 최근에 대중에게 공개된 제노그래픽 세계지도다. 약 20만 년 전, 동아프리카에 출발한 인류가 극히 최근까지 어떻게 지구 위를 이동하면서 정착해갔는지, 그 노정의 큰 줄기만을 표시한 것이다. 각 경로의 이동이 언제쯤 일어난 것인지도 DNA 분석을 통해 알 수 있다.

DNA(게놈) 분석으로 밝혀진 과거 인류의 이동 경로 ⓒ출처: IBM Research
DNA(게놈) 분석으로 밝혀진 과거 인류의 이동 경로 ⓒ출처: IBM Research

지도에서 붉은 원으로 표시된 부분은 인류가 처음 탄생한 곳이며, 여기서 인류는 크게 두 가지 길을 따라 이동했음을 알 수 있다. 하나는 바다로 이동하는 길, 또 하나는 육지로 이동하는 길이다.

이것만 해도 지금까지의 학설을 뒤엎는 발견이다. DNA 분석 이전에는 학자들이 인류의 이동은 육로를 통해 진행됐을 거라고 추정했다. 옛날 사람들이 그 먼 길을 항해했을 거라고는 생각지 못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수십, 수만 년 이전부터 인류는 바닷길을 이용했고, 오히려 바다로 움직인 것이 육지를 통해 움직인 것보다 더 먼저 일어났음도 확인됐다.

육지로 이동하는 길에는 두 군데 정도 중심이 있다. 첫 번째는 지금의 이라크와 사우디아라비아의 경계쯤인데, 북동쪽으로 거대한 자그로스산맥과 그 기슭을 흐르는 티그리스, 유프라테스 강 아래로 펼쳐진 땅이다. 두 번째는 ‘세계의 지붕’이라고 불리는 파미르 고원이다. 이곳을 거치면서 인류는 아프리카로부터 유럽과 인도, 중국, 그리고 동남아시아로 확산해갔다. 중국 쪽으로 움직인 집단이 황하 유역까지 와서 정착한 것이 약 1만 년 전의 일이다.

반면 바다로 이동하는 길은 각각 독자적인 노선이 있었음을 알 수 있다. 그중 한반도로 들어온 사람들의 경로는 지금의 에티오피아 부근에서 출발해서 인도 중남부를 거치고 다시 인도차이나반도의 남쪽 해안을 따라 한반도 동남단에 이르렀다. 거기서 방향을 바꾸어 내륙으로 전진, 정확히 아무르강과 셀렝가강의 수계를 따라 그 수원으로 거슬러 올라가서, 티베트고원을 가로질러 히말라야산맥 북쪽 기슭에까지 이른다. 약 5만 년 전의 일이다.

이 연재에서 우리의 관심사는 ‘고구려의 강역이 과연 그렇게 넓었을까?’ 하는 것이다. 이 지도가 박창범 교수의 천문관측지도가 보여주는 사실을 뒷받침하는 증거가 될 수 있을까? DNA 분석으로 확보한 인류 이동 경로 지도의 동아시아 부분에 박창범 교수의 천문관측지도를 붙여서 보면 다음과 같다.

동아시아 지역에 있어서 인류의 이동 경로와 박창범 교수의 고대 천문관측지도가 시사하는 고구려 중심지 ⓒ출처: 이진아
동아시아 지역에 있어서 인류의 이동 경로와 박창범 교수의 고대 천문관측지도가 시사하는 고구려 중심지 ⓒ출처: 이진아

박창범 교수의 지도가 보여주는 고구려의 중심지는 M174 경로 위에 놓여 있음을 알 수 있다. 즉 지금으로부터 약 5만 년 전, 아프리카의 에티오피아 부근을 떠나 아라비아반도 중남부와 인도 아대륙 중남부, 그리고 인도차이나반도 남부 해안지역을 거쳐 한반도에 자리 잡았던 사람들이, 거기서 다시 북서쪽으로 방향을 틀어 중국 대륙 깊숙이 들어갔던 그 노정의 중요한 거점과 정확히 일치하는 것이다.

이 지역 사람들의 DNA에 이런 경로가 확인됐다는 것은 이 경로로 움직인 사람들의 후손이 이 지역에서 수적으로 다수파라는 사실을 말해준다. 다른 말로 하자면, 이미 5만 년 전부터 지금까지, 이 경로상의 지역에서는 생물학적으로 한민족이 주류였다는 것이다.

컴퓨터 계산 및 시뮬레이션을 통해 나온 박창범 교수의 천문관측지도, IBM·내셔널지오그래피 공동 연구 결과 나온 게놈 세계지도, 이 두 가지 첨단 과학의 성과물이 하나의 결과를 말하고 있다. 고구려는, 좀 더 폭넓게는 한민족은 그 넓은 땅의 주인이었다고.

사진2의 지도는 현재 IBM 연구소 홈페이지에서 확인할 수 있다. 홈페이지에서 제공하는 설명에 의하면, 인류의 이동 경로가 불과 수천 년, 혹은 수백 년 전의 새로운 것이었다 할지라도 그곳에 사는 사람들의 DNA에는 정확히 기록되어 있다고 한다. 인류가 문자를 사용했던 수천 년 동안, 역사기록은 몇 번이나 탈바꿈했을지 모른다. 하지만 웰즈 박사의 말대로 가장 위대한 역사서인 우리의 DNA는 그 사실에 대해 정확한 기록을 보유하고 있다.

“과학은 거짓말을 하지 않는다”고 했다. 하지만 과학은 근현대의 언어다. 우리가 현재 과학이라고 믿고 신봉하는 시스템의 역사는 길어야 200~300년 정도다. 그럼 그 이전에는 정치적 왜곡을 피해 진실을 남길 방법이 없었을까?

이진아 환경·생명 저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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