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국인들이 대표적인 전통 음식으로 꼽는 피시 앤드 칩스. ⓒphoto cnn.com
영국인들이 대표적인 전통 음식으로 꼽는 피시 앤드 칩스. ⓒphoto cnn.com

필자가 영국인들을 놀리는 단골 소재가 있다. 우선 이런 말로 자극한다. “영국인은 문학적 재능만 있지 미술이나 음악(클래식) 재능은 없는 듯하다.” 먼저 시비를 걸면 영국인들은 자존심이 좀 상한다는 듯이 ‘아닌데?’ 하는 표정을 짓는다. 그리고는 자신이 아는 영국 출신 화가나 작곡가 이름을 대려고 노력한다. 하지만 대다수 영국인들은 생각이 잘 안 나거나 몰라서 반박을 못 하고 만다. 그들도 베토벤이나 슈베르트는 알지만 정작 영국 출신 화가나 작곡가는 몰라 선뜻 대답을 못 한다. 결국 없다는 말이나 마찬가지다.

물론 영국인 중 지식인들은 “무슨 그런 무식한 소리를 하느냐?”면서 영국 대표 국민화가 JMW 터너를 든다. 그러면서 그가 프랑스 청년 화가들에게 영감을 주어 인상파라는 금자탑을 세우게 했다는 식으로 열변을 토한다. 또 외젠 들라크루아를 비롯한 프랑스 대가들로부터 격찬을 받은 ‘건초수레(Hay Wain)’를 그린 풍경화의 최고수 존 컨스터블을 모르느냐고 설교한다. 또 토머스 게인즈버러, 조슈아 레이놀즈 등 미술 애호가들이 아니면 들어 보지도 못한 영국 화가들 이름을 줄줄이 늘어놓는다. 클래식 작곡가도 마찬가지다. 그들이 이름을 대는 에드워드 엘가, 벤자민 브리튼, 랄프 폰 윌리엄스 같은 19세기 말 작곡가들은 외국인은커녕 영국인들마저 모르기 일쑤다.

영국인에게는 미술과 음악 재능이 없다?

필자 주위의 공부깨나 하고 교양 좀 있다는 지식인 중에도 영국 화가나 작곡가 중 아는 사람이 있느냐고 물으면 곤혹스러워한다. 그만큼 영국 예술인들은 세계인에게 사랑받을 만한 작품을 남기지 못했다는 뜻이다. 영국인들도 자신들이 문학에서만 재능을 가졌을 뿐 다른 예술은 유감스럽게도 재능이 없음을 솔직하게 인정한다.

영국인을 놀리는 다음 대화 주제는 식재료이다. 필자가 또 “너희 영국인은 참 불쌍하다!”라고 시비조로 말을 시작하면 바짝 긴장한다. “너희들은 세상에 얼마나 많은 종류의 식재료가 있는지 아느냐? 나도 정확히 모르긴 몰라도 수십만 가지는 있으리라 믿는다. 네가 지난 한 달 동안 먹은 채소를 한번 말해봐라.”

그러면 영국인들이 읊어대는 것들은 대개 감자, 양파, 시금치, 양상추, 양배추, 당근, 오이 정도다. 그것도 머리를 짜낸 결과다. 우리들이 없어서는 하루도 못 사는 고추, 파, 마늘 같은 필수 양념은 차치하고 배추, 무, 대파, 가지 같은 주요 채소도 영국인들에게는 생소하다. 더 나아가 산이나 들에서 나는 산나물 같은 것들은 아예 고려 대상도 아니다. 영국인들이 먹는 채소는 아무리 많이 잡아도 10종류가 넘지 않는다.

같은 맥락으로 생선을 들어도 마찬가지다. “너희가 먹는 생선 종류를 들어봐라”라고 하면 겨우 연어, 도미, 가자미, 고등어, 청어 정도이다. 요즘에는 이탈리아 영향을 받아 오징어를 가끔 별미로 먹긴 하지만 레스토랑에서만 먹지 집에서 요리해 먹지는 않는다. 결국 영국인들이 먹는 생선도 많아야 10종류를 넘지 않는다.

영국인은 일본과는 달리 섬나라 사람들이면서도 생선을 좋아하지 않는다. 주야장천 고기만 먹는다. 그것도 몸통만 먹지 그 외 부위는 절대 먹지 않는다. 예를 들면 곱창, 양곱창, 막창, 대창, 천엽, 간, 염통 같은 부위를 대면 흡사 식인종 취급을 한다. 하물며 등골, 무릎, 눈알, 고환까지 먹는다고 하면 구역질을 하다 못해 며칠 밥을 못 먹을 정도로 충격을 받는다.

그래서 필자가 영국인들을 놀리는 결론은 한결같다. “너희들은 그냥 10종류의 채소와 10종류 생선과 몸통 부위 고기만 겨우 먹고 사니 불쌍하다고밖에 할 수 없다. 세상에 존재하는 기가 막힌 맛을 모르고 산다니 얼마나 불쌍하냐.” 물론 필자가 침이 마르도록 맛있다고 해도 자신들은 전혀 경험해 보지 않은 맛이라 별로 부러워하지 않는다. 광어, 방어 같은 회는 영국인들이 날생선을 잘 먹지 않으니 그렇다고 치자. 그러나 갈치, 꽁치, 굴비, 전어, 멸치같이 우리가 매일 먹는 생선의 맛조차 영국인들은 모른다. 그래서 매일 제한된 식재료로 만든 빈약한 밥상을 맞이하는 자신들이 얼마나 불쌍한 존재인지 제대로 알려 주려고 노력해야 할지 말지 항상 고민에 빠진다.

채소와 생선 종류 10가지가 고작

영국인을 이왕 불쌍하게 만드는 김에 조금 더 참혹하게 만들어 보자. 영국 요리를 이르는 가장 유명한 말은 ‘영국 요리는 끔찍하다(English food is terrible)’이다. 외국인들이 영국인을 놀릴 때 자주 이용하는 전형적인 혹평이다. ‘끔찍하다’에 대한 좀 더 자세한 설명은 ‘정말로 밍밍하고(really bland) 역겹다(gross)’이다. 수천만 명의 영국인이 매일 입맛을 다시면서 먹고 사는 음식을 이런 식으로 모욕하는 일이 합당하지는 않지만 영국인도 자신들의 전통 요리가 외국인 입맛에는 천편일률로 무미건조하고 밍밍하다는 점은 인정한다. 그러면서도 외국인들이 “영국에는 전통 요리가 없다”고 말하면 반은 인정하면서도 반은 인정하지 않는다. 그러면서 내놓는 자신들의 전통 요리가 있긴 하다. 그런데 문제는 그 전통 요리가 좀 얼굴이 화끈거리는 수준의 요리들이라는 점이다. 우리가 보기에는 간식거리이거나 반찬 수준의 음식들이기 때문이다.

가장 먼저 영국인이 내세우는 전통 음식은 바로 ‘피시 앤드 칩스(fish and chips)’다. 가장 가까운 프랑스인들은 “이걸 대표 전통 음식이라고 내세운다”며 박장대소하면서 놀린다. ‘피시 앤드 칩스’는 쉽게 말해 생선으로 만든 돈가스이다. 우리는 이를 속칭 ‘생선가스’라고 부른다. 대구 살을 밀가루 옷을 입혀 기름에 그냥 튀기고 같은 방법으로 튀겨낸 감자 칩스를 접시에 곁들여 내놓는 게 전부다. 물론 영국인들도 이 음식이 형편없다는 걸 안다. 그래서 이걸 자신들의 대표 전통 요리라고 말할 때의 얼굴 표정은 거의 겸연쩍은 자학에 가깝다. ‘피시 앤드 칩스’를 과연 요리라고 부를 수 있을까? 물론 맛이 없다는 말은 아니다. 솔직히 말해 맛이 나쁘진 않다. 그러나 이걸 요리라고 부를 수는 없다는 것이 요리를 좀 아는 외국인들의 공통된 의견이다.

다음으로 등장하는 영국 전통 음식은 속이 텅 빈 밀가루로 만든 공갈빵 같은 요크셔 푸딩(Yorkshire Pudding)과 소고기를 오븐에 넣어 열로 구운 로스트 비프(roast beef)이다. 이 두 요리야말로 영국 전통 요리가 지닌 밍밍한 맛의 대표 격이다. 로스트 비프에 육수와 밀가루 등으로 만든 그레이비 소스(gravy sauce)를 곁들이면 그나마 조금 낫긴 하지만 프랑스 요리에서 볼 수 있는 감칠맛이 있다고는 결코 말할 수 없다. 로스트 비프를 먹고 나면 이제 전통 음식이라고 할 만한 것들도 벌써 바닥을 드러내기 시작한다. 호텔에서 아침에 나오는 잉글리시 브랙퍼스트는 맛은 없으나 그나마 식사의 일종이다. 그러나 셰퍼드 파이, 스테이크 앤드 키드니 파이 등은 음식이 아니라 그냥 간식이나 반찬이라고 봐야 한다. 이런 전통 음식까지 거론하고 나면 영국인들은 더 이상 내놓을 게 없어 말문이 막힌다.

시내 레스토랑에서 식사 중인 런던 시민들. ⓒphoto 뉴시스
시내 레스토랑에서 식사 중인 런던 시민들. ⓒphoto 뉴시스

대표 전통 요리가 ‘피시 앤드 칩스’

‘정말 요리 같은 요리가 없다’는 외국인의 평에는 영국인들도 대체로 동의한다. 영국은 ‘해가 지지 않는 대제국’이라는 별명에 어울리게 세계 각국에 식민지를 두고 한때는 세계 무역과 부의 60%를 차지했던 나라이다. 식민지에서 오는 각종 향신료와 식재료, 거기다 재력을 가지고 있었을 나라에 왜 이렇게 요리 같은 요리가 없는지에 대한 원인 분석은 수도 없이 많다.

우선 제일 그럴듯한 이유는 팬데믹, 즉 대유행병과 영국을 세계에서 가장 부국으로 만든 산업혁명이 하나로 어우러져 만들어낸 ‘승자의 저주’ 때문이라는 분석이다. 영국을 휩쓴 대흑사병 때문에 인구가 급격히 줄어들어 영원한 ‘갑’인 지주 귀족의 농지에서 농사를 짓던 만년 ‘을’ 신세의 농부가 ‘계약농’으로 지위가 바뀌어 갑자기 ‘갑’이 되었다. 마침 손으로 짜던 모직포를 대량으로 짤 수 있는 직조기계가 개발돼 대량의 양모 수요가 발생하던 참이었다. 농부가 귀해 쩔쩔매던 귀족들은 자구책으로 손이 많이 가는 농사를 피하고 양을 키우기 시작했다. 그러기 위해 개방되어 있던 농토에 양이 도망가지 못하게 담을 쌓는 엔클로저 운동(enclosure movement)이 벌어졌다. 그 결과 농토를 잃은 농민들은 대도시 주변에 생긴 공장으로 몰려갔고 그 탓에 영국 농촌이 무너지게 되었다.

그래서 농부들이 시골에서 쉽게 구하던 식재료를 이용해 만들던 영국 전통의 ‘농부 요리(Peasant foods)’가 사라졌다는 것이다. 공장에서 일하느라 시간이 없던 전직 농부들은 손이 많이 가는 요리는 하지 않고 쉽게 만들 수 있는 음식을 만들 수밖에 없었다. 그 결과 영국 전통 요리가 퇴보하고 어디를 가든 쉽게 만들 수 있는 음식들만 존재하게 되었다는 분석이다.

영국을 휩쓴 올리버 크롬웰의 청교도혁명을 원인으로 꼽는 시각도 있다. 원래 청교도 정신에는 욕망 절제가 큰 주제로 들어 있다. 해서 크롬웰은 영국인들의 향락을 철저하게 억압했다. 상류층의 소일거리인 극장은 물론 서민들의 즐거움인 술집, 식당, 서커스 등도 같은 이유로 문을 닫게 했다. 음식도 생명을 유지할 최소한만 허용해야 한다는 분위기가 영국을 지배했다. 이를 크롬웰의 ‘홍위병’인 원두당이 앞장서서 강요했다. 만약 이를 어기면 혹독하게 처벌했다. 결국 영국인의 머릿속에는 ‘먹기 위해 살지 않고 살기 위해 먹어야 한다(Eat to live not live to eat)’는 생각이 박혀 버렸다. 그래서 영국인은 가깝고도 먼 이웃 프랑스인들을 ‘먹기 위해 사는 민족’이라고 욕하면서도 부러워하는 묘한 처지가 되어 버렸다.

먹는 걸 금기시했던 크롬웰의 청교도혁명

다른 분석도 있다. 대영제국 시절 수많은 다른 문화의 이민자들이 영국으로 들어왔다. 이들이 기묘하게 맛있고 이국적인 요리를 저렴하게 공급하다 보니 영국 전통 요리가 경쟁이 안 돼 도태되었다는 분석이다. 해서 지금 런던에는 영국 전통 요리는 먹을 곳이 없어진 반면 세계 각국의 음식은 무엇이든 먹으려 하면 다 먹을 수 있게 되었다. 상당히 근거가 있는 분석이다.

다른 이유는 영국인이 너무 잘살았기 때문이라는 분석이다. 굳이 고기 내장을 비롯한 ‘이상한 재료로 만든 이상한 음식(weird offal-based dishes)’을 안 만들어도 될 만큼 잘살았기 때문이라고 영국 노인들은 말한다. 그래서 영국 음식이 단조로워졌다는 말이다. 사실 영국 날씨는 동물들을 키우기에 최고다. 겨울에도 비가 많이 오고 영하로 내려가지 않아서 푸른 잔디가 항상 자라 소, 양, 돼지 같은 좋은 육고기를 많이 생산할 수 있다. 그러다 보니 몸통 부위 말고 다른 부위를 먹을 이유가 없었고 결국 로스트 비프 같은 음식만 발달했다. 거기다가 영국 날씨는 향신료를 비롯한 채소와 양념 재배에는 적당하지 않아 자극이 없는 맛의 요리만 발달했다는 것이다.

영국이 1·2차 대전 기간 동안 실시한 아주 엄격한 식량 배급제도 탓에 영국 요리가 퇴보했다는 핑계도 있는데 가장 설득력이 없는 핑계이다. 당시는 전시라 어떻게 먹느냐가 중요한 일이 아니고 무엇을 먹느냐가 중요하던 때여서 영국 요리가 망했다는 변명이다. 그러나 반박을 하는 사람들은 프랑스는 양 대전을 안 겪어서 그렇게 화려한 요리를 만드느냐고 핀잔을 준다.

가장 황당한 분석은 ‘워낙 뛰어난 요리 장인의 나라 프랑스를 이웃으로 두는 바람에 기가 죽어 요리가 발달하지 못했다’는 것이다. ‘프랑스인이 점잖지 못하게 너무 요리에 목숨을 걸듯이 연연해하니 그에 대한 반발로 요리에 초연해지려고 이렇게 되었다’는 변명이다. 마치 이솝우화의 ‘여우와 신포도’ 같은 변명으로 들린다. 고급 사교클럽의 영국 신사들 사이에서는 별미 이야기를 섹스 이야기처럼 피하는 일이 미덕이라고 여기는 분위기도 있으니 전혀 말이 안 되는 건 아니다.

그러나 이건 어떤가? 자크 시라크 프랑스 전 대통령이 영국 음식과 영국인을 동시에 모욕한 적이 있었다. 바로 이런 유명한 말을 했다. “음식이 그렇게 형편없는 민족을 신뢰할 수는 없다.(One cannot trust people whose cuisine is so bad.)” 시라크 대통령은 2005년 스코틀랜드 G8 정상회담을 앞두고 러시아 대통령 푸틴과 독일 총리 게르하르트 슈뢰더와 환담 중 이 말을 농담하듯 진담처럼 말해서 두 정상을 웃겼다. 이 말을 옆에서 엿들은 프랑스 기자가 기사로 쓰는 바람에 세상에 알려졌는데 재미있는 점은 기사가 나온 후 시라크 대변인의 반응이다. 그는 “당시 분위기나 말의 맥락을 제대로 전달하지 못했다”라고만 언급했을 뿐 발언 자체를 강하게 부정하지는 않았다. 결국 시라크가 진짜 영국인과 영국 요리를 싸잡아 놀렸다는 말이다.

당시 프랑스 기자는 시라크의 다른 말도 기사로 옮겼다. “영국인이 유럽 농업을 위해 한 일이라고는 오로지 광우병뿐이다.” “영국은 핀란드 다음으로 형편없는 음식의 나라이다.” 이에 대해 영국 총리실 대변인은 “때로는 언급을 안 해야 더 좋을 일도 있는 법이다”라고 점잖게 논쟁을 피해 갔다. 기사를 쓴 프랑스 기자는 영국 총리 대변인의 말을 두고 “영국은 솔직히 자신들의 문제를 인정하는 민족이어서 존경스럽다”고 빈정댔다. 이후 시라크의 말은 영국 요리에 대한 악평에 자주 인용되는 대표적인 말이 되어버렸다.

“우린 살기 위해 먹는다”

철저하게 피로 점철된 대혁명을 통해 현대로 넘어온 프랑스인답게 프랑스 요리는 교묘하고 화려하고 섬세하고 심지어 예술적이다. 그래서 프랑스인은 자신들의 요리에 강박 같은 집착을 보인다. 거기에 비해 피 한 방울 흘리지 않고 혁명 없이 현대로 넘어온 온건하고 합리적인 영국인은 섬세하지 않고 화려하지 않고 톡톡 쏘지 않아 밍밍한 자신들의 요리를 차라리 자랑스러워한다. 영국인은 정말 음식이란 목숨을 부지하기 위해 최소한으로 먹어야 한다고 믿는 듯하다. 먹는 일이 뭐 그렇게 중요하다고 그걸 ‘맛이 있네, 없네’ 해가면서 온갖 정성을 쏟아붓느냐고 프랑스인을 욕한다.

사실 영국인의 입맛은 무디기로 유명하다. 영어단어에 ‘짜다’와 참기름 맛인 ‘고소하다’라는 표현이 없다는 사실에서도 이를 유추해 볼 수 있다. ‘짜다’는 ‘소금 같은 맛’이라는 뜻으로 그냥 ‘salty’라고만 쓴다. ‘고소하다’는 요리에 참기름이나 깨를 특별히 쓰지 않으니 단어가 없을 수밖에 없다. 그냥 모든 기름 맛을 통칭해서 ‘기름 같은 맛’이라는 ‘oily’가 있을 뿐이다. 영국인에게 미각은 그냥 ‘달다, 시다, 쓰다’만 있을 뿐이다. 혼미하게 코를 자극하는 향기와 혀를 녹이는 듯한 감칠맛의 홍차와 커피에 굳이 밀크를 타서 탁한 ‘구정물’(?)로 만들어 마시는 영국인의 무감각을 탓할 수밖에 없다. 점심식사에 평균 1시간을 소비하는 영국인이 어찌 각종 요리를 펴놓고 2시간20분의 점심을 즐기는 프랑스인을 이길 수 있겠는가 말이다.

영국 유명 작가 마틴 에이미스는 영국 요리를 혹평하는 최고 수준의 자학도 남긴 바 있다. “프랑스인은 자신들이 먹기 위해 산다고 말하는 반면에 영국인은 죽기 위해 먹는다.(The French, they say, live to eat; the English, on the other hand, eat to die.)” 그런가 하면 프랑스 대표 극작가 몰리에르는 동료 프랑스인들을 향해 “사람은 살기 위해 먹어야지 먹기 위해 살면 안 된다(Il faut manger pour vivre et non vivre pour manger)”라고 준엄하게 타이른다. 과연 우리는 무얼 위해 살아야 하나? ‘살기 위해 먹어야 하나? 먹기 위해 살아야 하나? 그것이 문제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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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석하 재영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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