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월 27일 중국을 세계무역기구(WTO)에 제소한 발디스 돔브로브스키스 EU 수석 부집행위원장. ⓒphoto 뉴시스
지난 1월 27일 중국을 세계무역기구(WTO)에 제소한 발디스 돔브로브스키스 EU 수석 부집행위원장. ⓒphoto 뉴시스

유럽연합(EU)은 지난 1월 27일 중국을 세계무역기구(WTO)에 제소했다. 중국이 대만 외교공관을 자국에 설치한 리투아니아에 경제보복을 가하고 있다는 것이 이유였다. 발디스 돔브로브스키스 EU 수석 부집행위원장은 제소를 공표하면서 “베이징은 정치적 이유로 수출품 통관 저지와 같은 무역압력 수단으로 EU 회원국에 위협을 가하는 것을 중지해야 한다”면서 “중국과 EU는 서로를 존중해야 한다”고 밝혔다. 리투아니아는 작년 11월 18일(현지시각) 수도 빌뉴스에 대만의 외교공관인 ‘대만대표부’ 설치에 동의했다. 중국의 리투아니아에 대한 보복은 이때부터 시작됐다.

베이징은 먼저 리투아니아와의 외교관계를 대사급에서 대리대사(代辦)급으로 낮추었다. 리투아니아 상품에 대한 중국 기업의 수입 주문이 끊기고 모든 산업에서 중국 기업과의 협력도 중단됐다. 리투아니아 수출품은 중국 세관에서 통관이 되지 않고 수출품을 실은 선박은 입항을 저지당했다. 세관에 도착한 리투아니아 농산품은 병충해가 있다는 등의 꼬투리를 잡아 중국 측이 통관을 보류시켰다. 중국이 사들이기로 했던 리투아니아 럼주 2만병의 통관이 불확실해지자 대만이 이 술을 수입하기로 결정하는 일도 벌어졌다.

독일 기업을 포함한 유럽 기업들도 리투아니아와의 협력을 중단하라는 중국의 압력을 받았다. 그렇게 하지 않으면 리투아니아 부품을 사용한 유럽 다국적기업의 수출품은 중국 세관을 통과할 수 없고 심지어 수십 년간 일군 중국 시장까지 잃게 될 것이라는 위협이다. 그야말로 리투아니아와 외국의 협력관계를 철저히 차단해서 발트해 소국의 경제를 고사(枯死)시키겠다는 게 중국의 전략이다.

EU가 중국을 WTO에 제소한 이유

EU는 중국의 압박조치가 리투아니아에만 국한되는 일이 아니라고 판단하고 있다. 돔브로브스키스 EU 부집행위원장은 “이는 EU의 공업과 무역, 공급망(supply chain), 그리고 단일시장 구조에 대한 위협으로서 4억5000만 EU 주민 전체가 영향을 받을 수밖에 없다”고 지적했다. 그는 “중국은 EU 일개 회원국의 행동을 가지고 전체 회원국의 무역에 대해 공격하고 있다. EU는 통일적 행동을 결의하게 되었으며, 특히 세계 무역규칙에 위반되는 조치에 대해서는 신속히 행동하기로 결심했다”고 말했다. 가브리엘리우스 란드스베르기스 리투아니아 외교장관은 이번 조치를 환영하며 “EU가 정치적 동기에서 출발한 경제위협 행위를 결코 용인하지 않을 것이란 분명한 메시지를 중국에 주었다”고 평가했다.

그동안 EU는 유럽 각국이 중국과 접촉하는 과정에서 겪는 불이익이나 위협에 대해 개별 국가 차원에서 협상·해결하도록 사실상 방치해왔다. ‘초강대국 중국의 귀환’이란 현실을 외면해온 것이다. 가령 영국이 홍콩의 민주주의 붕괴에 대해 우려를 표시했다가 중국으로부터 협박을 받을 때 EU는 개입하지 않았다. 코로나19 확산 초기 중국은 코로나19 발원지 조사를 거부하고 오히려 프랑스의 코로나19 대응을 조롱했지만, EU 차원에서 대응조치를 취하지 않았다. 노르웨이가 2010년 중국의 반체제 운동가 류샤오보(劉曉波)에게 노벨평화상을 수여했다가 중국으로부터 ‘연어 수입 금지’ 같은 경제보복을 당했을 때도 유럽 국가들은 침묵했다.

이런 점에서 보면 이번에 EU가 중국을 WTO에 제소한 것은 개별 회원국이 중국과 겪는 갈등에 대해 유럽연합 차원에서 공동 대응하기 시작했다는 것을 의미한다. 이는 EU와 중국의 관계에서 매우 상징적인 사건이라고 할 수 있다. 게다가 EU가 리투아니아의 행동에 힘을 보탠 배경에는 ‘자유와 민주, 인권’의 가치에 대한 옹호 의지가 숨어 있어 그 의미는 더욱 깊다.

지난해 11월 18일 리투아니아 수도 빌뉴스에 정식 개설된 ‘대만 대표처’. ⓒphoto 뉴시스
지난해 11월 18일 리투아니아 수도 빌뉴스에 정식 개설된 ‘대만 대표처’. ⓒphoto 뉴시스

‘경제 이익’보다 ‘자유와 독립’을 중시하는 리투아니아

리투아니아는 발트해(海)에 위치한 인구 280만의 소국이다. 중국의 웬만한 도시 하나보다 인구가 적다. 이런 나라가 중국과 ‘맞짱’을 뜨게 된 배경에는 고난과 저항의 역사가 숨어 있다. 중세시대 폴란드-리투아니아 연합왕국으로 번성했던 이 국가는 18세기 말 러시아의 지배에 들어간 뒤 123년간이나 러시아의 혹독한 민족말살정책을 견뎌야 했다. 리투아니아어(語)의 사용과 민족 역사 교육이 금지되고 1840년에는 국가가 지도에서 완전히 사라졌다. 2차 대전에서 소련이 승리하면서 리투아니아는 다시 소련의 지배로 들어갔고 많은 주민이 숙청되거나 시베리아로 강제 이주되었다.

1989년 8월 23일 소련 붕괴 직전 리투아니아 국민은 같은 처지에 있는 발트해 연안국 라트비아, 에스토니아 국민과 함께 역사적인 이벤트를 벌였다. 소련 지배하의 3개국 국민 700만명 중 200만명은 이날 리투아니아의 수도 빌뉴스, 라트비아 수도 리가, 에스토니아 수도 탈린을 잇는 길에 나와 손에 손을 잡고 675.5㎞의 인간띠를 만들어 독립의 열망과 의지를 세계에 알렸다. ‘발트의 길(Baltic Way)’로 명명된 이 행사는 비폭력 저항의 상징이 되었다. 1990년 소련 해체 과정에서 독립한 리투아니아는 국민 직접선거를 통해 민주정부를 출범시키고 언론자유를 헌법에 보장하였으며, 2004년 유럽연합과 북대서양조약기구(NATO)에 가입했다. 1인당 국민소득 2만달러의 리투아니아는 반도체산업에 필수적인 레이저 기술 강국이다. 독립 후 중국과 수교한 리투아니아는 2017년 일대일로(一帶一路·육상과 해상의 신실크로드) 프로젝트에도 합류했다.

오랜 시련 끝에 독립과 자유를 얻은 리투아니아 국민은 2019년 홍콩인들의 민주화 시위를 지지했다. 중국의 강제적인 ‘범죄인 인도(引渡) 법안(송환법)’도 규탄했다. 이때부터 리투아니아와 중국의 관계는 틀어지기 시작했다.

2019년 8월 23일 밤 홍콩 시위대는 센트럴, 완차이, 코즈웨이베이, 침사추이, 몽콕 등에 모여 인간띠를 만들기 시작했다. 저녁 9시 무렵 45㎞에 달하는 인간띠가 형성됐다. 홍콩인들은 30년 전 같은 날 벌어진 ‘발트의 길’을 모방해 자유와 정치적 독립성에 대한 열망을 세계에 전달했다. 동병상련의 아픔을 느낀 리투아니아 국민은 자국에서 홍콩 시위를 지지하는 집회를 열고 중국의 탄압을 비판했다. 리투아니아는 중국의 신장(新疆) 위구르족 정책을 ‘집단학살’로 규정했다. 2021년 5월에는 중국이 유럽 국가들과 만든 ‘17+1 경제협력체’가 ‘분열적’이라는 이유로 이 기구에서 탈퇴했다.

지난해 7월 리투아니아는 대만의 대표처 설치 요청을 유럽 국가로서는 처음으로 승인했다. 작년 11월 18일 리투아니아 수도 빌뉴스에 ‘대만(臺灣) 대표처’가 정식으로 개설됐다. ‘대만’이란 명칭을 사용한 것은 중국이 세계 모든 국가에 요구하는 ‘하나의 중국’ 원칙을 깨는 것이나 다름없다. 가령 서울 광화문에 있는 대만의 외교공관이 ‘대만 대표처’가 아니라 수도 이름인 ‘타이베이(臺北) 대표처’인 것도 ‘하나의 중국’ 원칙에 따른 것이다.

중국의 보복에도 유럽의 반중(反中) 분위기 확산

중국은 리투아니아의 결정에 강하게 반발하는 동시에 경제보복을 개시했다. 자오리젠(趙立堅) 중국 외교부 대변인은 “이 극히 터무니없는 행위로 인해 이후 벌어질 모든 결과에 대한 책임은 리투아니아 측에 있다”면서 “잘못을 저질렀으면 반드시 그 대가를 치러야 한다”며 경제보복을 예고했다. 추이훙젠(崔洪建) 중국국제문제연구원 유럽연구소장은 “쥐똥 하나가 요리를 다 망치게 놔두지 않겠다”고 위협했다. 하지만 중국의 협박과 경제보복에도 리투아니아는 조금도 위축되지 않고 있다. 란드스베르기스 리투아니아 외교장관은 “중국의 힘과 경제력이 크다는 것을 안다. 중국은 정치적 요구가 있을 때마다 힘을 휘두르고 모두 거기에 동조한다. 이건 분명 우리가 생각한 세상은 아니다”라고 맞받아쳤다.

리투아니아에서 시작된 반중·친(親)대만 움직임은 네덜란드와 발트2국, 슬로베니아 등으로 확산하고 있다. 네덜란드 해군은 지난해 10월 초 미국, 일본, 영국, 캐나다, 뉴질랜드 등 5개국 해군과 함께 남중국해에서 ‘항행의 자유’ 작전을 벌였다. ‘항행의 자유’란 중국과 베트남, 필리핀 등 동남아 국가들 사이에 영유권 분쟁이 벌어지고 있는 남중국해에서 선박의 자유로운 통항을 보장해야 한다며 벌이는 군사작전이다. 이 작전에는 영국의 최신예 항공모함 퀸엘리자베스호가 처음으로 참가했고, 일본 해상자위대의 헬기 항모 ‘이세’도 합류했다. 유럽 국가 중 영국, 프랑스에 이어 네덜란드까지 미국의 대중국 견제 군사작전에 동참한 것이다.

리투아니아와 라트비아, 에스토니아 등 발트3국 국회의원 10여명은 지난해 11월 말~12월 초 중국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대만에서 열린 ‘개방 국회 포럼’에 참석했다. 의원단 단장을 맡은 마타스 말데이키스 리투아니아 의원은 “대만은 복잡한 지정학 정치구도 속에서도 균형을 유지해왔고 민주주의를 강화해왔다. 대만 국민의 의지와 지혜에 경의를 표한다”면서 “자유와 규칙 기반의 국제질서를 수호하는 것은 리투아니아의 중요한 이익과도 연관된다. 우리는 대만과의 연대를 보여주기 위해 이번에 대만에 왔다”고 했다. 차이잉원(蔡英文) 대만 총통은 의원단과 만난 자리에서 “대만과 발트 3국은 권위주의 통치에서 벗어나 자유를 찾은 경험을 공유하고 있고, 우리가 누리고 있는 민주주의가 어렵게 얻어진 것을 알고 있다”고 말했다.

‘인권’과 ‘민주주의’가 중국 견제의 지렛대

중부 유럽의 소국인 슬로베니아도 새해 벽두부터 대만과의 외교관계를 강화할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야네스 얀샤 슬로베니아 총리는 지난 1월 17일 인도 공영방송과의 인터뷰에서 대만과 상호 대표처 설치를 추진하겠다고 밝혔다. 그는 “대만은 민주국가이며, 대만 국민이 독립을 원한다면 우리는 그들의 주권적 결정을 존중할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중국의 강력한 경제보복을 받는 리투아니아 상황에 대해 “말도 안 된다”고 비판했다. 그는 “중국은 유럽 각국이 대만과 외교적 접촉을 할 때마다 항의를 해왔지만, 리투아니아 사례처럼 대응한 전례는 없었다. 중국이 지난 30여년 동안 독립을 위해 싸워온 작은 나라를 고립시키려 한다는 점에서 충격적”이라고 지적했다.

유럽의회도 ‘인권 문제’를 지렛대로 중국을 견제하고 있다. EU는 2020년 12월 중국과의 투자협정 체결에 원칙적으로 합의, 미국의 중국 견제에 찬물을 끼얹은 적이 있다. 독일 메르켈 정부 시절 적극 추진됐던 이 투자협정은 그러나 유럽의회에 의해 제동이 걸렸다. 2021년 5월 유럽의회는 EU와 중국의 투자협정을 비준하지 않기로 결정했다. 중국의 위구르족 인권탄압 문제를 제기한 유럽의회 의원 4명을 포함한 유럽 인사 10명과 단체 4곳에 대해 중국이 제재를 해제하지 않는 한 투자협정을 비준하지 않겠다는 결의안을 압도적 표차(찬성 599, 반대 30)로 통과시킨 것이다.

투자협정을 주도했던 독일 정부 입장도 변화 조짐을 보인다. 아날레나 베어보크 독일 외무장관은 지난 1월 21일 ‘쥐트도이체 차이퉁’과의 인터뷰에서 “중국이 유럽의회 의원을 제재하는 한, EU-중국 간 투자협정은 하나의 코미디에 불과하다”고 말했다. 베어보크 장관은 리투아니아에 대한 중국의 경제보복에 대해서도 “중국의 보복은 리투아니아 기업의 수출에만 영향을 미치는 것이 아니다. 이는 유럽을 분열시키고 다른 나라가 리투아니아와 협력하는 것을 저지하려는 시도다. 우리는 유럽의 어떤 국가도 예외로 두어서는 안 된다는 점을 중국에 분명히 지적했다”고 밝혔다.

유럽인들은 80여년 전 두 전체주의 국가(히틀러의 독일, 무솔리니의 이탈리아)가 저지른 끔찍한 전쟁을 기억하고 있다. 지금 그들은 러시아와 중국으로부터 새로운 위협에 직면해 있다. 우크라이나 국경에 군대를 집결시킨 푸틴의 러시아와 리투아니아 경제의 목을 죄는 시진핑의 중국이다. ‘중국의 횡포’에 저항하는 리투아니아인의 용기와 분투를 보며 유럽인들은 다시 뭉치기 시작했다. 자유와 독립, 인권의 가치도 재인식하고 있다. 유럽이 달라지고 있다.

지해범 전 조선일보 동북아연구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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