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조선은 비영리단체 '뉴웨이즈(NEWWAYS)'와 함께 6·1 지방선거 전까지 '청년 정치인을 찾습니다'는 연재를 싣고 있다. 이번은 3번째 주인공이다.
 ⓒphoto 양수열 영상미디어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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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승규(33)씨는 또 한 번 어려운 도전에 나선다. 오는 6월 전국동시지방선거 안동시의회 의원 선거에서 녹색당 소속 시의원(마선거구) 후보로 나설 계획이다. 경북 안동은 보수 성향이 강하다. 역대 선거 결과만 보더라도 국회의원 의석은 물론 기초·광역 의석까지 보수당이 휩쓴 경우가 많았다. 이런 곳에서 진보 색채의 소수정당인 녹색당 후보로 시의원이 되기란 쉬운 일이 아니란 평가가 많다. 하지만 허씨는 안동에 대한 ‘애정’, 누군가는 안동에 활력을 불어넣어야 한다는 ‘의지’만으로 경북 안동을 고집하고 있다.

허씨는 2016년 서울 연세대를 졸업한 후 곧바로 안동으로 내려와 ‘버스타기 좋은 안동’ ‘안동 시민 예산 학교’ 등 크고 작은 프로젝트를 기획·진행하며 지역민들의 이목을 끌었다. 그의 이런 열정은 지난 2018년 처음 출마한 시의원 선거에서 16.54%의 득표율이란 결과로 나타났다. 허씨의 시의원 선거 도전은 이번이 두 번째다. 허씨는 “안동의 희망과 가능성, 그리고 내가 해야 할 역할이 보였다”며 “태어나고 자란 안동에서의 ‘좋은 정치’를 몸소 실천하고 싶다”라고 말했다.

유세차·확성기 없애고 자전거 선거 운동

허승규씨는 어릴 적부터 정치에 대한 관심이 컸다고 한다. “초등학생 때부터 정치를 어깨너머로 보며 간접적으로 경험했던 것 같다. 15대 대선을 앞두고 우리 집안은 김대중 당시 대통령 후보 선거 운동에 동참했다. 안동에선 유일무이한 일로 경북에서의 김대중 후보 지원은 독립운동하는 마음으로 해야 했다고 하더라. 지역감정이 상당했던 때다. 그때 정치라는 것을 처음 인지했다. 이후 대학입시 등을 경험하며 사회문제 의식을 조금씩 키웠고, 사회 변화 해결책과 대안은 모두 정치에 있겠다라는 판단을 했다.”

그는 대학에서 정치외교학을 전공했다. 대학생 시절 학교 사회과학대학 부학생회장, 정치외교학과 학생회장, 비례민주주의연대 청년위원장 등을 도맡으며 수도권에서 나름의 기반도 형성했다. 정치적 목표를 구체화하는 시기이기도 했다. 하지만 그때도 관심은 줄곧 지역 안동을 향했다. “서울은 내가 아니어도 목소리 내고 활동하는 사람이 많았다. 굳이 나까지 여기서 정치를 해야 하나라는 의문이 들었다. 보통 나이가 들면 고향에 내려가 좋은 일 하겠다고들 한다. 나는 그럴 거면 차라리 젊을 때부터 내려가 일하는 게 낫겠다는 생각을 하게 됐다.” 이런 그를 대학 친구들은 ‘서울로 유학 온 안동 사람’이라 일컬었다고도 한다.

허씨는 2016년 여름 졸업을 앞두고부터는 안동에 내려가 지역 활동가들을 직접 만나며 안동 지역에 대한 공부를 시작했다. 당시 허씨는 마음 맞는 청년 활동가들과 함께 경북 최초 청년자립 협동조합인 ‘바름’을 조직해 ‘동네 대학’ ‘게스트하우스’ 등을 실험적으로 조직·운영하기도 했다. 허씨가 이때부터 체감한 게 있다면 안동의 정치적 색채다.

“모든 부분에서 국민의힘이 독점하다시피 했다. 2018년 지방선거만 해도 국민의힘 외의 후보는 찾기 어려웠다. 민주당 후보들조차 좀처럼 나서지 않았다. 시의원 18명 중 적어도 한 명은 새 목소리를 내야 하지 않나 싶었다.”

결국 그는 지역에서 함께 활동하는 청년들과의 논의 끝에 자신이 직접 2018년 지방선거에 나서기로 결심했다. 그의 첫 시의원 선거 도전이었다. 그는 유세차, 확성기 없이 오롯이 자전거만으로 선거 운동에 임하며 주목을 받았다. 당시 선거에서 그는 4위를 기록했지만, 득표율 16.54%라는 나름의 성과를 거뒀다. 허씨가 소수당인 녹색당 소속 후보라는 점을 감안하면 더욱 유의미한 결과였다.

그가 녹색당을 택한 이유는 다음과 같다. “대학에서 정치를 공부하며 깨달은 건 좋은 정당에서 좋은 정치가 나올 수 있다는 점이다. 즉 정당의 중요성이다. 지역 정치에 앞서 정당에 대한 고민이 컸다. 그 와중에 국제주의와 생태주의를 견지하는 녹색당이 눈에 들어왔다. 중국 황사, 북한 핵, 일본 수출 규제 등 국가 간 연대가 아니고선 해결하기 어려운 문제가 늘고 있는데 녹색당만이 이를 타개할 수 있다고 봤다. 여기에 녹색당은 성장지상주의인 현 정치권에선 유일하게 성장의 ‘한계’를 거론하며 지속가능성에 집중한다. 양당의 독점체제도 깨고 싶었다. 녹색당을 택한 이유다.” 그가 녹색당에 입당한 건 안동에 내려오기 직전인 2015년이다. 당시 그는 당직자로도 잠시 근무했다.

다양성 부재하고 교통문제는 심각

2018년 선거 출마 후 그의 정치 행보는 더 과감해졌다. 2019년 지역 공익단체 ‘안동 청년 공감 네트워크’를 조직해 ‘버스 타기 좋은 안동’ ‘안동 시민 예산 학교’ ‘안동 청년 기본현황 조사보고서 집필’ ‘안동 청년 축제’ 등의 굵직한 프로젝트를 진행했다. 그는 “비영리단체 ‘아름다운재단’의 권유와 사업비 지원 덕에 시작할 수 있던 활동들”이라고 말했다. “이 중 ‘버스타기 좋은 안동’은 지방 중소도시의 대중교통이 생각 이상으로 불편하다는 문제의식에서 시작한 프로젝트다. 안동의 교통체제도 마찬가지였다. 하지만 이런 불편은 개인 고충, 민원으로만 치부될 뿐 사회·정치적 문제로 공론화되지 못했다. 더군다나 이동권은 보편적 시민권이자 기후위기 대응에 중요 사안이다. 이에 안동 버스 문제와 관련해 시민 네트워킹을 진행하고 시와 시의회에 정책 제안을 지속해서 이어갔다. 이런 노력 덕인지 시에선 2020년 하반기부터 시내버스 노선 체계 전면 개편 작업에 착수했다.”

“‘안동 시민 예산 학교’는 지역민들의 예산 공부 프로젝트였다. 정치, 행정은 결국 지역 예산에서 시작하는데, 이 예산 운용 방식을 알아야 지역 개선점도 쉽게 찾을 수 있을 거라 봤다. 앞서의 ‘버스 타기 좋은 안동’과도 맞물려 진행됐다.” 지역 방송가에선 이런 허씨를 고정 패널로 출연시켜 지역 이슈에 대한 논평을 요청하기도 했다. 안동MBC 시사토론 프로그램 ‘사생결담’이 대표적이다.

허씨가 생각하는 안동의 지역 문제는 또 따로 있다. “전통이 강조되는 곳이다 보니 정치·문화·사회적으로 혁신과 다양성이 부족하다. 개별 문중이 공적 의사결정이나 정치 과정에 과도하게 영향력을 미치는 경우도 잦다. 다양한 계층의 의견수렴으로 이런 점을 계속해서 깨야 한다고 본다. 앞서의 교통문제와 함께 풀어야 할 숙제이자 선거 당선 후 집중하고 싶은 과업들이다.”

그는 중소도시에 대한 정책 접근도 뒤바뀌어야 한다고 말한다. “실제 모든 지방 인구가 줄어드는데도 도시기본계획이나 대다수 지자체 보고서는 2030년에 지방 인구가 대폭 성장한다고 분석한다. 그러다 보니 개발은 지속되고 도심 공동화 현상은 심화하고 있다. 안동도 마찬가지다. 인구 감소 현상을 인정하고 정책의 틀을 뒤바꿔 실제 지역들에 알맞은 정책이 무엇인지 고민해야 한다.”

허씨가 말하는 앞으로의 목표는 상당히 구체적이다. “당장의 목표는 당연히 안동시의원 당선이다. 그리고 지역적 관점에선 안동을 녹색 도시이자 지속 가능한 도시로 만들어보고자 한다. 정당 차원에선 녹색당을 한국 정치에 주요한 플레이어로 키우고 싶다. 최근 기성 정당이 내세우는 기본소득, 탄소중립 등은 모두 녹색당에서 먼저 제안한 의제들이다. 시간이 지나면서 의제들이 그들에게로 흡수된 것인데, 창당 10주년이 된 만큼 이제는 의제 발굴을 넘어 정치적 효능감을 높이는 당으로 성장하고자 한다.”

내년은 5년 주기로 열리는 세계 녹색당 총회가 한국에서 열리는 해이다. 여기엔 녹색당 소속인 아날레나 베어보크 독일 외무장관 등 90여개국 녹색당 인사들이 참여할 예정이다.“국내 차기 대통령이 유럽 선진국의 녹색당 정치인을 맞이할 때 최소 녹색당 소속 지방의원 한 명쯤은 있어야 하지 않겠나. 더군다나 국내 지방선거에서 녹색당 후보가 당선된 사례는 없다. 소수당이 지방 정부를 운영하는 사례도 드물다. 이번 시의원 당선으로 국내 정치 역사상에 의미 있는 기록을 남기며 내년 한국 외교력을 높이는 데 일조하고도 싶다.”

이성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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