러시아 푸틴 대통령(왼쪽)과 함께 열병식에서 박수를 치고 있는 세르게이 쇼이구 현 국방장관. ⓒphoto 뉴시스
러시아 푸틴 대통령(왼쪽)과 함께 열병식에서 박수를 치고 있는 세르게이 쇼이구 현 국방장관. ⓒphoto 뉴시스

러시아군이 우크라이나를 침공한 지 4주째에 접어들었지만 아직 수도 키이우(키예프)를 점령하지 못하고 있다. 푸틴이 20여년간 군의 반발을 무릅쓰고 개혁작업을 진행했지만 러시아군의 능력은 오히려 저하된 듯하다. 서방의 관측통들은 러시아가 소련의 아프가니스탄전쟁처럼 앞으로도 상당 기간 우크라이나 내에서 어려운 전쟁을 지속할 가능성을 점치고 있다. 러시아 내부 사정도 갈수록 악화되는 양상으로 블라디미르 푸틴 대통령은 정치적으로 위기에 처한 상태이다.

지난 2월 24일 우크라이나를 침공한 러시아의 푸틴 대통령이나 세르게이 쇼이구 국방장관은 “모든 일이 계획대로 진행되고 있다”고 거듭 자신했다. 그러나 푸틴의 신뢰가 두터운 빅토르 졸로토프 국가경비대장은 지난 3월 13일 “모든 일이 우리 생각대로 신속하게 이루어지는 것은 아니다”라고 어려움을 시인했다. 러시아의 지도적 인사가 침공이 지지부진하다는 것을 시인한 것은 처음이라고 서구 언론들은 평가했다.

우크라이나 “러시아군 사망자 1만2000명”

우크라이나 측은 러시아군 사망자가 1만2000명에 이른다고 발표했다. 미국은 러시아군 전사자가 5000명 이상이라고 보고 있다. 러시아군 장성도 3명이 전사하는 등 러시아군의 인명피해는 급격히 늘어나는 양상이다. 러시아 내부 사정도 나날이 악화되고 있다. 경제는 디폴트 위기로 다가가고 있으며, 반전시위를 벌이다 체포된 러시아인들도 1만5000명이 넘는다.

서구 언론들은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에 대해 “푸틴의 전쟁”이라는 표현을 쓰기도 한다. 푸틴 이외에 전쟁에 찬성한 인물이 거의 없기 때문이다. 미국 중앙정보국(CIA)의 윌리엄 번스 국장의 지적대로 푸틴이 “우크라이나 국민의 광범위한 반발에 직면하여 어떻게 친러시아 괴뢰정권을 수립하고 유지할 수 있을지”는 불분명하다.

그러나 푸틴이 전쟁을 중단할 조짐은 보이지 않는다. 오히려 뉴욕포스트는 ‘푸틴이 어릴 때부터 몸에 밴 호전적 자세 때문에 전쟁을 절대 포기하지 않을 가능성이 있다’고 최근 분석했다. 푸틴은 자서전에서 어릴 때 상트페테르부르크의 빈민가 아파트에서 계단을 오르내리며 쥐잡기 놀이를 하였다고 회상했다. 하루는 코너에 몰린 몸집이 큰 쥐가 작대기를 든 어린 푸틴에게 덤벼들었다. 푸틴은 놀라 피했고 쥐는 달아났다. 푸틴은 위기에 처해 모면할 방법이 없을 때마다 어릴 적 코너에 몰린 쥐를 떠올리며 어떤 때라도 적에게 반격할 준비를 해야 한다고 강조한다. 푸틴은 일곱 살 때 이웃에 사는 아이들과 싸울 때에도 같은 교훈을 얻었다고 한다.

1990년대 푸틴의 정치적 멘토였던 아나톨리 솝차크 상트페테르부르크 시장은 푸틴에 대해 “대못처럼 터프하며 일단 결정하면 끝을 본다”고 평가한 적이 있다. 목표를 정하면 절대로 물러서지 않는다는 의미이다. 푸틴은 최근 벨라루시의 알렉산드르 루카셴코 대통령과 만나서도 “소련은 실질적으로 항상 제재를 받았지만 발전했으며 어마어마한 성공을 거두었다”고 말해 불퇴전의 결의를 굳히는 듯 보였다. 독일의 시사주간지 슈피겔은 최근 “푸틴이 전격전에 성공했다면 러시아의 각계각층으로부터 찬사를 받았겠지만 실패했다. 이전의 푸틴 행태로 보면 앞으로 훨씬 잔인한 공세로 나올 가능성이 크다. 승리하지 못하고 군대를 철수시킬 수는 없을 것이다”라고 전망했다. 전황이 지지부진해지면 푸틴이 전술핵 무기를 사용할 가능성도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휴전이든 종전이든 전쟁을 끝내는 결정을 내릴 수 있는 인물은 푸틴 한 사람이다.

소련 붕괴 이후 보리스 옐친 대통령 정권에서 외무장관을 지낸 안드레이 코지레프(70)는 지난 3월 12일 영국 더타임스 인터뷰에서 “푸틴은 국민들을 상대로 이길 수 없는 전쟁을 벌이고 있다”며 경제악화 등으로 푸틴을 축출하기 위한 쿠데타가 일어날 수도 있다고 진단했다. 그는 축출당한 러시아제국의 차르들처럼 “러시아 권력자는 언제든 권좌에서 밀려날 수 있다”고 강조했다. 코지레프는 “러시아 역사는 예상치 못한 결과로 가득 차 있다”며 “현재 푸틴에 대한 불만과 저항이 커지고 있어 유사한 결과를 낳을 수 있다”고 말했다.

러시아제국 역사에서 축출당한 대표적 차르는 파벨 1세(1754~1801)이다. 1796년 권좌에 오른 파벨 1세는 나폴레옹의 프랑스와 함께 영국이 지배하는 인도를 침공하려고 시도했다. 귀족들은 그가 미쳤다고 판단하고 한밤중에 침실로 쳐들어가 칼로 찌르고 목졸라 죽였다.

세르게이 이바노프(왼쪽)와 아나톨리 세르듀코프 전 국방장관. ⓒphoto 위키피디아
세르게이 이바노프(왼쪽)와 아나톨리 세르듀코프 전 국방장관. ⓒphoto 위키피디아

푸틴의 지지세력 ‘실로비키’

현재의 러시아 권력 핵심부에서 갈등이 일어나 푸틴이 제거될 가능성이 실제 있을까? 푸틴의 지지세력을 흔히 ‘실로비키(siloviki)’라고 부른다. 실로비키는 제복을 입는 직종에 종사하는 사람들을 뜻한다. 군(軍), 소련 시절 국가보안위원회(KGB)의 후신인 연방보안국(FSB)이나 군정보국(GRU) 같은 정보기관, 검찰, 경찰은 물론 소방대원까지도 실로비키에 속한다. 이들은 계급 구조가 모두 군계급으로 통일되어 있다. 우리나라의 경우 국가정보원은 일반직 공무원 직제이지만 러시아의 정보기관은 군대 직제이다. FSB 국장은 중장이다.

러시아는 전통적으로 육군이 강한 나라이다. 2차 대전 이후 소련 시절에도 국방장관에는 대부분 육군 장성들이 임명되었다. 군 고위직에는 우리나라의 사관학교 격인 프룬제 군사학교 출신들이 주로 임명되었다. 그런데 푸틴은 대통령이 된 이후 군 출신을 국방장관에 임명한 적이 없다. 첫 번째 임명한 세르게이 이바노프 국방장관은 자신과 같은 FSB 출신의 정보관료이며, 두 번째 임명한 아나톨리 세르듀코프 장관은 가구사업을 하다 국세청장이 된 푸틴의 측근이다. 또 세 번째인 현재의 세르게이 쇼이구 장관은 건축기사 출신의 재난구조 전문 관료이다. 오히려 푸틴은 군을 대대적으로 숙청했으며 야전군 출신보다는 정보국 출신을 중용했다.

푸틴은 소련 붕괴 이후 러시아군이 취한 입장에 불만을 가졌던 것으로 보인다. 1991년 개혁파 지도자인 미하일 고르바초프 대통령에 반발하여 쿠데타를 시도했던 공산당 강경파 지도자들은 민주화 지도자들인 보리스 옐친 러시아 대통령 등의 체포를 군에 지시했지만, 군은 이를 거부했다. 이후 러시아의 군은 옐친을 지지하거나 중도적 입장을 취했다. 중도파의 대표적 인물이 공산당의 쿠데타 시도 당시 러시아 의회 건물을 방어했던 공수부대 사령관 알렉산더 레베드 장군이다. 아프가니스탄의 전쟁영웅인 그는 부하들에게 “먼저 쏜 자가 최후에 웃는다”고 강조하던 전형적인 야전지휘관이다.

그는 소련 붕괴 이후 몰도바 주둔군 사령관을 지내면서 몰도바 정부와 러시아인들 간의 분쟁을 원활하게 수습하였다. 굵은 목소리가 트레이드마크인 레베드는 단호하고 터프한 태도, 애국심, 청렴한 이미지 때문에 대중의 기대를 모았다. 프랑스의 샤를르 드골 대통령을 존경하여 “육군을 보존하는 것이 국가를 보존하는 근간이다”라고 강조한 레베드는 1995년 전역할 때는 중앙정치에서 스타가 되었다.

레베드 장군의 비극

레베드는 1996년 대통령 선거에 출마하여 옐친, 공산당의 겐나디 주가노프에 이어 3위를 차지했다. 옐친은 결선투표에서의 지지를 확보하기 위해 그에게 고위직을 약속하기도 했다. 대통령에 당선된 옐친은 레베드를 안보보좌관에 임명하고 분리주의 투쟁을 벌이던 체첸공화국 문제 해결을 맡겼다. 레베드는 협상을 통해 휴전 및 러시아군 철수 결정으로 체첸 문제를 해결하여 또 한 번 대중의 찬사를 받았다. 그런데 옐친이 심장수술에 들어가는 등 병세가 심각해지자 그는 대통령이 자신에게 권력을 이양해야 한다고 공개적으로 시사하였다. 수술 후 기력을 되찾은 옐친이 분노하여 레베드를 해임하자 그는 1998년 크라스노야르스크 주지사에 출마하여 당선되었다. 레베드는 2000년 대선에 출마할 계획이었다.

그런데 1999년 여름 다게스탄공화국과 모스크바의 여러 건물에서 폭발이 발생하였다. 국무총리가 된 푸틴은 즉각 ‘체첸 테러리스트들’과의 전쟁을 선포했다. 이는 체첸공화국에 대한 전쟁 선포나 다름없었다. 당시 폭발 사건이 실제로 체첸인들의 소행인지는 밝혀지지 않았다. 오히려 FSB가 개입했다는 유력한 증거가 드러났다. 푸틴은 그 사건 직전까지도 FSB의 책임자였다.

옐친은 1999년 12월 31일 갑자기 대통령직을 사임하고 권력을 푸틴 총리에게 이양하였다. 푸틴은 몇 시간 후인 2000년 1월 1일 새벽에 체첸공화국에 주둔한 러시아군 보병사단에 나타나 병사들에게 “여러분들은 체첸에 있는 러시아인들의 존엄과 명예만을 수호하는 것이 아니라 더 이상 국가가 해체되지 않게 하고 있다”고 강조했다. 푸틴이 러시아를 체첸전쟁의 소용돌이로 몰아넣으면서 레베드는 중앙정치에서 밀려나게 된다. 레베드는 2002년 4월 헬기를 타고 지역을 시찰하다 헬기 추락으로 사망했다. 당시 미국의 LA타임스는 “레베드는 용감하고, 반항적이며, 자부심이 강하고, 독립적인 새로운 러시아군 장교의 전형을 창조했다”고 평가했다.

푸틴은 2001년 3월 대통령이 된 후 처음으로 FSB 출신인 세르게이 이바노프를 국방장관에 임명했다. 두 사람은 1970년대 레닌그라드(현재의 상트페테르부르크)대학 동기였으며 함께 KGB로 진출했다. 1998년 푸틴이 FSB 국장이 되자 이바노프는 부국장이 된다. 1년 후에 푸틴이 총리가 되자 이바노프는 푸틴에 이어 국가안보보좌관이 된다. 2001년 푸틴은 이바노프를 러시아의 첫 민간인 국방장관으로 임명하여 국방개혁을 추진토록 하였다. 그런데 이바노프는 FSB에서 중장까지 진급했던 인물로 완전한 민간인은 아니었다.

군 소유 부동산도 민간에 매각

푸틴은 2007년 2월 국방개혁 가속화를 명분으로 상트페테르부르크에서 가구업에 종사하다 국세청장으로 발탁된 아나톨리 세르듀코프를 국방장관에 임명했다. 가구업자 출신을 국방장관에 임명하자 군 간부들은 군에 대한 모욕이라며 일제히 반발했다. 유리 발루엡스키 참모총장의 요구에 따라 세르듀코프는 국방장관에 취임하기 전에 군 참모부에서 한 달 동안 훈련 코스를 이수해야만 했다. 세르듀코프는 이에 대한 보복으로 체력검정을 실시했다. 국방장관의 명에 따라 장군들은 달리기와 높이뛰기 등의 체력검정시험을 치렀는데, 대부분이 탈락했다. 러시아 언론들은 이를 조롱했다.

세르듀코프는 모스크바에 있는 군 소유 부동산을 민간에 매각하였다. 또 민간인으로만 구성된 예산담당 부서를 만들어 군 예산을 통제하였다. 이는 군의 모든 사무는 군이 통제해야 한다는 장군들의 생각과는 충돌하는 것이었다. 결국 발루엡스키 참모총장은 2008년 6월에 사임했다. 발루엡스키의 해임은 푸틴 집권 이후 시작된 군과 정치지도자들 간의 전쟁에서 정치인의 승리를 상징한다. 세르듀코프는 군 내부의 부패청산 캠페인도 실시했다. 이 과정에서 자살하는 군인도 있었다. 비효율적인 방위산업과 획득정책도 개혁한다며 군이 무기 개발과 구입을 독점하지 못하도록 하였다. 그는 참모부 인력을 30% 감원하여 상당수의 장군과 대령들이 퇴역하였다. 그리고 군 행정에 민간 회계사나 변호사, 의사 등을 참여시켜 지원업무의 상당 부분을 민간용역으로 대체하였다. 군에서는 “군인들과 축배를 들어본 적도 없고, 탱크에 누워 잔 적도 없는 사람들이 군을 운영한다”는 탄식이 나왔다.

세르듀코프에 이어 2012년에 국방장관에 임명된 세르게이 쇼이구 역시 군 출신이 아니다. 건축기사 출신인 쇼이구는 1991년부터 재해복구를 전문으로 하는 비상사태 의장으로 재직하다 국방장관에 발탁되었다. 우리나라로 치면 소방청장이 국방장관에 임명된 셈이다. 쇼이구 국방장관은 군 사령관들에게 매일 아침 러시아 국가를 연주하고, 국가에 대한 충성 맹세를 낭독하도록 하는 등 정신전력 강화를 강조했다.

미국의 데이비드 퍼트레이어스 전 아프가니스탄 주둔군 사령관 및 CIA 국장은 지난 3월 13일 CNN 인터뷰를 통해 3주간의 러시아군 공격을 평가하며 “러시아군은 끔찍할 정도로 비전문적이다. 기갑, 보병, 공병, 포병 등의 합동작전 등 기본적인 전략임무를 수행하는 수준도 아주 형편없다. 차량이나 무기체계를 유지는 수준도 아주 형편없으며 그냥 버리고 가는 것도 부지기수이다. 군수보급도 형편없다”고 말했다. 그는 러시아군이 지난 수십 년간 군 개혁작업을 진행했는데도 장비 수준이 볼품없다고 덧붙였다. 그는 전체적으로 “러시아는 정보평가 및 전장(戰場)과 적에 대한 이해, 작전의 모든 측면, 소단위 병력 운용에 이르기까지 끔찍할 정도로 부적절한 수준이다. 게다가 그들은 적지에서 아주 단호하고, 유능하고, 창조적인 적과 대면하고 있다”고 말했다. 이번 전쟁이 단기에 끝나거나 푸틴의 실각으로 이어질 수도 있지만, 아프가니스탄전쟁처럼 장기화할 가능성이 가장 크다고 퍼트레이어스 장군은 전망했다.

푸틴이 언제 물러날지 푸틴도 모른다

독일의 시사주간지인 슈피겔은 최근 “많은 러시아인들은 푸틴 이후에 무슨 일이 벌어질지 궁금해하기 시작했다”며 현재 러시아 권력층 내부에서 푸틴의 후계자로 가장 자주 언급되는 인물이 알렉세이 듀민(50) 툴라 주지사라고 보도했다. 듀민은 2012년 대통령 경호처 차장 겸 군 정보국(GRU) 부국장이 되었다. 듀민은 크름반도 병합을 지휘한 인물로 국방부 차관이 되고 군 소장으로 승진했다. 슈피겔은 푸틴이 듀민의 충성심을 높이 사서 정보부서에 뿌리내리게 하였으며, 2016년 행정 분야에서도 경험을 쌓도록 툴라 주지사에 임명했다고 설명했다. 듀민은 푸틴보다 20세나 연하여서 젊은 피로 보인다는 것도 장점이라는 것이다. 푸틴이 언제 물러날지는 푸틴도 사실 모른다. 아마도 우크라이나 전쟁의 진행상황에 그의 운명이 달려 있을 것이다.

우태영 자유기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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