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조선은 비영리단체 '뉴웨이즈(NEWWAYS)'와 함께 6·1 지방선거 전까지 '청년 정치인을 찾습니다'는 연재를 싣고 있다. 이번은 6번째 주인공이다.
 ⓒphoto 양수열 영상미디어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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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가영(36)씨는 대학에서 전자공학을 전공한 후 내로라하는 대기업에 취업해 엔지니어로 9년 동안 일했다. 회사는 김씨의 능력을 인정했고, 그런 김씨는 남부럽지 않은 연봉에 과장직까지 올랐다. 하지만 그의 눈에 비친 직장 내 각종 부당함은 그가 사직서를 꺼내들게 만들었다. 김씨는 “내가 오늘 받아든 데이터값은 어제 누군가의 밤샘 결과물이었고, 인사고과는 동료가 흘린 눈물의 결과라는 생각이 들었다”며 “하지만 기업문화는 이에 대한 반성과 성찰을 허용하지 않았고 고용평등, 출산장려 등 당연한 것들조차 존중하지 않았다”라고 말했다. 김씨는 결국 2019년 고민 끝에 회사를 박차고 나왔다. 내가 원하는 조직, 공동체에서 일하고 싶다는 생각에서였다. 그리고 그 생각은 오는 6월 지방선거에서 정의당 소속 서울 마포구의원(아선거구) 후보로 출마할 것을 결심하게 했다.

대기업 근무하며 노동문제 고민

김씨는 대기업 재직 시절 발광다이오드(LED) 사업부와 기판 소재 사업부 등에서 QA(Quality Assurance·품질관리) 엔지니어, 해외 사업부 마케터로 일했다. 대학에서 전자공학을 공부하며 꿈꿨던 직군인 만큼 나름 보람과 재미도 있었다. 하지만 ‘대기업’이라는 조직은 예상치 못한 각종 부당함을 양산했고 이는 스스로에 대한 답답함, 미래에 대한 불안으로 다가왔다고 한다.

“출산 여성에 대한 차별, 납득하기 어려운 권고사직, 직장 내 괴롭힘 등이 주변에서 빈번히 발생했다. 문제 제기나 반성은 없었다. 기업문화는 날이 갈수록 낙후됐고 남녀고용평등법 등 노동자를 위한 법 제도는 현장에서 전혀 적용되지 않았다. 서로 경쟁하고 미워해야만 살아남았다.”

김씨는 회사에서 능력을 인정받아 과장 승진도 했지만 이것이 이런 고민까지 해결하는 건 아니었다고 한다. 마음 한편이 내내 불편했다. 이때 김씨의 눈에 띈 것은 ‘정의당’이었다. “당시 심상정 대표가 내놓았던 ‘슈퍼우먼 방지법’, 즉 육아휴직 기간을 확대·보장하는 내용의 법안 등은 현 기업 현장의 문제를 담아내고 있었다. 기업 내 논의가 필요하다고 생각했던 것들이었다. 노동자에 대한 고민이 엿보였다.”

그는 2018년 무작정 정의당에 입당부터 했다. 당시 당에선 청년 정치인 육성프로그램인 ‘진보 정치 4.0 아카데미’를 처음 시행했는데, 그는 여기를 최우수생으로 수료하기도 했다. 정치에 대한 첫 공부이자 입문이었고, 지난 기업 생활에 대한 김씨 나름의 ‘대안’이었다. 이 과정에서 김씨는 소수 계층을 우선하는 정의당의 정책 기조와 가치가 자신이 거주하는 서울 마포구의 지역적 특색하고 맞물린다고도 봤다. 서울 마포구는 상대적으로 청년, 여성, 노인, 성소수자 등 다양한 계층이 공존하며 각종 사회적 협동조합의 실험이 이뤄지는 곳이었다. 정의당이라면 내가 사는 공동체부터 바꿔볼 수 있겠다는 판단이 들었다.

같은 기간 김씨는 정의당 당직자 채용 공고에도 수차례 지원했다. “사실 당에서 활동은 해보고 싶은데 대기업에서만 근무하다 보니 그 방법이 무엇인지 몰랐다. 당 채용 공고 지원에 열중했던 이유다. 불합격을 반복하다 결국 2019년 2월 운 좋게 당직자 채용에 합격했고, 다니던 회사엔 고민 없이 사직서를 제출했다.”

김씨는 중앙당 여성위원회 및 홍보팀 업무를 도맡았다. 기업 현장에서 오래 근무한 덕분에 당 정책이나 캠페인의 부족한 점, 효과를 그 누구보다 잘 파악했다. 연봉은 4분의1가량 줄고 이로 인해 생활 여건도 많이 달라졌지만 행복감은 더 컸다고 한다. “내 신념에 따라 내가 바라는 세상을 주변 사람과 공유하고 함께 꿈꿀 수 있는 것만으로도 큰 행복이었다.”

그는 더 큰 목소리를 내고 싶었다. 올해 6월 치러지는 마포구의원 선거에 나서기로 지난해 마음먹었다. 당은 그의 이런 취지에 공감해 1년간의 휴직을 허용했다.

“육아·간병도 노동으로 인정받게 하겠다”

김씨는 현재 마포구에서 다양한 지역 활동을 이어가고 있다. 대표적인 것이 ‘조례 청원 운동’이다. “지방자치법상 1000명 이상의 주민 동의를 얻은 청원은 의회나 구청에 제출해 효력을 발휘할 수 있다. 이에 조례 추진본부를 조직해 지역에 필요한 내용을 청원에 담고 있다. 현재 추진 중인 청원은 ‘돌봄의 경력 인정 및 권익 증진 조례’이다. 육아와 간병 등 무급으로 비공식 돌봄을 하는 분들에게 경력 인증서를 발급해 돌봄도 노동으로 인정하는 것을 골자로 한다. 경력단절 여성 등 사회적 소수 계층을 위한 정책이다.”

이 밖에도 김씨는 망원동 우체국 폐쇄 중단, 구청의 교복구입비 지원을 요구하는 등 지역에서 구민 복지 신장에 앞장서고 있다. 김씨는 “구의원에 당선되면 앞서의 조례 내용을 더 구체화할 계획”이라고 덧붙였다.

김씨가 지적하는 마포구의 대표적 지역 문제는 ‘교통’이다. “망원동이나 상암동 같은 경우 대중교통이 확충되지 않아 주민들이 지역 안팎을 오갈 때 상당한 불편을 겪고 있다. 주민 ‘이동권’이 제대로 보장되지 않는 셈인데, 사실 이 이동권 확보는 성평등 관점에서도 논의할 점이 많은 사안이다. 대중교통 이용률은 통상적으로 남성보다 여성이나 노인층에서 높게 나타난다. 마포구에 다양한 계층이 공존한다는 점을 고려하면 구의회 차원의 본질적 해결책 논의가 시급하다고 본다.”

김씨가 만들고 싶은 마포구는 다음과 같다고 한다. “‘모두가 즐거운 할머니로 살 수 있는 동네’, 이것이 내가 만들고 싶은 마포구다. 나이가 들어도 소외되거나 고립되지 않는 공동체로 발전시키고 싶다. 이를 위해선 앞서 언급한 돌봄 관련 정책부터 잘 정착돼야 한다고 생각한다.”

김씨는 다음과 같은 포부를 내놓기도 했다. “‘이 사람’을 막기 위해 ‘저 사람’을 선택하는 것이 아닌 ‘이 사람’이 좋아서 ‘이 사람’을 선택할 수 있는 정치를 만들고 싶다. 하지만 지난 대선에서도 그렇고 양당 체제는 더욱 굳어졌다. 다수가 전자의 상황에 직면하는 분위기다. 이를 깨기 위해선 정의당이 제3정당으로서 좀 더 기민하게 움직일 필요도 있다고 본다. 정당도 그렇고 나도 그렇고 바닥에서부터 다시 유권자들과 소통해보겠다. 소수당인 정의당, 그리고 당 소속 정치인이 할 수 있는 일이다.”

그는 또 “정치는 정치인이 되는 과정이 아닌 다양한 사람들의 이해관계를 들여다보고 조정하며 대안을 찾아가는 과정이라 본다. 올해 선거 당선 여부와 관계없이 지역을 위한 정치를 지속하겠다”라고 덧붙였다.

이성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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