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3월 29일 윤석열 대통령 당선인이 서울 통의동 인수위원회에서 열린 대통령직 인수위원회 2차 간사단회의에 참석해 위원들의 모두발언을 경청하고 있다. ⓒphoto 남강호 조선일보 기자
지난 3월 29일 윤석열 대통령 당선인이 서울 통의동 인수위원회에서 열린 대통령직 인수위원회 2차 간사단회의에 참석해 위원들의 모두발언을 경청하고 있다. ⓒphoto 남강호 조선일보 기자

윤석열 대통령 당선인은 선거 전 “소득·세액공제 적용 대상을 확대하겠다”고 약속했다. 공제 범위를 늘리는 건 세금 감면 효과가 있다. 윤 당선인이 새롭게 제시한 적용 대상은 대학수학능력시험 응시 수수료와 대학 입학전형료의 세액공제였다. 헬스장 등의 실내체육시설 이용료도 연간 최대 100만원 소득공제를 적용하겠다고 했다. 이런 작은 약속들을 재빠르게 지키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시행령을 개정하면 된다.

대통령령 제32449호인 소득세법 시행령은 연말정산의 공제항목을 규정하고 있다. 여기에 수능응시료나 실내체육시설 이용료에 관한 내용을 추가하면 된다. 해당 부처의 의지만 있으면 해결되는 간단한 일이다. 시행령을 고치는 것만으로도 정부 정책의 효율성은 높아진다.

인수위 ‘시행령으로 이행 가능한 공약 선별’

대통령은 공약을 실현해야 할 의무가 있다. 새롭게 출범하는 정부라면 더 욕심을 내기 마련이다. 그래서 이번 대통령직 인수위원회는 정부 부처에 전달한 업무보고서 작성 지침에 공약 이행 계획을 낼 때 ‘입법 없이 대통령 지시로 추진 가능한 사항을 명기할 것’을 요구했다. 입법 계획이 필요한 것과 그렇지 않은 것을 선별하겠다는 얘기다.

이런 선별이 필요한 건 국회의 현실 때문이다. 지금의 여론도 고려했을 터다. 일단 국민의힘 의석수는 110석이다. 국민의당과 합당해도 113석에 불과하다. 더불어민주당 의석수(172석)를 감안하면 법 개정을 통해 정책을 실현하려면 엄청난 줄다리기가 필요하다. 윤 당선인의 대표 공약 중 민주당의 동의를 구하기 어려운 것을 그렇다고 접을 순 없다. 주52시간제나 최저임금법, 임대차3법 등을 고치려면 충돌을 감수할 수밖에 없다.

여론의 압도적 지지가 있다면 모를까, 새 정부 프리미엄으로 국회를 압박하는 것도 여의치 않다. 대통령 집무실 용산 이전 등 인수위가 내놓는 의제에 여론이 힘을 실어주지 않는 게 현실이다. 윤 당선인이 이끌 정부에 대한 기대감도 역대 대통령들의 출발점과 비교하면 낮다. 겨우 3월 29일이 돼서야 문재인 대통령과 윤석열 당선인의 회동이 성사됐지만 만남에 이르는 과정에서 신구 정권은 부딪쳤고 양측의 골은 깊어졌다. 게다가 지난 3월 24일 새로 선출된 박홍근 민주당 원내대표는 선명하다. “강한 야당 만들기에 모든 걸 바치겠다”고 했다.

새 정부 인수위가 공약을 선별해야 했던 건 과거 보수 정부에서의 경험도 한몫했다. 이번 인수위에는 이명박·박근혜 정부 시절 인사들이 적지 않게 포진했다. 그들은 유경험자다. 인수위 사정을 잘 아는 관계자는 이들의 ‘복기’가 일정 부분 인수위 활동에 영향을 준다고 했다.

“이명박 정부도, 박근혜 정부도 집권 초반에 국정과제를 추려서 추진했던 것들이 국회에서 막히면서 그 시작이 무척 힘들었다. 특히 MB 정부는 국정과제만 200개 정도 쏟아내고 입법계획을 만들었는데 이행하지 못했다. 안 될 경우의 플랜B가 없었고 그런 실책을 되풀이하지 않으려는 것 아닐까 싶다.”

MB 정부는 법 개정 작업이 쉽지 않다는 걸 깨닫고 집권 2년 차에 접어들어서 시행령 등을 활용해 적극적으로 국정과제 해결에 나섰지만 이미 동력이 떨어진 상태였다. 결국 그마저도 수월하지 못했고 5년 임기 동안 공약 이행률은 39.48%(경실련 발표 기준)에 그쳤다.

입법 없이 바꿀 수 있는 정책들

여소야대에 떠밀려 그런 전철을 밟을 순 없다는 문제의식에서 해법으로 등장한 것이 이른바 ‘입법 패싱’이다. 법률 대신 대통령령 이하의 행정입법(시행령)을 활용하는 건데 이것만으로도 변화를 가져올 수 있는 국정과제들은 적지 않다.

일단 ‘부동산 민심’을 대변해줄 재건축 사업이 그렇다. 윤 당선인은 대선 과정에서 문재인 정부의 부동산 실정을 집중적으로 비판하며 노후 아파트의 재건축 추진을 수월하게 만들겠다고 여러 차례 공언했다. 그래서 후보 때 30년 이상 된 노후 공동주택 정밀안전진단은 면제하고 안전진단 기준 중 구조안정성 가중치를 하향 조정(50→30%)하겠다는 방안 등을 공약으로 내걸었다. 현재 구조안정성 가중치(50%)는 신속한 재건축 진행을 가로막는 대표적 독소 조항이라는 평가를 받는다. 물론 집값의 움직임 등을 지켜보며 속도 조절은 필요하지만 안전진단 기준을 완화할 것이라는 전망이 부동산업계의 지배적 예상이다. 이것도 국토부 시행령·행정규칙 개정만으로도 가능하다.

용적률 문제도 바꿀 수 있다. 재건축 사업의 용적률 법정 상한을 역세권을 중심으로 현재 300%에서 500%로 높이겠다는 공약은 국토부 시행령을 개정하면 지킬 수 있다. 반면 재건축 초과이익환수제나 분양가상한제는 법률 사안이라 국회를 통과해야 한다.

부동산 세제 정상화 공약이었던 부동산 공시가격을 2020년 수준으로 환원하겠다는 것, 종부세 공정시장가액비율을 2021년 수준(95%)으로 동결하는 것, 1주택자의 종부세율을 인하하는 것, 종부세와 재산세를 통합하는 것도 부분적으로 변화를 줄 수 있다. 종부세와 재산세 통합, 1주택자 종부세율 인하는 국회에서 법을 바꿔야 하는 문제다. 다만 시행령을 개정해 재산세(40~80%) 및 종부세(60~100%)의 범위 내 공정시장가액비율을 조정하는 건 가능하다. 종부세가 결정되는 6월 1일 이전에 시행령을 바꾼다면 보유세가 조정될 가능성도 있다.

주 52시간 유연화, 최저임금제 등 선거전에서 논쟁거리였던 노동 관련 공약은 대부분 법을 개정해야 한다. 더불어민주당이 거대 야당인 구도에서는 바꾸는 게 쉽지 않다는 평가다. 안진수 노무법인 유앤 파트너 공인노무사는 적어도 노동 분야에서는 시행령의 효과가 제한적이라고 본다.

“유연근로제와 관련해서 근로기준법 시행령으로 변경할 수 있는 것들이 몇 가지 있지만 대부분 제한적으로 예외사유를 규정한 거라서 효과는 크지 않을 것 같다. 시행령 제31조 ‘재량근로 대상 업무’를 확대하면 스타트업 개발자 등이 대상이 될 수 있고 제34조 ‘근로시간, 휴게, 휴일 적용제외’를 확대하면 농림축수산업이나 경비·기사 등 특수직종으로 제한되기 때문이다.”

오히려 사용자의 요구가 강한 중대재해처벌법은 시행령만으로도 변화가 생길 수 있다. 대형로펌의 한 관계자는 “법이 애매한 부분이 많아서 기업들이 CSO(최고안전책임자)라는 직제를 새로 만들고 사람을 세우느라 바빴다. 모호한 부분이 많은 법일수록 시행령으로 구체성을 담보하는 경우가 많은데 이 법이 그렇다”고 말했다.

사망사고 발생 시 징역 1년 이상에 처하도록 돼 있는 처벌 규정을 완화하는 건 법 개정이 필요하지만, 시행령 곳곳에 있는 표현을 수정해 처벌의 수위를 조절하는 건 가능하다. 시행령에 등장하는 ‘필요한 인력을 갖추어’ ‘필요한 예산을 편성·집행할 것’에서 ‘필요한’을 명확하게 규정하면서 기준을 낮출 수도 있고, 경영자가 처벌 대상이 되는 ‘직업성질병 목록’ 등을 변경하는 것도 변화를 줄 수 있는 방법이다.

문재인 정부가 추진했던 ‘외고·자사고 폐지’ 역시 없던 일로 되돌릴 수 있다. 현 정부는 초중등교육법 시행령을 고쳐 외고·자사고·국제고를 2025년 3월까지 일반고로 전환하기로 했다. 새 정부가 이 시행령을 철회하면 이전 정부의 정책은 백지화된다. 윤 당선인의 교육 공약을 설계한 나승일 서울대 농업생명과학대 교수는 학교 선택권의 확대를 지향하는 쪽이다.

시행령 공포 건수 증가 추세

정쟁의 갈등 요소인 검찰 이슈는 입법 사항과 맞물려서 상황이 복잡하다. 특히 검찰 예산편성권 독립과 수사지휘권 폐지가 그렇다. 일단 검찰청법에는 예산 관련 규정이 없다. 정부조직법에는 ‘법무부 장관이 검찰사무를 관장한다’고만 규정돼 있다. 대신 대통령령인 ‘법무부와 그 소속기관 직제’를 통해 법무부 검찰국이 검찰 예산편성 및 배정 근거를 두고 있다. 법령 해석에 따라 검찰청법 개정이 필요하다는 의견과 대통령령만으로 가능하다는 주장이 엇갈린다. 여야의 시각차가 극명히 대비될 부분이다.

법무부 장관 수사지휘권 폐지 공약은 법률을 바꿔야 가능하지만 법무부 훈령을 개정해 우회할 수 있다는 관측이 나온다. 훈령을 통해 장관의 수사지휘권 행사 요건을 엄격하게 해 사실상 행사를 어렵게 할 수 있다는 얘기다.

이처럼 시행령은 정부 입장에서 보면 요긴한 도구다. 그래서 현 정부로 올수록 시행령 숫자도 증가한다. 법제처 통계에 따르면 김대중 정부(1998~2002)에서는 연평균 455건, 노무현 정부(2003~2007)에서는 연평균 528건, 이명박 정부(2008~2012)에서는 연평균 758건, 박근혜 정부(2013~2016)에서는 연평균 869건의 시행령이 공포됐다. 아직 임기가 남았지만 문재인 정부(2017~2021)도 연평균 860건이 넘는다.

시행령의 증가, 그 자체는 문제가 아니다. 사회 각 영역은 복잡해졌다. 기존에 없던 새로운 현상이 생긴다면 새로운 법이 필요하다. 그렇게 상위법이 만들어지거나 개정되면 시행령도 바뀌어야 한다. 게다가 사회의 변화 속도를 재빠르게 반영할 필요가 있는데 입법은 그 속도를 따라가지 못한다. 코로나19 팬데믹도 그런 변화 중 하나다.

국회 입법조사처 관계자는 국회와 정부의 성격으로 그 차이를 설명했다. “국회는 원칙주의자에 가깝고 정부는 현실주의자에 가깝다. 현실주의자 입장에서는 세상은 빠르게 변하는데 원칙주의자의 기동성이나 전문성이 갑갑할 수 있다. 게다가 시행령은 전문화된 정부 인력을 빠르게 활용할 수 있다는 점이 장점이다. 반대로 권력의 위임이라는 민주 정치의 작동 원리로 볼 때 제한적으로 행사돼야 하는 것은 맞다.”

만약 정부가 효율성에 재미를 붙이면 제한적 행사를 넘어설 수 있다. 이해관계가 첨예한 문제는 조정과 타협이 필요하기 마련인데, 이럴 때마다 입법부를 설득하기보다 국회를 우회할 수 있어서다. 특히 대통령제 국가에서는 이런 경향성이 나타난다.

2020년 9월, 국회입법조사처의 의뢰로 한국정당학회가 펴낸 ‘행정입법에 대한 국회 통제 방안’이라는 보고서는 “우리의 경우 특히 대통령 선거와 국회의원 선거의 불일치로 인해 여소야대 정국이 나타나게 되면, 불리한 정치적 환경에 처한 정부는 독점한 국가 권력을 바탕으로 행정입법을 수단으로 삼아 국회 내 야당의 감시 기능을 우회하거나 무시하려는 유혹에 빠지기 쉽다”고 지적했다.

흥미로운 건 이번 인수위의 시행령 속도전은 이전 보수 정부보다 문재인 정부의 행보와 닮았다는 점이다. 문재인 정부도 집권 초기 시행령을 적극 활용했다. 2017년 7월 19일 당시 인수위 역할을 하던 국정기획자문회의는 ‘문재인 정부 국정운영 5개년 계획’을 통해 100대 국정과제를 발표했는데 “시행령·시행규칙 등 하위법령 개정만으로 이행 가능한 국정과제를 적극 발굴해 연내 개정 완료를 추진하겠다”고 밝혔다. 여당인 더불어민주당이 재적의원 과반에 못 미치는 120석에 불과했던 여소야대 구도라 집권 초기 개혁과제 달성을 위한 핵심 수단으로 시행령을 앞세운 것이다. 당시 민주당의 핵심 관계자는 적극적인 시행령 활용은 노무현 정부 때의 경험에서 비롯됐다고 말한 바 있다. “노무현 전 대통령도 여소야대로 출발하면서 국정이 원활히 돌아가지 않는다고 했었고 그 경험을 문 대통령도 갖고 있다”고 말했다.

2019년 1월 29일 홍남기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이 정부세종청사에서 2019 예비타당성조사 면제 대상을 발표하고 있다. 당시 예비타당성조사 면제 사업들은 이명박 정부 때 개정된 시행령을 근거로 했다. ⓒphoto 신현종 조선일보 기자
2019년 1월 29일 홍남기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이 정부세종청사에서 2019 예비타당성조사 면제 대상을 발표하고 있다. 당시 예비타당성조사 면제 사업들은 이명박 정부 때 개정된 시행령을 근거로 했다. ⓒphoto 신현종 조선일보 기자

“대통령 바뀔 때마다 바뀌는 불안정 규범”

시행령의 유혹 앞에서는 내로남불의 유혹에도 빠지기 쉽다. 2009년 1월 4일 이명박 정부의 기획재정부는 ‘국가재정법 시행령 개정안’을 입법 예고했다. 개정안은 대형 국책사업의 예비타당성조사(이하 예타)를 거치지 않고 추진할 수 있는 사업 항목을 5개에서 10개로 늘렸다. 이를 앞세워 추진한 게 4대강 사업이었다. 당시 광역별 30대 선도 프로젝트 중 21개 사업이 예타 없이 추진됐다.

10년 뒤 이 시행령을 문재인 정부가 활용했다. 2019년 1월, 국무회의에서는 ‘2019 국가균형발전 프로젝트’가 통과됐고 10년간 총 24조원을 투입하는 23개 사업을 예타 없이 추진하기로 했다. 근거로 내세운 건 MB 정부가 개정했던 시행령에 포함된 ‘지역균형발전, 긴급한 경제·사회적 상황 대응 등을 위해 국가 정책적으로 필요한 사업’이라는 문구였다.

당시 야권은 “이명박·박근혜 정부 당시 예타 면제에 반대한 여당이 태도를 바꿨다”고 비판했다. 그러자 여당은 “과거 이명박·박근혜 정부의 예타 면제는 옹호하더니 지금은 왜 비판하냐”고 맞섰다. 정부의 의지가 담긴 정책은 행정부의 독주로 이루어지고 여기에 국회가 제동을 걸지 못하면서 서로가 상대를 ‘내로남불’이라고 비난하는 상황만 만들어졌다.

“법이 아닌 명령은 법치주의의 근간을 흔든다”는 지적도 간과할 순 없다. “행정입법 또는 행정명령은 대통령이 바뀔 때마다 바뀔 수 있어 불안정한 규범이다”(조진만 덕성여대 교수)라는 지적은 이런 시행령이 가진 본질적 문제를 보여준다. 게다가 시행령의 권한이 커질수록 꼬리인 시행령이 머리인 상위법을 뒤흔드는 경우를 염려해야 한다. 이미 그런 뒤흔듦은 과거 정부에서 여러 차례 있었다.

국민의힘 관계자는 “야당이 법안마다 발목을 잡을 수 있는 상황에서 정부의 시행령은 정책을 펼 수 있는 몇 안 되는 선택지”라고 말했다. 다만 양쪽이 첨예하게 서 있는 구도라면 ‘윤석열 정부’의 시행령 사용법은 양날의 검이다. 선용(善用)한다면 여소야대라는 정국을 돌파하는 묘수지만, 남용한다면 갈등만 키우는 악수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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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회권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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