또래와의 만남이 부족한 격차세대 아동들의 활동 격차는 코로나19로 더 심화됐다. ⓒphoto Adobestock
또래와의 만남이 부족한 격차세대 아동들의 활동 격차는 코로나19로 더 심화됐다. ⓒphoto Adobestock

흔히 ‘코로나세대’라고 불리는 10대 이하 아동·청소년들은 ‘격차세대’라고 부를 수 있다. 코로나19 사태 발발 이후 아동·청소년에게서 가장 두드러지는 현상은 ‘격차’이기 때문이다.

학력 격차는 상당히 많이 언급된 문제다. 최근 이은경 한국방송통신대학교 선임연구위원이 2017~2019년과 2020년 중·고등학생의 국가수준 학업성취도 평가 결과를 비교해 보고서를 냈다. 중학생과 고등학생 모두 2020년의 학업성취도 수준은 이전보다 낮아졌는데 눈에 띄는 것은 성취 수준이 낮은 학생들이다. 학업성취도 평가는 학생들의 수준을 우수, 보통, 기초, 기초미달로 나누는데 이 중 기초와 기초미달 수준에 있는 학생이 2020년에 확연히 많아졌다. 그런데 격차세대의 문제는 학력 격차만이 아니다. 그보다 더 근본적인 부분에서 광범위하게 격차가 발생하고 있다.

일상격차에서 시작하는 격차

A씨의 집은 경기도 고양시 덕양구의 한 좁은 골목길에 있었다. 59㎡(약 18평)의 좁은 다가구주택에는 방이 2개 있어 A씨와 14살 난 아들이 한 방을 쓰고, 다른 방을 A씨의 부인과 10살 난 딸이 쓴다. A씨는 점심 무렵 출근해 밤 늦은 시간에 귀가하는 자영업자다. A씨의 부인은 결혼 전 작은 회사에서 일하다가 아들을 낳고 일을 그만뒀다. 그러다 2년 전 보이스피싱 범죄에 당하고 난 뒤 피해 금액을 메우기 위해 인근 마트에서 계산원으로 일하기 시작했다.

코로나19가 발생하고 난 뒤 A씨 자녀들은 “내내 방치되었던 상태”라고 한다. 맨 처음에는 온라인 수업용 컴퓨터가 부족해 문제였다. 이후에는 수업을 들을 만한 장소가 마땅치 않았다. 아들은 오전 시간 휴식을 취해야 하는 아버지를 피해 거실에 자리 잡고 온라인 수업을 들었지만 왔다 갔다 하는 가족들 때문에 수업에 제대로 집중하지 못했다.

B씨네 집은 전혀 다른 환경을 갖추고 있다. 지은 지 5년이 되지 않는 서울 마포구의 신축 아파트에 사는 B씨네 가족은 115㎡(약 34평)의 집에 서재를 갖추고 있었다. B씨의 15살 난 딸은 매일 서재에서 온라인 수업을 들었다. 맞벌이를 하는 B씨 부부를 대신해 할머니가 낮 시간 동안 집에 방문해 딸의 끼니를 챙겨주고 수업 듣는 것을 도왔다.

격차세대의 격차는 A씨와 B씨 가족처럼 물리적인 환경에서부터 발생한다. A씨 자녀와 B씨 자녀는 지난 2년간 계속되어 온 온라인 수업을 들을 수 있는 환경이 확연히 달랐다. B씨 자녀는 수업에 집중하기 쉬울 뿐 아니라 공부를 보조해줄 보호자도 곁에 있었다.

이 차이는 일상의 격차를 만들어낸다. 격차세대의 근본적인 문제는 일상격차에 있는데, 이를테면 C씨와 D씨의 자녀는 또래지만 지난 2년간 겪은 활동의 수준이 완전히 다르다.

남편과 이혼하고 혼자 아이를 기르는 C씨는 만 나이로 4살이 갓 된 아들을 종일 어린이집에 보낸다. 토요일에도 아들은 어린이집에서 시간을 보내야 한다. C씨가 일을 하기 때문이다. 코로나19가 발생한 이후 C씨는 아들과 나들이를 가본 기억이 거의 없다. 확진되면 수입이 줄어드는 상황에서 C씨는 감염될 가능성을 낮추느라 아들과 하루 있는 휴일에도 주로 집에서 시간을 보냈다.

같은 나이의 D씨 아들은 조금 다르다. 외조부모가 근처에 살아 보살핌을 받을 수 있었던 D씨 아들은, 어린이집을 다니는 동시에 영유아를 위한 방문 수업도 계속 받았다. 집에서도 다양한 도구로 미술 수업을 듣고, 신체활동 기구까지 챙겨 오는 체육교사를 만나 부족한 활동량도 채웠다. 거리두기 단계가 완화되는 시점에는 제주도며 강원도 강릉 같은 곳으로 여행도 다녀왔다.

활동수준의 격차는 코로나19로 제한된 환경에서 더욱 극명하게 드러났다. 성인의 경우 활동수준 차이는 본인의 선택에 따른 것이다. 그러나 아동·청소년, 즉 격차세대의 활동수준은 양육자에 달려 있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특히 아동·청소년은 발달을 위해 활동이 다양하고 많아야 한다. 일상생활 속 활동수준의 격차는 결국 발달의 문제로 이어진다.

또래와 못 만나고 고립되는 아이들

규칙적인 생활 역시 마찬가지다. 규칙적인 생활이 가능한지를 두고 격차는 크게 벌어졌다. 예를 들어 A씨의 자녀들은 온라인 수업을 듣는 동안 아침에 일어난 적이 별로 없다. A씨가 늦은 아침을 시작하는 것을 따라 A씨 자녀들도 느지막하게 기상하는 버릇이 들었다. 그마저도 매일 기상 시간이 달라졌다.

B씨의 딸은 코로나19 사태 이전이나 다름없는 생활을 하고 있었다. 그건 부모의 노력 덕분이었다. B씨 부모는 번갈아가며 중학생 아이를 돌보면서 아이가 온라인 수업을 오프라인 수업처럼 들을 수 있게 지원했다. B씨 딸은 아침 일찍 일어나 수업을 듣고 일정한 시간에 점심을 먹고 다시 수업을 듣는 일상을 반복했다.

왜 그런 규칙적인 생활이 중요한지에 대해 김현수 명지병원 정신건강의학과 교수는 ‘자아기능(ego function)’이라는 개념을 통해 설명했다.

“자아기능은 기본적인 충동을 조절하는 기능을 말합니다. 아이들은 아직 어려서 자아기능이 발달돼 있지 않죠. 규칙적인 생활은 자아기능을 만들어줍니다.”

김현수 교수에 따르면 불규칙한 생활을 한다는 것은 단순히 ‘게으르다’는 수준의 문제가 아니다.

“학습 부진 청소년에게 무엇을 도와줘야 하는지 실험을 해봤습니다. 하나는 공부를 도와주는 것, 하나는 규칙적인 생활을 하게 돕는 것이었습니다. 공부를 직접 도와주는 것보다 규칙적인 생활을 하게 하는 게 학력을 높이는 데 더 효과적이라는 결과가 나왔습니다.”

코로나19로 인해 규칙적인 생활을 못하게 된 학생과 규칙적인 생활을 이어나간 학생의 간격은 크다. 상황이 개선되어도 규칙적인 생활을 되찾기란 쉬운 일이 아니기 때문이다. “자아의 기능을 회복해야 하는 문제이기 때문에 한 학생의 의지만으로 규칙적인 생활이 금방 가능해지는 것이 아니다”라는 것이 김현수 교수의 설명이다.

또 중요한 일상격차 중 하나는 또래와의 만남 정도다. A씨의 자녀들은 거의 고립되어 있었다. 부모가 집을 비우는 시간이 많아 거의 대부분의 시간을 집에서 남매 둘이서 게임을 하거나 스마트폰을 만지작거리며 생활해 왔다. B씨 자녀 친구들은 B씨 집에서, 혹은 친구 집에서 만나 시간을 보내곤 했다. 부모들이 적극적으로 만남을 주선하기도 했고 더러는 가족들끼리 함께 여행을 떠났다 돌아오곤 했다. D씨 역시 코로나19 시국에 태어난 ‘코로나 베이비’에게 더 많은 경험을 하게 해주고 싶어 만남의 기회를 많이 만들었다. 이렇게 또래와 만나는 경험은 격차세대의 발달에 큰 영향을 미친다. 김현수 교수의 설명을 들어보자.

“뇌는 주어지는 자극마다 각각의 부분에 맞게 발달합니다. 또래와의 상호작용으로만 발달되는 뇌가 있는데, 이 부분은 부모가 어떻게 놀아주더라도 자극되지 않는 부분입니다. 또래와의 협력과 상호작용을 통해 학습하는 과정인데 아동·청소년의 발달에는 반드시 필요한 부분입니다.”

그러나 격차는 커지고 있다. 또래와 어울릴 수 있는 격차세대와 그런 기회를 잡기 어려운 격차세대 사이의 간극이 넓다.

어디서 격차가 시작될까. 격차는 가정의 사회·경제적 지위에서 비롯된다. 국제아동권리 비정부기구(NGO) 세이브더칠드런이 만 10세 아동들을 대상으로 코로나19 상황에서 어떤 변화를 겪고 있는지 조사해 발표한 보고서가 있다. 이 보고서를 보면 아동들의 감정은 부모의 소득을 기준으로 확연히 차이가 난다. 외로움, 지루함, 스트레스를 받음, 슬픔 같은 부정적인 감정은 부모 소득이 월평균 300만원 미만인 아동들에게서 높게 나타나고, 행복함, 기운 넘침 같은 긍정적인 감정은 낮게 나타났다.

보건복지부 산하 아동권리보장원이 펴낸 ‘코로나19와 아동의 삶 설문조사 보고서’를 보면 일상격차가 부모의 소득과 관련 있다는 것이 뚜렷하게 드러난다. 경제수준이 빈곤한 아동은 비(非)빈곤 아동보다 아침식사를 거르는 수가 두 배 넘게 많다. 보호자 없이 있는 시간 역시 두 배 넘게 많고, 스마트폰을 훨씬 더 많이 사용한다. 친구들과 직접 만나는 시간 또한 적다.

아이들 불행감 키우는 ‘코로나 빈곤’

정익중 이화여대 사회복지학과 교수 역시 코로나19 상황에서 아동·청소년의 일상격차와 정서상태에 대한 연구를 진행했다. 그 결과 “빈곤아동 중 가장 행복한 아동의 행복감을 수치화했을 때 비빈곤 아동 중 가장 불행하다고 생각하는 아동의 행복감보다 낮았다”는 사실이 밝혀졌다. 격차는 빈곤 문제와 관련 있다는 것이다. “빈곤 문제는 코로나19 사태 속에서 격차를 더욱 키우는 역할을 했다”는 것이 정익중 교수의 설명이다.

그런데 빈곤 문제를 단순히 소득의 적고 많음으로만 나눌 경우 맹점이 있다. 한국의 빈곤 문제는 소득의 문제를 넘어서 다차원적인 문제다. 기초 생활, 심리적 욕구 같은 부분에서도 살펴봐야 한다는 얘기다.

한 가지 주목할 만한 결과가 있다. 정익중 교수의 연구 결과에 따르면 코로나19 사태 속에서 아동학대 위험 상황을 경험한 아동·청소년 중에는 외벌이 가정의 자녀가 확연히 많았다. 은기수 서울대 국제대학원 교수의 연구에서 실마리를 찾을 수 있다. 은기수 교수는 코로나19 사태 속에서 돌봄노동과 돌봄에 대한 인식이 어떻게 변했는지 조사했다.

코로나19 이후에 전업주부 여성과 맞벌이 여성은 물론 맞벌이 남성과 외벌이 남성 모두 아이를 돌보는 시간이 절대적으로 늘어났다. 그런데 이 시간을 어떻게 생각하는지를 두고 의견이 엇갈렸다. 자녀와 더 많은 시간을 보내 좋았다는 맞벌이 여성과 외벌이 남성은 열 명 중 여덟 명이 넘었다. 그런데 전업주부 여성만이 좋았다는 응답률이 낮았다. 자녀와 떨어져 혼자 있는 시간이 절실히 필요했다고 대답한 전업주부 여성은 76%가 넘어, 33%에 그친 맞벌이 남성과 대조되었다.

은기수 교수는 이를 두고 “전업주부 여성의 스트레스와 정신적인 부담이 코로나19 사태로 인해 극심해지고 있다”며 가정 간의 격차에 대해 이야기했다. 문제는 이 격차가 자녀들에게 이어진다는 점이다. 부모, 특히 대개 주양육자인 엄마의 스트레스가 아동·청소년의 정신 건강에 해악을 끼친다는 사실은 이론적으로 뒷받침된 내용이다. 정익중 교수의 연구 결과는 코로나19 사태에서 발생한 과중한 돌봄노동이 스트레스를 야기해 아이에게 정서적 악영향을 끼칠 수 있다는 점을 보여준다.

더욱이 전업주부라는 직업 형태는 순수하게 개인의 자발적 선택에 의한 것이 아닐 가능성이 높다. 통계청의 지역별 고용조사를 보면 지난해 기준 경력단절 여성은 144만명이 넘었다. 전체 비취업여성의 절반에 가까운 수다. 코로나19 사태 발생 이후 여성 고용 문제는 더욱 심각해졌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통계에 따르면 2019년 4분기와 2020년 3분기 사이 만 12세 미만 자녀를 둔 여성의 실업률은 4.0%였다. 남성의 1.1%에 비해 훨씬 높은 수치다.

통계 자료들을 종합해볼 때 외벌이 가정의 자녀들은, 부모의 자발적 선택이 아니라 구조적인 문제 때문에 가중된 스트레스를 받고 있을 가능성이 높다. 다시 말해서 코로나19는 여성 고용의 질을 떨어뜨렸고, 돌봄 업무를 가중시켰으며, 양육자에게는 스트레스를, 아동·청소년에게는 우울감과 불안감을 전달했다. 그리고 그 격차는 안정적으로 직장에 다닐 수 있는 사람과 그렇지 않은 외벌이 가정 사이에서 커지고 있다.

결국 포스트 코로나 시대의 핵심은 격차세대를 얼마나 이해하고 격차를 어떻게 좁히는지에 달려 있을 것이다. 다양한 경로로 격차가 발생하는 요인을 살펴보고 어떻게 해결책을 찾을 수 있을지 논의하는 일이 필요하다.

김효정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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