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일 뮌스터 군 기지에 정렬해 있는 독일군 탱크. ⓒphoto 뉴시스
독일 뮌스터 군 기지에 정렬해 있는 독일군 탱크. ⓒphoto 뉴시스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이 지난 2월 24일 우크라이나를 기습 침공했다. 수많은 우크라이나인들이 목숨을 잃었고 수백만 명이 폴란드, 몰도바, 독일 등으로 피란을 떠났고, 또 떠나고 있다. 우크라이나의 부차, 마리우폴, 이르핀 등에서는 러시아 군인들이 살해한 노인, 여성, 어린이들의 시신이 발견되었다. 여기에 원유 등 각종 자원과 곡물 가격의 상승으로 세계경제는 더 어려움을 겪고 있다. 전 세계가 푸틴의 호전성과 잔인성을 규탄하고 있다.

푸틴의 우크라이나 침공에 대응하여 유럽연합(EU)과 미국 등 주요 나라들은 군사개입보다는 경제제재로 강경하게 대응하고 있다. 러시아 은행과 기업들의 자금조달을 금지했고 은행들을 국제은행간통신협회(SWIFT)에서 배제했다. 유엔은 지난 4월 7일 특별총회를 열어 러시아에 대해 유엔인권이사회 이사국의 자격정지를 결정했다.

독일 통일과 소련 연방의 해체 이후 잠시 긴장완화와 평화 무드에 젖어 있던 유럽 국가들은 안보에 대해 경각심을 갖게 됐다. 유럽 국가들 중에 특히 독일의 변화가 두드러진다. 독일은 이번 전쟁 발발 직후 러시아 제재와 우크라이나에 무기를 지원하는 데 소극적이었다. 북대서양조약기구(나토·NATO) 회원국들은 이러한 독일을 비난했고, 미국은 “독일이 신뢰할 만한 나라인가?”라며 의문을 던지기도 했다. 그런 독일이 단호히 일어섰다.

전쟁 발발 4일째인 지난 2월 27일 올라프 숄츠 독일 총리는 일요일임에도 특별 소집된 연방하원에서 독일의 외교·안보·에너지 정책의 중대 변화를 선언하는 정부 성명을 발표했다. 숄츠 총리는 “2022년 2월 24일은 유럽 역사에서 시대전환(Zeitenwende)의 한 획을 그은 날”이라며 포문을 열었다. 우크라이나 침공은 푸틴의 전쟁(Putins Krieg)이며 푸틴이 러시아제국의 부활을 꿈꾸고 있다고 했다. 또한 푸틴이 역사의 시계를 19세기 강대국의 시대로 되돌리려 하고 있고, 헬싱키 최종의정서 이후 반세기 동안 유지되어 왔던 유럽의 안보질서를 파괴했다며 비난했다.

숄츠 독일 총리 ⓒphoto 뉴시스
숄츠 독일 총리 ⓒphoto 뉴시스

독일, 올해 연방군에 1000억유로 투입

숄츠는 자유, 민주주의와 복지를 지키겠다고 했다. 독일은 나토의 집단안보 의무를 충실히 이행할 것이며, 안보에 더 많이 투자하여 독일군이 최첨단 무기를 갖추도록 하겠다고 했다. 또한 자유와 민주주의를 위해 싸우고 있는 우크라이나에 대한 지원 입장도 밝혔다. 다만 우크라이나가 나토 회원국이 아니기 때문에 군대 파견 등 직접 지원이 아닌 무기와 장비 등을 지원하겠다고 했다.

이날 숄츠의 정부 성명에서 가장 눈에 띄는 것은 국방비를 증액하고 최첨단 무기를 갖춘 연방군을 육성하겠다고 한 점이다. 이를 위해 당장 올해에만 연방군에 1000억유로(약 135조원)를 투입하며, 국방비를 2024년까지 GDP(국내총생산)의 2% 이상 증액하겠다고 했다. 또한 차세대 전투기와 탱크 등 첨단 무기를 프랑스 등과 협력하여 제작하겠다는 계획도 밝혔다.

숄츠의 성명은 사실상 독일의 재무장 선언이다.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이 아니었다면 프랑스, 폴란드 등 주변국들은 독일이 다시 군사대국으로 가려 한다고 우려했을 텐데 오히려 환영하는 분위기였다. 그만큼 유럽 국가들이 푸틴의 우크라이나 침공을 심각하게 여기고 있는 것이다. 그러면 독일은 초기에 왜 러시아 제재에 소극적이었나?

우선 에너지 자원의 러시아 의존 때문이다. 독일은 가스 소비량의 55%, 석탄은 50%, 원유는 35%를 러시아로부터 수입(2021년 말 기준)하고 있다. 1998년에 집권한 게르하르트 슈뢰더 정부(녹색당과 연정)는 장기적으로 탈원전 정책을 추진했다. 러시아산 가스를 우크라이나를 거치지 않고 직접 도입하기 위해 2005년에 노르트스트림(Nord Stream) 설치 공사를 시작하여 2011년에 가동했다. 노르트스트림은 러시아로부터 발트해를 경유하여 독일로 들어오는 해저 가스관을 말한다. 그 길이가 1230㎞에 이른다. 도입량을 늘리기 위해 2021년 말에 노르트스트림2를 완공했으나 우크라이나 침공으로 가동 승인 절차는 중단된 상태다. 그러면 독일은 왜 러시아 자원을 이렇게 많이 수입하게 됐나? 탈원전 정책 때문이다.

슈뢰더의 뒤를 이어 2005년에 집권한 앙겔라 메르켈과 그가 속한 기민당(CDU)은 본래 친원전정책을 추진했다. 그러나 2014년에 발생한 일본 후쿠시마 원전 사고는 독일의 에너지 정책을 크게 바꾸어 놓았다. 후쿠시마 사태로 여론은 탈원전 입장으로 돌아섰다. 메르켈 총리는 이러한 여론의 변화를 받아들여야 했다. 메르켈 정부는 당시 가동 중인 원전 22기를 점차 줄여 2022년까지 완전 폐지하겠다고 했다.

독일이 이렇게 탈원전 입장으로 돌아설 수 있었던 데에는 전력생산에서 신재생에너지의 점유율이 25.2%로 비교적 높았기 때문이었다.(이후 신재생에너지 점유율은 꾸준히 증가하여 2020년에는 45.2%로 늘어났고, 2030년까지 80%까지 높이려고 한다.) 신재생에너지로 전력 생산을 늘리는 한편 비교적 저렴한 러시아 자원으로 눈을 돌린 것이다.

푸틴의 우크라이나 침공으로 독일은 러시아 에너지 도입을 줄일 계획이다. 올해 말까지 석탄은 50%에서 25%로, 원유는 35%에서 25%로, 가스는 2024년까지 55%에서 40%로 각각 감축할 계획이다.

무엇보다 독일은 그동안 다시 군사대국이 되려 한다는 오해를 받지 않으려고 노력해왔다. 제1차 세계대전에 이어 제2차 세계대전을 일으킨 독일은 주변국의 따가운 시선을 받았다. 서독은 공화국 수립 6년이 지난 1955년에서야 독자적인 군대를 갖고 나토에도 가입할 수 있었다. 1950년 한국전쟁이 터지면서 서독의 안보를 우려한 콘라트 아데나워 총리의 노력과 미국의 지원으로 2〜3년 더 일찍 군대를 보유할 수 있었으나 서독의 독자적인 군대 보유를 원하지 않았던 프랑스의 반대로 늦추어졌다. 또한 통일을 앞두고 1990년 9월에 체결한 ‘2+4 조약’에서 독일은 군 병력을 37만명 이하로 유지하고, 핵무기는 물론 생화학무기를 제조하거나 사용하지 않겠다는 약속도 했다.

사실상 재무장 선언, 나토에 힘 실린다

특히 독일은 통일 이후 병력을 17만명까지 줄였고, 국방비는 GDP의 1.3〜1.4%(2019년 기준)를 유지했다. 그 결과 지난해 실시한 연방군 전투력 점검에서 독일군은 전투를 수행하기 어려울 정도로 심각한 상태라는 평가가 나왔다. 전투기 토네이도는 30〜40년이나 돼 노후되었고, 미사일 방어시스템인 패트리엇으로는 적의 미사일 공격을 방어하기 어려운 것으로 나타났다. 장비는 노후되었고 부품 조달도 여의치 않았으며 보급품 문제도 심각한 것으로 드러났다.

이 점검 결과와 우크라이나 침공에 자극을 받은 독일은 차세대 전투기 개발에 상당한 시일이 소요됨을 고려하여 우선 미국으로부터 스텔스 전투기 F-35 30〜35대 도입을 추진하고 있다. 미사일 방어시스템도 이스라엘의 아이언 돔(Arrow 3) 설치를 진지하게 고려하고 있다. 이를 협의하기 위해 지난 3월 말 연방하원 국방위원회 위원들이 이스라엘을 방문했다.

독일의 재무장 선언은 나토에 크게 힘을 실어줄 것으로 기대된다. 특히 발트 3국을 비롯하여 폴란드, 체코 등 나토에 방위를 의지하는 국가들은 서유럽에 더욱 가까이 다가가며 반러시아 입장을 유지할 것으로 보인다.

우크라이나가 전력이 월등한 러시아를 상대로 잘 싸우고 있어 전쟁이 어떻게 끝날지 예단하기 어려운 상황이다. 확실한 것은 우크라이나를 복속시키고 나토와 과거 동유럽 국가들에 영향력을 행사하려고 했던 푸틴의 야망은 달성하기 어렵게 되었다는 점이다. 오히려 국내와 국제사회에서 그의 입지만 좁아졌다.

푸틴의 우크라이나 침공은 유럽뿐만 아니라 우리나라에도 교훈을 주고 있다. 한·미 동맹과 주한미군이 안보에 소중한 자산이라는 점을 다시 일깨우고 있다. 한·미 동맹을 강화하면서, 사실상 핵무기와 ICBM을 보유한 북한에 대응하기 위한 대비도 확실히 해야 한다. 푸틴의 우크라이나 기습 침공은 안보에는 설마가 없다는 점을 우리에게 새삼 일깨워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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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선홍 전 주함부르크 총영사·충남대 특임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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