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년 내셔널리그 2루수 골든글러브 수상자인 세인트루이스 카디널스 소속 토미 에드먼(왼쪽)은 최근 언론을 통해 “한국 대표팀에서 뛰고 싶다”는 뜻을 내비쳤다. photo 뉴시스
2021년 내셔널리그 2루수 골든글러브 수상자인 세인트루이스 카디널스 소속 토미 에드먼(왼쪽)은 최근 언론을 통해 “한국 대표팀에서 뛰고 싶다”는 뜻을 내비쳤다. photo 뉴시스

‘한국 야구 구원투수’를 자임하는 허구연 KBO(한국야구위원회) 총재는 야구 흥행 방안 가운데 하나로 ‘국제대회 경쟁력 강화’를 내세웠다. 이를 위해 허 총재는 정기 한·일전 개최, 적극적인 데이터 활용, 국가대표팀 운영방식 개혁을 추진할 예정이다.

아직 대회 개최지 등은 결정되지 않았지만 내년에 열리는 것이 확정된 월드베이스볼클래식(WBC) 대표팀 구성에도 큰 변화를 예고했다. 허 총재는 한 유튜브 채널 인터뷰에서 “과거의 순혈주의에서 벗어나 메이저리그에서 활약 중인 한국계 선수도 원한다면 태극마크를 달 수 있게 하겠다”고 선언했다.

 

한국계 리스트 작성 중인 KBO

올림픽이나 아시안게임 등 국가대항전과 달리 WBC는 메이저리그 사무국이 ‘야구의 세계화’를 목적으로 개설한 대회다. 2006년 처음 열렸는데 여기에는 독특한 규정이 있다. 현재 국적 기준이 아닌 부모, 조부모, 출생지 기준으로 대표팀을 선택할 수 있도록 한 것이다.

WBC 참가 선수는 조부모와 부모 중 한 명의 국적으로 출전하거나, 시민권과 영주권을 보유한 나라의 대표로도 출전이 가능하다. 또 국적과 별개로 태어난 나라의 대표로도 나올 수 있게 했다. 한국·미국·일본과 중남미를 제외한, 아직 야구가 활성화되지 않은 나라에서도 경쟁력 있는 멤버를 구성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해 만든 제도다.

이 규정 덕분에 WBC 1회 대회 때부터 흥미로운 장면들이 나왔다. 박찬호와 LA다저스에서 함께 뛰며 우리에게 익숙한 ‘명예의전당’ 포수 마이크 피아자는 2006년 첫 대회 당시 할아버지의 나라 이탈리아 대표로 출전했다. 피아자는 내년에 열리는 5회 대회 때는 이탈리아 대표팀 감독을 맡을 예정이다.

대회마다 다른 국가의 대표팀으로 나온 선수도 있다. 국적은 미국이지만 도미니카공화국 출신인 알렉스 로드리게스는 1회 대회 때는 미국 드림팀 멤버로, 2회 대회 때는 도미니카 대표로 출전했다. 또 2012년 아시아예선 때는 보스턴 레드삭스의 2004년 우승 주역이었던 ‘동굴맨’ 조니 데이먼이 어머니의 나라 태국 대표로 출전해 화제를 모았다.

그외 파나마 출신인 브루스 첸은 중국 대표팀으로, 아버지가 중국인인 KT 위즈 투수 주권 역시 중국 대표로 출전했다. 이스라엘 대표팀도 대회 때마다 유대인 배경 선수들을 앞세워 다크호스 노릇을 톡톡히 하고 있다.

다만 그간 한국 야구 대표팀에서는 이런 사례가 나오지 않았다. 한국은 철저하게 국내 야구에서 뛰는 한국 국적 선수 위주로 대표팀을 선발했다. 한국계 외할머니를 둔 타이슨 로스가 한창 빅리그 에이스로 활약할 때 일각에서 ‘대표팀 차출’ 얘기가 나왔지만 결국 고려조차 되지 않았다. 한국계는 물론 미국 야구에서 뛰는 메이저리거, 마이너리거의 국가대표 차출도 그간 부정적이었다.

이런 관행에 허구연 총재가 과감한 변화를 선언했다. ‘최상의 대표팀 구성’을 위해서라면 국적보다 기량이 최우선이란 생각에서다. 허 총재는 한국인 메이저리거, 마이너리거는 물론 WBC에 참가 가능한 한국계 선수들의 리스트를 작성해 검토 중이다.

선수들 입장에서도 국제대회 출전 기회는 반가운 일이다. 메이저리그 올스타급이 즐비한 미국 야구 대표팀에 뽑히기는 쉽지 않다. 미국이 아닌 다른 대표팀으로라도 WBC에 출전해 좋은 활약을 보인다면 인지도를 높이고 새로운 기회를 찾는 계기가 될 수 있다.

 

골든글러브 출신에 포스트시즌 투수까지

그렇다면 내년 WBC 한국 대표팀에 뽑힐 만한 한국계 선수는 누가 있을까. 올 시즌 현재까지 가장 눈에 띄는 선수는 세인트루이스 카디널스의 톱타자인 토미 에드먼이다.

1995년생인 토미 에드먼은 한국계 어머니를 두고 있다. 풀네임도 ‘토미 현수 에드먼’을 쓴다. 2016년 신인드래프트에서 6라운드에 지명돼 입단해 2019년 빅리그에 데뷔했고 2루수, 유격수, 3루수, 외야까지 다양한 포지션을 소화하는 만능 선수다. 타격도 스위치 히터로 양쪽 타석을 다 사용한다.

데뷔 초기 에드먼은 좋은 타격 접근법과 구종 인식 능력으로 좋은 출루 능력을 지닌 선수라는 평가를 들었다. 빅리그 적응을 마친 올해는 카디널스의 1번 타자 겸 주전 2루수를 맡아 공수에서 맹활약하고 있다. 특히 볼넷 비율이 크게 늘고 삼진 비율이 줄어들면서 공격 생산성이 매우 좋아졌다. 5월 3일 기준 타율 0.306에 출루율 0.405로 ‘미국판 이용규’가 따로 없다.

타석에서 1루까지 뛰는 스피드도 빠르고, 수비를 할 때 핸들링(손놀림)과 수비 센스도 뛰어나다는 평가를 받는다. 지난해에는 내셔널리그 2루수 골든글러브를 수상했을 정도다. KBO리그 타자들과 유사한 스타일로 상대 투수들을 괴롭히는 역할을 기대할 만하다.

투수로는 텍사스 레인저스 선발투수인 데인 더닝이 첫손에 꼽힌다. 한국인 어머니를 둔 한국계 2세다. 플로리다대학 출신의 더닝은 2018년 메이저리그 유망주 TOP 100에 포함될 만큼 데뷔 때부터 주목받는 선수였다. 2016년 드래프트 1라운드에서 워싱턴 내셔널스의 지명을 받았고 시카고 화이트삭스, 텍사스 레인저스로 트레이드돼 이적했다. 2020년 빅리그에 올라와 후반기 팀의 주축 선발로 활약했고 포스트시즌에서도 와일드카드 3차전 선발로 나왔다.

올해도 5경기 26이닝 평균자책 3.81에 타석당 삼진 23.4%를 기록하며 수준급 선발투수로 자리를 굳혔다. 150㎞/h를 넘나드는 좋은 싱커와 체인지업, 슬라이더, 낙차 큰 커브를 구사하고 땅볼 유도 능력이 뛰어나다는 평가를 받는다. 좀처럼 강한 타구를 맞지 않는 스타일이라 적은 투구수로 긴 이닝을 버티는 데 적합하다.

다른 투수로는 LA 다저스의 ‘6선발’인 미치 화이트도 있다. 1994년생인 화이트는 할머니와 어머니가 한국인으로 한때 ‘박찬호 닮은꼴’로 화제가 됐다. 유망주의 천국이라는 다저스 팀내 랭킹 10위 안에 들 정도로 잠재력을 인정받은 선수다.

데뷔 초기에는 투구폼을 반복하는 능력이 떨어져 애를 먹었지만 2020년부터 이 약점을 개선하는 데 성공했다. 2021년부터 본격적으로 빅리그 등판을 시작한 화이트는 올해 불펜으로 4경기 8이닝에 나와 평균자책 4.50에 9이닝당 탈삼진 9.00개로 준수한 활약을 하고 있다.

구위만 보면 화이트는 대표팀 선발투수로도 충분하다. 패스트볼 구속이 최고 156㎞/h가 나올 정도로 빠르고 힘이 있다. 커브의 회전수도 좋고 슬라이더는 홈플레이트 바로 앞에서 꺾여 터널링(tunneling·두 개의 구종이 유사해 보이지만 타자가 스윙을 하는 시점에 각각 다른 방향으로 진행하는 현상)효과를 극대화한다. 강한 타구를 잘 맞지 않고, 삼진을 잘 잡는 것도 화이트의 장점이다.

한편 시애틀 매리너스 마이너리그 소속인 라일리 오브라이언은 불펜투수로 힘을 보탤 수 있는 선수로 어머니가 한국인이다. 2017년 프로 생활을 시작한 오브라이언은 190㎝대 큰 키와 긴 팔다리에서 나오는 최고 157㎞/h 강속구가 주무기다. 여기에 커터성 슬라이더와 커브도 잘 던진다.

다만 20대 후반 나이에 비해 빅리그 등판 경험이 많지 않다는 게 단점이다. 지난해 빅리그에 데뷔해 1경기 1.1이닝만 던졌고, 올해는 시애틀 소속으로 4경기 3.2이닝을 투구했다. 9이닝당 탈삼진 12.27로 삼진 잡는 능력이 좋아진 건 긍정적인 대목이다.

텍사스 레인저스의 선발 한 축을 맡고 있는 데인 더닝도 유력한 선발 후보 중 한 명이다. photo 뉴시스
텍사스 레인저스의 선발 한 축을 맡고 있는 데인 더닝도 유력한 선발 후보 중 한 명이다. photo 뉴시스

한국에서 뛰고 싶어 하는 ‘김정태’씨

외야수로는 가장 유명한 한국계 선수 중 하나인 보스턴 레드삭스 소속 로버트 레프스나이더가 있다. 그는 국내 야구팬들에게 ‘김정태’라는 이름으로 알려져 있는데 한국에서 태어나 생후 5개월 만에 입양됐다. 1991년생인 레프스나이더는 2012년 뉴욕 양키스에 입단해 한때 양키스 유망주 랭킹 7위까지 올라갔던 선수다. 그러나 빅리그에서는 타격과 수비에서 장점을 보여주지 못했고, 이후 해마다 팀을 옮겨 다니는 저니맨이 됐다.

원래 포지션은 2루수였지만 현재는 외야수로 나온다. 수비력이 중견수감은 아니라 코너 외야수, 1루수, 지명타자 출전이 많다. 올해 빅리그에서는 3경기 타율 0.400으로 제한된 기회 속에 타격 능력을 보여주고 있다.

또 다른 야수로는 콜로라도 로키스의 코너 조가 있다. 코너 조는 어머니가 한국계, 아버지가 중국계로 한국 이름은 ‘조곡위’다. 좋은 타격 어프로치와 선구안을 바탕으로 매년 마이너리그에서 성장을 거듭했고 지난해 빅리그 63경기에 출전해 타율 0.285에 출루율 0.379를 기록하며 주축 선수로 올라섰다.

올해는 붙박이 주전으로 출전하며 21경기 타율 0.282에 장타율 0.506 홈런 4개로 절정의 타격감을 과시하고 있다. 삼진을 좀처럼 당하지 않고 볼넷을 잘 골라내는 중장거리 타자로 매력적인 선수. 다만 선수 본인은 스스로를 ‘한국계’가 아닌 ‘중국계’로 여기는 것으로 전해지고 있어서 한국 대표팀에 합류할지는 미지수다.

한편 한때 빅리그를 호령한 타이슨 로스-조 로스 형제는 내년 WBC 대표팀 합류가 쉽지 않아 보인다. 형인 타이슨 로스는 끊임없는 부상으로 2019년 이후 빅리그 경력이 끝난 상태. 조 로스도 2019년부터 좋은 활약을 하다 지난해 초 생애 두 번째 토미존 수술을 받고 재활 중이다. WBC가 대개 정규리그 시즌 전인 연초에 열리는 점을 고려하면 조 로스가 합류할 가능성은 거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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