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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씨는 22살이 되던 올해 초, 스스로 삶을 마감했다. A씨보다 3살 많은 언니 B씨는 지난달 동생을 따라가려 하다 이를 알아차린 부모님의 만류로 마음을 돌렸다고 했다. B씨는 “부모님에 대한 걱정을 제외하면 왜 살아야 하는지 잘 모르겠다”고 말했다.

“동생과 친한 편이었는데 ‘오늘 하루 살아서 버티자’는 말을 많이 했어요. 꽤 오래전부터요. ‘ㅋㅋㅋ’ 같은 단어를 붙여 농담처럼 말하기는 했지만 진심으로 하는 얘기였어요. 동생도 아마 그랬나봐요. 어느 날은 버티지 못하겠다고 생각했었나봐요. 부모님께는 죄송하지만 저는 동생을 ‘이해할 것 같다’는 생각이 들어요.”

A씨와 B씨의 깊은 우울감은 하루이틀 진행된 것이 아니었다. B씨의 경우에는 고등학교 2~3학년부터 ‘우울하다’는 감정이 들었다고 했다. 그러나 우울감으로 치료를 받기 시작한 것은 취업에 성공한 지난해부터였다. 동생 A씨는 치료를 받지 않았다.

B씨는 얼마 전부터 카카오톡 오픈채팅방을 통해 자신과 같이 우울증을 겪는 사람들과 대화를 나누고 있다. 모두 20대고, 여성이다.

“얘기를 들어보면 사람들 모두 하루이틀 우울한 게 아니었더군요. 저는 한 번 시도했지만, 자살 시도를 여러 번 한 사람도 많았어요. 습관적으로 자해하는 사람도 한 사람 있는 것 같은데 걱정이 될 정도예요.”

이건 개인적인 이야기가 아니다. 한국교육개발원에서는 특정 시기에 태어난 사람들을 10년 넘게 추적하면서 전반적인 삶에 대해 조사하는 ‘한국교육종단연구’를 실시하고 있다. 2005년에 중학교 1학년이었던 사람을 대상으로 2020년까지 진로, 가치관 같은 것들을 질문해가며 연구한 결과가 있는데 그 결과를 담은 보고서 ‘2019 한국교육종단연구’에 20대 여성의 심리적 문제가 언급되어 있다. 이에 따르면 20대 여성들은 20대에 들어서면서부터 줄곧 자살 충동을 많이 느낀다. 2018년, 즉 이들이 20대 중반에 이르렀을 때 자살 충동 여부를 물었더니 여성 중 27%가 한 번쯤은 자살 충동을 느껴봤다고 답했다. 남성의 14%보다 확연히 높은 수치다.

자살자에 대한 통계는 문제가 심각하다는 사실을 보여준다. 대부분의 국가에서 그렇듯이 자살자 수나 자살률은 연령이 높아질수록 높아지는 편이다. 자살률은 인구 10만명당 자살하는 사람의 수를 말한다. 보통 남성의 자살률이 여성에 비해 높다. 그런데 최근 한국에서는 눈에 띄는 문제점이 발견된다. 다른 연령대나 남성의 자살률이 낮아지는 데 반해 유독 20대 여성의 자살률은 높아진다는 점이다.

통계청의 자살률 통계를 보면, 2020년 기준 그 전해에 비해 자살률이 두드러지게 높아진 계층은 20대 여성이었다. 2020년 20대 여성의 자살률은 2019년에 비해 16.5%나 늘었다. 자살률이 가장 높은 70대 남성 자살률이 13.6% 감소한 것과 대비된다. 보건복지부의 2021 자살예방백서를 보면 2019년에는 20대 여성의 자살률이 2018년에 비해 25.5%나 증가했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거의 모든 남성의 자살률이 하락했고 다른 연령대 여성의 자살률도 한 자릿수 증가에 그친 것에 비하면 지나치게 높은 수치다.

 

한국과 중국의 공통점

20대 여성의 자살 문제가 심각하다는 사실은 서서히 사회문제로 부각되고 있다. ‘왜’라는 질문에 대한 답도 나오고 있는데, 일단 통계적으로 보면 20대 여성의 자살 원인으로 유독 ‘정신적인 문제’가 많이 꼽히는 편이다. 20대 여성 자살자의 58.4%가 정신적인 문제로 자살에 이른 것과 달리 20대 남성의 자살 원인이 정신적인 문제로 꼽히는 경우는 38.4%였다. 남성 중 26.4%는 경제적인 문제가 자살의 원인이었다.

20대 여성이 만성적인 우울증에 시달리고 있다는 사실은 통계자료 곳곳에서 드러나고 있다. 이를테면 국민건강보험공단의 자료를 보면 2021년 상반기 우울증으로 치료받은 사람 중 25~29세 여성이 가장 많은 수를 차지했다. 이들 20대 중후반 여성 우울증 환자는 2017년 이후 연평균 29%씩 늘었다. 전체 우울증 환자는 해마다 7%씩 늘었다.

우울증이 자살시도를 늘리고 자살을 불러온다는 것은 잘 알려진 바다. 김현수 명지병원 정신건강의학과 교수는 “자살자 중 3분의2는 우울증을 경험한 적이 있다는 유명한 연구 결과부터 시작해 우울증을 관리하니 자살자가 줄어들었다는 실험 결과까지, 우울증과 자살의 연관 관계는 매우 밀접하다”고 설명했다. 다만 어떤 우울증 환자가 자살에 이르는지는 아직 명확히 규명된 바가 없다. 자살 생각이 반드시 자살에 이르게 만드는 것도 아니다. 단지 연구 결과들을 보면 실제로 자살 계획을 세워 자살시도를 한 경험이 있는 사람이 자살할 가능성이 높다.

문제는 왜 20대 여성이 우울증을 호소하는지다. 최근 청년 자살 문제에 대한 책 ‘가장 외로운 선택’을 엮어 쓴 김현수 교수는 20대 여성들이 ‘살 의미’를 찾지 못한다는 점에 주목했다. 20대 여성은 가부장적 질서에 따른 심한 심리적·문화적 압박을 겪어야 하는데, 이를 뚫고 나간 롤모델도 쉽게 찾기 어렵다. 김현수 교수는 20대 여성들의 삶에 “희망이 보이지 않는다”는 표현을 사용했다.

“여성 자살률이 꾸준히 늘고 있는 두 나라가 있습니다. 한국과 중국입니다. 중국에서는 도시보다 농촌의 여성 자살률이 높습니다. 공통점이 무엇일까 볼 수 있는데 결국은 사회문화적인 부분에 있겠지요.”

중국의 공산당 여성조직인 중화전국부녀연합회의 통계에 따르면 중국 가정의 30%에서 가정폭력이 일어나고 해마다 발생하는 여성 자살자의 60%는 가정폭력 때문에 죽음에 이른다. 가부장적인 가정환경과 가족문화가 여성들을 죽음으로 이끄는 것이라 추측할 수 있다. 한국 20대 여성의 문제도 이에 비춰 생각해볼 수 있다.

한국 20대 여성들이 마주하는 사회 역시 여전히 성차별적 문화가 자리 잡고 있는 곳이다. 한 가지 예를 들어보자면, 20대 여성들을 괴롭히는 외모에 대한 압박은 우울감을 발생시키는 요인이다. 여성이라면 잘 가꾼 외모를 가지고 있어야 한다는 성차별적인 인식은 ‘자기관리’라는 단어로 정당화된다. 살찌거나 못생긴 여성은 자기관리가 덜 된 사람이고, 이런 사람은 경쟁에서 살아남을 수 없다는 편견이 존재한다. 외모는 무한경쟁의 신자유주의 질서에서 살아남는 도구이자 강박으로 작용하고 있다.

A씨는 그런 압박감에서 살아남지 못했다. A씨의 가족들은 A씨의 자살이 고등학생 때부터 계속된 거식증과 이로 인한 우울증 때문이라고 생각하고 있다. B씨는 동생이 거식증에 걸리게 된 계기를 정확히 기억하고 있었다.

“고등학교 2학년 때 좋아하던 남자아이에게 고백을 했는데 거절당했어요. 그러고 나서 그 남자애가 뒷담화로 ‘돼지는 싫다’는 발언을 했다는 걸 전해 들었지요. 처음에는 먹고 토하기를 반복하더니 나중에는 아예 음식을 안 먹으려고 했어요.”

대학에 진학하면서 잠시 거식증이 나아지나 싶었지만 코로나19 팬데믹이라는 장애물이 닥쳤다. B씨는 동생이 비대면 수업을 들으며 체중이 오락가락했다고 말했다. 가족들은 병원 치료를 권유했지만 A씨는 거부했다. 그리고 극단적인 선택을 했다.

“동생은 ‘여자는 뭐뭐해야 한다’는 말을 입에 달고 살았어요. 사망 직전에는 집에서 좀처럼 나가지 않았는데 외출할 때만큼은 정말 완벽하게 차려 입고 나가곤 했어요.”

 

10대부터 시작하는 우울증

섭식장애를 연구해 온 김율리 인제대 서울백병원 정신건강의학과 교수에 따르면 거식증이라 불리는 신경성 식욕부진증은 A씨처럼 10대 후반에 처음 발생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섭식장애의 발병이 10대 때 주로 일어난다는 점에 주목할 만하다. 10대 여성들의 자살 생각률도 또래 남성에 비해 높다는 점과 관련지어 생각해볼 수 있기 때문이다. 2021년 양성평등실태조사 결과 10대 여성들이 자살을 생각해본 비율은 6.4%로 10대 남성들의 자살 생각률 1.7%에 비해 훨씬 높았다.

우울증이나 자살과 밀접한 관련이 있는 섭식장애는 치료기간이 평균 12년으로 매우 길다. 이 때문에 20대 환자가 많은 것처럼 보이지만 사실은 10대 때부터 발병한 경우가 상당수다. 마찬가지로 자살 생각을 많이 하고 자살 시도를 많이 하는 20대 여성들이 눈에 띄지만 이 문제는 10대 후반 여성들의 우울증이나 습관적인 자해 행위와 더불어 생각할 필요가 있다. 실제로 트위터 등 소셜미디어에는 자해행위와 섭식장애, 우울증 문제로 힘들어하는 10~20대 초반 여성들이 많다. 전문가들이 위험성을 지적할 정도다.

트위터에서 자해행위와 관련된 게시물 수십 건을 올린 C씨의 경우 자해행위가 시작된 것은 18살 때부터라고 했다.

“자해 사진을 올리면 같은 처지에 있는 사람들이 자신의 사진을 보내주면서 위로해주기도 해요. 위로받으려고 올리는 사진인 것도 맞아요.”

그런데 이런 행동들을 영국 최대의 민영방송인 ITV 회장 피터 바잘게트는 책 ‘공감 선언’을 통해 “극단적이고 과도한 환상의 세계를 굳건히 다져준다”고 부정적으로 평가했다. 즉 소셜미디어 등에서는 위로받아서는 안 되는 행동을 위로해주면서 격려하고 옹호해주기까지 한다는 것이다.

실제 자해행위나 자살시도와 소셜미디어의 관계에 대해 밝혀진 바는 없지만 이제는 10대 후반부터 20대에 이르는 여성들의 자살 문제를 이와 관련해 생각해볼 필요가 있다. 그동안에는 20대 여성의 우울증과 높은 자살률의 원인을 성차별적인 노동 환경이나 성차별적이고 폭력적인 사회 환경 등에 초점을 맞추어 설명해왔다. 그러나 이 같은 설명은 사회구조적 문제가 원인이라는 지적은 할 수 있지만, 해결책은 요원하게 만드는 일이다.

이런 점에서 조금 더 개인적인 차원에서 어릴 적부터 우울증을 관리하는 일이 필요하다는 점을 인식해야 한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조언이다. 자살 유가족이자 자살 시도자로서 B씨는 “만약 고등학생 때부터 치료를 받았다면 어땠을까 상상해보는 날이 많다”며 “분명 결과가 달랐을 것”이라고 말했다. 

 

우울감 등 말하기 어려운 고민이 있거나 주변에 이런 어려움을 겪는 가족·지인이 있을 경우 자살예방 상담전화 ☎1393, 정신건강 상담전화 ☎1577-0199, 희망의 전화 ☎129, 생명의 전화 ☎1588-9191, 청소년 전화 ☎1388, 청소년 모바일 상담 ‘다 들어줄 개’ 앱, 카카오톡 등에서 24시간 전문가의 상담을 받을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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